최종 : 19/09/19 21:13



양빈(楊斌)사태 (1)

부상에서 몰락까지 불과 보름도 걸리지 않았다.

2002년 9월 24일 북한의 신의주 특별행정구(이하 신의주 특구) 초대 행정장관에 임명되면서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던 중국의 신흥부호 양빈(楊斌)은 중국 당국에 의해 10월 4일 전격 체포됨으로써 그의 부상만큼이나 충격적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10월 8일 현재 양빈은 정식으로 구속된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가 이날 있은 정례브리핑에서 그가 각종 비리 연루 혐의로 연금 상태에서 조사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운명이 어디로 가고 있는 가를 분명히 했다. 한편 CNN은 북한과 중국이 양빈을 특구 행정장관에서 해임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부상과 몰락이 갖는 의미가 복합적이기 때문에 이를 '양빈 사태'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천안문(天安門) 사태'처럼 말이다. 천안문 사태가 개혁 개방의 진로를 둘러 싼 갈등, 각 파벌 간의 권력투쟁, 그리고 대외 인식과 밀접하게 연계된 것처럼 '양빈 사태' 도 국내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였다.

우선 외교적 측면을 살펴보자. '양빈사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일련의 외교 이니셔티브에 대한 중국의 부정적 인식과 견제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올해 들어와 김정일이 펼친 외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1년 9.11 테러와 2002년 초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 이후 북한의 처지는 극도로 궁색해졌다. 부시 미 대통령의 당선 이후, 남북대화 중단 등을 통해 구사하였던 '고슴도치 전략'은 더 이상 먹혀들 수가 없었다.

미국이 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처리하고 뒤이어 이라크 공격을 감행하려는 상황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지목한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만일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마저 단기간에 종료된다면 다음 목표는 또 다른 회교 국가인 이란이 아닌 북한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을 의식, 군사적 방식으로 갈 공산은 높지 않다. 하지만 아프간 전, 이라크 전의 승세를 몰아 북한을 압박할 경우, 김정일의 정치적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미국의 대 이라크전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쉽게 끝날 지의 여부는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는 대비해야 했다.

북한의 김정일은 러시아에서 이러한 외교적 난국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왜 중국 대신 러시아였나. '강성대국'을 지향하는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 분야에서 대남 우위 확보와 핵무기와 미사일 등 대량살상 무기 분야 있어 최대한의 실리를 얻어낼 때까지 모호성을 유지한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대남, 대미 협상력을 제고시키기 위해서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이 두 가지 목표에 대해서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자국 경제의 성장 지속을 위해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도 북한의 이러한 자세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최근 한국에서 열린 한국, 러시아 포럼에 참가한 러시아측 인사들은 9월에 있은 북한과 일본의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러시아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올해 들어 무려 스물 세 번이나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를 만났다고 한다. 이는 북한이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조성된 외교적 난국을 중국이 아닌 러시아를 통해 타개하려 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또한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일차적 관심이 중국에서 중동으로 올겨 감에 따라 미국과 중국과 화해 무드가 조성된 상황도 북한이 러시아 쪽으로 눈을 돌리게 한 원인 중의 하나다. 사실 탈북자 문제 처리 과정에서 중국은 더 이상 북한 측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따라서 북한의 러시아 접근을 불가피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던 러시아와 일본 역시 북한 접근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으로 자신들을 끌어올릴 필요성이 있었다. 한중 수교 이후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급속한 접근에 초조감마저 느끼는 처지였다. 태평양으로의 출구를 마련하기 위해서 러시아 역시 한반도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북한과 그 상대방인 러시아와 일본이 상호 접근할 필요성에 대해서 인식이 일치했으나 가시적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북한은 양보를 해야 했다. 북한은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 교섭에 나설 수 있는 활로를 마련해주었다. 뒤이어 신의주 특구 지정 발표, 그리고 네델란드 국적의 중국인 부호인 양빈을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에 임명함으로써 변화하려는 자세를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남북 정상회담에 응함으로써 북한과의 교섭에 미온적이었던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를 움직였던 것처럼 북한의 외교 이니셔티브는 또 다시 미국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북한과의 직접 교섭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미국은 급기야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를 북한에 보낸 것이다.

북한의 이 외교이니셔티브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의 우월적 위치를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중국은 북한의 이러한 외교공세에서 중소 대립 당시 줄타기 외교를 통해 톡톡히 실리를 챙겼던 사실을 떠올렸을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 단독으로는 각각 중국과 미국의 종속 변수가 될 수밖에 없지만 두 나라가 패키지로 한반도 문제에 접근할 경우, 무시 못할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러시아는 북한의 낙후한 재래식 무기체계를 개선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방패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대량살상 무기와 관련한 북한의 대미 교섭력을 제고시킬 수 있다.

한편 일본의 경제력은 북한 경제 회생시키는데 자국의 경제 발전에 전력을 집중해야하는 중국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일본 단독으로는 이를 구현할 방도가 없다.

북한의 김정일은 러시아를 매개로 하여 일본과 수교교섭을 본격화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에 있어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소외그룹과 미국과 중국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대립구도를 연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의 북한 접근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하여 북한은 신의주 특구 지정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에 이르렀다.

북한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이 일련의 행보에 가장 당황한 것은 물론 미국이었지만 중국 역시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의주 특구 지정 발표가 있은 후 중국 외교부가 의례적인 환영 논평에 덧붙여 중국의 방식이 북한에도 맞을지 의문이라는 말한 것은 중국의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은 중국의 이러한 심사를 간파, 중국인인 양빈을 행정장관으로 임명하고 또 신의주를 홍콩과 같은 특별행정구로 만들 것처럼 선전했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에 대해 경고할 필요성을 해소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오히려 양빈의 행정장관 임명은 중국이 북한의 구상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 양빈은 탈세와 부패에 연루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양빈을 통해 중국의 의표를 찌른 북한은 양빈으로 인해 의표가 찔린 셈이다. <차이나워처> <계속>

2002/10/0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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