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빈(楊斌) 사태 (2) '양빈사태'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중국이 '북한식 개혁개방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 있다. 2001년 9월 장쩌민의 북한 방문 시 중국과 북한 당국이 합의한 것 중의 하나는 각자의 경제노선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북한이 발표한 양국 정상회담 상보에는 “김정일 동지는 강택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의 영도 밑에 중국인민이 중국의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대해서와 세 가지 대표에 관한 사상(3개 대표론)을 비롯해 중국 당이 내놓은 노선과 정책이 중국의 실정에 맞고 인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한편 장쩌민은 2001년 9월 3일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한 뒤 발표한 서면 연설에서 “최근 조선 인민들은 김정일 총비서를 머리로 하는 조선노동당이 조선인민들을 이끌고 ‘조선식 사회주의의 길’로 분투선전하는 데 대해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회담 후 중국 측은 김정일이 중국식 사회주의 개혁 정책을 뒤따를 의사를 밝혔는가에 대해 “각자의 사회주의에는 각자의 길이 있으며 이에 대해 상호 존중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각자의 개혁 개방 방식에 대해서 상호 존중, 상호 불간섭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던 것이다. 북한이 신의주를 특구로 지정한 것은 일견 중국의 개혁 개방 방식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시장경제 추진에 따라 신흥 부호가 된 중국인 양빈을 특구 행정장관으로 임명하고 또 신의주를 홍콩 식으로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 등이 그 증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신의주를 특구로 지정한 것은 중국의 조언에 대한 명백한 거부였다. 김정일이 2000년 5월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주룽지 총리는 개성을 특구로 지정할 것을 조언하였고 장쩌민도 북한 방문 당시 개성이 특구로 적합할 것이라고 충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남쪽에 인접한 지역을 개방할 것을 촉구했던 것은 선전식 모델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선진 경제 지역과 동떨어진 나진 선봉지구를 개방,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이 염두에 둔 신의주 보다는 개성이 적합할 것이라는 충고였다. 그러나 북한은 '자기 식대로' 신의주를 특구로 지정했다. 북한의 신의주 선호는 뿌리가 깊다. 1999년 10월 1일 북한을 방문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신의주에 공단을 조성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김정일은 정주영 명예회장을 수행한 정몽헌 회장이 황해도 해주에 공단을 조성하겠다는 의사표명에 대해 신의주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김정일은 압록강을 끼고 있고 또 근처에 북한 최대의 수력발전소인 수풍 발전소가 있으며 국경 도시로 물자 수송이 원할한 점을 들었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은 신의주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했으나 그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신의주가 김정일이 말한 것처럼 장점을 갖고 있으나 접안 시설 등이 미비하고 또 남한 지역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중국의 조언과 최대 경제 협력 파트너인 현대의 부정적 의사표시에도 불구하고 신의주를 특구로 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개성과 해주는 모두 휴전선에 인접해 있다. 개성과 해주의 개방은 필연적으로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개선할 각오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강성대국을 지향하는 북한은 개혁 개방에 따른 경제적 실리와 함께 군사적 긴장관계의 유지를 원하고 있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한다는 것이다. 개성과 해주는 한 마리의 토끼를 포기하는 선택이기 때문에 일찌감치 배제되었다. 여기서 신의주 특구지정 발표 후 개성공단의 운영권을 삼성에 제공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던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신의주 외에 개성을 특구로 지정하려는 의도라기 보다는 신의주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는 현대 그룹을 압박할 목적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중국의 군사기지 바로 코 앞에 중국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미국과 일본의 기업이 들어설 것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가지는 신의주 특구가 중국의 동북 지역으로 흘러들 수도 있는 미국과 일본의 자본을 상당부분을 흡수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신의주 특구 지정은 중국의 개혁 개방 모델을 '북한식'으로 변용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이익을 크게 침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은 장쩌민의 북한 방문시 체결한 합의를 깨며 북한식 개혁 개방 방식에 개입한 것이다. 양빈 체포 이후 중국은 신의주 특구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양빈 처리와 후임 특구장관 인선 문제, 그리고 신의주 특구의 개발 방향을 두고 북한과 협의 또는 간섭을 하려들 것이 분명하다. 바햐흐로 북한의 개혁 개방 방식에 대한 중국의 간섭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상당부분은 북한이 자초한 것이다. <차이나워처> <계속>

▶ 2002/10/18 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