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베이징-상하이 고속철 수주에 총력전 일본 고속철의 ‘중국 진출’은 가능할 것인가. 중국의 정치 중심지이자 수도인 베이징(北京)과 경제중심지 상하이(上海)를 잇는 1,300km의 ‘징후(京滬) 고속철’을 놓고 일본, 독일, 프랑스는 그동안 치열한 수주 3파전을 벌여왔다. 독일의 자기부상 방식에 호의적 관심을 기울여 온 중국측은 현재는 안전성과 경제성 등을 이유로 레일식 방식을 채택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이다. 중국측의 자세전환에 따라 일본 신칸센(新幹線)이 큰 비교우위를 갖게 됐고 중국의 관계 책임자들 역시 신칸센에 호의적이다. 일본은 이러한 상황이 수주성공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명보가 11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250억 달러(30조 원) 규모의 이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일본은 활발한 방문 외교를 펼치는 한편 중국의 ‘환심’을 얻기 위한 갖가지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일본에서 거론된 방안 중에는 엔화 원조차관의 확대와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대체한 새로운 기념관 설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신칸센 진출 뿌리깊은 반일정서 극복이 과제 그러나 일본의 고속철이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중국 민중의 뿌리 깊은 반일정서와 과거 역사의 부정적 유산을 넘고 뚫어야 한다. 신칸센의 중국진출을 낙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철도는 바로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이었다. 한국 고속철 수주전에서 일본의 신칸센이 프랑스의 테제베(TGV)에게 패하고 중국이 상하이-푸둥(浦東)간의 고속철을 검증된 일본과 프랑스의 ‘레일식’이 아닌 독일의 ‘자기부상식’을 채택했던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인 철도의 상징성 때문이었다. 상하이-푸둥 간의 연장 33km의 고속철은 자기부상식을 채택한 세계 최초의 상용(商用)노선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중국은 일본은 물론 제국주의 침략의 ‘전과(前科)’에 있어 독일에 압도적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프랑스마저 배제했던 것이다. 그리고 독일의 자기부상 방식의 ‘모르모트’가 되기를 감수했다. 이는 경제, 기술외적 논리에 따른 것이다. 다만 이러한 도박은 독일로부터 적절한 반대급부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심각한 기술적, 경제적 문제점만을 야기했다. 독일측은 상하이-푸둥 간 고속철 건설 과정에서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가 직접 나서 항의하는 일이 발생했을 정도로 약속한 기술이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또한 시험 운행 이후에는 손해배상 문제까지 발생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중국의 산업계는 ‘징후 고속철’에서는 자기부상식 보다는 레일방식을 선호하고 있으며 특히 철도부장은 자기부상 방식에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잇단 악재 연발로 독일 자기부상식 밀려나 자기부상식에 대한 보다 결정적인 악재는 독일 서부 노르트 베스트팔렌 주 정부가 6월 달 하순 자기부상방식 고속철 건설계획을 재정난을 이유로 단념한 것이었다. 이는 자기부상식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것이었다. 이처럼 징후고속철 건설에 레일식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일본은 신칸센 진출을 성사시키기 위해 총력을 경주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우세 굳히기’인 셈이다.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이 9일 중국을 방문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12일로 25주년을 맞는 중일 평화우호조약(和平友好條約) 기념활동 참석-후쿠다 장관은 우호조약 체결당시 일본 총리였던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의 아들이다-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진정한 목적은 고속철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서이다. 후쿠다 관방장관에 앞서 고속철 수주 업무와 직접적 연관을 맺고 있는 오오게 치카게(扇千景) 국토교통성 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후쿠다 장관은 오오게 장관과 마치 배턴 터치를 하듯 중국을 방문한 셈이다.] 엔화 차관 증대와 야스쿠니 신사 대체 건물 건설 제안도 교통성 장관의 방중 기간 일본에서는 고속철 수주 성공을 위한 민간 주도의 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에서 나온 주목할 제안은 고속철 수주를 위해 엔화차관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도 이와 별도로 중국에 대한 원조 증대를 검토하는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중국은 일본과 수교하면서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본의 중국에 대한 자금 지원은 차관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의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일본은 차관의 규모를 줄여 왔다. 또한 대상도 내륙의 낙후한 지역으로 한정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았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연해지역에 차관을 제공하는 것은 자신을 해칠지도 모르는 호랑이 새끼에게 먹이를 주어 키우는 격이라는 논리가 배경에 깔려 있다. 엔화 차관을 증대하자는 제안은 법적 문제 등 일본 내부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민감한 사안이다. 일본 산업계와 정부가 중국을 경계해야 한다는 공통인식에 바탕을 두고 합의한 원칙을 깨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제안한 이들은 중국의 등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위험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일 것이다. 후쿠다 관방장관은 일찍이 별도의 기념관을 세워, 매년 총리의 참배 문제로 중국의 반발을 야기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다. 후쿠다의 이러한 주장은 신칸센 수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힘을 얻게될 전망이다. 이번 수교 25주년 기념행사에 후쿠다를 보낸 것도 그에 대한 중국의 호의적 인식을 십분 감안한 것임을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일본의 열렬한 구애에 대해 중국은 무뚝뚝한 자세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내부 방침으로 신칸센을 채택하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지만 일본의 보다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또 일반 민중의 반일 정서를 감안, 겉으로만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의 속 마음은 현 시점에서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원자바오 역사와 대만 문제 강조 원자바오 총리는 10일 다나카 관방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다. 원자바오는 중국과 일본이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가까운 이웃이고 양국의 경제협력이 상호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는 상투적인 외교적 발언으로 운을 뗀 뒤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바라보자(以史爲鑒 面向未來).” “고도의 전략적 자세로 양국간의 문제를 바라보고 파악해야 하며 관련문제를 처리하여야 한다.” “양국간의 상호 이익을 도모하고 건강한 발전을 이루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대만문제가 특히 중요하다.” 원자바오의 이러한 언급은 고속철 선정과 관련하여 기술적, 경제성, 안정성과 같은 경제 기술적 요인 외에 역사와 대만 문제와 같은 비 경제적 정치 문화적 요소가 작용할 수 있다는 시사로 해석된다. 다나카 관방장관에 앞서 중국을 방문했던 오오게 교통성 장관 역시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시큰둥한 반응만을 얻었을 뿐이다. 중국측은 일본 교통성 장관의 방문에 대해 한차례 연기를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이징의 《재경시보(財經時報)》에 따르면 중국이 내세운 이유는 미묘한 시기이기 때문에 정치인이 활동을 하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오게 교통성 장관은 중국 방문을 밀어붙였다. 철도부 관리를 비롯한 중국의 관련 부서 관리들을 두루 저촉하며 신칸센 세일즈에 열을 올렸다. 오오게 장관의 이러한 접근 방식이 몹시 못마땅했던지 왕자오청(王兆成) 철도 부부장은 “우리는 (여전히) 세계 각국의 선진기술 전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라는 말로 사실상의 면박까지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른 대부분의 관계자들로부터도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봐야 한다라는 영양가 럾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왔다라는 것이 외신들의 평가이다. 중국 관리들의 이러한 신중한 자세는 중국 민중들의 반일감정도 한 몫을 했다. 징후 고속철이 신칸센 방식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경제성과 안전성이 앞선 신칸센을 채택해야한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지만 다수는 신칸센 도입 반대다. 일본은 대만 고속철 수주전에서 프랑스와 독일을 물리친 바 있다. 고속철 수주전에 뒤늦게 뛰어든 일본은 결국 2000년 12월 타이베이(台北)-가오슝(高雄)간의 고속철 공사 계약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유럽 고속철도 연맹이 약속 위반을 이유로 대만측에 8억 달러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을 정도로 일본의 수주는 막판뒤집기였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일본 신칸센이 대만을 거쳐 상하이에 상륙하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과거 일본 제국주의 중국 침략 코스를 연상시키게 한다. 원자바오가 고속철 수주 지원을 위해 온 것이 분명한 후쿠다 관방장관에게 역사를 강조한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청조가 멸망한 직접적 계기는 철도 문제 때문이었다. 청조는 재정난 타개를 위해 민영철도를 국유화하고 이를 담보로 열강의 금융자본연합체인 4국 차관단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빌리려 했다. 청조의 이 조치는 각지의 무장투쟁을 불러 일으켰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동원된 군대가 봉기를 일으키면서 위태롭게나마 연명하던 청조는 망하고 말았다. 따라서 현재 징후 고속철의 수주전에서 일본이 크게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섣부른 결론은 금물이다. 역사의 무게 때문이다. <차이나워처>

▶ 2003/08/11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