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0/03/29 22:03



華國鋒 마오쩌둥 사망 다음날 4인방 체포 결단

지난 76년 10월 4인방을 체포한 사건과 관련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식 후계자로 제1 당부주석과 총리를 겸임했던 화궈펑(華國鋒 83)은 마오가 사망한 다음날인 9월9일 장칭(江靑) 등을 연행하기로 결심을 굳혔던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시사잡지 염황춘추(炎黃春秋) 7월호는 화궈펑의 측근인 장건성(張根生) 前지린성장의 말을 인용, 화가 4인방을 전격 체포하기로 마음을 먹은 뒤 바로 원로들의 협력을 얻기 위한 막후 공작에 나섰다고 소개했다.

그간 4인방 체포를 둘러싸곤 예젠잉(葉劍英)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 원로가 주저하는 화궈펑에 결단을 내리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하지만 장건성에 따르면 화궈펑은 일찍부터 4인방 타도를 결심하고 주도적으로 '거사'를 위한 준비작업을 철저히 진행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장건성은 화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직접 듣고 기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의 증언에 의하면 마오쩌둥이 사망한 9월10일 리셴녠(李先念) 부총리를 비밀리에 만나 "당의 최고권력을 탈취하려는 4인방의 야심을 더이상 방관해선 안된다"면서 예젠잉에게 연락을 취할 것을 부탁했다.

리셴녠은 9월13일 4인방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 '식물원에 구경간다'는 구실로 외출해 예젠잉을 찾아갔다. 이러한 사전준비를 거쳐 화궈펑은 예젠잉과 대면한 자리에서 '비상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문제로 해결하자'고 합의했다.

이어 화궈펑은 우더(吳德) 베이징시 당서기 등에게 4인방의 영향력하에 있는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의 학생이 소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방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화궈펑과 원로들은 4인방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되자 10월6일 장칭과 야오원위안(姚文元) 장춘차오(張春橋) 왕훙원(王洪文)의 일제 체포를 단행했다.

이들의 체포에 성공한 직후에 소집된 정치국 회의에서 화궈펑은 예젠잉을 당주석으로 추대했지만 예는 "마오 주석이 후계자로 지명한 것은 당신이다"라며 고사함으로써 화가 당주석과 군사위 주석에 선출돼 실권을 장악하게 됐다.

앞서 화궈펑은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죽은 76년 2월 총리 대리에 취임했고 4월에는 마오쩌둥의 지명으로 제1 당부주석겸 총리로 승진했다.

하지만 마오의 사망으로 정통적인 권력 계승자로서 정치기반을 서둘러 강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빠졌고 당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4인방의 체포에 승부수를 던질 수 밖에 없었다고 화궈펑은 술회했다.

2004/07/2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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