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영웅’ 대박 有感 (1) 지금으로부터 2,231년 전인 BC 227년, 중국에서 천하를 진동시킨 암살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장소는 전국 7웅(戰國七雄)중 가장 강성한 국가인 진(秦)의 수도 함양(咸陽)의 구중궁궐 안. 가까스로 암살위기를 면한 이는 이 사건 6년 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여 시황제(始皇帝)가 되는 진의 국왕 영정(嬴政)이었다. 암살 기도자는 형가(荊軻)라는 이름의 자객. 진의 침략에 시달리던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을 받아 거사에 나섰다. 형가는 무예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 거사를 위해 떠나면서 ‘바람소리 소슬한 가운데 역수가 차갑구나, 장부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風蕭蕭兮易水寒，壯士一去兮不復還)’ 라는 유명한 시를 남길 정도로 독서도 많이 한 인물이었다. 이후 2천여 년 동안 뜻을 품고 집을 떠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장감에 젖은 채 이 시귀를 되뇌었을 것인가 ! 형가는 단의 하수인이 아니라 상급공경(上級公卿)으로 예우한 동지(同志)였다. 케네디 암살이 아니었으면 어느 누구도 그 이름을 알 수 없었을 ‘오스왈드’가 아닌, '성공한 암살범'이 되기 이전에 고매한 인격과 탁월한 웅변으로 이름을 날렸던 '브루투스’에 가깝다. 형가는 연나라로 망명해 온 진나라 장군 번어기(樊於期)의 목과 연나라의 곡창이며 요충 독항(督亢 : 지금 허베이河北성 구안固安현)의 지도를 갖고 진시황의 면전에까지 다가갔으나 그를 죽이는 데는 실패했다. 형가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고 위기를 면한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브루투스의 카이사르 암살이 로마의 제정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형가가 설사 암살에 성공했다 해도 천하통일은 지연됐을 수는 있지만 결국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연나라와 형가가 모든 것을 ‘올인’하여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이 암살기도가 실패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 사건이 있은 지 136년 뒤인 BC 91년에 사마천(司馬遷)이 완성한 사기(史記)는 형가가 실패한 이유를 형가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일을 성취하지 못한 이유는 진왕을 산채로 위협하여 침략한 연의 땅을 반환한다는 약속을 받고 태자(단을 말함)에게 보고하려 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기록이 있은 지 2,138 년이 지난 AD 2002년, 중국의 영화감독 장예모(張藝謀 :장이머우)는 이 암살기도 사건을 소재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 상급공경 형가는 여기서 미천한 장수 ‘무명(無名)’이 되고 ‘번어기의 목’과 ‘독항의 지도’는 진왕 영정이 두려워하는 세 명의 자객 ‘은모장천’, ‘파검’, 그리고 ‘비설’의 무기가 되었다. 형가가 그랬듯이 영화 속의 무명도 진시황의 면전에 다가 갈 수 있었다. 영화적 각색은 했지만 여기까지는 ‘사마천’의 기록을 따른 스토리 전개였다. 그러나 장예모는 진시황을 죽이는 데 실패하는 대목에서 ‘사마천’의 기록을 무시한다. 무명이 천하통일을 위해 죽일 수도 있는 시황제를 죽이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조조(曹操)를 간웅(奸雄)이 아닌 진정한 영웅으로 보는 것은 역사관의 문제이고 역사 해석의 문제이다. 하지만 영화의 이 대목만큼은 분명히 기록된 역사와 다르다. 사마천 기록 속의 형가는 분명 진에 의한 통일을 반대한, 말하자면 ‘반통일주의자’였다. 역사 속의 진시황은 형가에 분노했지만 영화 속의 진왕 영정은 그를 살려두려 했다. 부하들의 진언에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인 뒤에 “그가 진정한 영웅이다”라는 대사를 읊조리게 한다. 그리고 그 대사에서 영화의 제목, 즉 ‘영웅’이 나왔다. 영화 ‘영웅’이 지난 주말 (27~29일) 미국에서 개봉되어 아시아 영화사상 최고인 1,78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는 소식이다. 외국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미국 전역 2,301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된 ‘영웅’의 관객 대부분은 18~29세의 남성들로 채워졌다. 한마디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중국영화 英雄 주말 미국흥행 1위 2004/08/30 15:15 이 대박에 감독 장예모, 그리고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이연걸(李連杰 :리롄제), 양조위(楊朝偉 :양자오웨이), 장만옥(張曼玉 : 장만위), 그리고 장쯔이(章子怡)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도 크게 고무되었 것이다. 이 영화의 제작비 350억 원의 절반은 중국정부가 지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이 영화 제작을 지원한 것은 통일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중국 정부의 주문은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분서갱유와 아방궁으로 상징되는 폭군의 모습이 아닌 통일을 이룩한 위대한 군주로서의 이미지를 희망했을 것이다. 장예모는 형가를 주인공으로 함으로써 제작자인 중국정부의 요구와 흥행성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2003년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추천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데 이어 흥행에서도 성공함으로써 중국 정부는 투자한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 사마천을 읽지 못했을, 그리고 앞으로도 읽을 필요성을 찾지 못할 미국의 젊은 관객들은 ‘암살자가 중국통일을 위해 칼을 버렸다’는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영화 ‘영웅’의 메시지를 역사적 '진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장예모의 ‘붉은 수수밭(紅高粱)’이 그린 일본 침략자에 대한 중국 민중의 저항의지는 그 것이 허구적인 이야기를 통해 형상화됐다 해도 역사적 진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영웅’에 대해 그런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사마천이 기록한 사실을 명백하게 왜곡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사기열전’이 아닌 ‘영웅’을 통해 중국의 2,231 년 전 암살미수 사건을 인식할 것이다. 'JFK'를 통해 케네디 암살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중국의 통일의지에 동의까지는 아니어도 이해는 하는 관객도 적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날아 온 ‘영웅’의 대박 소식에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영웅과 동북공정은 모두 정치적 목적을 위한 과거의 변조라는 점에서 같다. 역사를 콘텐츠로 한 영화 '영웅'의 국제적 성공은 동북공정의 '성과'가 영화 등 문화 산업분야로까지 확대될 때를 대비할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영웅에는 단지 180억 원 가량이 투자됐다. 동북공정에는 3조원(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이 지원된다. 이 대목에 이르면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화면을 새까맡게 채웠던 중공군의 인해전술 공격 장면이 떠오른다.<차이나워처, 계속>

▶ 2004/08/31 2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