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특종의 代價, 홍콩언론의 경우 특종은 해당 언론사의 성가를 드높이고 기자에게 퓰리처상과 같은 영광의 보상이 주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처럼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중국과 같은 언론통제 국가에서 특종은 종종 ‘국가기밀 누설’과 동의어로 간주된다. 따라서 그 대가도 엄청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최근 ‘장쩌민(江澤民) 군사위 주석 사임’ 기사로 세계 최고 권위지라는 성가를 과시했다. 사실 차이나워처들 사이에서 뉴욕타임스는 그 국제적 권위에도 불구하고 ‘1차 참고자료’의 위상을 누리지 못했다(비록 분석기사에서 탁월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홍콩과 대만의 중화권 언론매체에 뒤처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지만 서방 언론 중에서도 AFP에 비해볼 때 ‘뉴스’를 담아내는 경우가 적었다. 그런데 이번 7일 자 뉴욕타임스 기사는 그간의 ‘저조한 성적’을 일거에 만회하는 값진 특종이었다. 19일 장쩌민의 군사위 주석 이양이 공식화된 이후의 후속 기사에 따르면 장쩌민은 1일에 사임서를 제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타임스의 기사는 정통한 소스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얻어 기사를 작성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기사는 홍콩과 대만의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정황을 조합한 뒤, 여기에 '대담한' 추론을 덧붙여 결과적으로 특종이 되는 기사와는 달랐다는 이야기다. '차이나 워처‘로서의 타임스의 이러한 괄목할만한 성장 비결에 대한 의문은 타임스 베이징(北京) 지국에서 일하던 자오얀(趙岩)이 당국에 체포되면서 어느 정도 풀리는 듯하다. NYT는 그는 단지 취재보조원일 뿐이며 그를 통해 기밀정보를 얻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는 5월 이전까지만 해도 정부에 비판적인 중국 잡지에서 “취재하고 글을 쓰는” 기자였다. NYT 측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2003년 중국의 사스(SARS) 실태가 폭로된 것도 중국인 내부 고발자와 서방 언론매체가 연결되었기 때문이었다. 퇴역 군의(軍醫)인 장옌융(蔣彦永)은 중국 방송사와 홍콩TV에 자신이 파악한 사스 실태를 밝힌 편지를 보냈지만 이들 중국 언론들은 이 내용을 보도할 수 없었다. 미 시사 주간 타임이 편지를 입수하면서 사스 실태가 비로소 국제사회에 알려질 수 있었다. 중국의 개방화가 진척되고 중국인들의 언론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앞으로 장옌융 사건과 NYT 사건과 같은 일은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은 홍콩의 주권 이양을 전후하여 ‘충격요법식’ 홍콩언론 길들이기에 나선 적이 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언론 자유를 극한까지 확대시켰던 홍콩언론에 ‘자체검열’의 족쇄를 채우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자오옌의 체포는 중국 당국이 서방언론에 대해서도 홍콩언론에게 했던 것과 같은 충격요법 식 길들이기에 나섰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홍콩 주권이양 전 이루어진 중국 당국의 홍콩 언론 길들이기 사례를 되새김질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필자가 1995년 중국에서 귀국한 뒤 홍콩언론과 관련하여 써두었던 3편의 글이다.<차이나워처 주> 홍콩 반환 이전 홍콩 언론 개황 "홍콩에서는 대륙의 맥박을 느낄 수 있다" 1987년 체계적으로 정리된 첫 덩샤오핑(鄧小平) 전기를 쓴 독일(당시는 서독)의 언론인 울리 프란츠가 그 책의 서문에서 쓴 말이다.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베이징(北京)특파원을 지낸 이 독일인은 덩샤오핑 전기를 쓰기위해 홍콩의 자료에 크게 의존했음을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인상적이었던 이 표현은 홍콩에 주재하던 1992년 상반기 문득 접하게 된 한 잡지를 통해 실감했다. 가판대에서 산 이 잡지의 표제가 무엇인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잡지 속의 한 글은 장칭(江靑) 등 4인방 일파의 마지막 날들을 마치 옆에서 본 듯이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따옴표 (“ ”)안에 있는 말들을 장칭과 그 일파가 실제 한 말이라고 그대로 믿는 것은 다음 문제다. 홍콩의 언론들이 중난하이(中南海 : 중국 최고권력층 거주지)의 '숨소리'마저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홍콩에서는 중국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다. 억측과 과장, 애드벌룬성 기사가 춤을 추어 옥석을 가리는 데 혼란을 안겨주기는 하지만 중국의 움직임은 홍콩의 언론 출판물 속에 건강한 흐름은 건강한 흐름대로 건강하지 못한 흐름은 또 그대로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에서 홍콩신문들을 매일같이 접하면서 홍콩에 오기 전에 의식 못하고 지나쳤던 사실 하나는 홍콩의 중국어 조간들이 1면을 전면광고로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신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1면에 제호와 광고만을 채운 것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예외적인 것이었다. 물론 같은 조간이라도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와 스탠다드지, 그리고 성도만보(星島晩報), 신만보(新晩報) 등 석간들은 1면이 기사부터 시작하지만 명보(明報), 문회보(文匯報), 대공보(大公報), 성도일보(星島日報) 등 조간들은 하나 예외 없이 1면이 전면광고로부터 시작한다. 이는 홍콩만의 특징이었다. 인민일보 등 중국의 일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연합보(聯合報), 자립조보(自立早報), 중국시보(中國時報) 등 대만신문들에게서도 이런 경우를 찾아보지 못했다. 기사보다 전면광고를 앞세우는 것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홍콩에서의 언론의 특징이자 한계로 느껴졌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수많은 일간지들은 대변하는 입장이 각각 다르다. 영자지인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식민지 종주국 영국과 미국 등 서방국의 입장을 반영하고 영국정청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이는 홍콩 반환 전 이야기로 현재는 상황이 다르며 이하의 내용도 1995년 이전의 상황이다.) 반면 문회보와 대공보는 철두철미하게 중국정부의 입장에 충실하다. 성도일보와 영자지 스탠다드지는 친 대만 신문이다. 또 필자가 홍콩에서 활동할 초기에 발행을 시작한 홍콩 연합보는 대만의 최대일간지 연합보의 홍콩 현지판이었다. 물론 이들도 역시 대만의 입장을 반영한다. 억측과 과장 그리고 무책임성이 판을 치는 홍콩신문시장에서 그래도 객관성과 공정성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신문은 명보이다. 명보의 발행인은 무협소설로 우리에게도 낯이 익은 김용(金庸)이다. 성향은 중도적이다. 석간은 두 종류가 발행되는데 신만보는 중국 측의 입장을 반영하고 성도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성도만보는 역시 대만의 입장을 반영한다. 이처럼 성향이 제각각이다보니 신문 첫머리에 올리는 기사가 같은 날이 거의 없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신문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신문들을 스크린 하게되면 대부분의 흐름은 놓치지 않고 쫓을 수 있다.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기에 앞서 가판대에서 각기 성향을 대표하는 이들 신문들을 먼저 선택하고 눈에 띄는 다른 신문들 몇 부를 추가로 사는 것이 홍콩특파원 시절 매일 매일의 일과였다. 그러나 여기에 홍콩의 최대일간지는 포함되지 않는다. 홍콩의 최대일간지는 동방일보(東方日報)이다. 홍콩 부임 초기에 동방일보는 '황색신문'이니 전혀 참고할 게 못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리 황색신문이라도 최대부수를 지닌 신문인데 하며 몇 번 사 보았다가 '정말 사 볼 필요가 없는 신문'임을 확인했다. 다른 일간지들과는 달리 연예기사로 시작하는 것은 참아줄 만 했으나 일반 정치 경제 사회관계 기사는 아예 단신 모음 정도로 간략하게 취급하는 것이었다. 광고로부터 시작하는 것과 함께 홍콩의 최대일간지가 연예전문지에 가까운 종합지라는 사실 역시 홍콩언론의 한계성을 드러내주는 것처럼 보였다. 매일 매일 신문 스크린 하는 것이 일과가 되다보니 앞서 개략적으로 살펴본 것 이상의 신문별 특성이 드러났다. 영자지 스탠다드지와 성도일보에서는 반체제인사들의 동향이 자주 실리는 편이었다. 군부 동향과 관련해서는 홍콩 연합보가 앞서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홍콩문제 인권문제 교역문제 등 각종 민감한 문제와 관련, 중국 측의 입장을 알아보려면 문회보와 대공보와 같은 중국계신문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들 중국계 신문에서 소위 화끈한 '기사거리'를 찾아내기는 힘들다. 그러나 중국의 중요 정치행사가 있을 경우, 가장 '공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신문들이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와 같은 정치행사는 과거 지하당 생활을 할 때의 전통을 쫓아서인지 그 때까지만 해도 사전 일정 발표 없이 행사를 치루고 대회가 폐막한 뒤에서야 회의일정에서부터 결정내용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중앙위 전체회의에 앞서 문회보 혹은 대공보에서 회의일정을 보도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보도만큼은 공식발표와 마찬가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확하다. 1992년 10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14차 당대회(14대)의 인사를 앞두고 홍콩언론들의 추측이 난무했다. 거의 모든 언론들이 70~80%는 사전에 인사를 맞추었지만 양바이빙(楊白冰)의 군권 박탈을 드러낸 군인사 둥과 같은 중요인사내용을 사전에 가장 앞서 보도한 것은 역시 문회보, 대공보와 같은 친중국계 신문들이었다. 베이징(北京)에 주재할 때 이들 친중국계 홍콩언론들의 '위력'을 실감했다. 1993년도 11월 14일 황병태(黃秉泰) 주중대사와 베이징 특파원단과 함께 한 자리에서 중국공산당 14기 중앙위원회 3차전체회의 (14기3중전회)가 화제에 올랐다. 5년마다 열리는 당 대회를 통해 새로운 중앙위원회를 구성한 뒤 3번째로 열리는 중앙위원회전체회의는 항상 주목을 받아왔다. 당 대회를 통해 설정한 노선의 구체적 실천 방향이 선포되기 때문이다. 14기 3중전회는 개최를 앞두고 1978년 12월의 11기3중전회에 비견되곤 하였다. 개혁개방 방침을 천명했던 11기3중전회 못지않게 혁명적인 조치가 취해지는 대회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인민일보와 신화사 통신 등 중국의 언론들은 관행대로 '침묵'을 지켰지만 특파원들의 상당수는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이 보도한 '폐막일자' 14일에 맞추어 예상 해설을 송고하고 나온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자들의 설왕설래를 지켜보던 황 대사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고 확신합니까. 좀 더 알아보시죠. 열리지 않고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난데 없는 대사의 말에 "만일 열리지 않고 있다면 송고한 기사를 취소해야 할 판 입니다"라며 그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주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대사는 더 이상의 구체적 설명은 하지 않은 채 좀더 자세히 알아볼 것을 재차 강조한 뒤 자리를 떴다. 대사가 자리를 뜬 뒤 황망해하는 특파원들에게 홍콩에서 4년 가까이 특파원 생활을 했던 한 특파원이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이 중전회의 일정을 사전에 보도한 것이 틀린 적이 단 한차례도 없다. 만일 틀린다고 한다면 그 자체가 큰 뉴스이다"라고 말했다. 특파원들은 '대사가 근거 없이 말하겠나'하는 찜찜한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감에 찬 동료 특파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바로 그날 저녁 중국의 텔레비전 방송들은 14기 3중전회가 폐막되었다며 중전회에서의 결정사항을 보도했다. 그리고 그 일정은 홍콩의 친 중국계 신문이 보도한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황 대사의 혼선은 당시 중국을 방문한 한국 측 인사를 수행, 중국의 고위층 인사와 만난 대사관의 한 간부의 정보보고 때문이었다. 그 정보보고는 중국 고위층인사가 한국 측 방문객들과 대담하는 자리에서 14기3중전회가 현재 개최되고 있지 않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보도를 접한 황 대사는 특파원들이 14기3중전회 개최사실을 홍콩언론의 보도에 근거해 기정사실화하자 '참지 못하고' 한마디 흘렸던 것이다. 잘못된 정보보고를 한 대사관의 간부는 수교 전부터 일본과 인도에 주재하면서 중국을 워치해온 자타공인의 중국통이었다. 하지만 그의 경력에는 홍콩근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중국이 친중국계 언론을 적절하게 발표창구로 삼는 관행을 관찰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만일 홍콩에 장기 주재한 특파원처럼 홍콩언론보도를 검증하는 기회를 가졌더라면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짤막한 에피소드는 중국문제를 관찰함에 있어 홍콩언론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1997. 4.22) ▶2003년도 홍콩 가장 많이 읽히는 신문 東方-蘋果-명보 순 2004/01/14 18:141 ▶2003년도 홍콩신문 독자 순위 2004/01/14 18:53 경고...량후이민 사건 홍콩 신문 쾌보(快報)는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은 일간지였다. 1992년 홍콩특파원 시절 매일 아침 신문 가판대에서 명보 문회보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등 반드시 스크린 해야할 주요 신문 외에도 관심 끄는 뉴스를 실은 군소지를 1~2개씩 사는 것이 보통이지만 당시 부수 12만부의 쾌보는 그러한 선택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빠른 소식'이라는 이름 자체도 어딘지 경박해 보였다. 그러나 1992년 10월 5일에는 쾌보를 사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날 중국 베이징에서 5일간의 예정으로 개막된 중국공산당 13기9중전회에 제출될 장쩌민(江澤民)총서기의 중국공산당 14차 전국대표대회(14대) 정치공작보고의 초안이 전문 게재되었기 때문이었다. 몇 페이지에 전면에 걸쳐 2만7,000자의 전문을 게재한 쾌보가 홍콩에서 배포될 때 13기9중전회는 개막도 되지 않았다. 별 볼일 없는 신문으로 취급해온 쾌보의 이 같은 대특종은 '중난하이(中南海: 중국지도부 거주지)의 숨소리까지 취재 한다'라는 홍콩언론의 위력을 실감하게 했다. 일주일 후인 12일 14대 개막 직후 장쩌민이 실제 낭독한 정치공작보고는 쾌보가 전재한 초고와 적지 않은 부분에서 달랐다. 하지만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을 가속화하고 중국적 특색을 갖는 사회주의 승리를 쟁취하자'라는 제목과 그 요지는 그대로였다. 홍콩에서 특파원 생활을 한 지 몇 개월 안 된 필자에게 더 이상 '죽(竹)의 장막'에 가리어져 있지 않은 '개방중국'을 실감케 하고 또 '차이나 워처' 로서의 홍콩언론의 위력을 실감케 한 이 희대의 대 특종에 대한 중국당국의 초기 대응은 무반응이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것은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14대취재를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온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은 26일 홍콩의 모든 신문들은 하루 전인 25일 쾌보의 량후이민(梁慧民)기자가 베이징에서 체포된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신화통신이 전한 량 기자의 체포 1신은 량 기자가 25일 자정께 그가 묵고 있던 베이징 쑹허판디엔(松鶴飯店)에서 베이징시 국가안전국 요원 6~7명에 의해 체포됐으며 량 기자가 국가기밀문서를 절취하기위해 중국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신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였으며 이와 관련한 다량의 증거가 확보됐다는 내용이었다. 신화통신은 이어 량 기자와 량 기자와 관련된 인사들이 자신들의 범법사실에 대해 시인했다고 덧붙였다. 홍콩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니 량 기자는 필자도 14대 취재를 하는 기간에 몇 차례 마주쳤던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특히 수도(首都)강철공사 취재 시 점심 식사 때에는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때문에 량 기자의 체포소식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 베이징에 많은 취재기자를 내보낸 홍콩과 대만의 언론계의 반응은 공황(恐慌)에 가까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홍콩과 대만에서는 14대 취재, 크리스 패튼 홍콩총독의 부임 첫 베이징 방문, 일본 국왕의 중국방문 등 잇따른 뉴스 이벤트를 커버하기위해 많은 기자들을 파견해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화통신의 1보는 량후이민 기자가 체포된 구체적 이유를 밝히지 않아 베이징에서 취재활동중인 홍콩과 대만 기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사건의 당사자인 쾌보는 편집국 명의의 성명을 통해 량 기자가 신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며 그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는 '홍콩기자의 방문을 두드리는 심야의 노크 소리'- 소련 스탈린 치하의 공포정치시대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제하의 사설을 통해 이 사건을 1997년 이후의 홍콩장래와 결부시켰다. 이 신문은 지난 봄부터 홍콩과 대만 언론에 실린, 중국 공산당의 보혁 갈등을 다룬 무수한 폭로기사가 중국 당국을 당혹시켰음을 지적했다. 따라서 량 기자의 체포는 홍콩과 대만의 언론과 당내 제보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쾌보가 선택된 것과 관련하여 이 신문은 5일 장쩌민 총서기의 14대 정치공작보고 초안을 전문 게재한 신문이 바로 쾌보였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가 사건 첫 날 추리한 것처럼 량 기자가 체포된 것은 바로 쾌보의 그 희대의 특종기사 때문이었다. 홍콩언론이 추적 보도한 바에 따르면 쾌보의 특종은 바로 량 기자의 활약에 따른 것으로 량 기자는 신화통신사 국내뉴스 편집부의 한 기자로부터 문제의 초안을 입수했다는 것이었다. 이 신화통신 기자는 량 기자로부터 수만 달러의 사례를 받고 13기 9중전회 개막직전 미리 신화통신에 배포됐던, 극비로 분류된 이 정치공작보고 초안을 몰래 복사해 자신의 처를 통해 량 기자에게 전달했다. 량 기자는 이를 대담하게도 팩시밀리를 통해 본사로 전송, 13기9중전회 개막당일에 맞추어 정치공작보고 초안이 게재되도록 했던 것이다. 또 이런 사실은 량 기자가 호텔 화장실에서 이 문서를 소각처리하려다 연기를 화재로 오인한 호텔 종업원에게 발각되어 알려졌다는 것이다. 경위야 어찌됐던 당시 홍콩언론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량후이민 기자가 어떻게 처리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중국 당국에 의해 기자가 체포된 것은 량 기자가 처음은 아니었다. 천안문사태 직후인 1989년 7월 대만의 자립만보(自立晩報)의 황더베이(黃德北) 기자가 당국의 수배를 받던 학생지도자 왕단(王丹)과 접촉한 혐의로 체포된 일이 있었고 비록 몇 시간 동안이긴 하지만 1992년 5월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레나선 베이징 지국장이 '기자 신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혐의로 연행되고 사무실이 수색되는 일이 있었다. 량 기자의 처분에 대한 홍콩 언론의 전망은 낙관과 비관이 엇갈렸다. 대만의 황 기자의 경우, 며칠 만에 추방되고 또 천안문 사태발발 3주년 취재를 위해 반체제인사와 접촉한 것이 문제가 되었던 워싱턴포스트지의 레나선기자의 경우도 정식으로 기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량 기자의 경우도 조사 후 추방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량 기자에게 적용된 혐의가 '국가 기밀문서를 절취한' 것이라는 점에서 비관론도 나왔다. 이들은 이 같은 혐의를 받았던 반체제지도자 웨이징성(魏京生)이 1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점을 상기시켰다. 량 기자는 다행히 전자의 경우에 속했다. 11월 초 량 기자는 자신의 혐의사실을 시인한 문서에 서명하고 즉각 홍콩으로 추방되었다. 중국의 TV 방송은 량 기자가 자신의 혐의사실을 시인하는 문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방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량 기자에 대해서는 2년간 중국입국이 금지됐다. 중국 당국이 량 기자를 '혐의'에 비해 가볍게 '처벌'한 것은 여러 가지 정치적 요소를 고려한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가뜩이나 주권반환 이후의 삶을 걱정하는 홍콩인들에게 량 기자를 가혹하게 처벌해서 '음울한 미래'를 연상시킬 필요가 없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마침 그 때는 크리스 패튼 홍콩 총독과 홍콩의 정치개혁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점이었다. 량 기자를 가혹하게 다루는 것은 패튼과의 힘겨루기에서 유리할 것이 없다고 보았을 것이었다. 또한 량 기자의 신분과 인간관계도 유리하게 작용한 듯싶다. 홍콩의 주하이(珠海)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량 기자는 당시 32살로 1986년 언론계에 들어 왔으며 1990년부터 쾌보에서 홍콩정청과 중국문제를 담당해왔다. 사건 얼마 전에 있었던 홍콩언론의 장강삼협(長江三峽) 취재 시 중국의 홍콩 마카오 판공실 주임인 루핑(魯平)과 기념촬영한 사실이 보여주듯 중국의 고위관리들과의 친분도 높았다. 또한 량 기자의 남편은 신화통신 홍콩분사 외교부 고위관리의 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화통신 기자에게 수만 달러를 사례금으로 제공한 것으로 보아 이를 량 기자 한사람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기 어렵다는 점도 작용한 듯싶다. 량 기자 사건은 중국 당국의 엄격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인맥과 때로는 돈을 무기로 깊숙이 취재하고 마음껏 기사를 써왔던 홍콩언론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1997년 홍콩 주권반환을 앞두고 중국 당국의 눈에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자유를 누리던 홍콩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서막이었다. (1997년 5월 5일) 일벌백계의 시양 사건 1992년 10월 25일 홍콩의 일간지 쾌보의 량후이민(梁慧民)기자가 베이징에서 체포되었을 때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이 사건을 두고 "당나귀에 경고하기 위해 닭을 잡은 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표현에는 량 기자의 체포는 쾌보 자체 보다는 그 보다 영향력이 더 큰 신문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있었다. 필자가 1993년 2월 홍콩을 떠나 베이징에 부임, 1995년 5월까지 베이징 상주 특파원으로 있는 동안 홍콩의 신문으로서 '당나귀' 신세가 된 신문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자신과 명보가 대표적이었다.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홍콩뿐만 아니라 국제적 지명도가 높은 신문이다. 또 다른 영자지로 친 대만계인 스탠다드가 있지만 영향력에 있어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명보는 중문지로 영자지와 중문지를 통틀어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신문이었다. 억측 과장 애드벌룬성의 기사가 난무하는 홍콩언론의 속성을 명보 역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선정적 보도 자세와 무책임성에서 벗어나려는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일단 명보에 실린 기사는 신뢰가 간다. 두 신문 모두 중국 당국의 입장에서는 손보아야 할 '당나귀'의 요건을 갖운 신문인 샘이다. 명보의 시양(席揚)기자가 베이징에서 체포된 것은 쾌보의 량후이민 기자가 베이징에서 체포됐던 사건이 발생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1993년 9월 27일이었다. 시양 기자의 체포는 그가 중국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장남 덩푸팡(鄧樸方)을 인터뷰한 지 3일 만에 이루어져 특히 충격을 주었다. 중국 국가안전국이 신화통신을 통해 발표한 체포 이유는 시 기자가 "국가의 금융비밀을 훔치고 염탐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안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국가안전국은 그해 10월 7일 시 기자를 정식으로 구속했다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톈예(田野)라는 중국의 중앙은행 직원 등 2명이 체포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 기자의 체포 이유가 그해 7월 28일자 명보의 머리기사와 관련되었음을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당시 기사는 중국의 한 관리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중국 인민은행이 이미 은행 소유의 금을 일부 팔아 외환을 확보키로 결정했으며 이자율은 이 해들어 두차례나 인상했기 때문에 다시 올리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으로 명보의 특종기사였다. 당시 중국은 경제가 과열 상황을 이룬 가운데 경제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보수파와 개혁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명보는 확실히 돋보이는 활약을 했다. 리펑(李鵬)총리 계열로 보수파에 속하는 리구이셴(李貴鮮) 인민은행장이 해임되고 개혁파인 주룽지(朱鎔基)부총리가 그 직책을 겸임할 것이라는 보도 역시 명보의 특종보도였다. 결국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의 명보의 일련의 특종행진은 중국 당국의 주의를 끌게됐고 시 기자의 체포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시 기자의 체포 이유는 량후이민과 비슷했지만 중국 당국의 처리 방식은 량 기자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량기자가 체포 일주일 만에 석방되어 홍콩으로 돌아왔지만 시 기자는 정식으로 구속되었으며 1994년 3월 31일 베이징 시 중급인민법원의 비밀재판에서 징역 12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적용된 죄목은 간첩죄였다. 예상 밖의 중형-웨이징성이 14년형을 받았던 점을 상기해 보라-이어서 명보의 장젠보(張健波)총편집(편집국장)과 장시훙(張西鴻) 중국판 편집주임이 베이징으로 날아오고 홍콩정청의 대변인이 유감을 표시할 정도였다. 같은 홍콩기자인 량후이민 기자가 자신의 행위를 시인하고 일주일 만에 석방된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시 기자에 대한 조치는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었다. 비록 시 기자의 보도 때문에 중국 당국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 중국 측의 주장이었지만 시 기자의 기사는 경제뉴스로 비정치적인 것이었다. 또한 취재원에게 거액을 제공한 량 기자와는 달리 시 기자가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흔적은 없었다. 다시 말해 중국 아닌 다른 곳에서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행위로 무려 1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은 것이었다. 시 기자는 량 기자에 비해 결정적으로 불리한 점을 갖고 있었다. 량 기자가 순수 홍콩 출신 기자이고 또 량 기자의 시아버지가 신화통신 홍콩분사에 근무하는 외교부 고위관리였던 데 반해 시 기자는 1992년 6월 홍콩으로 이주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중국국적의 신분이었다. 시 기자 역시 자신의 '불안정'한 신분을 의식, 정치적인 문제는 가급적 피하고 경제기사를 많이 취재했던 것으로 짐작되나 이러한 조심성도 결국 소용이 없었다. 시 기자에 대한 가혹한 처리에는 다목적 효과를 노린 중국 측의 의도를 느낄 수가 있었다. 우선 중국 당국은 개방의 심화에 따른 무분별한 정보유출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할 필요가 있었다. 홍콩언론 방식의 취재에 대해 선을 그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량후이민 기자 사건을 관대히 처리한 것이 정보유출을 오히려 빈번하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죄질과는 관계없이 본보기로 가혹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중국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홍콩언론에 종사하는 시 기자의 신분은 홍콩주권의 중국귀속 후 홍콩언론인들에게 자신이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임을 보여주는 적절한 시범 케이스였던 것이다. 시 기자의 체포 바로 보름전인 1993년 9월 12일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신문으로서 참담한 치욕을 맛보아야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이 날자 1면 머리기사에서 중국의 주요은행 간부들이 280억 달러의 외화를 유출했다고 하는 그해 8월 22일자 자신들의 보도는 오보라고 자인하며 공개 사과했다. 사실 이 보도는 지나치게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았다. 이 보도가 있은 후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이 보도의 진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우젠민(吳建民)대변인은 유출됐다는 280억 달러(한화 22조4천억원)가 엄청난 거액임을 환기한 뒤 이러한 돈의 유출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웃으며 반문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류의 과장보도는 홍콩언론에서는 부지기수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우스 차이나모닝포스트의 사과기사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더구나 사과기사를 1면 머리로 올렸다는 것 역시 전례 없는 일이었다. 배경에 대해 친절이 설명한 것은 중국의 언론들이었다. 인민일보 등 중국언론들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보도가 나간 지 이틀 뒤인 9월 14일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사과기사 보도를 전하면서 그간 중국 당국과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간 벌어졌던 물밑 협상과정을 소개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 보도가 있은 직후 기사에 언급된 중국 인민은행, 중국은행, 중국은행 등은 그 같은 보도내용은 비방을 목적으로 날조된 것으로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잘못을 시인하고, 공개사과와 손해배상을 하며, 앞으로 이같은 보도를 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라’는 등 4개항을 요구했다. 이들 은행들은 이 같은 비난성명을 발표하는데 그치지 않고 중국은행 홍콩지점을 통해 변호사를 내세워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대해 법률적 책임을 묻는 법적 절차를 진행했다. 양측의 변호사가 여러 차례 접촉한 끝에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중국은행들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잘못을 시인하고 1면 머리기사로 공개사과하는 것은 물론 유사한 보도를 하지 않겠다고 서면으로 보증하기까지 했다. 또한 손해보상금 250만 홍콩달러(한화 2억 5,000만원 상당)는 중국 측에 지불하는 대신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을 취했다. 한마디로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완패였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영국과 미국 등 서구적 시각에서 중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싣는 신문이었다. 비록 기사를 크게 과장한 것은 문제지만 해외로의 공금유출은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너무 일찍, 또 너무 쉽게 백기를 들었다는 인상이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의 이 같은 굴욕 감수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가 처한 경제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당시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소유주인 호주의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은 위성방송인 스타TV에 투자할 자금을 확보하기위해 말레이시아의 화교재벌 궈허녠(郭鶴年)과 매각교섭을 진행 중이었다. 결국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의 사과보도가 있은 바로 그 날 머독이 보유하고 있던 34.9%의 주식이 궈허녠에게 매각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결국 중국은 1993년 정치 경제적으로 미묘한 시기에 당근과 채찍을 활용, 홍콩언론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시 기자는 3년 이상을 복역한 끝에 1997년 1월 25일 가석방 형식으로 석방되어 홍콩으로 돌아갔다. 시양 기자의 석방조치는 1997년 7월 1일 홍콩반환을 앞두고 홍콩인들의 불안을 희석시키려는 조치임에 틀림없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홍콩언론들이 중국으로의 주권이양이 다가오면서 '자체검열'을 하면서 새로 다가올 체제에 대해 적응하려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시양을 '당나귀에 경고'하기위해 붙잡아 둘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중국당국은 시양의 석방이유로 "시 기자가 유죄를 인정했고 , 복역기간 중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 '뉘우치는 모습'이란 홍콩언론의 저자세에 대한 중국당국의 만족감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1997.6.15) <차이나 워처>

▶ 2004/09/26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