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모세’ 꿈꾸는 리덩후이 "공동의 신앙을 갖지 못하면 가나안에 갈 수 없다. 대만은 스스로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만을 위하여 희생할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모세는 아니지만 모세의 정신을 본받고자 한다.” - 리덩후이(李登輝) 대만 전총통, 2004년 12월 2일 대만 단결연맹 후보 지지연설에서 1923년생으로 올해 81세의 리덩후이(李登輝) 대만 전 총통은 11일 실시되는 대만 총선을 앞두고 연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민진당, 국민당, 친민당에 이은 대만 내 제4정당인 대만단결연맹의 ‘오너’인 리 전 총통은 후보 지원유세를 위해 그야말로 대만을 종횡하고 있다. 4일 대만 남부 도시 가오슝(高雄)시를 방문한 그는 바로 그 다음날 북부에 위치한 수도 타이베이(台北)시의 집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13석의 의석을 갖고 있는 대련의 의석 수 확대에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범록진영(泛綠陣營)’, 즉 민진당과 대련의 여당연합의 과반수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1년 12월 1일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 민진당은 한해 전이 2000년 3월 총통선거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전체 225석에서 87석을 획득, 만년 제1당이었던 국민당을 제치고 제1당에 올라섰다. 과반수는 크게 못 미치고 또 대련의 의석 수를 합친다 해도 100석으로 과반수에는 13석이 모자랐다. 이처럼 ‘여소야대’의 입법원 구성으로 인해 지난해 통과된 국민투표법은 천수이볜(陳水扁)이 당초 구상한 내용대로 되지 못했다. 신 헌법을 2006년에 제정하고 이를 2008년에 실시하는 천 총통의 ‘제헌 스케줄’을 위해서는 여당연합의 과반수 확보가 필수적이다. 반면 국민당, 친민당, 신당 등으로 구성된 야당연합, 즉 ‘범람진영(泛藍陣營)’은 천수이볜과 민진당의 ‘대독(台獨)질주’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서는 범람진영의 과반수 유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다시 한번 연합전선을 펴고 있다. 2001년 선거에서 국민당, 친민당, 신당은 각각 68석, 46석, 1석을 획득했다. 총 115석으로 과반수를 확보했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범록진영은 ‘과반수 확보’에 목을 매달지 않을 수 없고 이를 위해 주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리덩후이가 노구를 이끌고 대만 섬을 종횡천하하고 있는 것이다. 리덩후이 총통은 유세현장을 다니며 주장하는 말들은 이 사람이 4년 전까지 ‘중화민국’의 총통이고 국민당의 주석이었던 사람이 맞느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진적이다. 그는 4일 가오슝 연설에서는 ‘중화민국’이라는 국호와 국기를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 한다고 말했고 5일 집회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중화민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천수이볜 조차도 감히 하지 못하는 내용이다. 천 총통은 재외 대표부(처)의 명칭에 ‘대만’을 집어 넣겠으며 또 공기업의 명칭에서 ‘중국’과 ‘중화’라는 단어를 빼겠다고 밝히는 등 ‘탈중국 대만화’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국호와 국기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직 총통의 신분이라는 제약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홀가분한 입장의 리덩후이는 거칠 것이 없다. 중국의 군사위협 우려에 대해서는 미국의 잠수함이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그리고 싼샤(三峽) 댐을 겨냥하고 있으므로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고 대만은 미국에게 대단히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이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그는 현실적인 여러 제약 요건을 고려, 상대적으로 온건한 대독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는 천수이볜 총통에 대해서도 장기적인 비전이 없다는 등 비난을 퍼붓고 있다. 리덩후이의 지향은 보다 분명해졌다. 그의 목표는 중국과 완전히 분리되고 과거 국민당의 대만 정권과도 단절한 ‘대만 공화국’이다. 그리고 이제 그 것을 더 이상 숨기지도 않는다. 마치 1992년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 88세의 노구를 이끌고 남순(南巡)하며 ‘사회주의 시장경제’노선을 당시 지도부에 ‘강요’했던 것처럼 리덩후이는 천수이볜에게 ‘급진적 대독노선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리덩휘은 ’대만공화국의 총설계자‘인 셈이다. 이와 같은 리덩후이에 대해 한 지지자는 ‘대만의 국부(國父)’라고 찬양하기까지 했다. 4일 대만 독립세력의 주요 기반인 가오슝에서 있은 일이다. '국부‘는 중화권에서는 손문(孫文)과 동일시 되는 용어이다. 이에 대해 리덩후이는 자신이 대만의 국부가 될지는 역사가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개관정론(蓋棺定論)’, 관 두껑을 덮은 뒤의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그가 이렇게 나온 것은 그의 정치적 행동양식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겸손’이라는 덕목 때문이 아니었다. 손문에 비유하기 보다는 모세에 비유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국부’ 호칭이 나오기 이틀 전인 2일 리덩후이는 ‘대만의 모세’로 기록되고자 하는 자신의 희망의 일단을 비쳤다. 그는 이 날 “자신은 모세는 아니지만”이라고 전제를 깔았다. 이는‘나는 모세다’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는 모세와 유사한 점이 많다. 모세는 이집트인들의 이스라엘인 영아학살을 피해 나일강에 버려졌다가 파라오의 딸에 구출되어 이집트 왕궁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는 결국 압제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그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해 오늘의 이스라엘의 기원을 이룩했다.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뒤 대만은 일본 식민지에서 중국에 귀속됐다. 대만인들은 대륙에서 온 국민당을 해방자가 아닌 새로운 지배자로 간주했고 결국 1947년 2월 28일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이 것이 대만 역사상 최대의 비극인 2. 28사건이다. 내전 와중에 벌어진 폭동에 대해 국민당은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적게는 5,000명 많게는 3만 명의 대만인이 피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대만은 대륙에서 철수한 15%의 외성인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원래부터 거주하던 내성인의 정치참여는 배제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2.28 비극이 일어났을 때 리덩후이는 24세였다. 그러나 그는 정치가의 길을 걷기보다 학자의 길을 걸었다.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대학 교수로 있던 그는 장징궈(蔣經國) 총통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1978년 타이베이(台北)시장, 1981년 대만성 주석, 그리고 1984년 부총통이 되었다. 그리고 1988년 1월 장징궈 총통의 급서로 본성인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총통이 되었다. 대만인 출신 정치가로는 1996년 총통선거에서 그와 맞붙기도 한 린양강(林洋港)이 있었다. 그는 리덩후이가 발탁 인사로 정계로 입문한 것과는 달리 여러 가지 정치적 악조건 하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권력의 핵심에 올랐다. 리덩후이가 부총통에 지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내성인 출신으로서는 가장 촉망받는 정치가였다. 정적을 솎아내는 탁월한 정치적 후각을 갖고 있었던 장징궈는 린양강 대신 리덩후이를 선택했다. 학자 출신의 리덩후이가 덜 위험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호랑이를 키운 셈이었다. 파라오의 딸이 키운 모세가 후임 파라오를 죽게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리덩후이는 국민당 몰락의 주역이었다. 총통 취임 후 당내 기반이 전무했던 리덩후이는 쑹추위(宋楚瑜)와 같은 실사구시파 외성인 정치가들의 협력과 지지를 얻어가며 대만의 민주화와 국민당의 ‘대만화’를 성공시켰다. 그러나 그는 2000년 총통선거에서 대중적 인기도 높았던 쑹을 후임 총통 후보로 내세우는 대신 내성인 출신 롄잔(連戰)을 선택했다. 이는 국민당을 분열시켰고 결국 국민당의 정권상실을 가져왔다. 돌이켜 보면 이는 판단 착오가 아니였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전형적 ‘토사구팽(兎死狗烹)’이었다. 리덩후이는 2,300만 대만인들은 ‘대만공화국’이라는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 8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섬을 종횡하고 있다. 성서는 모세가 렙산에서 여호와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키라는 음성을 듣고 이집트로 돌아와 형 아론의 협조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을 때의 나이가 리덩후이 보다 한 살 적은 80세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만 독립주의자로서의 리덩후이의 ‘커밍아웃’은 이번 총선이 리덩후이의 총선임을 일깨운다. 대만 주민은 과거 이스라엘인들처럼 리덩후이가 이끄는 대로 ‘가나안’으로 가기위해 '홍해‘를 건널 결심을 할까. 11일의 대만인의 선택이 주목된다. <차이나워처>

▶ 2004/12/07 2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