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趙紫陽)의 추억...타천하(打天下)와 타구(打球) 자오쯔양(趙紫陽) 사망설 관련 기사를 처리하면서 차이나 워처들 사이에 ‘오보와 오판’의 계절이 또다시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다. 홍콩에서 가장 많이 팔리면서도 가장 신뢰성이 낮아 외신에 인용되는 예가 '가뭄의 콩' 신세인 동방일보(東方日報)는 11일 세계 유수의 많은 미디어의 ‘소스’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일에 이루어진 중국 외교부의 브리핑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도저히 묵살하고 넘어 갈 수 없는 자오쯔양 사망설을 처음 보도했기 때문이다. 동방일보는 결국 ‘카더라 통신’의 역할을 하며 신뢰할 수 없는 신문이라는 그간의 '명성'을 재확인 하게했다. 하지만 그 보도로 인해 자오의 현재 상황과 그의 죽음이 가져 올 파장을 다시 한번 점검을 하게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카더라’의 역설적 순기능이라고 할까. 자오쯔양의 사망관련 보도가 이처럼 모두를 긴장시키는 것은 후야오방(胡耀邦)의 기억 때문이다. 후야오방이 1989년 4월 15일 사망했을 그 당시 어느 누구도 그의 사망이 천안문 사태라는 미증유의 정치적 동란을 가져 올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후는 당시 정치국 위원 직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사실상 실각 상태였다. 자오쯔양의 죽음이 후야오방과 앞서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마오쩌둥(毛澤東)의 경우처럼 정치적 후폭풍과 이에 따른 정계 개편을 가져올는지 아니면 덩샤오핑(鄧小平)의 경우처럼 조용히 지나갈는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 또한 그가 오늘 현재 살아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올해 86세로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이다. 또 한 차례의 ‘오보와 오판의 계절’을 맞이하면서 자오쯔양에 관한 추억을 되새겨 본다. <차이나 워처 주> 타천하(打天下)와 타구(打球) "우선 전화를 한번 때려봅시다." 1992년 중국에 처음 갔을 때 안내를 해준 조선족 인사가 중국 측 인사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는 부탁에 이같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잠시 무슨 말인가 의아했던 적이 있다. ‘전화를 건다(한다)’라는 중국어가 ‘따띠엔화(打電話)’인데 이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따(打)’가 단순히 ‘때린다, 친다’라는 의미 외에 영어의 ‘do'처럼 광범위하게 쓰인다. ‘(땅을)파고(打坑)’, ‘(깃발을) 올리고(打旗子)’, ‘(총을) 쏘는(打槍)’ 동작 모두가 ‘打’이다. 그뿐 아니라 ‘(권력을) 잡는 것 ’도 ‘打’로 표현한다. 조선족 식의 어법으로 하자면 권력을 잡는다는 의미의 ‘따톈샤(打天下)’는 ‘천하를 때린다 ’라는 것이 된다. 1989년 천안문사태로 실각한 뒤 한동안 세인들의 망각의 깊은 늪 속에 빠져있던 자오쯔양(趙紫陽)총서기의 동정은 개혁과 개방이 재 점화한 1992년 2월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 홍콩언론에 심심치 않게 비치기 시작했다. 흘러간 지도자에 대한 호사가적 관심이 아니라 자오쯔양이 정치적으로 다시 중요한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오쯔양의 동정을 소개할 때마다 언급되는 것이 골프였다. 자오쯔양은 실각이전부터 골프를 즐겼던 것 같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전 총서기로 있으며 개혁과 개방을 진두 지휘 하던 득의의 시절, 자오쯔양이 위 아래 흰 골프복 차림으로 멋지게 골프 채를 휘두르는 모습이 외국 언론에 소개된 것을 본적이 있다. 그 모습은 노동자계급의 정권임을 지향하는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가 아니라 영낙 없는 홍콩 부호, 자본가의 풍모였다. 그리고 그 것은 중국의 ‘개방과 개혁’을 상징하는 ‘스냅’이었다. 실각한 이후 자택연금 상태에 놓여 있던 자오쯔양이 당국의 허락을 받아 감시아래 외롭게 라운딩을 한다는 것은 그의 동정을 전하는 홍콩언론보도에서 양념처럼 첨가되는 토막이었다. 실제로 그는 1994년 어느 날 베이징(北京) 교외의 한 골프장에서 한국특파원들에 의해 목격되기도 했다. 자오쯔양을 목격한 한국특파원들에 따르면 머리가 하얗게 센 한 노인이 경호원들의 호위아래 필드를 나가고 있어 자세히 바라보니 홍콩신문의 사진에서 보던 자오쯔양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짓을 하니 역시 손짓으로 가볍게 답례를 하고 지나치더라는 것이었다. ◆사진=실각 후의 자오쯔양의 모습. 필자는 직접 못보았지만 1994년 베이징의 한 골프장에서 목격된 자오쯔양은 이미 머리가 허옇게 센 모습이었다고 한다.아마 이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골프를 치는 것’을 중국어로는 ‘打高爾夫球’로 여기서도 역시 ‘打’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이런 비유가 가능하지 않을까. ‘자오쯔양이 공을 때리며 천하를 다시 때릴 기약을 하고 있다’라는. 강태공의 낚시질은 천하를 ‘낚기’ 위한 것이었다. 자오쯔양이 공을 때리는 것도 천하를 ‘때리기’ 위함이 아닐까. 덩샤오핑(鄧小平)이 사망한 직후에 쓴 ‘골프채와 낚시대’라는 글은 바로 이런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 “강태공(姜太公)의 낚시대는 자오쯔양(趙紫陽)에게는 골프채였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무력진압을 반대한 자오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연금 상태가 어느정도 완화한 1993년 이후 베이징 근교의 골프장에서 엄중한 경호(감시?)아래 라운딩을 하는 것이 목격되곤 하였다. 1995년 춘지에(春節 : 설날) 때에는 당국의 허락을 얻어 광둥(廣東)성을 여행하며 과거의 부하들과 함께 골프모임을 갖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문사태가 있은 지 3년뒤인 1992년 10월 자오에 대한 당의 최종 판정은▲국가기밀을 누설하고 ▲당을 분열시킨 과오를 범했다는 것이었다. 국가기밀누설이란 학생시위가 한창이던 1989년 5월 중국을 방문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최종결정권자는 총서기인 자신이 아니라 덩샤오핑임을 알렸다는 것으로 다분히 희화적이다. 자오에게 여러 차례 화해의 제스처가 있었으나 그는 끝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무력진압 표결 당시 자오와 함께 반대표를 던졌던 후치리(胡啓立)가 현 지도부와 타협, 권력서열 4위였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부장(장관)직을 맡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오가 ‘골프 소일’을 감수한 것은 덩의 ‘대안(代案)’으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확보하기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자오의 나이는 78세로 마오쩌둥(毛澤東)사망 당시 덩의 나이 72세보다 여섯 살이나 많다. 그러나 70대의 덩이 40대와 50 대의 ‘젊은’ 사인방과 화궈펑(華國鋒)을 차례로 꺾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마오의 대안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20년 전의 권력투쟁에서 ‘아류(亞流)’는 ‘대안’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덩과 같은 길은 걸어온 자오는 정치개혁문제에 있어서는 덩과 상반된 시각을 가졌다. 그리고 그 시각차는 학생시위의 대처방법에서 뚜렷이 표출됐다. 덩이 사라지고 경제발전에 따라 정치개혁의 요구가 높아진 지금, 대안으로 머물기 위해 불우를 감수한 자오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호사가적 관심사중 하나는 틈만 나면 채를 휘둘렀을 자오의 골프실력. 천하를 낚은 강태공의 예를 따랐다면 타수에는 신경 쓰지 않았을 법한데 글쎄다.” (1997년 3월 4일 한국일보의 칼럼 ‘앞과 뒤’) 차이나 워처로서 자오쯔양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중국 공산당의 최고지도자인 총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의 존립기반을 위협하는 학생시위의 진압을 반대한 그는 덩샤오핑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 덩이 왕밍(王明) 등 소위 ‘28인의 볼셰비키’로 불리던 소련파에 의해 마오의 노선을 추종했다는 이유로 숙청된 사실에서 보듯 덩은 오랫동안 마오의 충실한 부하로 여겨졌다. 1950년대 말 중소 이념분쟁의 와중에서도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가장 능력 있고 신뢰할 만한 ‘창(槍)’이었다. 그런 덩이 마오의 대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통해 마오의 경제노선에 반기를 들고 문화대혁명을 통해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자오의 무력진압 반대는 덩에 대한 ‘자오판 흑묘백묘론’으로, 실각과 연금은 ‘문화대혁명식 시련’으로 비유할 수 있다. 마오쩌둥의 대안으로 부상하기위해 덩샤오핑이 거쳤던 과정을 자오쯔양이 비슷하게 거치며 덩의 대안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 것이다. 자오에 대한 (외부의) 시선이 대체로 호의적인 것은 마지막 공식석상에서의 인상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계엄령이 실시되기 하루 전인 1989년 5월 19일 새벽, 그는 시위대 처리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리펑(李鵬)총리와 함께 학생 시위대가 단식농성하고 있는 천안문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시위대의 평화적인 해산을 촉구했다. 양복과 골프복이 어울리던 그는 그 때 인민복을 입고 있었다. 자오쯔양 등 소위 ‘제3세대 지도자들’은 선배세대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공식석상에서도 주로 양복차림이었으며 인민복을 입는 경우는 천안문 사태의 경우처럼 비상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피곤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핸드 메가폰으로 학생들의 귀가를 종용했다. 당시 서울 외신부에서 위성TV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본 필자는 1980년대 우리나라의 어느 시위 현장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 같은 광경이 공산독재국가라는 중국의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진 =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중인 대학생들에게 철수를 호소하는 자오쯔양. 오른 쪽 뒤 인민복 차림의 인물이 현재 총리로 있는 원자바오이다. 당시 원자바오는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을 합친 기능을 하는 당 중앙판공청 주임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중국에 대한 기존의 선입관을 해소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어쨌든 이후 자오쯔양의 동정을 접할 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 장면이었다. 그의 호소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위 학생들의 눈길에는 신뢰감이 담겨있었 것으로 기억된다. 동행한 리펑이 냉정한 자세로 꾸짖듯이 해산을 종용, 반감을 더욱 깊게 한 반면, 자오쯔양은 호소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학생들의 신뢰를 얻었다. 천안문 진압은 당시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오쯔양의 선택은 이상적이었다. 덩샤오핑의 결단이‘오늘’을 위한 것이었다면 자오쯔양의 반대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았던 간에 두 지도자가 역사적 ‘역할 분담’을 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사후 덩샤오핑(鄧小平)이 복권되고 중국 정치흐름을 바꾼 것처럼 자오쯔양도 ‘포스트 덩’의 최고지도자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또 그 것이야말로 시대의 흐름이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상황은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듯했다.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로 1989년 천안문 유혈진압을 계기로 배격되었던 그의 개혁개방 노선이 ‘복권’되었다. 그리고 1997년 9월 중국공산당 15차 전국대표대회(15대)에서는 그가 13대에서 제시하였던 정치개혁의 필요성도 강조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이다. 덩샤오핑이 살아있을 때는 덩샤오핑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덩샤오핑이 1997년 2월 사망한 이후에도 그의 롤백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자오쯔양은 너무 앞서 나갔는지 모른다. 경제개혁을 보다 심화시키기위해서는 정치개혁은 필요했다. 하지만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중국 대학생들에 의해 폭발되었던 민주화 욕구를 수용하기에는 중국의 모든 여건이 너무나 후진적이었다. 또한 정치 개혁 역시 마치 홍역 치르듯이 열정만으로 단번에 해결될 수는 없다. 자오쯔양도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한 점진적인 정치개혁을 지향하는 현실론자였다. 하지만 물가개혁의 부작용으로 보수파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그는 학생들의 급진적 개혁열정을 자신의 약화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받침대로 사용하려 했다. 문화대혁명에서 보듯 마오는 젊은이들의 개혁열정을 류사오치(劉少奇) 등 당권파로부터 권력을 탈취하는 탈권의 에너지로 활용하였다. 하지만 후야오방(胡耀邦)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오쯔양에게 그 것은 ‘독약’이었다. 그에게 더욱 타격이었던 것은 시위진압에 반대함으로써 본의가 어떠하든 간에 학생의 급진적 요구에 동조한 것으로 간주되어 급진적 정치개혁론자라고 공격받을 소지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가 쉽게 복권되지 못하는 이유에는 이런 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덩샤오핑의 장수 역시, 그에게는 불행이었다. 덩샤오핑에게 3번째의 실각을 안긴지 5개월만인 1976년 9월에 마오가 사망, 화궈펑(華國鋒)을 중심으로 한 후계구도가 탄탄하게 뿌리내릴 수가 없었으나 덩샤오핑은 천안문사태 이후 거의 8년 가까이 더 생존했다. 또한 덩샤오핑이 1992년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과 개방을 재 점화한 것도 그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만일 보수적 기조가 견지되고 있는 가운데 덩샤오핑이 사망했다고 한다면 자오쯔양의 덩샤오핑식 ‘천하때리기’는 실현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덩샤오핑이 정치 개혁 없는 경제개혁과 개방을 ‘성공적으로’ 해치움으로써 자오쯔양에게는 ‘급진적 정치개혁’이라는 이미지만 남게 된 것이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설사 그가 복권되고 명예를 회복한다하더라도 그는 덩샤오핑과 같은 황제형의 최고 지도자는 될 수 없을 것은 분명하다. 너무 나이가 들었고 또 덩샤오핑에 의해 발탁된 후배세대들이 그가 끼어들 공간이 없을 정도로 나름대로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경제발전에 따라 중국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제기될 정치개혁문제에 있어 그는 선구자적 인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천하 때리기’는 그가 살아 있을 때도 또 그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1998.3.7)

▶ 2005/01/12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