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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쯔양 片片想
2005년 1월은 차이나워처들에게는 ‘자오쯔양(趙紫陽)의 달’이었다.
1월 11일 홍콩 동방일보(東方日報)의 ‘의미심장한 사망오보’가 모두에게 잊혀졌던 자오를 관심의 초점으로 올려놓은 이래 17일의 사망, 그리고 29일의 유체고별식(영결식)에 이르기까지 차이나워처들은 자오쯔양에 매달려야 했다.
자오쯔양은 '과거'임과 동시에 '현재'이며 또한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한 줌의 재로 화했지만 여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음은 자오쯔양 기사를 처리하면서 문득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생각들을 조각조각의 상태 그대로 모아 본 것이다. <차이나워처 주>
- 삼국지에서 죽은 제갈량의 목상(木像)을 보고 사마중달은 줄행낭을 놓았다. 중달은 수십리를 도망친 연후에 “아직 내 목이 제대로 붙어 있는가”라고 주위에 말하며 놀란 가슴을 달랬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중달은 공명의 식사량과 그에게 지워진 업무강도 등을 종합 판단하여 그의 죽음을 확신했다. 공명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자신이 수집한 정보와 그에 근거한 판단이 착오였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경악하였을 수밖에.
사태가 분명해진 연후에도 중달은 “산 사람의 속도 모르는데 죽은 사람의 마음속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며 자신의 후퇴를 합리화했고 '만기친람'의 지휘관을 잃고 서둘러 철군하는 촉군(蜀軍)에 대한 추격도 하지 않았다.
살아있을 때에 위험한 존재였던 자오쯔양은 죽은 뒤에는 더욱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자오의 영정(影幀)을 배경으로 한 유족들은 마치 촉군의 강유가 공명의 목상을 앞세우며 사마중달의 군대를 물리친 것처럼 막강한 권력의 중국 공산당을 곤혹스럽게 했다.
영결식이 1월을 넘기지 않고 치러질 수 있게 된 것은 막바지 순간 후진타오가 개입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오장원(五丈原)의 마지막 대치에서 중달이 현명한 ‘도주’를 선택한 것처럼 후진타오 역시 후퇴한 셈이다.
산자의 병법은 예측 가능하지만 죽은 자의 전략은 중달의 말처럼 헤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16년만에 치러진 '리턴매치'에서 리펑(李鵬)은 다시 한번 자오쯔양을 이겼다. 천안문 사태 당시 자오의 행동을 착오로 규정한 기존 결정을 재확인 한 신화통신의 보도는 이를 입증해준다.
17일 사망에서 29일 영결식에 이르는 안개상황 속에서 리펑의 동정은 일체 노출되지 않았다. 29일에서야 리펑에게 다시 승리가 돌아갔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게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16년 전이 '불안한 승리'였다면 이번에는 '위태로운 승리'이다.
- 자오쯔양은 현 지도부에 전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적지 않은 정치적 유언을 남겼다. 그는 천안문 사태에 대한 재평가는 빠르면 빠를수록 또 피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자세로 하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한 부패를 막기 위해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완화할 것을 주문했다.
현 지도부가 경청할만한 고언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이 ‘평당원 태상황’이었다고 한다면 자오는 이제 ‘백골 총서기’이다.
- 홍콩의 추도식장에 걸려진 영정은 개혁개방 시대에 찍은 양복차림의 사진이었다. 반면 베이징의 그의 집에서 조문객을 맞은 자오의 대형영정은 인민복을 입고 있다.
홍콩인들은 개혁개방의 집행자로 그를 기렸고 유족들은 그를 공산당의 지도자로 기억시키고자 했다.
베이징 빈소에서 사용한 영정 ▶
▼ 홍콩 추도식장에서 사용한 영정
- 자오쯔양은 죽어 불씨가 되었다. 그의 유골이 팔보산(八寶山)공묘가 아닌 그의 집인 부창(富强) 후퉁(胡同)에 안치됨으로써 중국 지도부는 그 불씨가 언제 지펴질지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1차 천안문 사태 기념일인 4월 청명절, 2차 천안문 사태의 기념일인 6월 4일은 특히 ‘불조심 기간’이 될 것이다.
- 상하이방이 자오쯔양 죽음의 최대 수혜자이다 . 16대 이전 제4세대 지도부가 후진타오(胡錦濤), 원자바오(溫家寶), 쩡칭훙(曾慶紅) 등 트로이카 체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과는 달리 후진타오-원자바오의 양두체제가 확립되었고 쩡칭훙은 다소 소외된 감이 있다.
또한 지난해 장쩌민이 군사위 주석을 후진타오에게 넘겨준 것은 상하이방의 퇴세를 실감케 하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현상이 빚어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상하이방과 후진타오-원자바오 간에 노선 차이 때문이다. 후-원의 노선은 ‘덩샤오핑을 극복하고 마오로 돌아가자’는 ‘극등복모(克鄧復毛)’로 요약할 수 있다.
‘불균형 성장’보다 ‘균형성장’을 지향하고 오랫동안 소외돼 온 마오의 ‘평등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론 후-원이 부활시키려는 마오는 ‘홍위병’과 ‘문화대혁명’으로 상징되는 ‘야수의 얼굴을 한 마오’가 아니라 ‘시바이포(西柏坡)의 마오’, 즉 가장 순수하게 공산혁명 열정에 사로잡혀 있던 마오이다.
반면 상하이방은 생산력 확대를 위해 덩의‘남순정신’의 견지를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정치개혁 문제에 있어서도 이들은 큰 견해 차를 보이고 있다. 후-원이 추구하는 정치개혁은 당내 민주화를 통한 당의 강화이다.
이에 반해 상하이방의 정치개혁 노선의 최종 지향점은 서구 사회민주주의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는 1당 독재 폐지를 심각히 고민하고 삼권분립 제도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자오쯔양의 정치개혁 노선에 맞닿아 있다.
자오의 죽음을 계기로 다소 소외돼왔던 상하이방이 자오에 동조하는 이들과 연합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후-원은 상하이방에게 일정부문의 발언권을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러한 조짐은 이미 보이고 있다. 당과 유족들 간에 영결절차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던 때에 해방군 총정치부가 장쩌민(江澤民)의 집정당(執政黨)사상을 학습하라는 지시를 전군에 하달한 사실이 그 한 예이다. 장쩌민의 집정당 사상은 상하이방 버전의 정치개혁론이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이 자오쯔양 사후에 소집된 회의에서 중국 특색의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재확인한 것은 서구적 정치제도를 결코 도입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현 지도부가 설정한 정치개혁 마지노선이다.
-정치협상회의 주석을 겸하고 있는 자칭린이 당을 대표하여 영결식에 참석한 것은 자오쯔양의 정치개혁 노선을 비공산당의 정치노선으로 대우하겠다는 시사로 보인다.
- 쩡칭훙은 신화통신 보도에 대해 실사구시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결정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이다. 현 지도부의 정치적 추파에 대한 상하이방의 미소섞인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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