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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외폐(外弊), ‘백조’에서 ‘미운오리’로
‘어, 이게 돈이야. 뭐 모조지폐 같잖아.’
중국을 처음 방문한 1992년 5월, 베이징(北京)의 수도(首都 :쇼우두)공항의 환전소에 달러를 건네고 받은 중국 돈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명도가 높았고 지질도 좋은 편이었지만 조잡한 도안과 색상으로 인해 한국 문방구점에서 판매하는 아이들 놀이용 모조화폐와 같다는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필자와 외폐(外弊)와의 첫 만남이었다.
곧이어 택시 거스름돈을 받으며 중국에 ‘외폐’와 인민폐’라는 두 종류의 화폐가 통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외폐의 가치가 인민폐 보다 높았고 호텔과 외국인 상대 상점에서는 외폐만 받았지만 도안과 인쇄면에서는 인민폐가 훨씬 진짜 돈 같았다.
중국은 외폐와 인민폐 등 2종의 화폐를 통용시키고 각각 다른 환율을 적용함으로써 외국인들에게 입국과 동시에 바가지를 씌운 셈이다.
중국 당국은 필자가 중국에 체재하던 1994년 1월1일 외폐의 발권을 중단하고 1995년 1월1일부터는 이를 완전폐지 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라 물품이 대거 유입되면서 ‘부족한 물품’을 살수 있는 ‘특권적 기능’은 사라지고 외국인에 대한 ‘바가지’ 기능만 남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인들도 암시장을 이용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등 등 외폐는 중국 당국의 조치가 없더라도 퇴출될 운명이었다.
중국 당국은 1980년 4월 1일부터 발권을 시작한 외폐가 ‘역사적 기능’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국의 발권 중단 조치 시행을 전후해서 라오바이싱(老百姓) 들은 어제까지 ‘백조’처럼 대우했던 외폐를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했다.
다음 글은 외폐의 발권 중단이 있은 지 11일 뒤인 1994년 1월 11일자 한국일보에 게재된 외폐의 퇴장을 다룬 글이다. <차이나워처 >
1993년 연말연시 베이징의 상점가는 때 아닌 '외회태환권( 外匯兌換券, FEC : FOREIGN EXCHANGE CERTIFICATE)의 호경기를 만끽하고 있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정부는 1994년 1월1일을 기해 이중환율제를 단일환율제로 통일하고 FEC의 발권을 중단했다.
1달러 당 5.6 위안의 공정환율과 1달러 당 8.7원대의 스와프마켓(외환조절시장)환율 등 두 가지의 환율을 시장시세인 8.7원대에서 시장수급에 따라 매일 연동시키는 단일변동환율제를 채택한 것이다
차이나워처 주 : 당시 겉으로는 단일변동환율제라고 주장했지만 상하 변동폭이 0.3%에 불과 였기 때문에 이는 사실상 달러화에 고정peg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기준 환율도 곧 1달러 당 8.28위안으로 조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환율단일화는 궁극적으로 인민폐의 태환화를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이전까지 원칙적으로 외국인들만이 1달러 당 5.6원이라는 공정환율에 따라 바꿀 수 있었던 외회권은 필요가 없게 됐으며 인민폐라는 단일화폐만이 유통될 수 있게 됐다.
물론 중국 당국은 이미 발행되어 유통 중인 외회권에 대해서는 이전대로 쓸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한시적 생명을 지닌 외회권이 곧 무용지물이 된다는 생각에 외회권의 무차별 소비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구랍 31일 외국상품 전문점인 구이요우(貴友) 상점에서는 외국담배가 외회권으로 10만여 위안 어치가 팔렸다. 평소 매출액의 9∼10배가 되는 양이다. 소비자들은 말보로, 555, 세븐스타 등 인기있는 품목들을 10보루 이상씩 사갔다.
같은 날 2층의 고급시계 코너에서는 2만여 위안(FEC)어치의 시계가 팔려나갔다. 이 시계 코너의 11월 전체매출액이 겨우 1만 위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개월 동안 팔려나갈 물품들이 단 하루만에 팔려나간 것이다.
또 다른 상점인 요우이(友誼)상점 3층의 귀금속코너에서는 최근 며칠동안 24K 금장신구가 하루 평균 30만 위안어치가 팔렸다. 이 또한 평소 매출액의 50∼60배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광란에 가까운 구매열기는 환율단일화 조치 이후 외회권가격 표시의 물품가가 인상될 것을 우려한 환물심리 때문에 빚어졌다.
환율단일화 조치가 있기 이전 이들 외제품상점에서는 외회권 가격으로 상품가격을 매겨놓고 인민폐를 낼 경우에는 50%씩 올려 받았다. 원칙대로라면 50%씩 오른 인민폐 가격을 새로 붙여놓았다 하더라도 외회권을 낼 때에는 12월31일 이전 가격으로 팔아야 한다.
그러나 외회권을 받지 않는 곳이 생길 수도 있고 또 외회권과 인민폐를 1대1로 취급하여 받는 곳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외회권을 소지한 사람은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이라도 사놓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너나 할것없이 마구잡이로 사재기를 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에게 외화대접을 받던 외회권이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셈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벌써부터 외회권을 인민폐와 동일하게 취급하기 시작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의 불안심리를 이용, 일부 상점에서는 인민폐보다는 우대를 해주지만 12월31일 이전에 표시된 외회권 가격보다 올려받는 곳도 나타났다.
외회권으로 월급을 받아왔던 외국투자기업의 직원 한사람은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물건을 사들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말한다.
어제의 ‘백조’였던 외회권이 하루아침에 ‘미운오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199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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