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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중국외교, 그리고 스노와 키신저
2월 15일은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의 저자인 에드가 스노의 기일(忌日)이다. 1905년 태어나 1972년 타계했다.
1971년 4월의 '핑퐁외교', 같은 해 10월 중국의 유엔가입 등 오랜 적대국이었던 미국과 중국이 화해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보았으나 리차드 닉슨의 역사적 중국 방문을 불과 며칠 앞두고 타계했다.
중국 공산당의 실체를 서방에 처음 알린 스노에 대해서는 전혀 상반된 시각이 따라 다녔다. 미국 등 서방 진영 일부에서는 친공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았고 핵심 취재원인 마오쩌둥(毛澤東)으로부터는 ‘미국의 스파이’로 간주됐다.
사후 그의 유해는 미국과 중국에 나뉘어져 묻혔다. 중국으로 온 그의 유해 일부는‘중국인민의 미국친구’라는 묘비명 아래 베이징(北京)대학의 웨이밍(未明)호반에 잠들고 있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추억이다. <차이나워처 주>
1993년 말 마오쩌둥(毛澤東)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위해서 제작된 중국의 TV시리즈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다.
마오쩌둥의 외교를 다루던 이 시리즈는 낯익은 한 미국인의 인터뷰를 방영하고 있었다. 인터뷰 대상은 헨리 키신저 박사. 1970년대 초, 그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중국과 미국과의 접근을 성사시킨 키신저 박사는 이 시리즈물 제작을 위해 미국을 찾아온 중국 기자에게 “ 당시 미국은 중국의 (화해)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20세기 메테르니히’라고 불리던 이 희대의 외교가가 뒤늦게서야 깨달았던 사실은 무엇인가. 키신저의 실토를 그 육성을 통해 전하기전 TV화면은 1969년 10월 1일 국경절(건국기념일) 당시의 천안문(天安門) 망루를 비쳐주었다.
카메라의 앵글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周恩來) 등 중국 지도자들 사이의 한 서양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검푸른 중산복 차림에 무테안경을 쓴, 지식인풍의 한 중국인 통역의 부지런한 설명을 들으면서 초로에 접어든 그 서양인은 다소는 감회에 젖은 듯했고 다소는 어리둥절한 듯 보였다.
빛 바랜 기록필름이 전하는 그 장면은 필자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그 무렵 우리나라 TV를 통해 이 장면이 주요 국제뉴스로 보도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초로의 미국인은 에드거 스노였다.
1930년대 말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군대에 쫓긴 중국공산군이 2만5,000리 대장정 끝에 안착한 옌안(延安)을 찾은 스노는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저서를 통해 마오쩌둥과 중국공산군의 존재를 미국과 서방에 알린 인물이다.
중국당국이 이 미국인을 중국의 건국기념일에 초청했다는 것은 당시 큰 뉴스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옛 친구, 즉 ‘라오펑요우(老朋友)'를 잊지 않았다는 것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의 TV 시리즈물은 에드거 스노를 천안문의 망루에 중국지도자들과 함께 내세운 것은 고도의 외교적 계산이 함의된 이벤트였다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해 3월 소련과 대규모 국경충돌을 벌인 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간절히 바랐던 중국 지도부는 그 계기를 마련하는데 골몰했다. 수십 년 동안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에 대해 이러한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당시 외교를 책임지고 있던 저우언라이 총리는 특히 쓰디쓴 경험을 갖고 있었다. 1954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뒷마무리를 위한 제네바 회담에서 존 포스터 덜레스 미 국무장관에게 악수를 청했다가 거절당하는 외교적 수모가 바로 그것이었다.
훗날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된 이후 저우언라이가 이 일화를 언급했듯이 그것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수모였던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살펴볼 때 마오쩌둥을 비롯한 당시의 중국지도부가 직설적인 외교제스처에 주저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고심 끝에 나온 것이 에드가 스노를 천안문 망루에 중국지도자들과 함께 내세우는 일이었다고 한다.
중국이 중국 공산당의 ‘라오펑요우’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적대국인 미국의 시민인 그를 중국 지도자와 같이 공개적인 정치적 행사에 내세움으로써 중국이 미국과의 관개개선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 지도부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의 키신저 박사는 중국이 던진 이 외교적 메시지를 알아채지 못했다. 키신저는 이 때 이미 미소 양극체제를 중국을 한축으로 한 3극체제 내지는 다극체제로 전환시켜야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구상을 좀더 빨리 실천 할 수도 있었을 중국으로부터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으로부터의 반응이 오기를 기다렸던 중국은 미국이 자신들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좀 더 알기 쉬운 이벤트를 연출했다. 그 것은 1971년 4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탁구대회에 참석한 미국선수단을 초청하는 일이었다.
그제야 미국은 중국의 신호를 분명히 깨닫기 시작했다. 이른바 핑퐁외교가 있은 지 3개월 뒤인 7월 세계를 경악케 한 키신저 박사의 중국밀행이 있었고 중국은 이를 발판으로 국제무대의 한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키신저 박사는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가 벽에 부딪힐 때 자주 초청되는 미국 인사중의 하나다. 중국을 이해하는 ‘라오펑요우’로서 대접하고 그를 통해 중국측의 의사가 미국 핵심부에 전달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할 때에는 아무 현직도 없는 그이지만 외국인을 독자로 하는 차이나 데일리는 문자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그가 중국 지도부인사와 만나는 사진을 싣는다.
미국과 중국간에는 대사관이라는 공식적 접촉 창구가 있지만 그보다는 키신저와 같은 중국을 이해하는 미국인을 통한 메세지의 교환을 선호한다는 인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는 중국식 외교방식을 철두철미하게 체험한 키신저에 대한 신뢰가 자리잡고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1997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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