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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외교와 중국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외교가 본격 시동되고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한국과 베트남을 방문한 데 이어 봄에는 일본, 중국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러시아의 아시아 외교 중심은 중국과의 관계 강화이다. 이번 중-러 정상회담에선 과거 중-소 밀월시대인 50년에 체결됐으나 양국 대립 시기인 80년에 자동 실효된 중-소 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을 대체할 새로운 양국간 기본조약 체결이 가시권에 놓여 있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는 가속화되는 중국의 극동 진출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대항할 수 있는 경제력을 보유치 못한 러시아는 일본과 한국과 관계 확대를 통해 이들의 극동 지역에 대한 투자를 유도, '영토보전'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는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지난달 20일 모스크바에서 군사기술 협력에 관한 정부간위위원회 8차 회의를 열었다.
장완녠(張万年)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일리야 클레바노프 군수산업담당 부총리는 2007년까지 양국 군사협력 방안을 확정하는 한편 몇가지 러시아제 무기의 중국 매각에 합의했다.
중국은 올 상반기 러시아제 조기공중경보기 A-50을 2기에서 4기, 연말까지 수호이 30 전투기 20대 이상을 도입하고 이밖에 기뢰 부설함과 핵탑재 가능한 잠수함도 향후 들여올 계획이다.
더욱이 장 부주석은 지난달 21일 이고리 세르게예프 러시아 국방장관과 회담하면서 미국이 추진하는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 제한조약의 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따라서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배치 방침에 대항하는 중-러 군사협력 체제의 강화가 구체적으로 진전됐다.
러시아와 중국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강화는 올봄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전기를 맞이할 전망이다.
이는 중-소간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자동 실효된 동맹조약을 대체할 기본조약이 체결될 것이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진 탓이다.
러시아에 있어 중국은 '미국 일극지배'에 대항할 수 있는 파트너인 동시에 자국 무기의 주요 수출국이기도 하다. 양국 관계가 과거의 밀월 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조성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는 중국에 접근하는 데 상당한 우려와 경계심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작년 7월 연두교서를 통해 러시아의 인구 감소에 위기감을 표시했다.
문제는 이러한 인구 감소분을 메우듯이 중국인의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 유입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점이다. 러시아에는 '가까운 장래에 시베리아와 극동을 중국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 내무부는 극동-시베리아 지역에 불법 체류하는 중국인 수를 최저 수만에서 수십만, 최대 1백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경제 침체와 함께 중국의 저임금 노동자가 러시아인을 밀어내는 현상이 빚어지면서 현지의 러시아인 인구의 유출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노후화한 산업 설비가 중국산 기계와 기술에 의해 대체되는 경우도 눈에 띠게 늘고 있어 러시아측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 있다.
불법 이주자의 증가에 더해 산업-경제 기반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면 실질적으로 현지 사회의 중국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자금과 기술 모두 부족한 상황인 점에서 현실적으로 이런 움직임을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이런 이유에서 러시아의 아시아 외교는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의 '진출'을 저지할 목적에서 일본, 한국 등과 경제 교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푸틴 대통령이 한국과 베트남을 방문한 데 이어 일본, 중국과 정상회담을 잇따라 개최하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푸틴 대통령은 한국 방문시 2명의 극동 지역 고위 관리를 대동했다. 중국과 긴 국경선을 접하는 아무르 지방의 베로노고프 지사, 그리고 전략 요충지역으로 대륙붕 석유 탐사가 진행중인 사할린의 주지사가 그들이다.
러시아가 한반도 정세에 적극 간여해 남북한간 '중재 외교'를 추진하는 일은 푸틴 대통령의 중요 방한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에 더해 남북한 쌍방 모두와 파이프를 가진 러시아의 위상을 무기로 냉각돼 가고 있는 러시아와 한국간 경제 교류를 재차 활성화, 특히 극동 지역에 한국 투자를 끌어 들이려는 속셈이 두 지사의 동행에서 엿보인다.
3월1일부터 시작된 베트남 방문에서도 베트남 남부에 위치한 러시아군 기지의 시용 기한을 연장하는 것도 그렇지만 경제협력 문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비록 북방 영토문제가 현안으로 남아 있으나 아시아 최대 경제력을 보유한 일본도 러시아에는 매력있는 외교 대상이다.
푸틴 대통령의 최근 활발한 아시아 외교 행보의 배경에는 러시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더불어 시베리아-극동에 관련된 중국과의 이처럼 미묘한 사정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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