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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방(上海幇)의 책사(策士) 쩡칭훙(曾慶紅)
쩡칭훙(曾慶紅)은 올해(2000년)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를 계기로 괄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국 ‘제4세대’지도자의 한 사람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부주석의 ‘라이벌’로까지 부각되고 있는 쩡칭훙이지만 그의 현재 정치적 위상은 후에 크게 못 미친다.
후진타오가 정치국 상무위원인 데 반해 그는 두 단계 아래인 정치국 후보위원에 불과하다. 당 서열로 따지면 후가 5위, 쩡은 23위다. 그리고 후가 국가 부주석과 군사위 부주석 등 국가기구와 군 계통상에서 각각 서열 2위의 직책을 맡고 있는 데 반해 그는 아무런 직책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쩡칭훙이 후진타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것은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그가 국가 부주석과 군사위 비서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 직책은 후를 대체할 수 있는 위치와 파워를 보장하는 것으로 쩡은 ‘제4세대’지도부의 2인자의 위치를 예약받은 셈이다.
장쩌민의 ‘한명회’
쩡칭훙이 어떤 인물인가를 알려면 제갈공명(諸葛孔明)과 한명회(韓明澮)를 떠올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실(漢室)의 후예라는 ‘명분’을 지녔으면서도 세력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떠돌던 유비(劉備)를 보필, 촉한(蜀漢)의 황제로 만든 공명처럼 쩡칭훙은 89년 6월 당총서기라는 최고위 직책에 ‘뜻밖에’ 오르기는 하였으나 중앙 정계에 별다른 세력 기반이 없었던 장쩌민이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 권력자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또 그 과정에서 반대파의 의표를 찔러 기습적으로 축출, 장쩌민의 지배권을 공고히 한 그의 수법은 김종서(金宗瑞), 안평(安平)대군 등 쟁쟁한 수양(首陽)대군의 적대세력을 제거한 한명회(韓明澮)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가 단순한 ‘모사(謀事)꾼’이 아님은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나온 ‘제4세대’ 지도부 인사안 때문이다. 그가 입안한 것으로 알려진 이 인사안을 통해 장쩌민의 ‘지낭(智囊 : 꾀주머니)’을 넘어 ‘경륜을 지닌’ 실세 2인자로 성장했음을 보여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범한 정치력과 대담함
쩡칭훙은 장쩌민을 보필한 지난 10년간 비범한 정치적 재능과 대담성을 발휘했다. 공안 계통을 장악하고 있는 ‘힘’을 배경으로 또 자신이 의장으로 있는 전인대(입법부) 강화라는 ‘명분’을 내 세우며 장쩌민을 지속적으로 견제해 오던 차오스(喬石)를 1997년 15대에서 실각시키기 위해 동원한 ‘70세 정년’ 원칙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1926년생인 장쩌민 역시 97년 당시 70세를 넘어선 상태여서 그러한 주장은 장에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후계체제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쩌민 퇴진은 정치적 혼란을 의미했다. 차오스는 동반퇴진 주장과 같은 ‘물귀신 작전’을 펴지 않았다. 심복인 웨이젠싱(尉健行)을 상무위원으로 밀어 넣은 뒤 자신은 정치적 패배를 인정하고 깨끗이 물러나는 대 정치가의 면모를 보인 것이다.
차오스의 그런 면모를 사전에 냉철하게 계산에 넣지 않았다면 ‘70년 정년 주장’은 대담한 시도가 아니라 무모한 도발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 관측통들 사이에서 현재 중국의 지도자들 중에서 그에 맞설만한 지략을 갖춘 이는 없다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과찬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대담함은 성역으로 간주돼 온 ‘태자당(太子黨)’의 비위를 과감하게 척결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톈안문(天安門)사태 당시 유혈진압을 앞장 서 주장했던 왕전(王震) 전 국가 부주석의 아들, 소수민족인 몽골족 출신으로 전인대(全人大)부의장(국회 부의장)을 지낸 우란푸(烏蘭夫)의 손자 등도 그의 서슬을 비껴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그에게는 적이 많을 수 밖에 없다. 1997년 15대에서 장쩌민이 그를 정치국원으로 진입시키려 했으나 결국 후보위원에 넣는 데 만족한 것이라던가, 후진타오에게 국가주석만을 넘겨 주고 그에게 총서기 직을 인계하려던 장쩌민의 내심 구상을 공론화할 수 없던 것 등은 후진타오의 경우와는 달리 그에 대한 비토세력이 당내에 엄존함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정치적으로 개혁적
쩡칭훙은 정치적으로 중국의 4세대 지도부 내에서 가장 개혁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상하이시 당위회에서 조직부문을 담당할 때 ‘조직 인사보’의 편집을 주관했는데 정치개혁에 대해 상당히 개혁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반체제 인사들과도 자주 접촉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반체제 인사들이 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근거로 ‘포스트 장쩌민’ 시대에 톈안문 사태를 재평가할 인물은 후진타오가 아니라 쩡칭훙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와 관련 장쩌민 주석이 8월 말 미국 CBS 방송과의 회견에서 ‘민주와 자유를 요구했던 학생들의 격정을 완전히 이해한다”라는 한 발언을 음미해 볼만 하다. 쩡칭훙은 톈안문 사태 당시 상하이시 당 부서기로 당시 장쩌민 당서기, 주룽지 시장 등과 함께 군대 동원 없이 시위 사태를 처리하였다.
양안간 비밀접촉에도 관여
그의 경력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그가 양안간 비밀 접촉의 중국측 대표로 활약해왔다는 점이다. 대만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1991년부터 장쩌민 주석과 꾸준히 밀사를 교환한 사실이 지난 7월 대만 언론 보도를 통하여 알려졌는데 91년 4월 주하이(珠海) 첫 접촉에서 중국 측 대표로 나온 인물이 바로 당시 당 중앙 판공청 부 주임인 쩡칭훙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장쩌민의 통일방안 구상에 깊숙히 관여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임과 동시에 정치민주화 문제와 함께 차세대 지도부가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될 양안문제에 대해 다른 누구 보다도 정통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한 손엔 '당근, 다른 한 손엔 '채찍'
이미 주목 받아온 쩡칭훙은 권력승계와 세대교체가 화두(話頭)가 될 16대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다. 그의 현재 정치적 입지를 두고 한 손에는 ‘채찍’, 다른 한 손에는 ‘당근’을 쥐고 있는 형세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채찍’은 당 조직부장으로서 당 간부에 대한 비밀파일을 관장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비유다. ‘당근’을 쥐고 있다는 것은 16대 이후 정치적 미래를 열고자 하는 간부라면 16대 주비소조(籌備小組) 상무 부조장인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집권’ 상하이방의 실질적인 2인자로 자리매김 되는 것은 바로 이 두 직책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전도가 장미 빛으로 채색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속단일 것이다. 우선 그에게는 경계하는 이가 너무 많다.
그의 권력기반이 ‘최고 지도자’ 장쩌민의 신뢰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도 위험 요소이다. 여기서 ‘장쩌민이 청찡훙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쩡이 장을 이용했다’라는 지적을 돼새김질 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어느 순간 장쩌민을 무시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장쩌민은 그를 배척할 수 있다. 그리고 장쩌민의 현재 위상(이는 쩡칭훙에 힘입은 바 크지만)은 그를 충분히 제거할 힘을 갖추고 있다. 또한 후야오방의 경우에서 보듯 그가 반대파와 첨예한 대립을 벌일 경우 장은 그를 속죄양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지만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역시 후진타오와 마찬가지로 ‘불안한 2인자’의 범주를 벗어나 있지 못한 것이다.
베이징으로 불러 올린 유일한 인물
쩡칭훙은 1939년 생으로 후진타오 보다 세 살이 많다. 장시(江西)성 출신으로 60년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1963년 베이징(北京) 공업학원을 졸업했다. 전공은 자동제어학.
79년부터 1981년까지 국가 계획 위원회 판공청 비서를 지냈다. 81년에 국가 능원(能源:에너지)위원회 판공청 부처장으로 자리를 옮겨 1982년까지 있었다. 1983년 해양석유 총공사 연락부 부경리를 거쳐 1984년 중화 석유석유공업 외사부 사장이 된다. 이 해에 그의 일생에서 중요한 전기가 된 상하이시 당위원회로의 진입이 이루어진다.
1986년까지 상하이시 당 조직부부장, 조직부장을 역임하며 상하이 시당의 조직 부문을 관장했다. 1986년에 상하이시 당위원회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겸 비서장으로 승진하고 1989년 톈안문 사태 당시에는 상하이 시당 부서기였다. 당시 당서기는 장쩌민. 1989년 6월 장쩌민이 총서기로 선출된 뒤 상하이에서 중앙 정계로 불러 올린 인사는 쩡칭훙이 유일하다.
장쩌민은 총서기의 일정과 당 기밀 등을 관장하는 중앙 판공청의 부 주임 직을 그에게 맡겼다. 당시 그의 직속 상관이 원자바오(溫家寶) 현 국무원 부총리(금융 농업 담당)이다.
1993년에 판공청 주임이 됐으며 1997년 15대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됐다. 99년 3월 당 조직을 관장하고 간부의 인사권을 쥔 조직부장에 임명되면서 ‘그늘’에서 ‘양지’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과의 관계
올해 4월 1일부터 4일까지 우리나라를 방문,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박태준(朴泰俊)총리, 이정빈(李廷彬) 외교 통상부 장관 등과 만났다. 그의 첫 한국방문으로 한중간 당정 지도자 교류의 일환으로 방문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쩡의 초청 주체가 한국 정부라는 것은 의전상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할 수 있다. 그가 행정부에 직책을 갖고 있지 않은 공산당의 지도자급 간부이니 의전 원칙에 합당하려면 초청 주체는 집권당인 민주당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런 의전원칙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것은 차세대 지도그룹의 일원이니 만큼 중요 국가인 한국과 일본을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는 필요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정빈 장관과의 회담에서 양안간 비밀접촉을 담당한 사람답게 ‘하나의 중국’원칙을 견지해줄 것을 특히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나 워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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