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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세대](9) 복장(福將) 왕치산(王岐山) 국무원 부총리
‘용장(勇將)은 지장(智將)보다 못하고 지장은 복장(福將)을 당해낼 수 없다.’ 삼국지의 장수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장비(張飛)가 용장이라면 관우(關羽)는 지장이고 복장은 조운(趙雲)이다. 조자룡(趙子龍)으로 흔히 알고 있는 조운은 일생 동안 치룬 수많은 전투에서 적지 않은 패전을 겪었다.
하지만 비극적 최후를 마친 장비와 관우와는 달리 와석종신(臥席終身)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용맹과 지략을 갖추었어도 불행한 최후를 피하기 힘들었던 난세에 조운은 참으로 복이 많은 장수였다.
왕치산(王岐山) 국무원 부총리는 ‘중국 정계의 복장(福將)’이다. 불행은 복을 가져왔고 좌천은 오히려 승진의 기회를 제공했다. 조자룡이 복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듯이 왕치산의 재능과 성실함은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크나큰 복으로 전환시켰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며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인생역정이었다.
중국인 모두에게 그러했듯이 문화대혁명은 그에게도 시련을 안겨 주었다. 부친이 칭화(淸華)대학의 교수인 지식분자 가정의 아들이었기에 하방(下放)은 필연적이었다.
1948년 7월 생인 그는 21세 때인 196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의 졸업이 이렇게 늦어진 것은 1965년 말부터 시작된 문혁 때문이었리라.
고교 졸업 후 하방된 곳은 산시(陝西)성 옌안(延安)현 핑좡공사(憑莊公社)였다. 그런데 이 하방은 그의 운명을 사실상 결정지었다.
왕치산은 이곳에서 역시 베이징에서 하방된 야오밍산(姚明珊)을 만나 결혼했다. 야오밍산은 국무원 상업부장을 거쳐, 당중앙 재무(財貿)정치부 주임을 지내다 문혁이 벌어지면서 삼반분자(三反分子) (주1)로 몰려 숙청된 야오이린(姚依林)의 큰 딸이었다.
야오이린은 훗날 덩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을 잡은 뒤 부총리를 거쳐,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바로 그 사람이다.
야오이린은 칭화(淸華)대 출신의 경제통으로 후진타오(胡錦濤)의 백락(伯樂)인 쑹핑(宋平)과는 동갑에다 대학동문으로 절친한 친구였다. 대학은 야오이린이 1년 선배이다.
왕치산은 야오밍산과 결혼함으로써 경제와 조직, 그리고 칭화방(淸華幇) 등 공산중국의 핵심 키워드와 밀접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태자당이 아니면서 태자당이 되었고 칭화대를 나오지 않았으면서도 칭화방과 마찬가지 대우를 받았다. 주룽지(朱鎔基)는 그를 아꼈고 후진타오도 태자당인 그를 떨떠름하게 여기면서도 그의 기회를 막지 않았다.
또 대학에서 경제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경제통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장인의 친구인 인사통 쑹핑의 배려가 있었다. 결혼으로 팔자를 고쳤으며 호박이 넝쿨채 들어 온 셈이다.
중국에서는 권력자의 사위가 되어 출세한 사람을 두고 '금거북족(金龜族)’라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했지만 외교관 중에는 금거북족이 많다.
외교담당 국무위원 다이빙궈(戴秉國). 전 외교부장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 부부장 왕광야(王光亞),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임 왕이(王毅) 등이 바로 대표적인 외교부 내 금거북족이다.
“아름다운 여성은 부자와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으며 재능있는 사내도 권력자의 딸의 눈에 든다면 큰 출세 길이 열릴 수 있다”는 말처럼 이들이 오늘날의 위치에 오르는 데는 그들의 능력 외에도 장인들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왕치산을 능가할 만큼 복 많은 금거북족은 아니다.
여느 하방청년과 마찬가지로 농사일을 하던 왕치산은 하방 2년 뒤인 1971년 9월 산시성 박물관의 직원으로 발탁됐다. 비록 숙청되어 지방에 쫓겨왔지만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던 야오이린의 입김 탓이다.
2년 뒤인 1973년 9월 왕치산은 박물관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노농병(勞農兵)으로 추천되어 시안(西安)의 서북대학(西北大學)에 입학하였다. 이해는 장인 야오이린이 복권되어 제10차 전당대회(10대)에서 중앙위 후보위원에 선출된 해이다.
왕치산은 1976년 9월까지 이 대학에 재학하면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박물관 직원으로서의 맞춤형 전공인 셈이다. 문혁 시기에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그의 이력을 살피다 보면 ‘백마고지 전투에서도 낮잠자는 녀석은 있게 마련이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대학 졸업 뒤 박물관에 복귀했던 왕치산은 1979년 6월 산시성에서 베이징으로 불려갔다.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의 실습연구원이 된 왕치산은 3개월 뒤인 이해 9월에는 민국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민국사연구소는 중화민국, 즉 국민당 정권의 역사를 연구하는 곳으로 왕치산은 민국인물전 편찬 조에 속했다. 1개월 전인 1979년 9월에는 장인 야오이린이 경제담당 부총리가 되었다.
왕치산은 또 한 번의 시대의 트렌드에 맞춘 변신을 시도한다. 당시 집권자 덩샤오핑은 ‘1개 중심 양개 기본점’이란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왕치산은 ‘경제발전'이라는 1개 중심에 자신의 미래를 걸기로 한 것이다(양개 기본점은 개혁과 개방이다).
왕치산은 사회과학원 민국사연구소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경제를 파고들었다. 특히 금융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2편의 논문을 쓰기까지 했다.
그는 그 논문을 민국사 연구소의 상급자 주신취안(朱信泉)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주신취안은 역사연구 방식으로 경제를 분석했음을 알 수 있었으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당연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위 지도자들은 그 논문을 높이 평가했다.
왕치산은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83년 이래 당중앙 서기처 산하의 농촌경제정책연구실과 국무원 농촌발전 연구중심에서 경제를 공부하였다.
이후 농촌개혁시험구 판공실 주임과 중국농촌투자신탁공사 총경리 등을 역임하며 실무를 익혔다. 이론과 실무 양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것이다.
왕치산이 이처럼 경제연구에 열중하는 사이 그의 후원자인 장인 야오이린은 승승장구하였다. 1985년에 정치국에 진입한 야오이린은 1987년 13대에서 5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
자오쯔양(趙紫陽), 리펑(李鵬), 야오이린, 차오스(喬石), 그리고 후지리(胡啓立)로 이루어진 이 정치국 상무위는 보혁(保革)의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자오쯔양과 후치리가 개혁파라면 리펑과 야오이린은 보수파이고 차오스는 중도 성향이었다.
야오이린은 보수파의 경제노선을 대표했다. 자오쯔양이 개혁파의 경제를 대표하며 덩샤오핑과 연결되었다면 야오이린은 천윈(陳雲)과 같은 계열이었다.
덩샤오핑-자오쯔양 라인이 적극적인 개혁,개방을 추구하였다면 천윈-야오이린 라인은 여전히 새장경제학(鳥籠經濟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천윈은 죽을 때까지 경제특구 땅을 한 번도 밟지 않았다.
1989년 천안문 사태로 인해 자오쯔양이 실각하면서 적극적 개혁노선은 일시 후퇴했고 이를 지지하는 인사들은 대거 축출됐다 (리펑은 보수파의 정치노선을 대표한다면 후치리는 개혁파의 정치노선을 대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천안문 사태 이전 태자당은 3개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장 강력한 그룹은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鄧樸方) 계열이었다. 쩡칭훙(曾慶紅), 위정성(兪正聲), 장더장(張德江). 왕루샹(王魯湘) 등이 포함되었다.
최고실권자의 아들을 중심으로 한 이들 그룹이 파워가 가장 막강하였다. 20년이 흘러 쩡칭훙은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가부주석을 지내고 이젠 은퇴한 상태이며 위정성과 장더장은 현재 정치국 위원이다.
두 번째 그룹은 천윈의 아들은 천위안(陳元)을 보스로 한 그룹이었다. 현 국무위원 마카이(馬凱), 현 환경보호부 부부장 판웨(潘岳)가 여기에 속했다. 이들은 장청년(壯靑年)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결속하였다. 정치 지향의 이데올로그인 판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제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반쪽 태자당인 왕치산은 물론 여기에 속했다.
세 번째 그룹은 자오쯔양의 정치 브레인 바오퉁(鮑彤)이 중심이었다. 바오퉁이 주임으로 있는 중공중앙 정치체제개혁연구실이 이들 세력의 거점이었다. 정치쪽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었다.
천안문 사태 이전 왕치산이 속한 천위안 그룹은 원로그룹의 2인자(천윈)과 현직 지도자의 2인자(리펑, 야오이린)의 후광 아래 덩푸팡 그룹에 이은 두 번째 그룹의 위상을 지키고는 있으나 바오퉁 그룹에 쫓기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천안문 사태는 모든 것을 일변시켰다. 덩푸팡 세력은 각종 비리 연루 의혹으로 학생 시위의 한 빌미가 되었다는 이유로 상당기간 근신했다. 바오퉁 그룹은 학생 시위에 동조적이었다는 이유로 축출됐다. 거점인 정치체제개력연구실은 폐지됐다.천위안 그룹만이 날개가 달린 셈이 되었다.
이해 왕치산은 인민건설은행 부행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농촌경제와 관련된 연구기관과 실무부서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금융 분야에 대해 연구를 깊이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 있으면서 중앙당교의 성급(省級) 간부 진수반(進修班)에 들어가 또 한번의 비약을 예비했다.
지방 박물관 직원에서 중앙의 역사연구소 연구원으로, 또 농촌경제 연구소 연구원으로 변신을 거듭했던 그는 어느 사이 '붉은 주식회사'의 금융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물론 그의 부단한 노력도 노력이려니와 장인과 장인의 친구 쑹핑의 배려도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천안문 사태 뒤 총서기에 임명된 장쩌민(江澤民), 열정적인 개혁파 리루이환(李瑞環)과 함께 정치국 상무위에 진입한 쑹핑은 대대적인 인사개편의 실무를 담당하였다.
개혁파들은 쫓겨났고 보수파 인사들은 수혜자가 되었다. 이 와중에 왕치산도 금융통으로 성공적인 탈바꿈을 하였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계기로 개혁, 개방이 재점화되면서 왕치산은 또 한번의 회심의 변신을 하였다. 이번의 변신은 아브락시스적이며 살모사적었다.
장인의 새장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는 ‘새장 경제학’에 머무르지 않고 덩의 '새장 깨트리기‘에 적극 동참한 것이다. '야오이린의 사위’는 어느새 ‘주룽지의 심복'으로 변해 있었다.
남순강화 2년 뒤인 1994년 말 야오이린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한해 뒤 천윈은 사망했다. 새장이 철저하게 깨뜨려지고 있는 중이었다.
1993년 주룽지는 경제과열에 따라 금융질서가 혼란에 빠지자 부총리로서 인민은행장을 겸하였다. 왕치산은 ‘경제차르’ 주룽지 밑에서 인민은행 부행장을 지냈다.
1994년에 인민건설은행으로 돌아가 행장이 되어 1996년까지 재임했다.
역사학도가 금융통으로 성공적인 전향한 것이다. 분명 그 길을 열어 준 것은 장인이었으나 결국은 스스로 재능을 꽃피웠다.
금융통으로 성장하는 왕치산에게 또 다시 도약의 기회가 찾아왔다. 중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개혁,개방의 최대 수혜자인 광둥(廣東)성이 점차 독립왕국화하는 사태 때문이었다.
이에 중앙정부에서는 광둥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리창춘(李長春)을 광둥성 서기로 임명하여 광둥성을 손 보도록 하였다. 이때 광둥성 당위 상임위원으로 딸려 보낸 인물이 왕치산이었다. 광둥성의 원심화(遠心化) 경향을 크게 경계하였던 주룽지의 추천에 따른 것이었다.
현재 권력서열 5위인 리창춘 역시 금거북족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협주석과 정치국 위원을 지낸 쑹런충(宋任窮)을 장인으로 두고 있었다.
리창춘-왕치산 두 금거북족 콤비는 '울 밖의 호랑이’로 간주되었던 광둥성을 울타리 안으로 몰아 넣는데 성공하였다.
그 과정에서 백미는 광둥투자신탁공사의 파산조치였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가 휩쓸자 리창춘은 부실덩어리 이곳을 파산시키는 대담한 경제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결단이야 물론 리창춘이 내렸지만 그 실무를 처리한 이는 왕치산이었다.
‘금융스타’가 된 왕치산은 2000년 중앙으로 불러 올려져 국무원 경제체제개혁 판공실의 주임에 임명되었다. 부장급(장관급) 직책이었다.
왕치산은 2002년 16대에서 중앙위원에 선출되고 하이난(海南)성 서기에 임명됐다. 승진의 모양새를 취했지만 이는 좌천성 승진이었다. ·16대 인사는 최고지도자의 직책을 인수인계한 장쩌민과 후진타오 간의 세력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이루어졌다.
이런 연유로 인해 은퇴하는 주룽지의 사람들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했다. 정치국에 진입하고 중용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다이샹룽(戴相龍) 인민은행장은 톈진(天津)시 시장으로 밀려났다.
주룽지가 다이샹룽 후임으로 염두에 두었던 왕치산은 인민은행장이 되기는 커녕 멀고 먼 하이난성으로 내몰린 것이다.
박물관 직원에서 베이징으로 불러 올려진 뒤 순탄하게 승진해왔던 왕치산은 심각한 좌절을 맛보았던 것이다.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왕치산은 마음을 추수르고 하이난다오를 꽃과 공원으로 뒤덮이 중국인들의 휴양지로 만들겠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복장(福將)에게 모처럼 찾아 온 시련도 그의 곁에 머무르는데 지극히 인색했다.
왕치산은 2003년 4월 22일 베이징 시장대리에 임명되면서 부임 5개월 만에 하이난다오를 떠나야 했다.
16대와 뒤이은 양회(兩會 전인대 정치협상회의) 행사를 치루느라 사스(SARS :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확산에 대해 쉬쉬했으나 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결국 세계보건기구(WHO)가 여향금지구역으로 선포하자 중국은 심각한 경제타격을 입고 말았다.
사실상 공동통치하고 있던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공동으로 희생자를 내어 사태 수습의 전기를 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장원캉(張文康) 위생부장과 멍쉐눙(孟學農) 베이징 시장이 해임됐다. 장원캉은 장쩌민 파에 속했고 멍쉐눙은 공청단 출신의 단파(團派)로 후진타오의 측근이었다.
장원캉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입장이었으나 멍쉐눙은 시장에 임명된 지 얼마 안 된데다 층층시하에 있던 처지라 억울하기 이를데 없는 조치였다.
멍쉐눙은 이후 '뒤로 넘어져도 코 깨지는' 지독히도 운이 없는 관력을 겪는다. 왕치산과는 전혀 다른 인생 행로이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인가.
장원캉의 후임은 우이(吳儀)부총리가 겸하였는데 우의와 왕치산은 모두 주룽지의 사람들이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사람들은 후임에서 배제한다는 원칙에 따라 이런 인사가 이루어졌다.
왕치산은 국내외의 불신을 거두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 옆에 WHO 사무실을 마련해주었다.
중국의 실상을 이처럼 솔직하게 털어 놓음으로써 신뢰를 얻었고 이는 왕치산 부임 3개월 만에 베이징에 대한 여행제한 지구 지정에서 해제되는 보상으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중국경제를 파국으로 몰 것만 같았던 사스 사태는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사스 사태는 왕치산에게 두 가지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금융통으로 알려져 온 왕치산이 행정능력을 극적으로 과시했다는 점이다. 또 한가지는 국제사회에 그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2007년 17대에서 정치국에 진입한 왕치산은 그러나 2008년 1월에 부총리로 승진하면서 베이징 시장 자리를 내놓았다. 그는 이해 여름 국제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는 기회를 후임 시장인 궈진룽(郭金龍)에게 넘겨 주어야 했다. 궈진룽은 후진타오의 측근이다.
멍쉐눙을 속죄양으로 삼아야 했던 후진타오는 올림픽 행사를 주관하는 영광을 자신의 측근이 아닌 인물이 누리게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부총리에 오른 왕치산은 하지만 2009년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처음 열린 중미 전략대화에서 미국 대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카운터파트가 되었다. 국제무대에 다시 화려하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시련과 좌절이 더 큰 영광을 예비하는 이러한 법칙은 중국 정계의 최고 복장(福將)의 복(福)이 5세대에서도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다음은 2006년 작성한 왕치산의 프로필이다. 당시만 해도 왕치산은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보다 더 주목받는 존재였다. 그러나 왕치산의 복은 화려하지는 않으나 꾸준하다. 마치 삼국지의 조자룡처럼 말이다.
건설은행장과 인민은행 부행장을 지낸 금융통
주룽지 인맥 사스 때 베이징시장에 전격 발탁
교통문제 해결에 역점 시민들로부터 높은 인기
덩샤오핑(鄧小平) 사후 중국의 최고 지도부는 이른바 ‘트로이카 체제’로 운영되어 왔다. 장쩌민(江澤民)의 제3세대 트로이카는 ‘장쩌민-리펑(李鵬)-주룽지(朱鎔基)’ 였고 현 후진타오(胡錦濤)의 4세대는 ‘후진타오-원자바오(溫家寶)-쩡칭훙(曾慶紅)’이다.
5세대 최고지도부의 트로이카를 구성할 것으로 꼽히는 사람 중 두 사람은 앞 회에서 소개한 리커창(李克强)과 보시라이(薄熙來)이다. 나머지 한 사람으로 중화권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 왕치산(王岐山) 베이징(北京)시장이다.
왕치산은 1948년 생으로 보시라이보다 한 살 많으며 그와 함께 태자당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왕치산은 보시라이와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그는 상무위원과 부총리를 지낸 야오이린(姚依林)의 사위가 되어 태자당에 편입됐다.
보시라이가 성골이라면 그는 진골인 셈이다. 또한 왕치산은 대표적인 주룽지 사람이다. 장쩌민과 리펑의 맥을 있는 보시라이와는 권력계보 면에서도 구별된다. 또한 왕치산은 인민은행 부행장, 건설은행 행장 등을 지낸 금융통이다. 금융분야 요직을 두루 역임하다 하이난(海南)성 서기를 거쳐 베이징 시장이 됐다.
다롄(大連) 시장과 랴오닝(遼寧) 성장을 거쳐 상무부장이 된 보시라이와는 정 반대의 코스를 밟고 있다.
왕치산은 ‘전화위복’과 ‘어부지리’의 인물이다. 칭화(淸華)대 교수 집안 출신인 그는 문화대혁명 때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으로 하방됐다. 그 곳에서 역시 하방 된 야오이린의 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는 1982년 국무원 농촌발전 연구중심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 농촌정책 연구중심에 들어갔다.
당시 공산당원도 아닌 그가 당정의 핵심 싱크탱크에 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부총리가 된 장인의 후광이었다. 문혁과 하방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베이징 시장 왕치산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2002년 11월 말 하이난 성 서기에 임명된 것은 일종의 좌천이었다. 주룽지는 왕치산을 다이샹룽(戴相龍)의 후임 인민은행장에 임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장쩌민의 사람인 저우샤오촨(周小川)에게 돌아갔다. 다이 역시 톈진(天津)시장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2003년 초 사스(SARS)의 내습이 그에게 생각보다도 빠른 권토중래를 가져왔다. 2003년 4월 20일 국무원 위생부장 장원캉(張文康)과 베이징 시장 멍쉐눙(孟學農)이 전격 해임됐다. 더 이상 사스를 은폐할 수 없다고 판단한 최고 지도부가 두 사람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자신의 최측근을 동시에 해임, 정치적 타격을 공유하기로 한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수습의 책임을 주룽지 계열의 인물들에게 맡겼던 것이다. 위생부장은 주룽지가 총리로 밀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던 부총리 우이(吳儀)가 겸임했고 하이난성 서기로 내려간 지 5개월 도 안 된 왕치산이 불려 올려진 것이다.
중국 정치사에서 이처럼 어부지리로 권력핵심으로 진출한 사람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인물이 화궈펑(華國鋒)과 장쩌민이다. 장쩌민이 기회를 성공으로 연결했다면 화는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왕치산은.
현재까지 성적표를 보면 왕치산은 장쩌민에 가깝다. 그는 2003년 11월 실시된 중국 20개 현시(縣市) 주민 여론 조사에서 70.5%의 지지로 전국 수위를 차지했다. 도로 확장 등 시민들이 피부로 겪는 교통문제를 해결하는데 역점을 둔 것이 호평을 받게 된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그는 더욱 더 뉴스의 초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생고비마다 있은 행운이 5세대 최고지도부 경쟁에서도 구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왕치산 역시 리커창, 보시라와 마찬가지로 문과출신이다. 하방 중 시베이(西北)대 역사학과를 나왔다. 주룽지의 배려로 칭화대 경제학원의 교수를 지냈다. 장인이 칭화대 출신이며 후진타오의 후견인 쑹핑(宋平)은 장인의 대학 한 해 후배이다. 칭화대를 나오지 않았으면서도 그가 칭화방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차이나워치>
(주1)
삼반(三反)은 반독직(反瀆職), 반낭비(反浪費), 반관료주의(反官僚主義)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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