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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信Pensées] 4월, 카터와 비행기, 그리고 트라우마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 (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 T.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 첫 대목
북한 김정일, 김정은 부자에게 4월은 영광의 달이다. 그들을 있게 하고 김씨왕조를 있게한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김일성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죽은 지 17년이 되었지만 북한은 여전히 김일성을 중심으로 운행한다. 김일성의 생일을 두고 태양절이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김일성은 사후에도 북한의 태양이다.
북한의 현 최고지도자인 아들은 아버지와 30년 나이차를 두기위해 생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고 차기 지도자로 예정된 손자의 생년은 할아버지와 70년 차이를 두기위해 1년 당겨졌다.
김정일의 통치목표인 강성대국대국을 성취하여 그 원년으로 삼고자 하는 해도 김일성의 탄생 100주년에 맞춰졌다. 김정일은 자신의 통치를 ‘유훈통치’로 표현하기까지 한다. 17년 전 이전의 ‘교시’가 여전히 북한의 오늘과 미래를 지배한다. 태양절이들어 있는 4월은 김정일 부자에게 ‘태양의 달’이다.
그러나 올해의 4월은 김정일, 김정은 부자에게 잔인한 시련의 달이 될지 모른다. 그것은 김정일은 만나고 싶지 않으나 그렇다고 외면하기도 찜찜한 '계륵'과 같은 존재인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를 대면 해야 할이지 모르고 김정은은 타기가 마뜩찮은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카터 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은 후계자로 내심 결론을 내린 셋째 아들 김정은을 데리고 중국으로 갔다. 방문을 예고한 손님이 집안에 들어왔는데 인사도 않고 외출한 격이다. 역시 전직 미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방문했을 때 환하게 웃으며 환대한 것과 상반된 대접이다. 무엇 때문일까.
김일성은 1994년 7월 8일 82세로 사망했다.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고 회담을 한 지 한 달이 채 안된 3주 지난 뒤였다.
북핵 1차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방문한 카터를 상대로 김일성은 직접 힘겨운 회담을 벌였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미국과 대결모드로만 치닫는 김정일에게 맡겨둘 수만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서울 불바다”를 운운하며 위협했고 주한 미국인 가족은 국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후에 공개됐지만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핵시설이 있는 영변 폭격 준비에 들어간 상태였다. 1976년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최대의 전쟁위기였다.
도끼 만행 당시 미국은 미군 장교 2명의 피살을 가져 온 공동경비 구역 내의 미류나무를 베어내면서 만일 북한이 총 한 발이라도 쏘면 휴전선 전역에 융단폭격을 가할 태세를 갖추어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쪽의 육안 관측을 막아주고 있던 문제의 미류나무가 미군 공병대에 의해 베어지는 동안 북한군은 미동도 안했다. 도끼로 비무장 미군 장교를 찍어 살해한 북한군의 결기는 온데 간데 없었다. 더 나아가 김일성은 사상 처음 유감 표명을 하기까지 했다. 군사정전위를 통한 유감 표명으로 한반도를 짙게 덮고 있던 전쟁의 먹구름은 사라졌다.
한국전 발발 44주년이던 1994년 6월 미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카터의 방북을 김일성은 놓치지 않았다. 유감 표명이란 사과아닌 사과로 1976년의 위기를 피했던 김일성은 ‘핵동결’이란 양보 아닌 양보로 1994년의 위기를 피했다.
나이 젊은 사람들이 벌여 놓은 전쟁 위기를 노인들이 수습한것이다. 김정일은 52세, 클린턴은 48세였다. 카터는 70세로 고희였으며 김일성은 산수(山壽)를 이미 2년 전에 지났다.
그러나 카터와의 회담은 이미 건강을 잃은 82세 노인의 심장에 치명적 무리를 안겼다.
김일성은 묘향산 별장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다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남북 정상회담은 카터가 주선했다. 카터가 선물한 셈이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사망 초대장’이었다. 격무를 치룬 뒤 휴식할 틈도 없이 또 다른 격무를 안겼기 때문이다.
김일성 사망 15년 전, 카터가 현직에 있을 때인 1979년 6월 말에 한국을 방문했다. 지극히 불편한 관계였던 한국 방문 기간 박정희 대통령과 첨예한 외교 신경전을 벌였지만 어쨌든 한미 간의 긴장 관계는 크게 완화됐다.
카터의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군 철수와 인권문제 제기로 악화일로를 걷던 한미관계는 7월 초 카터가 한국을 떠난 뒤 터널을 빠져나오는 형국이 되었다. 미군 철수는 사실상 중단됐고 미국의 대한 인권 압박은 눈에 띄게 약화됐다. 그해 초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으로 신정체제가 들어선 국제정세도 큰 몫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3개월 여 뒤 10.26이 발생했다. 카터는 ‘산타클로스’이자 ‘레퀴엠 의뢰인’이였다.
15년 뒤인 1994년 카터가 북한을 떠난 뒤 15년 전 한반도 남쪽에서 벌어진 일과 놀랍도록 유사한 상황을 한반도 북쪽에서 연출했다. 북한이 위기 국면에서 벗어난 가운데 김일성이 갑작스레 죽었다.
김정일은 이를 의식했음일까. 2009년 카터가 방북을 요청했을 때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공교롭게도 2009년은 카터가 방북한 지 15년 뒤였다.
15년의 시차를 두고 카터가 한반도 남북을 방문한 이후 그와 상대한 최고 지도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남에서는 3개월 뒤 레퀴엠이 울려퍼졌고 북에서는 3주 뒤에 진혼곡으로 뒤덮였다. 물론 오비이락(烏飛梨落)일 뿐이다. 하지만 15라는 숫자에서 불길감을 느꼈을 수 있다. 더군다나 당시 김정일은 뇌졸중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심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의 건강을 이유로 북한은 카터의 방북 요청을 거부했다.
한해 뒤인 2010년 8월 카터가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김정은을 데리고 전용열차를 타고 중국으로 떠났다. 모든 게 카터와의 대면을 회피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김정일의 2010년 8월 방중은 그가 중국을 공식 방문한지 불과 3개월 뒤에 이루어졌다. 전용 열차의 행선지는 베이징이 아니었다. 압록강이 아닌 두만강을 건넜고 지린(吉林)성과 헤이룽(黑龍江)성을 둘러 봤다. 김일성의 발자취가 있는 곳곳을 다녔다. ‘센티멘털 저니’가 아닌가.
어찌됐던 언론의 초점은 중국 동북지역을 여행하는 김정일-김정은 부자에게 쏠렸다. 평양의 카터는 ‘꿔다논 보릿자루’ 신세가 됐다. 전직 대통령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카터는 또 한 번의 ‘역사적 방문’을 상정했을 터인데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갑인 카터는 김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지 2년 뒤인 2002년에 수상했다. 인권 증진과 국제분쟁 중재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카터는 북한이 억류하고 있던 미국인을 데리고 귀국한 뒤 한동안 기자회견도 갖지 않았다, 모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노골적으로 홀대하면서 대중경사의 메시지를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주변국에 과시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 있다. 중심패가 아니라 보조패였다는 자신의 처지를 카터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4월 26일 카터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3개국 전직 국가수반과 함께 방북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래도 안 만나 줄래”하는 카터의 으름장이 읽힌다.
김정일은 집요하고 성마른 이 협상가를 만나줄 것인가. 1994년의 북과 1979년의 남을 떠올리면 카터에게서 화복(禍福) 야누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카터의 방한 이후 10.26과 5.18이란 비극이 발생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의 민주화는 두 사건을 계기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2011년 북한에 있어 카터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1994년 6월 카터가 물꼬를 튼 한반도 데탕트는 그해 11월 제네바 협정을 가져왔다.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는 충분한 시간을 안겨주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어찌됐든 9 번째이 핵보유국이 됐다. 북한 외에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과 읹도, 파키스탄, 그리고 이스라엘뿐이다. 이스라엘은 핵실험을 실시했는지 여부도 모를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지만 북한은 2차례나 공개적으로 핵실험을 했다. 카다피의 리비아, 인종분리를 추구하던 남아공에 못지 않은 국제압력을 받으면서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배경에는 제네바 협정이 있고 이는 카터의 방북이 계기를 마련했다.
북한은 김일성 사망이라는 희생을 치러야 했지만 김정일 입장에서는 최고 지도자로 오르는 기회를 안겨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또 한번의 ‘제네바 협정’의 대가가가 자신의 뇌혈관 파열일지 모른다는 데로 생각이 미치면 카터와의 대면은 분명 ‘독배’라는 느낌을 줄 것이다.
카터는 결코 사진 촬영을 위한 면단에 만족할 인물이 아니다. 빌 클린턴처럼 “음식이 좋군요”하고 걸끄러운 상황을 외교적으로 넘어 가지도 않을 것이다.
카터 일행의 방북을 앞두고 북한은 한국계 미국인의 억류사실을 공표했다. 이는 기대 부푼 87세의 노회한 정치가에게 들고 갈 선물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또 한번의 '문안박대‘ 굴욕을 면하려면 적당한 구실을 내세워 북한에 오지 말라는 희망사항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이는 참을 수 없는 유혹에도 불구 독배를 들이키고 싶어하지 않는 김정일의 내심을 미리 드러내 보인 것인지도 모른다.
아들 김정은 역시 아버지 못지 않은 딜레마를 놓고 씨름해야 할 형편이다. 그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셋째 아들로서가 아니라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중국 방문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그에게 대장 칭호를 부여함과 함께 이 당직을 안긴 것은 중국 측에 분명하게 김정은의 위상을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차기 최고 지도자에게 공산당 군사위 부주석의 직책을 맡긴다. 후진타오가 그랬고 시진핑 역시 그렇다.
그런데 중국 측이 김정은에게 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방문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은 비행기 타는 것을 기피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중국 산둥성 태산 중턱 정상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정류장 귀빈실에는 김일성이 선물했다는 동양화 한폭이 걸려 있다. 1993년 그곳을 방문했을 때 중국풍도 아니고 한국화풍도 아니어서 물었을 때 돌아 온 대답이었다.
김일성은 그의 나이 77세 때인 1989년 11월 중국을 방문햇을 때 태산을 방문, 중턱의 이 케이블카 정류장 귀빈실에까지 왔다. 태산 정상은 공자가 천하가 좁음을 알게 한 곳이다. 또한 한무제를 비롯한 강력한 황제들이 천하의 주인임을 고하는 제사를 지낸 곳이다. 귀빈실에서 케이블 줄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그 끝나는 곳 가까이에 정상이 어렴풋이 보인다.
공자와 한무제는 태산 정상에 걸어서 혹은 들것을 타고 정상에 올랐을 터이다. 현재 그 코스에는 7천 여 개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는 헬기와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금방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김일성은 정상에 오르지 않고 중턱의 케이블카 정류상 귀빈실에서 태산 정상을 바라보고 돌아가면서 북한 화가가 그린 동양화 한 폭을 선물로 주어 그곳을 찾은 흔적을 남겼다. 다리가 불편했다고 하나 베이징 방문 외에도 태산과 공자의 고향 곡부 등을 찾은 것을 감안할 때 건강상의 문제가 아닌 다른 데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김일성이 비행기 탑승을 기피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애초부터 비행기를 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종전 이후 생사를 건 권력투쟁 과정에서 평생 떨치지 못한 경험을 했다.
외국을 방문 중이던 김일성은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비행기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자 쿠데타군은 그가 착륙하려던 공항에서 비행기를 향해 대공포를 쏘았다. 김일성을 태운 비행기는 다른 곳에 착륙했고 쿠데타를 진압할 수 있었다.
김일성은 대공포 사격을 받고 비행기가 기수를 돌려 다른 공항에 내릴 때까지 공중에서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포탄이 날아와 공중에서 폭사하는 장면이 그의 머릿 속에서 쉴새 없이 펼쳐졌을 것이다.
. 김일성이 이후 비행기를 타지 않고 기차만을 이용했는데 이는 이때의 트라우마 때무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왔다. 지금도 여전히 태산 케이블카 정류장귀빈실에 걸려있을지 모를 그 그림은 김일성이 어떠한 공중 탈 것도 마다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심각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역설적으로 그의 집권의 장기화를 가능하게 했는지 모른다. 신변 안전을 위해 조심에 조심을 거듭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독재자들 혹은 정정불안을 겪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들은 비행기 사고로 정치무대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집권 기간 비행기 사고로 죽은 대표적 인물은 파나마 대통령 오마르 토리호스(1981), 파키스탄 대통령 모하메드 지아 울 하크(1988) 그리고 르완다의 대통령 쥐베날 하브자리마나(1994)등이다.
토리호스는 파나마 운하 관리권 회복 문제를 놓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인 끝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인물이다. 지아 울 하크는 국제사회의 거센 압력에도 불구, 그가 쿠데타로 몰아낸 전 총리 줄피카르 부토를 처형했다. 둘다 외국의 압력에 고분고분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토리호스와 지아 울 하크 탑승기의 추락 사고는 무성한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 진상은 여전히 미궁이다.
토리호스의 후임 대통령 마누엘 노리에가는 한때 CIA 첩자였던 전력에도 불구, 집권 일후 미국과 대립한 끝에 침공한 미국군에 체포되어 실각했다. 그는 포로가 아닌 마약사범이라는 범죄인 취급을 받았다. 미국에서 20년 복역생활을 마친 뒤에는 돈세탁 혐의로 프랑스에서의 또 다시 장기 복역을 기다리고 있다. 파나마의 현 대통령은 토리호스의 아들이다.
토리호스와 지아 울 하크와는 달리 르완다 대통령은 명백한 암살이었다. 부룬디 대통령도 함께 타고 있던 하브자리마나의 탑승기는 그의 경호대에 의해 요격, 수도 키갈리 인근에서 격추됐다. 하브자리마니는 김일성의 행운을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쿠데타 군 전투기에 의해 탑승기가 공격을 받았으나 살아난 국가원수도 있다. 1999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모로코의 전 국왕 하산 2세는 1975년 외국 방문을 마치고 비행기 편으로 귀국하던 도중 쿠데타군 전투기의 요격을 받았다. 하지만 절대절명의 위기 순간을 하산 2세는 대담함과 기지로 화를 모면했다.
하산 2세는 자신이 탄 비행기에 총격을 가하기 시자하자 즉각 조종실로 들어 가 전투기 조종사들과 교신을 했다. 그는 “국왕이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무고한 사람들은 죽이지 말라”며 더 이상 공격을 하지말 것을 요구했다. 국왕이 직접 교신하리라고 꿈에도 생갃하지 못했던 전투기 조종사들은 공격을 중단하고 돌아갔다. 말하지면 확인사살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하산 2세는 원래 정해진 착륙 공항에 내려 사열행사까지 마치는 대담한 행보를 취했다. 원래 공항으로 갔던 것은 쿠데타군 지휘부가 자신이 죽었음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땅을 딛자 곧바로 피신하는 대신 사열을 예정대로 진행하게한 것은 국민들과 자신에 충성하는 군대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권력 접수를 위해 후속 조치를 취하느라 분주하던 쿠데타군 지휘부는 국왕의 건재함을 알고 패닉 상태에 빠졌다. 허겁지겁 전열을 정비했지만 게임은 끝났다. 대담한 국왕의 모습에 쿠데타군은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진압됐다.
당시 무개 호송차에 태워져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차량벽 손잡이를 붙들고 처형장으로 이송되던 쿠데타 장성들의 고개 숙인 뒷 모습들, 그리고 해변 모래사장에 설치된 총살대에 묶여 처형되기 직전 각기 계급장이 떼어지던 영상들이 외신들을 타고 전세계에 전해졌다.
하산 2세의 그런 대담함 때문이었을까.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폴리사리오 게릴라에 의해 시달리기는 했지만 그는 1999년 죽기 직전까지 별다른 내부적 도전을 받지 않았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장남 모하메드 6세가 즉위했다. 1957년 독립한 뒤 입헌군주제로의 3대 세습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하산2세는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나 사실상 절대왕정 체제가 3대에 걸쳐 지속하는데 든든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한다.
김일성과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하산 2세가 이후 비행기 여행을 기피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는 아들 김정일에게도 ‘세습’됐다.
김정일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고 스스로 밝힌 적이 있는 것을 보면 그가 비행기를 전혀 이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후계자로 부상한 이후에는 비행기 여행을 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
김일성 사후 최고 지도자가 된 뒤 그가 방문한 외국이라고는 북한과 육지로 이어진 중국과 러시아 등 두 나라뿐이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방탄 열차를 이용했다. 그는 21세기에 살고 있으면서도 19세기식의 정상외교를 펼쳤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암살 기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중국이 김정은에게 비행기 탑승을 요구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21세기에 들어온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19세기 식 외교에 박자를 맞추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후계자로 낙점된 김정은은 중국의 이 같은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권력 과 함께 ‘트라우마 효과’ 도 세습받고자 하지 않을까. 경호를 최우선에 놓아 둔 것이 김씨왕조가 60년 이상 지속하게 한 결정적 요인으 보았을 수 있다.
인도 ‘간디 왕조’의 3대 세습 예정자는 자와할랄 네루의 외동딸 인디라 간디의 첫째 아들 라지브 간디가 아닌 둘째 아들 산자이 간디였다. 그러나 산자이는 비행기 사고로 죽고 형 라지브가 그를 대신했다. 라지브는 여객기 조종사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우의 불행이 아니었으면 그는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고 또 테러 암살을 면했을지 모른다.
선박왕 오나시스의 외아들도 비행기 사고로 죽는 바람에 오나시스 선박왕국의 대권은 여동생 크리스티나에게 돌아갔다.
카터의 방북과 중국의 비행기 편 이용 요구는 김부자에게 4월을 ‘화복(禍福) 야누스’로 바라게 보게 할지 모른다.
카터의 방북과 김정은의 방중은 고립되어 날로 황무지가 된 북한에 다시 봄을가져다 줄 징표이다. 그러기 위해 김정일은 ‘은둔의 지도자’라는 '신비 컨셉'에 다시 매몰되지 말고 외국 방문객과 더 자주 접촉해야 한다. 김정은이 더더욱 그래야 함을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김정일, 김정은 부자는 북한의 모든 것이 덮혀진 채 간신히 명맥이 유지되는 겨울이 오히려 그들에게 따뜻했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차이나 워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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