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信Pensées] 카다피 片片想과 추억 (2) “너는 내 아들뻘이다. 나는 너의 아버지뻘이다.”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가 2011년 10월 20일 정오 무렵, 숨어 있던 고향 시르테의 하수도 배수관 부근에서 의문의 총탄을 맞고 69세의 생을 마감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적개심에 불타는 미스라타 시민군의 한 젊은 병사가 그를 때리자 제지하는 손짓을 하며 했다는 말이다. 나중에 카다피를 쏘았다고 자처하는 문제의 시민군 병사는 20세를 갓 넘긴 나이엿다. 69세의 카다피에게 아들뻘이 아니라 손자뻘이다. 어쨌든. 마지막 순간에 같은 뜻을 표현만 달리하여 반복한 카다피의 모습은 베두인 늙은 부족장의 그것이었다. 노인인 자신에 해코지를 하는 젊은이의 행동을 유목민의 가부장적 윤리에 의존하여 나무란 것이다. 카다피의 최후는 방글라데시 독립 영웅이며 초대 대통령 무지부르 라만의 최후를 연상시킨다. 그는 현 방글라데시 총리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아버지이다. 독립 후 초대 대통령이 되어 독재를 펼치던 라만은 군부 쿠데타를 맞고 말았다. 그는 병력이 관저를 에워싸자 직접 그들 앞에 나섰다. 그는 젊은 병사들을 둘러본 뒤 “너희는 나의 아들과 같다.”고 말했다. 다음 말을 이으려는 순간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집중 사격이 쏟아졌고 라만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1975년 8월 15일의 일로 그의 나이 55세였다. 마지막 순간 라만은 최고 권력자의 권위가 아닌 가부장 질서 속의 어른으로서 쿠데타군을 설득해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응답은 총탄 세례였다. 카다피의 경우에도 총탄이 그 응답이었다. 카다피는 집권 초기에는 주로 군복 차림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유목민 복장을 하기 시작했다. 복장뿐만 아니다. 그는 자주 수도 트리폴리를 떠나 사막에서 유목민처럼 천막생활을 하곤 했다. 한국 건설 업체가 공사하는 사막 현장에까지 찾아 와 몇 주 같이 생활한 적도 있다고 한다. 1986년 미국 공군기의 관저 폭격 직후 그의 모습이 한동안 사라졌던 적이 있다. 사막으로 가서 일생 최대의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까를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다피는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할 때면 호텔에 묵지 않고 천막을 공수해 대사관저 등에 설치하고 그곳에서 묵었다. 군복 정장과 선글래스가 젊은 시절 카다피의 트레이드 마크였다면 장년 이후에는 유목민 전통 의상이 그의 상징이 됐다. 사담 후세인은 시아파 전사들의 환호 속에 교수대에 매달리기 전까지 “반역자들”이라고 외쳤다, 목이 졸려 말을 할 수 없는 순간이 돼서도 부릅뜬 눈으로 시아파 전사를 노려 보았다. 사담은 그처럼 수니파 지도자로 죽었다. 하지만, 카다피는 반란군의 젊은 창녕의 행동을 나무라는 유목민의 장로소서 죽었다. 마오쩌둥이 최후까지 권력에 집착한 것을 두고 토지에 집착하는 농민의 속성을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농부는 굶어 죽을 이언정 종자를 베고 죽는다정” 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무아마르 카다피는 유목민으로 살다가 유목민으로 죽은 또 한 명의 ‘시대의 몽유병자’였다. 시민혁명을 배격으로 권력의 정점에 오른 나폴레옹이 로마 제국의 재현을 꿈꾸었던 몽상가 나폴레옹을 두고 빅토르 위고가 한 말이다. 아프리카의 ;왕중왕‘이 되고자 한 카다피에게 사용해도 적합한 표현이다. -------------------------------------------- 카다피가 죽은 다음 날인 10월 21일은 북미 제네바 협정 체결 17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북한 중앙통신이 이날 내놓은 성명은 북한이 에너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연변 핵시설을 만들었다는 기초 아래 이루어진 제네바 협정이 ‘사기극’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북 북한은 통제할 수 없는 미국의 책 위협으로부터 북한의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핵 억지력을 갖고 보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핵무기 개발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제네바 핵협정이 북한의 술수에 미국이 속아 넘어갔다는 분석은 그야말로 순진하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김일성이 죽은 이상 북한의 붕괴는 필연적이라고 보고 북한의 핵개발의 속도를 늦추고자 그럴듯하게 ‘솟아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희망대로 붕괴하지 않았고 도리어 민생 부담을 덜면서 핵개발을 계속, 결국 핵보유국이 되었다. 북한은 21일 성명에서 핵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한반도 핵전쟁은 지역의 핵전쟁을 유발할 것이고 이는 전 지구적 홀로코스트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발 세계종말’의 공갈이다. 성명은 이같이 섬뜩한 묵시록의 공갈을 내놓은 뒤 6자회담응 통한 한반도 비핵화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반도 핵 문제의 직접적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뒤 2번째의 북미 접촉인 제네바 북미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나온 이 성명은 또 한 번의 ‘제네바 협정’을 꿈꾸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단행되자 떠벌이는 침묵했고 은둔에서 벗어났던 은둔의 지도자는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명백해진 것은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구체적으로 추진한 증거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카다피나 김정일이나 핵을 개발하고 있었으니 ‘노회한’ ‘아버지 부시’와는 달리 ‘기독교 원리주의자’ 성향에 카우보이 기질이 농후한 '아들 부시 ‘가 자신을 침공할지 모른다고 겁이 덜컥 났던 것이다. 그들의 공포는 기우가 아니었다. 카다피는 레이건 행정부 때 트리폴리 폭격을 받았고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 때 영변 폭격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이후 카다피와 김정일의 행보는 정반대였다. 카다피는 핵무기 개발 계획을 국제 감시하에 폐기했다. 반면 김정일은 핵무기 실험을 2차례 단행, ‘비공인’ 핵보유국이 되었다. 미국의 간접적인 그러나 깊숙한 개입 아래 카다피가 최후를 맞던 그 무렵은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초대됐다. 북한은 미국의 전제 조건을 하나도 충족시키지 않고 단지 그럴 용의가 있다고 밝히는데 불과 했다. 김정일은 핵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과 땅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위험한 착각’이다. 소련 붕괴에서 보듯 핵무기는 체제의 붕괴를 막지 못했다.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는 대규모 유혈 사태를 초래해야 할 정도로 통제력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스민 혁명 이후가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득세가 돼서는 안 된다는 초조감이 미국으로 하여금 오사마 빈 라덴의 제거를 결단하게 했고 그것은 카다피를 ‘쓸모 있는 악한’에서 온전한 ‘악한 ‘의 존재로 격하시켰다. ‘은둔의 지도자’는 ‘왕중왕’의 최후를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인 민간인에게 테러를 가하지 않는다면 김정일은 미국에 ‘쓸모가 아주 않은 악한’으로 남을 수 있다. 아웅산 테러와 대한항공 테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정권 차원의 위협은 반지 않았다. 하지만 미루나무 도끼 만행 당시 미국인 장교 2명을 살해하는 바람에 휴전선 일대가 융단 폭격을 받을 위기까지 처했었다. 김일성이 사과하고 더 이상의 도발을 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북한이 원하지 않던 시기에 전쟁에 빠져들 수도 있었다. 김정일은 핵의 보호기능을 과신할 것이 아니라 왜 빈 라덴과 카다피가 사담 후세인과는 달리 비참하게 최후를 마쳐야 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 2011/11/02 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