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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大淸)시대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일본은 도쿄(東京)대 출신들에 의해 ‘경영’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쿄대 출신들의 정ㆍ관계 독점 현상은 그 기간 중의 총리가 상징한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재임 1947년~54년),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1954~56),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957~60), 그리고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 1964~72) 등 1947년부터 1972년까지 6명의 총리 중 4명이 도쿄대 출신이었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재임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가 교토(京都)대 출신이고 기시에 앞서 2개월 동안 재임했던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이 와세다(早稻田)대를 나왔다.
1947년 이후 4반세기 동안 이들 도쿄대 출신 총리들이 집권한 기간은 21년이다. 문자 그대로 ‘도쿄대의 일본 경영’시대였다.
이러한 도쿄대의 일본 경영시대는 1972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한다. 정규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가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도쿄대 출신의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를 꺽고 사토의 후임 총리가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다나카 이후 특정 대학 출신의 총리 독점 현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이와 더불어 정ㆍ관계 도쿄대 지배 현상은 많이 약화되었다.
한국은 서울대 경영시대로 접어들어
일본이 이제는 ‘도쿄대 경영시대’를 벗어났다면 한국은 ‘서울대 경영시대’로 서서히 접어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총리 이하 각료의 다수를 서울대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고 차기 대권 경쟁의 유력한 두 후보 역시 서울대 출신이다.
일본과 한국은 이러한 현상에 있어 여러 모로 유사하다. 우선 정ㆍ관계를 독점하는 특정대학이 수도(首都)명을 교명으로 한 국립대학이라는 점에서 양국은 동일하다.
도쿄대의 권력 독점 현상이 2차 대전 패전으로 군부통치가 종식을 거둔 이후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처럼 한국에서 서울대의 권력독식 현상도 역시 군이 정치 무대에서 영향력을 잃은 이후 본격화했다.
도쿄대의 일본경영이 법학부 출신에 의해 주도되어 왔던 것처럼 서울대의 한국 경영 역시 법과 출신들에 의해 이루어질 조짐이다.
요시다, 하토야마, 기시, 사토 등이 모두 법학과 출신인 것처럼 한국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이회창(李會昌)과 이인제(李仁濟)는 서울대 법과대 선후배다.
칭화대의 중국경영시대
‘도쿄대의 일본 경영’, ‘서울대의 한국 경영’과 같은 현상은 중국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가. 중국에도 역시 수도 명을 교명으로 한 국립대학, 즉 베이징(北京)대학이 있지만 ‘베이징대의 중국 경영’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 대신 ‘칭화(淸華)대의 중국 경영’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현재 한국과 일본처럼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더라도 이 용어가 무리 없이 받아들여 질 정도로 중국 정ㆍ관계에서의 칭화대 출신의 압도적 우위는 부인할 수 없다.
칭화대의 ‘칭화’(淸華)는 칭화대가 자리 잡고 있는 옛 청나라 시대의 궁중 정원 ‘칭화위안’(淸華園)에서 따왔다. 칭화는 ‘물 맑고 나무가 무성하다’(水淸木華)는 뜻이다.
처음에는 미국으로 유학가는 학생들을 양성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는데 1928년에 국립대학으로 승격되었다. 미국에서 실용적 과목인 기술계통이나 경제학을 배운 유학생들이 1930년대부터 칭화대의 교수진을 이루면서 칭화대는 베이징대와 쌍벽을 이루는 명문대로 성장하였고 중국의 근대화에 기여하였다.
공산 중국 성립 후 차관급 이상 300명을 배출
지난 4월 29일 개교 90주년을 맞은 칭화대는 중국 공산 정권 수립 이후 부부장(차관)급 이상의 고위 관리만도 300명을 배출했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베이징대학 출신과의 비교는 없지만 적어도 현재의 상황은 칭화대는 베이징대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중국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의 7명 위원 중 복수의 위원을 배출한 대학은 칭화대 뿐이다. 칭화대 출신 위원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주룽지(朱鎔基)이고 다른 한 사람은 후진타오(胡錦濤)이다. 반면 베이징대 출신은 상무위에 단 한 명도 없다.
주룽지는 중국이 덩샤오핑(鄧小平) 집권 이래 ‘1개 중심’목표로 견지해온 ‘경제건설’을 지휘하는 최고 사령탑이다. 후진타오는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의 후계자로 ‘예약된’ 인물이다. 수(數)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질(質)적으로도 칭화대는 베이징대를 포함한 타 대학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국에서도 칭화대는 우월적 지위는 뚜렷하다. 정치국 정ㆍ후보 위원은 모두 17 명인데 역시 복수의 위원을 배출한 대학은 3 명을 배출한 칭화대학이 유일하다.
차기 총리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는 우방궈(吳邦國), 황쥐(黃菊)와 우관정(吳官正)이 바로 그들이다. 정치국 정ㆍ후보 위원 중에서도 베이징대 출신은 단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다.
상무위원과 정ㆍ후보위원을 모두 합한 24명 중 칭화대를 제외하고 복수의 위원을 배출한 대학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나온 자오퉁(交通)대가 있을 뿐이다. 딩관건(丁關根) 당 선전부장이 이 대학을 나왔다.
국무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0명의 국무위원급 이상의 고위직의 경우 칭화대 출신은 주룽지 총리와 우방궈 부총리 등 두 명이다. 역시 한 명 이상을 배출한 대학은 칭화대 뿐이다.
29명의 부장급 중에서 칭화대 출신이 4명으로 가장 많다. 외교부, 국방부에 이어 국무원에서 부(部)서열로 3위인 국가발전계획위원회의 주임인 쩡페이옌(曾培炎), 자춘왕(賈春旺) 공안부장, 장푸샨(張福森) 사법부장, 그리고 왕수청(汪恕誠) 수리(水利)부장 등이 칭화대 출신이다.
총리 이하 39명의 국무원 부장급 이상 간부 중 칭화대 출신은 6명으로 가장 많다. 상하이(上海)의 푸단(復旦)대 출신이 3명이고 베이징대와 중앙재정 금융학원이 각각 2명씩을 배출했다.
국무원에서도 베이징대는 칭화대는 말할 것도 없고 상하이의 푸단대에게도 수적으로 밀리고 질적으로도 밀리고 있는 것이다.
리란칭(李嵐淸) 수석 부총리,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 그리고 천즈리(陳至立) 교육부장이 푸단대 출신이다.
베이징대 출신은 푸단대 영어과를 졸업한 뒤 다시 베이징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탕자쉬안 외교부장과 장웨이칭(張維慶) 국가계획생육위원회 주임이다.
다이상룽(戴相龍) 인민은행장과 리진화(李金華) 심계서장(審計署長)이 중앙재정금융학원을 나왔다.
흔히 중국 권력구조는 당ㆍ정ㆍ군의 세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칭화대 출신들은 군을 제외한 당ㆍ정의 최대 세력임을 부인할 수 없다.
칭화대 출신들은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IT분야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칭화대의 중국 경영시대’라는 말도 결코 과장된 표현으로 볼 수 없다.
현재와 과거의 칭화대 출신 주요 인물들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청화대 출신 현재 주요 인물>
이름 생년 직책 전공(입학/졸업연도)
朱鎔基 28.10 국무원 총리 電機系 電機製造(47/51)
胡錦濤 42.12 국가 부주석 水利工程系 (61/65)
吳邦國 41.7 국무원 부총리 無線電電子學系 (60/67)
黃菊 38.9 상하이 서기 電機工程系 (56/63)
吳官正 38.8 산둥성 성위 서기 動力系 (59/65)
曾培炎 38.12 국무원 국가발전위 無線電系 (/62)
주임
賈春旺 38.5 국무원 공안부장 工程物理系 (58/64)
張福森 40. 국무원 인사부장 自動控制系(59/65)
習近平 53.6 푸젠성 성장 化學工程系(75/79)
宋寶瑞 37.12 경제체제개혁판공실
부주임
伍紹祖 39.4 당 직속기관공위 工程物理系(/64)
부서기
陳元 45. 인민은행 부행장 自動制御系(/70)
張朝陽 Sohu.com의 CEO
宋軍 칭화대학 기업집단 총재
<과거의 주요 인물>
이름 최종(최고)직책 학과(입학연도)
姚依林 정치국 상무위원 (87~92) 역사과(34)
宋平 정치국 상무위원 (89~92) 화학과(35)
胡喬木 정치국원 미상
李錫銘 베이징 시위서기, 정치국원 토목건축(46)
칭화대와 베이징대
위의 표를 살펴보면 한가지 사실이 발견된다. 현재 활약중인 칭화대 출신 지도자들은 한 명의 예외 없이 이공계통 전공자라는 것이다. 칭화대 출신의 과거 지도자 중 야오이린(姚依林)만이 역사과를 나온 문과 전공자이다.
1911년 설립된 칭화대는 원래는 문과와 이공계를 포괄한 종합대학이었으나 중국 공산화 이후 공학전문 대학으로 개편됐다. 1952년 ‘전국 공학원 조정방안’에 따라 칭화대는 공학부에 베이징 대학 공학부와 옌징(燕京)대학 공학계통 학부를 흡수, 통합하고 문학ㆍ이학 ㆍ법학을 베이징대학으로 옮겼다.
베이징 대학에 문과와 사회과학 그리고 이과 계통에서도 기초 학문 분야의 학과를 몰았고 칭화대에는 공학부문의 학과를 집중시킨 것이다. 이러한 개편에 따라 베이징 대학과 칭화 대학은 문과와 공학 계통에서 각각 중국 제1의 대학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종식된 이후인 1978년부터 칭화대학은 사회과학, 기초과학 및 인문 계통의 학과를 다시 설치하기 시작했다. 2001년 까지 단계적으로 경영학, 법과 등 1952년 베이징대에 이전하였던 문과와 사회과학 계통의 학과를 대부분 다시 설치했다.
한편 베이징대도 베이징 의과대학을 흡수하는 등 응용과학 계통을 포괄하는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베이징 대학과 칭화 대학은 과거에는 주력하는 부문이 문과와 공학으로 뚜렷이 구별되기 때문에 우열을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두 대학은 종합대학으로서 중국 제 1위의 지위를 놓고 알게 모르게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 규모도 비슷해 지난해 8월 입시에서 칭화대는 2,700 명의 신입생을 선발했고 베이징대는 202 명이 적은 2,498 명을 뽑았다.
베이징대는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 명문대학으로서의 자부심을 지녀왔던 것이 사실이다. 비록 개혁 개방 이후 정ㆍ관계 분야에서의 칭화 대학 출신들의 진출이 괄목했지만 입시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은 여전히 베이징 대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베이징대의 자존심은 지난해 8월 실시된 대학입시에 큰 손상을 입었다. 정원미달 학과가 나왔는가 하면 학과별 커트라인에서 칭화대에 크게 뒤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칭화대의 이과와 문과의 커트라인이 각각 615점, 555점이었던 데 비해 베이징대는 476점, 465점이었다. 이과는 그렇다 해도 문과에서도 베이징대가 칭화대에 뒤떨어진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칭화대에는 이과 부문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과시했다. 대입학력고사(高考) 이과 부문의 각 성ㆍ직할시 최고 득점자부터 상위 10위 까지의 수험생 들 중 70 % 가 칭화대에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의 선택에 있어서는 베이징대학이 칭화대학을 앞섰다. 베이징대는 성ㆍ직할시의 문과 수석 17명, 이과 수석 29 명 등 최고 득점자 46명(전체 62명)이 지원, 상처받은 자존심에 위안을 주었던 것이다.
지난 해 베이징 대입학력고사에서 문과 수석을 차지한 학생은 조선족 권정(權靜)양이었는데 그녀는 베이징대 국제금융학과를 선택했다. 반면 이과 수석은 칭화대의 컴퓨터 학과에 진학했다.
지난해 대입시에서 베이징대가 칭화대에게 최고 명문 대학으로서의 위치를 빼앗긴 것은 베이징대의 홍보에서 미스를 한 반면 칭화대학이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지방 명문대와 전략적 제휴를 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7월 말에 있었던 설명회에서 베이징대는 합격 예상선을 610점을 제시, 낙방을 우려한 고득점자 상당수가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반면 칭화대학은 하얼빈 공대 등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칭화대학에서 떨어진 학생들을 이들 대학이 우선적으로 받도록 함으로써 우수한 학생들이 칭화대로 대거 몰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해의 입시 결과는 일반적으로 베이징대 다음으로 취급되던 칭화대가 명실상부하게 1위로 올라섰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입시 이후 베이징에서는 ‘대청(大淸)시대가 열렸다’라는 농담이 나돌았다고 한다. 정ㆍ관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들의 선호에 있어서도 칭화대가 베이징대를 앞선 데서 나온 말이다.
이는 ‘칭화대의 중국 경영’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칭화대와 베이징대의 역사
칭화대가 중국을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면 베이징대는 중국을 변혁시켜 왔다.
역사의 소용돌이 중심에는 항상 베이징대가 있었다. 가깝게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에서 멀리는 1919년 5ㆍ4 운동까지 중국 역사의 획을 긋는 사건을 주도한 것은 단연 베이징대였다.
1898년 징스(京師: 서울이라는 뜻)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베이징대는 1912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면서 초대 학장으로 중국에 진화론을 소개한 영국 유학생 출신의 옌푸(嚴復)가 취임하였다. 1916년 옌푸의 뒤를 이은 인물이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이다.
차이위안페이는 1911년 신해(辛亥) 혁명 후 중화민국 초대 교육총장(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로 혁신적인 인물들을 모아 베이징 대학을 신문화 운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1919년 일본의 21개조 요구에 맞서 시작된 5ㆍ4 운동이 단순한 배일ㆍ애국 운동에 그치지 않고 봉건주의를 타파하는 한편 과학과 민주주의를 제창하는 문화운동의 요소를 띤 광범한 민중운동으로 발전한 데는 차이위안페이의 이런 사전 정지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징대는 외래 사조를 가장 먼저 도입하고 이를 전파하는 곳이기도 했다. 베이징대 문과대 교수겸 도서관 주임이었던 리다자오(李大釗)는 마르크스 주의를 본격적을 도입한 인물이자 중국 공산당 창당의 주역이었다. 그의 밑에서 조교 겸 도서관 사서로 있던 인물이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이다.
미국 존 듀이의 프래그머티즘 철학을 도입하고 구어(口語)에 의한 문학을 제창, 문학혁명을 선도했던 후스(胡適) 역시 베이징대 교수를 거쳐 학장을 지냈다. 후스는 국공내전에서 국민당 쪽에 섰으며 공산당이 대륙을 석권하기 직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대만으로 돌아와 국민당 정부에서 중앙연구원 원장, 총통부 자정(資政)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리다자오와 마오쩌둥, 그리고 후스에게서 보듯 공산당과 국민당의 사상적 연원과 베이징대학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후스의 고향은 안후이성 지치(積溪)현으로 바로 후진타오의 출생지이라는 점이다. 둘 사이는 그러나 인척관계는 아니다.
중국 공산화 이후에도 변혁의 주체로서 베이징대의 위상은 변하지 않았다. 문화대혁명 당시 정치적 반대파를 대중적으로 규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대자보가 처음 출현한 곳도 바로 베이징대 교정이었다.
1966년 5월 25일, 베이징대 교정에는 '쑹수오(宋碩), 루핑(陸平), 펑페이윈(彭珮雲ㆍ여)은 문화대혁명에서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벽신문이 게재되었다. 문화대혁명 최초의 대자보였다.
이 대자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쑹수오는 베이징시 당위원회 대학부 부부장이었고 루핑은 베이징 대학 학장이자 당위원회 서기였다. 그리고 칭화대 출신인 펑페에이윈은 베이징대 당위원회 부서기였다. 7명이 연명한 이 글의 대표 필자는 수재(秀才)로 소문나 있던 니에위안즈(聶元梓ㆍ여)였다.
니에위안즈는 당시 베이징대 강사겸 베이징대 당위원회 철학부 총지부 서기였다. 그녀는 사회주의 교육 운동 방향을 둘러싸고 대학 당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던 학장인 루핑과 대립하고 있었다.류사오치(劉少奇)로부터 권력을 탈취하려던 문혁세력이 그녀를 이용한 것이다.
중앙문혁 소조 고문이자 당 정치국의 후보위원이며 산둥(山東)성 주청(諸城)현 출신으로 장칭(江靑)과 동향인 캉성(康生)은 처인 차오이오우(曹軼歐)를 니에위안즈에게 보내 대자보를 쓸 것을 권유하였고 그녀는 이를 받아 들였다.
니에위안즈의 대자보가 붙여진 당일 1,000여매의 반박 대자보가 붙여질 정도로 루핑 등은 베이징 대학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었으나 6월 1일 상황이 180도로 바뀐다. 중앙인민방송국이 니에위안즈의 대자보를 '전국 최초의 마르크스ㆍ레닌주의의 대자보'라고 격찬한 것이다.
얼마 뒤 루핑과 펑페이윈은 베이징 대학에서 쫓겨났다. 대자보를 통해 정치적 반대파를 공격하고 마오쩌둥과 문혁세력의 지지하에 대중 동원을 통해 당권파를 축출하는 패턴은 이처럼 베이징대학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천안문 사태의 중심 인물 왕단
천안문 사태 역시 그 중심에는 베이징대가 있었다. 천안문 광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은 소수민족 출신으로 베이징 사범대에 다니던 우얼카이시(吾爾開希)와 산둥성 출신으로 역시 베이징 사범대의 대학원생이었던 차이링(柴玲)이었다.
뛰어난 대중 연설가인 우얼카이시가 천안문 사태 초기의 스타라면 앳된 용모의 유부녀 학생인 차이링은 사태 후반기의 중심 인물이었다.
이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인 수십만 대학생의 대표였다. 우얼카이시는 베이징 대학생 자치련 주석, 차이링은 천안문 광장 봉기 총지휘부 주석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망명 뒤 차이링이 1990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고 우얼카이시가 하버드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학생 지도부를 이끈 인물은 바로 베이징대 역사학과에 다니던 왕단(王丹)이었다. 베이징대학 자치련 주석으로, 우얼카이시와 함께 베이징 대학생 자치련을 조직했던 왕단은 천안문사태 당시 보다 천안무 사태 이후에 더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우얼카이시와 차이링은 망명후 급속도로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특히 우얼카이시는 과대포장의 전형적 사례였다.
하지만 왕단은 천안문 사태를 상징하는 중국 민주화 운동의 중심인물로 외국 언론의 지속적인 주시대상이 되었다. 그는 국내에서 투옥과 석방을 거듭하며 민주화 운동을 계속했고 미국으로 망명한 뒤에도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우얼카이시와 차이링에게 있어 천안문 사태는 ‘과거의 영광’이라면 왕단에게는 ‘현재 진행형의 운동’인 것이다. 이는 또 왕단이 톈안먼 시위의 실질적인 주역이었음을 반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칭화대와 중국의 변혁 운동
물론 칭화대 출신도 중국의 변혁 운동에 참가한 인물들이 적지 않다. 1911년 의화단(義和團) 사건에 대한 미국측의 배상금이 경감되자 미국으로 유학가는 학생들을 양성하기 위한 기관으로 창립된 칭화대의 첫 명칭은 그 곳이 자리잡은 청나라 황실 정원의 이름을 딴 칭화위안(淸華園)이었다.
칭화원에는 영ㆍ불 연합군 침략의 상처가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 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서 반외세ㆍ반제국주의적 감정이 싹트지 않을 수 없었다. 교내 곳곳에 ‘외세에 설욕하자’라는 격문이 학교에 나붙곤 했다고 한다.
야오이린, 쑹핑, 후차오무, 리시밍, 펑페이윈, 그리고 주룽지 등은 공산화 이전 칭화대학에서 학생운동의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인물들이다.
비록 미국 유학생 양성 학교로 출발하여 기술계통이나 실무 경제학 분야에서 강세를 보였지만 칭화대 역시 변혁운동의 한 중심으로서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다.
지난 4월 29일 장쩌민 주석은 칭화대 개교 90주년 연설에서 1948년 이 대학의 교수였던 주쯔칭(朱自淸) 교수의 말을 상기시켰다. 국공내전이 한창 이던 당시 주 교수는 “굶어 죽을지언정 미국의 구제는 받지 않겠다”고 말해 유명해진 인물이다.
주 교수는 장제스(蔣介石) 정권을 지지하는 미국의 도움을 거절하자고 제창, 반외세 운동의 불을 지폈다. 장쩌민 주석이 중국과 미국의 군용기 충돌사건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주 교수의 발언을 상기한 목적은 분명하다. 대학생들에게 미국과의 대결의식을 고취하자는 것이다.
문혁과 칭화대
문혁과정에서도 칭화대는 비중있는 역할을 했다. 문화대혁명 대표적 상징물로 앞서 언급한 대자보와 함께 홍위병(紅衛兵)을 빼 놓을 수 없다.
최초의 대자보가 베이징대 교정에 나붙었다면 최초의 홍위병은 칭화대 부속중학교(우리나라의 중ㆍ고교에 해당)에서 처음 출현했다. 대자보의 서명을 통해 그 존재를 처음 드러낸 홍위병은 대자보처럼 전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또 학생운동의 급진화를 제어하기 위하여 류사오치가 조직한 이른바 공작조에 의해 홍위병의 활동이 위축될 때 이를 반전시키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칭화대 공정화학부 3학년에 재학하던 당시 21세의 콰이다푸(蒯大富)였다.
1966년 6월 초 콰이다푸는 한 대자보의 여백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넣었다. "혁명의 주요 문제는 권력탈취이다. 지금 권력은 공작조 수중에 있다. 이 권력은 우리를 대표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 권력을 탈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당시 칭화대에는 류샤오치의 아내이자 비서인 왕광메이(王光美)가 공작조 조장으로 파견되어 있었다. 왕광메이는 일부 교원과 학생들을 동원, "반혁명 분자 콰이다푸의 광기어린 진공(進攻)을 격퇴하라"며 맹렬히 공격했다.
이처럼 콰이다푸가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칭화대 부속중학의 홍위병이 붙힌 대자보가 등장한다. 대자보는 "혁명은 곧 조반(造反). 마오쩌둥 사상의 혼은 조반이다"라고 선동하고 나섰다.
당시 인민일보에 연재되던 마오쩌둥 어록에 "마르크스주의의 도리는 복잡하기 짝이 없지만, 결국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조반유리(造反有理: 항거에는 이유가 있다)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를 인용한 것이다.
문화대혁명을 상징하는 행동양식을 대자보, 홍위병 그리고 인민재판이라고 한다면 그 저류에 흐르는 사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은 바로 '조반유리'이다.
이렇듯 베이징대학 못지않게 칭화대도 문화대혁명의 향도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다만 1989년 천안문 사태 때는 칭화대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주요 학생 지도자중에서도 칭화대 출신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베이징대와 전국 1, 2위 자리를 다투는 입장이지만 학생운동과 관련하여서는 베이징대에 완전하게 지도적 지위를 넘겨준 인상이다.
칭화대학은 1953~1978년 공학전문대학으로 있었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는 어느 대학이 따라 올 수 없을 만큼 큰 업적을 쌓았다.
중국의 원자탄 개발은 자오퉁(交通)대학을 나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첸쉐썬(錢學森)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그를 뒷받침한 학자와 기술자들 대부분은 칭화대학 출신이다.
또한 인공위성의 개발도 칭화대 출신이 절대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1세기 중국의 최대 사회간접자본 사업인 산샤(三峽)댐 공사 역시 칭화대 출신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칭화대는 학업 부담 때문에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은 대학이다. 개혁 개방 이후 칭화대 학생이 학생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데는 이러한 학내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베이징대가 보는 칭화대학
칭화대가 이처럼 뜨고 있는데 대해 베이징대 출신으로서 말이 없을 수 없다.
한 베이징대 출신 인사는 칭화대 출신이 정계를 장악하고 있는데 대해 야유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칭화대의 학생은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 많다. 당연히 공산당의 인재 선발 표준에 적합하다. 반면에 베이징대 학생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향이어서 권력자에게 복종하는 체질이 아니다"
베이징대 출신으로 현재 칭화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한 교수도 이러한 시각을 거든다. "칭화대는 단체를 중시하고 베이징대는 개인을 중시한다. 칭화대생이 성실하고 실질적이라면 베이징대생은 낭만적이다. 칭화대생이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면 베이징대생은 왁자지껄한 것을 선호한다"
이 교수가 언급한 칭화대학생의 특질은 주룽지, 후진타오, 우방궈 등의 행동 양식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특질들이다.
칭화대 출신이 보는 칭화방
칭화대 출신 인사는 '칭화방'(淸華幇) 이라는 용어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낸다. '사인방', '상하이방' 혹은 '베이징방'처럼 칭화대학 출신들이 서로 서로를 끌어 주고 지원하는 파벌적 성격을 보인 적이 있느냐는 반문이다.
이 인사는 최근들어 칭화대 출신들이 정ㆍ관계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공산화 이후 칭화대의 학장을 지낸 장난샹(蔣南翔)의 교육 방침을 들고 있다.
장난샹은 ▲인재시교(因才施敎) ▲문체사단(文體社團)▲정치보도원(政治輔導員) 이라는 인재 양성 3대 원칙을 내세웠는데 특히 정치 보도원 제도가 오늘 날 중국 정계에서 칭화대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지적이다.
이 제도는 학업 성적과 품성이 좋은 학생들을 선발하거나 공청단 혹은 학생회의 간부들에게 정치 보도원이라는 직책을 부여, 저학년을 다방면에 걸쳐 지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의 반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들 정치보도원은 졸업을 1년 늦게 하도록 했으며 일정한 보조금을 제공했다. 후진타오, 우방궈 모두 정치보도원 출신이다.
이들은 학창 시절에 다른 학생들처럼 학업에만 매몰되지 않고 조직활동을 통해 지도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 정치 보도원 출신들은 이처럼 조직역량과 함께 양호한 과학 기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갖추게 되었다.
개혁 개방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현 상황에서 과학과 기술 분야의 지식과 함께 조직 관리 훈련을 받은 칭화대 출신들이 단순히 문학 역사 법률을 전공한 이들 보다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더 유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장난샹의 다른 두 가지 교육 방침을 살펴보자. '인재시교'란 전공을 나눌 때 학업우수 학생을 선발, 보다 나은 학업 성취를 거둘 수 있는 조건을 별도로 부여하는 대신 이들에게 소정의 성과를 내도록 책임을 지우는 제도이다.
장난샹은 "천재의 두뇌는 비옥한 토양"이라고 강조했다. 평등주의가 팽배하던 중국 공산화 초기에서부터 이러한 경쟁체제를 도입한 것이 칭화대학이 중국 제1의 대학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체사단'이란 문예활동과 체육활동을 장려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과외활동으로 정서함양과 단체정신을 북돋우자는 것이 장난샹의 생각이었다.
칭화대의 중국 경영은 한시적
칭화대 출신은 졸업생들을 넷으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 공산화 이전의 졸업생을 제1대로, 공산화 이후 문화대혁명 발발 직전까지를 제2대 칭화인으로 부른다. 그리고 문혁기간의 졸업생과 1980년대 이후의 졸업생들을 각각 제 3대와 제4대로 구분한다.
현재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칭화대 출신은 대부분 제2대 칭화인에 속한다. 칭화인들은 '칭화대 중국 경영시대'가 앞으로 10년간 더 지속되고 그 이후에는 연장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4대 칭화인들은 유학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는데 유학을 떠난 칭화인의 50 % 이상이 귀국하지 않고 있다.
이런 맥이 끊어지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칭화대 중국 경영시대'는 과거 일본의 도쿄대 경우처럼 한시적으로 끝날게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차이나 워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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