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정세 읽기] 김정힐의 경고와 미사일 호리병 열기 미국의 조지 부시 2기 행정부 당시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 관여한 크리스토퍼 힐은 한때 '김정힐'로 불렸다. 대북 비둘기파의 자세가 지나쳐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이 '김정힐'조차도 북한의 비난을 모면하지 못했다. 힐의 북한 측 카운터파트인 김계관 북한 당시 외무성 부상(현 외무성 제1 부상)은 북미 관계가 꼬일 대로 꼬인 상황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북한의 약속 위반을 공박한 힐의 면전에 대고 도리어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힐은 한마디로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됐다. 한국의 대표적 대북 비둘기파의 한 사람으로 노무현 정권 후반기 통일부 장관을 맡아 대북 유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이종석은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하자 이를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가피했다. 그러나 조심스러웠다. 다만 그는 이 '죄'로 뒤에 북한 개성을 방문 시 노골적인 홀대를 받았다. 이종석은 학자 시절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로부터 평생 잊기 어려운 '모욕적 비난'을 받았다. 그는 1997년 2월 남한으로 망명 후 김정일 정권에 대한 비판 발언을 쏟아내며 대북 강경책을 주장해 온 황장엽에 대해 한국일보 지상을 통해 대북 유화정책을 설득했다. 이종석의 공개서한은 정중한 형식을 갖추었으나 황장엽의 반응은 매몰찼다. 황장엽은 역시 한국일보 지상을 통한 이종석의 설득에 대한 답신에서 조목조목 그의 논거를 비판하고서 맨 말미에 "남한에 오니 무슨 냄새가 가득하다. 그것은 아마도 젖비린내가 아닌가 한다" 라고 쏘아붙였다. 논쟁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황장엽의 폄하에도 '젖비린내'는 참여정부에서 대북 정책을 주도했다. '구상유취(口尙有臭)'가 대통령이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종석의 '내재적 접근'식 대북 포용 정책의 결과는 '찬밥' 대접이었다. '김정힐'의 대북 설득 노력도 '거짓말쟁이' 취급받기 위한 긴 여정일 따름이었다. 힐 전 차관보는 지난 8일 일본 지지통신이 보도한 회견에서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결과적으로 용인함으로써 6자회담을 파탄 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막으려고 적극적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는 북한의 핵 보유가 장기적으로 중국에 이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얼마 남지 않은 '비둘기'의 '전향 고백'처럼 들린다. 7일 한국 정부는 한미 미사일 지침 갱신 합의를 공식 발표했다. 사거리 300km로 묶였던 한국 탄도 미사일에 대한 '족쇄'가 풀린 것이다. 한국이 현재 보유한 순항 미사일은 1500km 떨어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 하지만 탄도 미사일로는 단지 300km의 목표물만을 공격하는 게 가능하다. 순항 미사일은 자체 동력으로 비행하지만, 탄도 미사일은 고공으로 쏘아 올려 자유낙하 법칙에 따라 낙하, 목표물을 맞추는 것이다. 같은 거리의 목표물일 경우 탄도 미사일이 훨씬 빠르며 고공에서 가속도로 목표물에 접근해 방어하기도 훨씬 어렵다. 때문에 사거리 규제 대상은 탄도 미사일이다. 1979년 초 미국은 한국이 서해 상에서 자체 개발한 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집요한 방해에도, 미국에서 도입한 나이키 미사일과 허큘리스 미사일을 본떠 한국형 미사일을 개발해 냈다. 미국의 압력에 한국 정부는 국방장관이 당시 주한 미군 사령관 위컴에게 한국이 장차 개발할 탄도 미사일의 사거리는 180km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서한을 전달했다. 이는 한국의 미사일 개발이 북한에 대한 미사일 억지력을 확보하려는 데 있지 미국이 두려워하는 핵 개발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은 미국 카터 행정부의 주한 미군 철수 방침에 맞서 핵 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해왔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독자 미사일 개발 성공을 '핵 미사일 운반체'의 단초로 불안하게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해 `10·26 사태가 발생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주장했다. 분명히 유신독재는 종말을 고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 핵개발의 '뇌관'도 제거됐다. 박정희가 사라지고서 12.12 쿠데타와 광주 민주화 항쟁 유혈 진압으로 신군부 독재가 출범했으나, 한국 핵개발에 대한 대못질은 조용하나 철저하게 진행했다. 전두환은 집권하고 나서 육사 11기 동기생 김성진을 과기처 장관으로 임명, 박정희가 육성한 국방과학 분야 고급인력을 대거 길거리로 내쫓았다. 박정희가 키운 전두환은 집권의 안정화를 위해 '박정희 안보 프레임'과 확실한 작별을 고한 것이다. 미국은 비로소 핵확산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두환의 선택으로 한국의 핵개발 좌절은 물론, 미사일 개발도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미사일 개발 능력이 알라딘의 '호리병' 안에 들어간 것이다. 2001년 한미 미사일 지침 협정이 맺어졌다. 한국 정부는 1979년 국방장관 서신에서 약속한 바를 철두철미하게 지켰으나, 미국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모든 핵무기를 철수한 뒤 사인한 한반도 비핵화를 합의한 남북 기본 합의서와 1994년 북한 핵 개발 동결을 약속한 북미 제네바 협정을 북한이 잇따라 휴짓조각으로 만든 탓이다. 북한의 막무가내에 남측 일각에선 핵과 미사일 주권론이 대두했다. 미국은 남측을 달래야 했다. 한편으로 더욱 옥죌 필요도 있었다. 더욱 구속력 있는 협정으로 '호리병 마개'를 바꾸는 대신 탄도 미사일 사거리의 확대에 다소 숨통을 터주었다. 부시 행정부는 전임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적극적으로 추진한 북미 미사일 타협을 막은 것도 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클린턴은 2000년 11월 대선에서 정권이 공화당에 넘어갔지만, 미사일 타결을 위한 방북 계획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시가 대북 매파 중의 매파인 도널드 럼즈펠드를 국방장관으로 앉히자 클린턴은 방북 꿈을 접어야 했다. 2001년 협정으로 한국의 탄도 미사일 사거리가 300km로 늘어났으나, 이런 사거리로는 북한의 후방 지역을 실효 타격권 안에 둘 수 없었다. 탑재 무기 중량도 500kg으로 제한, 효과적인 타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호리병의 뚜껑은 여전히 단단히 막혀 있었다. 한국의 미사일 개발 능력이 여전히 호리병 안에 갇혀 있는 동안 북한이 탄도 미사일 사거리는 일취월장했다. 북한도 소련의 스커드 미사일을 도입, 이를 본 떠 북한 최후방 지역에서 남한 전역은 물론 일본 열도까지 사정 안에 두는 중거리 미사일 노동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고 이어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미사일의 개발에 성공했다. 여전히 한국이 미사일 사거리 180km에 묶인 1998년 8월 30일 북한이 쏘아 올린 대포동 1호(북한은 이를 은하 로켓으로 부름)는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 상에 떨어져 한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 미사일 사거리가 300km에 머무른 동안 대포동 미사일의 사거리는 6700km로 늘어났다. 남쪽 미사일이 북한 평양 이북 지역을 실효적으로 타격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반해 북한은 유사시 미군의 지원군이 발진할 오키나와와 괌도를 사정에 두는 미사일을 개발한 것이다. 한미 미사일 지침 갱신 내용이 드러나자 우리 군사 전문가들은 한국의 요구 내용을 미국이 거의 받아들인 데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의 MD(미사일 방어) 체제 참여, 혹은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로 미국 전투기 선정과 미국 첨단 무기 도입 사전 이면 합의설 등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의 애초 입장은 사거리를 559km으로 확대하지만, 무기 중량은 늘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사거리를 1000km로 확대하고 무기 중량도 1000kg으로 늘이자는 요구였다. 한반도 최남단 지역에서 북한 최북단 지역까지 미사일이 날아가려면 사거리 1000km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핵 시설과 같은 북한 지하기지를 파괴할 수 있는 벙커 버스터 폭탄의 중량은 1000kg 정도나 되기 때문이다. 사거리는 800km로 합의했다. 중국을 의식했다. 800km 이상으로 할 경우 중국 수도권 일대가 사정권에 들어오게 된다. 중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한국도 미국의 이러한 지적에 동의해야만 했다. 미국은 사거리와 탑재 폭탄 중량을 트레이드 오프 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요구를 들어줬다. 사거리를 1km 줄이면 무기 중량은 2kg 늘이는 식이다. 따라서 사거리가 550Km인 미사일의 탑재 폭탄 중량은 한국이 희망한 1000kg까지 늘렸다. 우리는 탄도 미사일을 남한 중부 지역 이남에 배치해야 하는데 이는 북한이 보유한 단거리 미사일의 사정권 밖이기 때문이다. 이 단거리 미사일은 북한이 보유한 미사일 중에서 가장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거리가 550km면 북한 단거리 미사일 사거리 밖에서 벙커 버스터를 탑재한 미사일로 북한 지하 핵 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 이는 북한 핵 개발 이후 한국군 지도부가 여러 차례 언급한 '선제 타격론'에 힘을 실어 주게 된다. 한국군이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비대칭적 견제력을 확보하는 길을 터놓았다는 이야기다. '호리병'에서 33년 만에 나오게 된 '한국의 미사일 개발 능력'에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마저 긴장하는 분위기다. 북한은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에 대해 이를 북침을 위한 준비 조치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장거리 미사일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중국은 미국이 핵확산 금지 수단의 한 틀로 운용해 온 MTCR체제 밖으로 한국이 나간 사실에 우려를 표명했다. 러시아는 동북아 무기 경쟁이 격화할 것에 주의를 환기했다. '호리병' 밖으로 빠져나오게 된 '작은 거인'은 어떠한 모습을 띠게 될까. 현재 허용된 것만으로도 북한에 대한 실효적 미사일 억지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한국은 순항 미사일로 '공화국 존엄'의 집무실 창문을 맞출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정밀성이 사거리가 늘어날 탄도 미사일에 적용될 것이다. 미사일 전력 면에서 핵을 보유한 북한이 길고 굵은 쇠몽둥이를 지닌 '골리앗'이라면 한국은 상대방의 급소를 맞출 수 있는 조약돌과 돌팔매를 지닌 '다윗'이다. '골리앗' 뒤에 있는 두 '빅 브라더'는 더 먼 미래를 우려하고 있다. '다윗의 돌팔매'가 그들의 자유로운 태평양 출입을 위협하는 '호리병 마개'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상호 방위 조약을 맺은 군사 동맹국이다. 미국은 여전히 돌팔매의 사거리를 늘일 수 있는 '알라딘 램프'를 갖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는 핵 도미노로 이어지진 않았다. 미국의 억지 때문이다. 중국은 그 때문에 '김정힐'이 지적한 것처럼 북한의 핵 보유에 팔짱을 끼었는지 모른다. "북한의 핵 보유 용인이 장기적으로 중국에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는 '김정힐'의 말은 이미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의 서해 진출에 이어 '미사일 호리병' 마개 따기 등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행하고 있다. <盲瞰圖子>

▶ 2012/10/20 1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