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和戰)양상의 중ㆍ미 관계 (2) 중국의 WTO가입 협상 타결로 중ㆍ미 간의 협력 분위기를 과시한 지 사흘 뒤인 6월 12일 조지 W 부시 (George W Bush) 미 대통령은 6일간 예정으로 유럽 순방 길에 올랐다. 부시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 첫 유럽 방문이었다. 13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을 갖고 14일에는 스웨덴에서 유럽연합(EU) 정상들과 만났다. 그리고 16일에는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미ㆍ중 관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시의 이번 순방은 중국과의 대결구도를 염두에 둔 행보이다. 12일 스페인에 첫 발을 디딘 부시는 “유럽을 설득하러 왔다”고 공언했다. 부시는 취임 후 유럽과도 많은 마찰을 빚었다. ‘교토(京都) 협약’ 서명 거부로 환경문제에서 유럽과 첨예한 갈등을 빚었는가 하면 부시의 외교ㆍ국방 팀이 밝히고 있는 ‘아시아 중시 전략’에 대해서도 유럽은 의구심을 보였다. 그러나 유럽과의 최대 쟁점은 미사일방어(MD) 구상이다. 유럽을 설득하겠다는 부시의 발언은 자신의 MD 구상이 러시아와의 군비경쟁을 촉발, 유럽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유럽의 불안을 해소시키겠다는 것이다.. MD 구상에 대해 미국이 겉으로 표방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불량국가(rogue state), 특히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 추진에 따라 국제적 안보 질서에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위협이 조성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처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972년 미국과 소련간에 체결된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 제한 협정을 폐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ABM 체제의 폐기에 대해 조약 당사자인 러시아 못지않게 반발해 온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ABM 체제의 폐기는 중국에 있어 미ㆍ러에 비해 훨씬 열세한 핵 전력의 무력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가 ‘MD 세일즈’ 과정에서 중국을 소외시키고 있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MD 구상이 궁극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은연중 드러낸 것이다. 중국의 대응 부시 미 대통령이 스웨덴에서 유럽연합 정상 회담을 한 바로 그 날(6월 14일)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상하이(上海)에서 ‘상하이 협정 5개국(일명 상하이-5 ) 정상 회담을 개최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편 끝에는 미국과 유럽연합 정상 등 16개국의 수뇌가 자리를 마주했고 그 반대편 끝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정상과 그리고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키스스탄 등 중앙 아시아 3개국의 수뇌가 자리를 같이한 것이다. 스웨덴에서의 중심 인물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었다면 상하이에서는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회의를 주도했다. 1996년 첫 개최지인 상하이의 지명을 따 출범한 ‘상하이-5 ’ 정상회의는 올해가 6회째다.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중국간의 국경협정, 병력 감축 등을 협의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소련 붕괴로 중앙 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함에 따라 국경선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이 상대 해야 할 국가가 많아진 현실이 이 회의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 ‘상하이-5’에서 러시아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중국의 위치가 과거와는 달리 상승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제 1, 2차 회의에선 국경선 획정과 병력감축이 주의제였다. 그러나 회의를 거듭하면서 국제정치적 이슈가 주된 의제가 되기 시작했다. 지난 해 7월 타지기스탄 수도 두산베에서 열린 5차 회의에서는 탄도탄 요격미사일(ABM)제한 협정의 지지와 대만을 포함하는 미국의 전역 미사일 방어(TMD : Theater Missile Defense)체제 반대를 선언했다. ‘상하이-5’는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견제하는 지역 조직의 성격을 띄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에 ‘상하이-5’는 큰 변화를 맞았다. 옵서버 국인 우즈베키스탄을 6번째 회원국으로 가입시키고 정례 회담 성격이던 ‘상하이-5’ 체제를 상설 지역 조직인 ‘상하이 협력기구’(SCO)로 전환시킨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은 기존 회원국과는 달리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가 아니다. 따라서 SCO는 단지 국경선과 그와 관련한 회원국 상호간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협의체 이상의 존재로 발전한 것이다. 파기스탄, 인도, 몽골 등도 가입을 희망하고 있어 SCO는 멀지 않은 장래에 유라시아 대륙의 아시아권 지역 거의 대부분을 포용하는 지역 조직이 될 공산이 크다. 이 조직의 명칭을 놓고 SCO와 ‘중앙 아시아 협력 조직’이라는 명칭이 경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상하이에 조직의 사무국 등 본부를 유지하겠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자신의 주상을 관철시켰다. 중국의 지명을 딴 첫 국제조직이 국제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이는 SCO에서의 중국의 주도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SCO의 6개국 정상들은 15일 ▲민족 분열주의 ▲ 종교 극단주의 ▲ 국제테러리즘을 세계를 위협하는 3대 공적으로 지목하고 이를 척결하기 위한 ‘상하이 협정’에 서명했다. 한편 6개국의 국방장관들은 미국의 MD 계획에 반대하고 탄도탄요격 미사일(ABM)협정을 지지하는 별도의 성명서에 서명했다. ‘상하이 협정’이 회원국이 직면한 공통 관심사를 포괄하고 있다면 국방장관들이 별도로 서명한 성명서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부시 대통령이 유라시아의 서편 쪽 끝에서 유럽의 정상들을 모아 놓고 ‘MD 세일즈’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반 MD 세력’의 확대를 과시한 것이다. 미국의 ‘장군’에 중국이 ‘멍군’하고 맞선 셈이다. 부시의 절반의 실패 유럽 순방과 러시아와의 회담을 통해 부시는 ‘MD 세일즈’에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는가. 그 성과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보다는 ‘절반의 실패’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MD 구상에 대해 나토의 19개 회원국 중 미국을 제외하고 지지를 표시한 국가는 불과 6개국이다. 일찌감치 지지를 표시했던 영국이 이번 부시의 유럽 순방에서 지지를 재확인했고 이탈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와 터키가 새로 가세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 등 나토의 중심 국가들은 여전히 MD구상에 분명한 어조로 반대했다.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 프랑스 대통령은 “MD가 군비 경쟁을 부추길 것이며, 30년 간 국제 안보를 지탱해온 ABM 협정을 쉽게 폐기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독일은 프랑스만큼 직설적이지는 않았으나 역시 MD 구상에 반대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eder) 독일 총리는 “기술적으로 MD가 실현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러시아와 중국도 MD 구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사일 위협에는 “신기술 보다는 외교, 경제적 수단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견해를 덧붙혔다. 이 같은 반대 표명에도 불구하고 나토 동맹국 정상들이 MD체계를 더 철저히 검토하기로 결의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구애 부시가 상하이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여 온 푸틴과 16일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에서 가진 양국 정상회담은 MD 구상과 관련하여 양측의 이견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냉랭한 회담이 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두 정상이 연출한 회담 분위기는 극히 우호적이었다. 푸틴은 회담 후의 공동 기자회견에 미국의 MD 구상에 반대하며 또한 ABM 체제의 유지를 강조했지만 부시에 대해서 호감을 갖게 되었음을 감추지 않았다. 푸틴은 특히 부시가 러시를 유럽의 한 부분이자 잠재적인 동반자로 여기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데 대해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푸틴에 따르면 부시는 러시아를 ‘동반자’(partner), 더 나아가 ‘동맹국’(ally)으로까지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부시의 이 발언은 콜린 파월(Colin L. Powell) 국무장관이 “부시 대통령이 군사적 혹은 정치적 의미로 동맹이라고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을 정도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푸틴의 우호적인 발언에 고무되었는지 파월과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푸틴과의 회담이 끝난 뒤 국내 언론과의 회견에서 MD 계획과 ABM 협약의 폐기를 강행할 것임을 천명했다. 파월이 17일 폭스 TV 및 ABC 방송과의 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MD 체제를 추진할 수 있는 기술이 갖추어지는 대로 1972년 소련과 체결한 ABM 협정은 파기할 것이다. “ABM 협정의 파기의 구체적 시간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국방장관이 판단해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시점에 결정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30년 전의 전략적 상황에 맞춰 체결된 ABM 협정에 구속받을 수 없다는 신념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같은 날 NBC 방송에서 발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ABM 협정은 적대적 냉전시대의 유물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대로 진입할 때가 되었다. “미국은 러시아의 축복 속에 MD 체제 계획을 추진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러시아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를 추진할 것이다. “우리는 평화와 안보 및 미국과 동맹국의 보호를 위해 이 계획을 이행해야 한다.” 미국의 ‘마이 웨이 MD 독트린’은 모스크바로부터 즉각적인 역풍을 받는다. 푸틴 대통령은 파월과 라이스의 회견이 있은 바로 다음날인 18일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에 미국 기자단을 초청, 회견을 갖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ABM 협정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조치를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푸틴은 반대 입장을 재천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요할 경우 핵무기를 증강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그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ABM 협정을 파기할 경우 1, 2 단계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을 포함한 핵무기 관련 조약들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푸틴은 MD 계획에 대해 "날아가는 총알을 총알로 맞추려는 것"이라며 기술적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 다소 비아냥식으로 회의를 표명했고 또 미국이 추진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도 평가절하했다. 북한은 독일과 옛 소련의 구식 미사일 기술을 가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푸틴은 류블랴나에서 부시와 회견한 시간과 똑 같은 2시간 30분 동안 기자회견을 하며 여러 차례 핵 전력 증강에 대해 언급했으며 "(미국) 마음대로 해라"라는 비 외교적인 언사까지 서슴지 않았다. 미국식의 마이웨이 독트린에 역시 러시아식의 마이웨이 독트린으로 맞선 것이다. 물론 푸틴은 이 자리에서도 부시에 대한 덕담을 잊지 않았다. 푸틴은 “부시 대통령은 매우 주의 깊은 경청자로 비판력과 분석력을 갖추고 있었고 처음부터 나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대화할 수 있었다” 고 말했다. 또 그는 “부시가 각종 국제 문제의 큰 구도를 논의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푸틴의 미국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유는 분명하다. 류블랴나에서의 자신의 우호적 자세가 미국으로 하여금 러시아의 입장을 오해하게 만들었다고 판단, 러시아가 MD 추진을 묵인할 것이라는 부시 행정부 외교 수뇌부의 잘못된 인식의 반전을 노린 것이다. 류블랴나의 공동 기자회견과 크렘린 궁에서의 기자회견에서 푸틴이 말한 내용은 거의 똑같다. 그러나 무게중심은 전혀 상반된 곳에 두었다는 점에서 두 기자회견이 주는 인상은 전혀 다르다. 유럽과 마찬 가지로 러시아를 설득하는데도 부시는 ‘절반의 실패’를 한 것이다. 류블랴나의 미ㆍ러 정상회담은 초조하게 지켜본 정상은 바로 중국의 장쩌민이다. 인민일보는 푸틴이 장 주석에게 부시와의 회담 내용에 관해 전화로 설명했으며 장쩌민은 푸틴이 MD에 반대한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중국이 MD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미 중 러 ‘신 3각 관계’ 1972년 미ㆍ중 관계 정상화 이후 미 소 중의 삼각관계는 중국이 전략적으로 미국에 기울어져 소련에 대항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적 동질관계는 중국에게 미국에 대한 외교적 지렛대를 부여하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 중 러의 ‘신 3각 관계’는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이 바뀐 채 과거의 ‘3각 관계’와 유사하다는 판단을 갖게 한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가운데 러시아에게 냉전 종식 이전까지 중국이 누렸던 전략적 위상을 부여하는 구도로 되어 간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파월 국무장관이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파월은 중국이 ‘전략적 동반자’ (strategic partner)라는 전임 행정부의 시각을 배척했다. 대신 ‘경쟁자’(competitor), ‘잠재적인 지역 라이벌’(potential regional rival)이자 ‘교역 파트너’(trading partner)라고 중층적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대 중국 전략개념을 제시했다. 6월에 미국의 외교적 행보는 바로 파월의 이러한 대중 전략개념을 구체화 한 것이다. 아울러 중국의 대응 전략 역시 미국의 전략개념을 흉내내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미국의 화전양면의 접근에 화전 양면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나 워처>

▶ 2001/06/27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