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1/10/26 01:26



[今天歷史-9월20일] 一箭三星, 중국 첫 헌법, 靑天白日旗

타이베이 고궁 박물관 설립, 대만 정부 반체제 인사 반란죄로 체포, 청나라 양무파 군수기업 설립

1981년 9월 20일 중국은 한 개의 로켓에 3개의 인공위성을 탑재하여 발사시키는 이른바 ‘일전삼성(一箭三星)’ 발사를 성공시켰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이 실험은 과학적 의의 외에도 군사공업과 우주기술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증명한 것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3개의 위성은 예정된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였으며 각종 과학 관측 및 시험 통계자료를 지구로 보내왔다.

1965년 = 타이베이(台北) 국립 고궁(故宮)박물관이 정식으로 설립됐다. 여기에는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 오면서 반출한 베이징 고궁 박물원의 국보급 문화재들이 소장, 전시됐다.

1964년 = 대만정부가 대만대학 교수 펑밍민(彭明敏)과 학생 세충민(謝聰敏), 웨이팅자오(魏廷朝) 등을 반란죄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대만성 출신 인사들로 반정부 활동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1954년 = 중화인민공화국 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1차회의에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이 통과되었다.

이 헌법은 중국 최초의 사회주의 헌법으로 4장 106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 헌법은 노동자, 농민 연맹에 기초한, 노동자 계급이 영도하는 인민민주주의 독재국가의 성질, 사회주의 총목표와 구현방식, 인민대표대회의 정치제도, 인민의 권리 및 의무 등에 대하여 규정했다.

이 헌법은 중공중앙이 제출한 과도기의 총노선을 확인. 수용하였으며, 국영경제, 합작사 경제, 자본주의 경제 등 5종의 경제양식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국영경제가 국민경제의 영도역량이며 국가가 사회주의 개조를 실현하는 물적 기초임을 명확히 하였다.

1914년 = 손문이 베이징의 위안스카이 정부에 대해 2차 혁명을 벌이다 실패하고 일본에 망명한 뒤 창당한 중화혁명당이 일본 도쿄(東京)에서 개최한 혁명방략(方略) 토론회에서 청천백일만지홍(靑天白日滿地紅)기를 국기로 정하였다. 청천백일기로 약칭되는 이 기는 국민당 국민정부의 국기가 되었다.

국민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온 이후 대륙의 공산 정권은 '오성홍기(五星紅箕)'를 새로운 국기로 제정했다. 대만에서는 여전히 청천백일기가 국기로 사용됐으며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 정권이 집권했을 때도 변함없이 국기로 사용됐다.

그러나 민진당을 포함한 독립지향 세력들은 그들의 행사에서 대만섬을 도안으로 한 '대만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를 국기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왼쪽 로고는 민진당 로고로 대만기는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71년 대만이 유엔에서 축출된 이후. 각종 국제행사에서 청천백일기는 게양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자 태권도 49kg급에 출전, 대만에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천스신(陳詩欣, 26) 선수는 시상식에서 청천백일기 대신 대만 올림픽위원회 깃발이 게양되고 국가 대신 국제올림픽 위원회(IOC)의 ‘국기가(Song of the National Flag)'가 연주되자 시상대에서 눈물을 쏟아내었다.

대만은 한국과 수교중이던 1986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참가한 농구 대표단이 경기장에서 청천벡일기 사용을 금지하자 이에 항으이, 철수한 적이 있다. 한중 수교와 대만 단교는 6년 뒤인 1992년 8월이엇지만 한국과 대만 관계가 결정적으로 금이 간 것은 이때엿다. 아시안 게임 당시에는 대만에서 반한 시위가 거세게 벌어졋으나 정작 한중 수교 때 단교햇을 때는 조용햇다.

1865년 = 증국번(曾國藩)과 이홍장(李鴻章)이 상하이(上海)에 강남기기제조총국(江南器機制造總局)을 설립했다. 이 총국은 양무파(洋務派)가 설립한 최대 규모의 군수기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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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0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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