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1/10/26 01:26



[今天歷史-12월29일] 東三省에 靑天白日旗가 휘날리다

1928년 12월 29일 오전 7시를 기해 중국 동삼성(東三省) 전역에서 청천백일기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동삼성 군벌인 장쉐량(張學良)이 동북보안총사령 명의로 “이날을 기해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준수하고 국민정부에 복종하며 깃발을 바꿔달겠다”고 선포한 뒤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해 7월 1일 장쉐량은 일본의 군사, 경제, 정치적 압력을 물리치고 난징(南京)의 국민정부와 정전 협상을 벌이겠으며 결코 통일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8월 3일 장제스(蔣介石)는 사람을 파견, 일본군에 의해 폭사한 장쉐량의 부친 장쭤린(張作霖)을 문상하고 장쉐량과 협상을 갖도록 했다. 이 자리에서 장쉐량은 삼민주의를 받아들이겠으며 통일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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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장쉐량에게 동삼성을 중국에서 계속해서 분리할 것을 압박했으나 장제스의 통일 방안에 대해 영국과 미국이 찬동하면서 일본은 국제적 고립에 빠졌다. 결국 일본의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총리 역시 동삼성 문제는 중국의 내정문제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쉐량은 청천백일기 게양 기념식에서 “우리는 기를 바꾸었으며 이제 더는 중앙권력으로부터 분리를 꿈꾸지 않겠으며 전국의 진정한 통일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정부는 장쉐량을 동북변방군 사령장관에 임명하였다.

일본은 이러한 사태 진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동삼성 즉 만주를 장악한 뒤 궁극적으로 중국과 몽골을 정복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던 일본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킨 뒤 1932년 점령한 동북 3성 지역에 괴뢰국인 만주국 을 건설했다. 근거지에서 밀려난 장쉐량은 장제스에 의해 공산군 토벌에 동원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1936년 12월 12일 시안사변(西安事變) 을 일으켰다. 시안사변으로 2차 국공합작이 성립되었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은 1937년 8월 13일 상하이를 침공함으로써 중일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중일전쟁은 일본이 2차대전에서 항복한 1945년 8월 15일까지 8년 2일간 계속되었다.

이로써 중국 대륙을 뒤덮었던 일장기는 사라지고 다시 청천백일기가 중국 전역에서 휘날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4개월 12일 뒤인 1949년 12월 27일 중국 전역에서 더이상 청천백일기는 휘날릴 수 없었다.

대륙에 남은 국민정부의 최후 저항군이 공산군에게 섬멸됐기 때문이다. 동북 지구, 즉 만주에서 청천백일기가 휘날리기 시작한 지 21주년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2014/12/29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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