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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sées] 三金’과 ‘三鄧’ 그리고 ‘벌겋게 물든 서산’
한국의 '삼김(三金)'에 빗대어 중국에는 '삼덩(三鄧)'이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삼김은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그리고 김종필(金鍾泌)이다. 모두 1920년대 생인 세 사람 중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통령을 지냈고 김종필은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야당 지도자였고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올랐기에 김종필을 떼어 놓고 '양김(兩金)'으로 부르기도 한다.
김종필은 대통령제 하에서의 총리였기에 최고 지도자에까지 오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40대 후반이던 1970년대 전반기 박정희(朴正熙) 정권 시절 '2인자 총리'였다. 고희를 넘긴 1990년대 말기에는 박정희의 최대 정적이던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내각의 절반을 자신의 사람으로 채운 명실상부한 '실세 총리'였다.
삼김은 전 세대 정치인처럼 모두 '거산(巨山)', '후광(後廣)' 그리고 '운정(雲庭)'이라는 아호를 갖고 있다. 하지만 호보다는 이름의 영문 이니셜인 YS, DJ와 JP로 자주 불렸다.
중국의 '삼덩'은 덩샤오핑(鄧小平), 덩리쥔(鄧麗君)과 덩리췬(鄧力群)이다. 동갑이거나 한 살 터울인 한국의 삼김(김대중과 김종필은 1926년생이고 김영삼은 1927년 생이다)과는 달리 삼덩은 세대가 뚜렷이 구분될 정도로 나이 차이가 크다.
1904년생인 덩샤오핑이 가장 나이가 많고 덩리췬은 11살 연하인 1915년생이다. 덩리쥔은 1953년생으로 덩샤오핑의 손녀뻘이고 덩리췬과는 부녀지간의 나이 차이다. 하지만 삼덩은 삼김 이상으로 긴밀하게 연계됐다.
덩샤오핑은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같은 당정의 최고 직위를 지내지는 않았으나 1978년 12월 권력 장악 후 죽을 때까지 실질적인 최고지도자로 군림, '태상황(太上皇)'이란 별칭을 들었다.
공산 중국을 환골탈태한 개혁개방을 주도한 '개혁의 총설계사'란 별칭도 갖고 있다.
대만 출신 여가수 덩리쥔은 "중국 대륙의 낮을 다스리는 사람은 덩샤오핑이지만 밤을 지배하는 이는 덩리쥔"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안 중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중국인이 있는 곳에는 덩리쥔의 노래가 흐른다'라는 말도 있었다. 1980년대와 90년대 중국인은 덩샤오핑을 '라오덩(老鄧)'으로 덩리쥔을 '샤오덩(小鄧)'이라고 에칭했다.
지난 2월 10일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덩리췬은 '지하 총서기', '좌왕(左王)'으로 불렸다. 덩리쥔이 문화 예술계에서 정점에 올랐기에 덩샤오핑과 비견된 것처럼 덩리췬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에 대한 가장 매섭고 가장 강력한 비판자였기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선전과 이론 부문에서 활약해 온 덩리췬은 류샤오치(劉少奇)의 정치 비서였던 관계로 문화대혁명 내내 정치권 밖에 밀려나 있다가 마오쩌둥(毛澤東)이 죽고 4인방이 축출된 다음 해인 1977년 정치 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마오가 지명한 후계자인 화궈펑(華國鋒)과 덩샤오핑 간 권력투쟁 과정에서 덩샤오핑 편에 섰다. 덩샤오핑 세력은 화궈펑의 "마오 결정과 정책은 모두 옳다"라는 이른바 '범시(凡是)' 노선을 공격하면서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實踐是檢驗眞理的唯一標準)'이란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그 이론 골격은 덩리췬이 마련했다.
이 슬로건은 '실천이 진리를 검증한다(實踐檢驗眞理)'라는 마오의 말을 변용한 것이다. 덩리췬은 마오, 류사오치와 같은 후난(湖南)성 출신이다.
그러나 덩리췬은 개혁과 개방 방향과 속도를 놓고 덩샤오핑과 갈라섰다.
덩샤오핑이 시중쉰(習仲勛)의 경제특구 제안을 받아들여 대담한 개혁과 과감한 개방을 추진한 것이 결정적 계기다. 특구 논쟁은 사상해방 논쟁으로 비화하였고 이는 불가피하게 이데올로기 논쟁과 대립으로 발전했다.
덩샤오핑의 오른팔인 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은 인민복 차림인 채 공개된 자리에서 디스코를 췄고 왼팔인 총리 자오쯔양(趙紫陽)은 홍콩 재벌을 연상하게 하는 골프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골프채를 휘둘렀다. 덩샤오핑이 대담한 개혁과 과감한 개방의 전제라며 외친 '사상 해방'의 솔선수범 구현이었다.
이에 맞서 당 중앙 선전부장 덩리췬은 '정신 오염' 문제를 제기했다. 덩리췬의 이 같은 주장은 제한적 경제 개혁과 개방을 주창한 천윈(陳雲)이 내놓은 '새장 경제론'의 이데올로기 버전이었다.
하지만 어조는 문화대혁명 시절의 4인방과 홍위병을 연상할 정도로 직설적이고 도발적이었다.
덩리췬은 "덩샤오핑의 노선은 착오적이다(鄧小平的路線是錯誤的)"라고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고 덩샤오핑을 직접 겨냥했다. 이는 마오가 홍위병 세력을 부추긴 선동 슬로건인 '사령부를 포격하라'를 연상시킨다.
덩리췬은 "개혁과 개방으로 탐관오리가 많아졌고 자산계급이 다시 출현했으며 흑사회(黑社會 : 마피아 집단)가 생겨났고 가난한 이들이 소송 기회를 얻지 못하며 당원이 군중과 유리되고 노동자가 대거 직장을 잃으며 자본가가 다시 착취를 시작하고 농민이 농토를 뺏기며 기녀와 성병이 만연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데올로그 덩리췬에게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은 가장 득의의 시절이었다. 1987년 1월과 1989년 6월 개혁개방 노선의 쌍두마차였던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이 각각 학생시위 여파와 천안문 사태 와중에서 총서기직에서 잇따라 불명예 퇴진했다.
형식은 덩샤오핑이 위기상황 수습을 위해 자신의 오른팔과 왼팔을 스스로 자른 것이지만 덩리췬의 집요하며 지속적인 이데올로기 공세가 강요한 상황이었다.
이와 함께 경제는 수도꼭지 밸브가 잠기듯 위축됐고 대학생에 대한 군사 교육과 모든 부문에서 사상 교육이 강화됐다. 이는 분명히 개혁과 개방의 유턴이었다. 덩리췬에게 지하 총서기와 좌왕이라는 별칭이 붙여진 때도 이즈음이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의 모든 지도자가 마오 앞에서 부처님 손바닥 안 손오공이었듯이 덩리췬 역시 덩샤오핑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1992년 초 덩샤오핑이 남순(南巡)을 통해 개혁과 개방을 재점화할 때 장쩌민(江澤民)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리펑(李鵬) 총리가 한동안 주저하며 지지 표명을 하지 않았던 것과 또 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장기간 보도조차 하지 않고 침묵했던 것은 좌왕의 버티기와 그 위세 때문이었다.
결국 덩리췬은 덩샤오핑의 '손바닥'에 밀려났다. 이해 10월 14대(중국공산당 14차 전당대회)에서 덩리췬은 덩샤오핑의 미래 정치 설계도에 따라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야 했다. 정치적으로 좌왕은 '죽지 않고 사라졌다.'
마르크시즘과 마오 사상의 기본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덩리췬의 노선은 그가 은둔 상태로 빠져든 가운데 자신이 축출한 화궈펑과 보시라이(薄熙來)가 재점화하려는 시도를 하는 듯 보였으나 메아리 없는 공허한 광야의 외침이거나 한동안 요란하게 반짝일 뿐이었다.
문혁 시대에 태어나 개혁개방 시대에 자란 젊은 신좌파(新左派)가 덩리췬이 외친 것과 다름없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좌왕의 결기와 위세와는 비견할 바 못 된다.
덩샤오핑의 1992년 남순 이후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G2 국가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중국의 외형적 성장 이면에 날로 깊어져 가는 모순과 부패와 부정 그리고 부조리를 두고 "(천하가 뒤집힐) 모든 여건이 갖춰졌으나 단지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없을 뿐이다"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덩리췬은 너무 앞서 나간 진승과 오광'이다. 보시라이와 신좌파는 시대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진승과 오광'인 셈이다.
한국의 삼김 시대가 오래전에 끝났듯이 중국의 삼덩 시대 역시 역사의 뒷장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삼김 중 DJ는 2009년에 세상을 떠났고 YS와 JP는 생존해 있으나 모두 90세이거나 그 문턱에 이른 고령인데다 노환을 앓고 있다.
JP는 휠체어 신세고 YS는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삼덩은 덩리췬을 마지막으로 모두 생물학적 삶을 마감했다.
덩리쥔이 1995년 42세로 가장 먼저 세상을 하직했고 덩샤오핑이 그 2년 뒤인 1997년에 93세를 일기로 마오를 만나러 갔다.
중국 삼덩의 마지막 인물이 100세로 세상을 뜬지 11일 뒤인 2월 21일 올해로 우리 나이로 아흔 살이 된 삼김의 JP가 세 살 적은 부인 박영옥 여사를 앞세웠다. 조문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박영옥 여사의 사촌 여동생이 되는 박근혜 대통령이 부고를 접하자마자 곧바로 조화를 보낸 뒤 직접 조문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빈소를 찾았다.
대권 3수를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이회창 전 총리도 JP를 만나 위로했고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문재인 새정치 민주연합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도 문상했다.
대권을 꿈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이완구 총리도 빈소를 찾았다. 여야 할 것 없이 많은 정치인이 빈소를 찾아 JP를 만났다.
외신 보도를 통해 낯이 익은 일본 원로 정치인도 바다를 건너와 조문 행렬에 참가했다. 자민당의 막후 실력자였고 민주당 간사장을 역임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생활당 대표가 직접 조문했고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조문 친서를 보내왔다.
휠체어에 앉아 조문객을 맞은 JP는 한국 정치인을 상대로 '내각제 전도'를 했다. 내각제는 JP가 YS와 DJ의 '킹메이커' 노릇을 하며 실현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었다.
박영옥 여사의 발인이 있던 2월 25일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의 이재오 의원이 또 새정치 민주연합의 이해찬 의원이 개헌 필요성을 강도 높게 제기했다.
두 의원이 지향하는 개헌 내용은 물론 JP의 내각제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삼김의 JP가 조용히 사라졌다가 의미 있게 다시 나타났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겠다.
과거 JP가 한 "서산을 벌겋게 물들이겠다"라는 말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또한 이는 박영옥 여사의'서산을 벌겋게 물들인 마지막 내조'이기도 하다.
중국 '삼덩'의 마지막 인물이 마지막 가는 길은 대만과 중국에서 국장으로 치러진 앞서 '양덩'처럼 요란하지 않았으나 격은 마찬가지였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비롯한 당 상무위원 7명이 2월 17일 베이징(北京) 바바오산(八寶山) 혁명묘지에서 열린 덩리췬의 영결식에 모두 참석했다.
이들은 덩리췬의 유해를 향해 묵념하고 허리를 굽혀 세 번 절하는 예를 갖추고 나서 유족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이런 장면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진핑이 다름 아닌 덩리췬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웠던 '경제특구 설계사' 시중쉰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 매체는 덩리췬을 "우수한 공산 당원이자 오랜 경력의 충성스런 공산주의 전사, 무산계급 혁명가, 우리 당 사상이론과 선전 전선의 걸출한 지도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라고 평가했다.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 대목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중국이 개혁과 개방의 열매를 누리는 상황에서 덩리췬의 공격 대상이었던 개혁과 개방의 쌍두마차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이 여전히 공이 과오에 묻힌 채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덩리췬에 대한 각별한 예우는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진다.
이는 최근 시진핑 주석의 '이데올로기 공작' 지침을 계기로 전 사회분야에 대한 사상 통제활동을 강화하는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시진핑은 올해 1월 23일 제20차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체학습에서 '21세기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발전을 강조하며 앞으로 사회에 대한 이상·신념 교육, 사상·도덕 건설, 이데올로기 공작을 조금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덩샤오핑에게 덩리췬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보리스 옐친이 그랬던 것처럼 '허가받은 반골' 역할을 했는지 모른다.
차이는 고르바초프는 도리어 옐친의 사다리가 됐지만 덩샤오핑과 덩리췬은 끝내 부처님과 손오공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은 남순 강화에서 "좌와 우를 모두 경계해야 하지만 지금 더 주의해야 하는 것은 좌이다"라고 말했다. 시진핑의 최근 행보는 이를 뒤집어 실천하는 것처럼 보인다.
덩리췬 영결식 이틀 뒤는 덩샤오핑의 기일 18주기였다. 그러나 그날 의미 있는 행사 없이 평범한 날처럼 조용하게 지나갔다.
'좌왕' 지하 총서기는 지평선 너머로 떨어진 이후 서산을 '홍색(紅色)'으로 짙게 물들이고 있다. <盲瞰圖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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