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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 리창춘(李長春)
리창춘과 후진타오
1992년 10월 중국 공산당 14차 전당대회(14大)를 통해 후진타오(胡錦濤)가 선두로 치고 나오기 전까지 차이나워처들이 '제 4세대' 지도자 후보들 중 가장 주목했던 인물은 리창춘(李長春)이었다.
그 한 예로 홍콩에서 발행되는 영자지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가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수습된 후 중국의 미래를 다룬 특집물을 실었는데 '새롭게 떠오르는 별'로 선정한 5인 중 맨 먼저 소개한 인물이 리창춘이다. 후진타오는 마지막인 다섯 번째로 소개됐다.
당시 동북 랴오닝(遼寧)성장인 그가 이처럼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는 선양(瀋陽)시장 시절이던 1986년 공산정권 수립 이후 처음으로 기업파산제를 도입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1986년이라면 아직 개혁 개방이 뿌리박지 못하던 때였다. 그런 시기에 경제 특구도 아닌 동북 지방 한 도시의 40을 갓 넘은 젊은 시장이 시장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를 도입한 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하지만 후진타오가 부상하면서 리창춘은 관심의 초첨에서 비껴나갔다.
그가 다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 15大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면서부터 였다. 당시 리는 53세로 정치국 최연소 위원이 되었다. 1997년 말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광둥(廣東)성 서기로 전임하면서 그에 대한 관심은 부쩍 높아지기 시작했다.
1999년 9월 홍콩 영자 주간지 아시아 위크는 21세기 중국의 발전을 주도해 나갈 정치 경제 과학 기술 문화계 인사 50인 중 한명으로 그를 선정했다.
정치인 20인 중 지방 지도자로는 리창춘과 자칭린(賈慶林) 베이징(北京)시 당서기, 황쥐(黃菊) 상하이(上海)시 당서기, 보시라이(薄熙來) 다롄(大連)시 당서기, 그리고 쉬광디(徐匡迪) 상하이 시장 등 5명이 뽑혔다. 2000년 전인대를 앞두고 그가 우방궈(吳邦國) 후임으로 부총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비록 리가 다시 관심을 끄는 존재로 부상하기는 하였지만 90년대 초 '제4세대'의 선두로 까지 주목받던 데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 이후 괄목의 대상으로
하지만 올해 8월 베이다이허 회의 이후 리창춘은 후진타오에 못지 않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회의에서 그가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후임으로 내정되었다는 보도 때문이다.
이 것이 10기 전인대(원래 예정은 2003년 초 이나 2002년 초로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음)에서 실현된다면 '제4세대' 지방 지도자들을 제칠 뿐만 아니라 우방궈, 원자바오(溫家寶) 등 일찍부터 총리 물망에 오른 '제 4세대' 선두그룹을 추월하는 것이 된다.
1992년 후진타오의 상무위원 선출로 까마득하게 벌어졌던 주목의 격차를 단 번에 지근 거리까지 좁힌 것이 아닐 수 없다.
기록의 사나이
리창춘 역시 후진타오와 마찬가지로 기록의 사나이다. 39세에 선양시장에 선출돼 전국 최연소 시장이 되었고 랴오닝성 성장 대행이 되었을 때는 42세로 역시 전국 최연소였다. 1997년에 정치국에 진입 했을 때도 24명의 위원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후진타오와 마찬가지로 그의 고속 출세의 배경에는 장인인 당 원로 쑹런충(宋任窮)의 후광이 있었다.
하지만 동북 지방 출신으로 현재 집권 세력인 상하이방(上海幇)에도 속하지 않고 하얼빈(哈爾濱)공대 출신으로 후진타오처럼 칭화방(淸華幇)이라는 학맥도 갖지 못한 그가 오늘의 위치에 오르는 데는 자신의 탁월한 '능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리창춘에 맡겨 실패한 지역이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는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선양시를 '기업파산제' 도입을 통해 되살려 냈다. 이는 '콜럼버스의 달걀세우기' 와 같은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선양시의 성공이 계기가 되어 그는 랴오닝(遼寧) 성장으로 승진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유감없이 수완을 발휘한다.
상당 기간 랴오닝성의 특색을 살핀 뒤 이 곳을 동북 지방의 수출기지, 선진기술 흡수기지, 수입대체 산업 기지라는 3대 기지로 육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의 능력이 널리 알려지면서 1990년에는 허난(河南) 성장으로 전보됐다.
허난성은 쓰촨(四川)성, 산둥(山東)성, 그리고 장쑤(江蘇)성 등과 함께 중국의 곡창으로 불리는 곳이다. 전임지인 선양시, 랴오닝 성 등 공업지역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지역을 맡게 된 것이었지만 여기서도 그는 역량을 발휘한다.
농업을 발전시킨 것은 물론 물류와 관광, 그리고 인구가 쓰촨성 다음으로 많은 점을 활용하여 노동집약형 공업지구로 탈바꿈시켰다. 1997년 15대에서 최연소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된 것은 허난성장 재직시 업적 탓이다.
광둥성 서기 도약의 발판
그러나 리창춘이 차기 총리로 내정될 만큼 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광둥(廣東)성 서기로서 중앙정부의 오랜 골치거리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광둥성은 흔히 '국가속의 국가(國中國)'로 불리워져 왔다.
신해(辛亥)혁명 발상지인 이 곳은 공산중국 성립 이후에도 중앙정부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반(半)독립적 위상을 지켜왔다.
특히 예젠잉(葉劍英), 예쉬안핑(葉選平)으로 이어지는 예(葉)씨 부자는 이 곳에서 거의 군주와 같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공산 혁명 원로로 10대원수의 한 사람이자 덩샤오핑(鄧小平) 집권 초기 군사위 부주석을 지낼 만큼 군부의 실력자였던 예젠잉은 마오쩌둥(毛澤東) 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는 1976년 4월 청명절(淸明節)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3번째 실각한 덩샤오핑을 보호했으며 마오 사후 4인방(四人幇)을 숙청하고 화궈펑(華國鋒) 정권을 성립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복권된 덩샤오핑이 화를 밀어내고 권력을 장악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이런 배경에다 개혁 개방 이후 경제력 비중이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광둥성의 ‘독립왕국화’는 더욱 더 심화되게 되었다.
중앙정부는 이러한 경향을 저지하기 위해 예젠잉의 아들 예쉬안핑에게 정협 부주석과 같은 중앙정부의 직책을 주어 광둥성과 격리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중앙에 올라오지 않고 광둥성에 머무르며 중앙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었다. 광둥방(廣東幇)이라는 말이 나오고 또 덩의 사후 중국이 혼란에 빠질 경우 독립을 선언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올 정도로 광둥성은 중앙정부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골치거리가 되어갔다.
3대악이 춤추는 광둥성
또한 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황(黃:섹스) 도(賭: 도박) 독(毒 : 마약) 등 3대악이 춤추었지만 광둥성의 토착 지도자들은 이를 방기하는 형편이었다. 리창춘이 허난성 당서기에서 광둥성 당서기로 전임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였다.
중앙정부는 광둥성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동북지방 출신의 그를 보내 광둥성의 누적된 난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예쉬안핑의 정치심복 셰페이(謝非)와 교체되어 당서기에 취임한 리창춘은 취임하자마자 당 기율검사위와 감찰청을 앞세워 대대적인 부패와의 전쟁에 나선다.
광둥성은 외국 밀수품 유입의 관문으로 지방관리와 경찰(공안), 세관까지 개입돼 단속이 쉽지 않았다. 그는 정부기관의 밀수개입을 중점적으로 단속, 1999년 4월 당시까지 중국 역사상 최대 밀수사건으로 꼽히는 잔장(湛江) 밀수 사건을 적발하기에 이른다.
잔장시 해관장(세관장)을 비롯한 1백50명의 관리가 연루된 이 사건은 밀수액이 밝혀진 것만도 2백억 위안(약 2조5천억원)이다. 이 사건은 뇌물 액수만도 500~800위안(6조~10조원)으로 추정되는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시 밀수사건이 적발되기까지 중국 최대 밀수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15명이 사형판결을 받아 6명이 집행됐다.
이처럼 강력한 밀수 단속으로 한 때 광둥성 경제가 비틀거린다는 얘기까지 나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밀수품 때문에 죽어가던 내국기업이 되살아 나고 왜곡된 경제구조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GITIC을 과감하게 파산시켜
리창춘은 또 아시아 금융 위기로 인해 비틀거리던 광둥투자신탁공사(GITIC)을 과감하게 파산시키는 금융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성정부의 보증 아래 해외투자 자본의 대(對) 중국 유입 창구 역할을 하던 GITIC을 파산시킴으로써 그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운다. GITIC의 파산은 1949년 사회주의 중국 출범 이후 최초로 단행된 금융기관의 파산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광둥방의 돈줄을 끊은 리창춘의 광둥방 길들이기의 '결정구'는 토착세력의 숙청이다. 하지만 광둥방이 궁지에 몰리면 거센 저항을 할 것을 우려했는지 이 작업에서 만큼은 밀수단속과 금융구조 개혁처럼 가혹하지는 않았다.
사법처리된 토착세력의 최고위급 인사는 예쉬안핑의 측근인 위페이(于飛) 성 인민대표대회 부주임에 그쳤다. 혐의도 딸의 토지부정거래를 도운 것이었다.
위페이는 리창춘의 전임 셰페이, 그리고 전 광둥성장 주선린(朱森林) 등과 함께 예쉬안핑의 측근 3인방. 문제가 된 위페이의 딸은 예쉬안핑을 '큰 아버지'로, 셰페이와 주선린을 '작은 아버지'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들 4인은 각별한 관계였다.
예는 1996년 주선린이 성장직에서 물러나고 1999년 10월에 셰페이가 병사한 데다 위페이마저 축출됨으로써 손 발이 다 잘린 셈이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예쉬안핑을 더 이상의 궁지로 몰지 않았다. 리창춘이 1999년 초 그와 당구를 치는 모습을 공개한 것은 광둥방에 대한 압박 수위를 대중들에게 알린 것으로 전형적인 '거졸보차'(去卒保車)의 전략이었다.
어쨌든 리창춘은 중앙정부의 오랜 숙원인 광둥방 길들이기에 성공함으로써 다시 한 번 '해결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는 그가 차세대 지도부의 선두그룹으로 도약하는 디딤대가 되었다.
遼寧三李
후진타오가 후야오방(胡耀邦), 후치리(胡啓立) 등과 함께 '쓰리 후'라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1980년 대 후반부터 리창춘에는 '遼寧三李'라는 말이 따라 다녔다. '遼寧三李'는 랴오닝성 당서기 혹은 부서기 등을 역임한 세 李씨 즉 리톄잉(李鐵映). 리구이센(李貴鮮)과 리창춘을 일컫는 말이다.
리톄잉은 덩샤오핑의 전처인 진웨이잉(金維映)과 원로인 리웨이한(李維漢)의 아들로 덩의 아들일지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으며 한 때 총서기 물망에도 올랐던 인물이다.
리펑(李鵬)과 함께 소련 유학파에 속해 있으며 그의 측근인 리구이센은 87년 50대에 국무위원과 인민은행장을 겸임, 역시 '떠오르는 별'로 앞 날이 주목 받던 인물이었다.
리톄잉은 현재 정치국원이자 국무위원 겸 사회과학원장으로 있지만 최고지도자 그룹 대열에서는 오래 전에 탈락한 상태다.
리구이센은 1993년 금융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주룽지 당시 부총리가 인민은행장을 겸임하면서 인민은행장 자리에서 사실상 쫓겨났으며 현재는 반은퇴한 상태다.
'쓰리 후'의 두명의 후씨가 도중 낙마하고 1명만이 남은 것과 유사한 상황이 '遼寧三李'에게도 벌어진 셈이다. 이처럼 여러 면에서 후진타오와 리창춘은 비슷한 데가 많다.
비록 후보다 14개월 뒤에 태어난 데 불과하지만 리창춘은 '제 5세대' 최고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지린성에서 태어나
리창춘은 1944년 2월 조선족이 많이 사는 지린(吉林)성 지린시에서 수도공사에 다니는 평범한 부모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원적(原籍)이 그 곳일 뿐 실제 출생지는 랴오닝 성의 다롄시라는 주장도 있다.
1966년 동북지방의 명문 하얼빈(哈爾濱)공대를 졸업했으며 전공은 전기공정이었다. 하지만 직장을 배정 받지 못해 졸업 후 2년 동안 학교에서 대기하는 불우한 시기를 경험한다.
1968년 선양시 전기배선 기술원 자리를 얻어 일하다가 75년에 선양시 전기공업사 부주임으로 승진했으며 이후 1980년까지 선양시 전기설비 공사 부경리, 당 부서기를 역임한다. 1980~81년에는 선양시 전기설비공업공사 경리겸 전기공업국 부국장을 지냈다.
1982년에 선양시 부시장 겸 경제위원회 주임에 임명되었으며 1983년에는 선양시 당서기 겸 시장으로 선출돼 1986년까지 일했다. 1986년 랴오닝 성장 대행이 된 그는 1988년에 랴오닝 성 부서기로 선출되고 대행 꼬리를 뗀다.
1990년 7월 허난성 성장 대행으로 전임하고 그 해 11월에는 성 부서기도 겸임한다. 1991년 7월 허난성 성장에 취임했으며 이후 성서기로 승진했고 1997년에 정치국에 진입했다. 97년 말 광둥성 서기로 전임해 오늘에 이르렀다. <차이나 워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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