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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凸透镜] ‘두 개의 한국’에서 밑줄을 그어야 할 부분은
“(아웅산) 폭탄테러가 발생하기 바로 전날인 1983년 10월 8일 워싱턴 정부는 중국 외교관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놀라운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북한이 사상 처음으로 미국 측 제안을 받아들여 한반도에서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한 · 미국의 ‘3자회담’을 제의해 온 것이다..
이는 남한을 대화 상대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것이었으며, 북한 정부로서는 오랫동안 견지해온 기존 대외정책을 포기하고 새로운 외교 정책을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 덩샤오핑은 이처럼 평양정부가 자신을 통해서 미국에 협상을 제안한 바로 다음날 폭탄 테러를 자행했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그 후 몇 주 동안 덩샤오핑은 북한 관리의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
또한 중국 관영통신은 폭탄테러 관련성을 전면 부인하는 북한의 성명서를 전면 받아들이지 않고 미얀마 정부의 공식적인 비난과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었다. “
돈 오버더퍼(Don Oberdorfer),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 도서출판 길산(경기 고양 2003.5.7.) 227, 228쪽
"요즘 가장 뜨는 남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칼부림 피습 상처 치료를 위해 입원한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워싱턴포스트 도쿄 특파원을 지낸 돈 오버더프(현 존스 홉킨스 대학 교수)의 '두 개의 한국'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한다.
앞의 인용문은 2003년 8월1일 차이나워치 '서중일적(書中一滴)' 코너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필자가 400쪽에 가까운 적지 않은 분량의 책에서 이 대목에 밑줄을 그은 것은 이 사실을 오버더프의 증언을 통해 처음 접한 것이었고 테러가 완벽하게 성공했을 때 있을 수 있는 한국의 보복 응징을 두 '고래'를 이용해 '헤지(hedge)' 하려는 북한의 절묘하고 교활한 꼼수 때문이었다.
덩샤오핑은 북한의 수를 간파했다. 덩은 분노를 표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덩이 결단한 한중 수교에는 북한의 불장난으로 또다시 한반도 수렁에 빠져들지 않기 위한 '헤지' 목적도 담겨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아웅산 테러를 앞두고 두 고래를 대담하게 농락한 북한은 9년 뒤 '교차 승인'이 아닌 '비대칭 수교'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미 군사 훈련 반대"라는 북한의 주장과 동일한 구호와 함께 칼부림 공격을 받았던 리퍼트로서는 이 아웅산 테러 관련 대목을 주의 깊게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전략'하에서 한미 동맹의 미래 청사진을 그려야 할 과제를 안은 리퍼트가 이 책에서 더 굵게 밑줄을 그어야 할 대목은 '미국의 3차례 배반' 지적이다.
오버더프는 미국이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에서 조선이 부당한 공격을 받으면 개입, 거중 조정하기로 한 약속과는 달리 1905년 위기에 빠진 대한제국을 저버렸다고 꼬집었다.
러일전쟁에서 승자와 패자도 기진맥진한 가운데 중재자로 나선 미국은 포츠머스 강화 조약 체결에 앞서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맞바꾸었다.
이것이 오버더프가 지적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번째 배반이다.
두 번째 배반은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일어난 한국 민족의 3·1 운동에 대한 정치공학적인 철저한 외면이었다(7일로 50주년을 맞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참정권 획득을 위한 셀마 행진은 3·1 운동의 비폭력 평화적 저항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오버더프가 거론한 3번째 배반은 중국 장제스가 참여한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고서 소련 스탈린과의 얄타 회담에선 한반도를 분할 군사 점령하기로 밀약한 것이다.
세 번의 배반을 관통하는 것은 '일본 중시'다. 이런 관점에서 리퍼트의 피습으로 일단 수면 아래로 잠겼으나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장관, 부장관에 이어 국무부 서열 3위인 셔먼 차관은 지난달 27일 워싱턴 카네기 국제연구원 세미나에서 동북아 과거에 대한 각국의 대응과 관련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을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한국과 중국은 2차 세계대전의 소위 '위안부 여성'과 관련해 일본과 다퉈왔다. 역사교과서 내용 및 심지어 해역 명칭에 이르기까지 의견 불합치가 있는데 이는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일이나 좌절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민족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셔먼은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미국 기존 시각의 '재균형'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올해 종전 70주년을 맞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이른바 '아베 담화'에 대한 '헤지'이다.
이를 두고 셔먼의 화법을 빌려 말하자면 "미국의 전략적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좌절감을 준다"이다.
'굴기하는 중국'과 상대적으로 날로 위축하는 일본 간 균형은 '일본으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Japan)'이 된다.
그러나 지정학적 균형의 동전 다른 면은 가해자 편들기와 역사 부정에 대한 옹호다. 일본 아베 정권이 진솔한 반성과 사과에서 벗어나려 하고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아베의 논리에 따르면 독일의 지속적인 침략 반성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멈추지 않는 자학 행위가 된다.
셔먼의 발언은 일본군 위안부를 "성 노예"로 표현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한국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표명한 입장과도 궤를 달리한다.
미국 재균형 전략의 '셔먼 버전'은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를 스스로 부정했던 1919년의 미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4번째 배반'의 유혹에 솔깃해서는 안 된다.과거와는 다른 한국이 결코 '4번째의 배반'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10일 퇴원하는 리퍼트 대사는 미국이 3번씩 한국을 '배신'한 기억을 한국인이 새기고 있다는 오버더프의 지적을 기억해야 한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간 한층 안정적인 균형을 이루려면 '한국으로 중심축 이동(Pivot to Korea)'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공학적 재균형 전략을 '셀마 행진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재재균형(Re-rebalancing)'해야 한다.
"같이 갑시다."
<盲瞰圖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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