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1/10/26 01:26



[廣角鏡] 아베 신조의 ‘어게인 기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국 방문에 앞서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가 1957년 총리 신분으로 방미했을 때 미국 하원에서 행한 연설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한다.

기시는 종전 전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1932~1945)에서 산업부 차관과 총무처 차장을 역임하면서 만주국 산업계를 지배한 만주국의 실질적인 '최고 경영자'였다. 그는 1940년 일본에 돌아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에서 상공대신을 지냈다.

기시는 패색이 짙어진 1944년에는 군수 부문의 2인자로서 무모하게 전쟁 강행을 주장하는 도조와 불화, 도조 내각이 붕괴하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료 출신으로 군부 출신 총리에게 정치적 패배를 안겼다는 점에서 정치 책사로서 면모를 보여주었다 할 것이다.

종전 후에는 도조와 마찬가지로 A급 전범으로 갇혔다. 그러나 그는 도조 등 7명의 A급 전범이 1948년 12월 23일 교수형으로 처형된 바로 다음날 크리스마스 이브에 기소되지 않은 채 풀려난 A급 전범 19명 속에 포함됐다.

이후 경제계를 거쳐 정계로 진출, 1955년 보수 정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을 합친 자민당을 탄생시켜 자민당 장기 집권을 연 이른바 '55년 체제'의 막을 여는 데 주역이었다.

1957년에는 총리에 올라 1960년까지 재임했다. 미·일 안보조약
비준을 강행했고 그 때문에 총리직을 사임해야 했다.

이런 굴곡 많고 복잡한 이력 때문에 그에게는 '쇼와(昭和) 요괴'라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별명이 붙어 다녔다.

기시는 태평양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때에 미국 의사당 단상에서 전쟁의 반성과 사죄의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미국의 전후 경제지원에 감사를 표하고 반공을 내세우며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 될 것을 약속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을 각각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사이에 냉전이 첨예한 시기였다. 미국은 공산주의 팽창에 롤백 정책을 펴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유럽보다도 아시아에서 미국의 국제 전략적 상황은 불리했다. 한반도와 대만해협에서 양 진영의 비대칭적 군사적 대립은 미국의 군사력으로 불안한 균형을 가까스레 맞추는 상황이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공산 세력의 공세에 바짝 긴장하는 처지였다. 그 불안감이 '도미노 이론'으로 표현됐다.

공산권에 속하지 않은 아시아 대국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공산 중국과 손을 잡고 비동맹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아시아의 전략적 상황이 이러하니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의회도 기시가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괴뢰국 만주국의 실질적 경영자였고 A급 전범자였던 '과거' 경력에 눈을 감았다.

기시의 방미는 기시가 미국 정치인에게 일본의 전략적 '미래' 가치를 재인식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시곗바늘을 다시 그 58년 뒤의 오늘로 돌려 보자.

3월 미국은 경제적 파워게임에서 '도미노 이론'이 구현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 참여 여부를 놓고 아시아 주요 국가가 결정을 미루는 가운데 유럽의 영국이 충격적 가입 선언을 했다. 영국에 이어 독일과 프랑스도 가입을 신청했다. 이로써 둑이 무너졌다.

좌고우면하던 한국에 이어 호주마저 가입 대열의 막차를 탔다. AIIB 참여국 수는 50을 크게 넘어섰다. 이는 글로벌 경제 파워 지형도의 '리밸런싱(Rebalancing)'이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저 미국'에 캐나다와 함께 '부르터스'가 되지 않은 일본의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 정계는 여야 할 것 없이 '굴기((崛起)'를 유감없이 글로벌 무대에서 과시한 중국을 견제할 '최대 우방'의 지도자로 아베를 맞았다.

의회를 장악한 야당 공화당은 아베에게 '붉은 카펫'을 깔아주었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인 상하 양원 합동 회의 연설 기회를 안겨 준 것이다.

여당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의 군사협력 대상을 이전의 주변 지역에서 세계 전역으로 확대하는데 합의함으로써 아베의 '보통 국가론'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빚는 센카쿠 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사태가 발생하면 일본 편을 들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밝혔다.

오바마는 아베의 '보통국가론' 포장 뒤에 '군사대국화'가 도사리고 있다는 과거 침략 피해국의 우려와 경계감은 "주변국의 주권을 존중"이라는 표현으로 인색하게 배려했을 뿐이다.

오바마와 아베의 공동 성명에서 과거사 반성과 침략에 대한 사죄에 관한 언급은 빠져 있었다. 일본의 아킬레스건을 확실하게 가려준 셈이다.

58년 전 기시는 과거를 외면하면서 과거로 돌아갔다.

기시는 태평양 전쟁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미래'라는 포장 안에 러일전쟁 당시 대륙국가 러시아의 팽창에 해양국가 미국과 영국이 공통으로 갖지 않을 수 없었던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환기했다.

아베도 외조부 기시의 이런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워싱턴에는 일본이 보내 퍼뜨린 벚꽃이 지금 한창일 것이다. 미국과 일본 간 새로운 밀월 시대를 축하하는데 제격일 것이다.

하지만 벚꽃은 '벚꽃처럼 진다'. 한순간 비바람으로 어제의 화려한 모습은 오늘 바로 사라질 수 있다. 진정성과 토대가 단단하지 못하면 '허니문'은 순식간에 '비터문'이 된다. <盲瞰圖子>

2015/04/2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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