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1/20 21:20



[今天歷史-12월12일] 西安사변, 毛 鄧을 당정요직 기용

중국 군구 개편, 한국 12·12 쿠데타,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북한 장성택 처형

12월 12일에는 역사적으로 유난히 군 관련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중국 역사의 향방을 가른 시안사변(西安事變)이 일어났으며 군구 개편도 이 날 이루어졌고 해방군 내 린뱌오(林彪)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덩샤오핑(鄧小平)이 재기용된 것도 바로 이 날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서도 이날 12 · 12 쿠데타가 일어났다. 또 북한은 이날 (2012년 12월 12일) 여러 차례 실패 끝에 진일보 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성공시켰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곰모부이며 당 행정부장으로서 북한 제2인자가 처형됏다.


1936년 12월 12일 중국 국민정부 국민 혁명군 동북군(東北軍)의 장샤오량(張學良)과 17로군의 양후청(楊虎城)이 산시(陝西)와 간쑤(甘肅)성 일대의 홍군토벌을 독려하기 위해 시안(西安)에 온 장제스(蔣介石)일행을 연금했다.

이 것이 바로 ‘시안사변’ 혹은 ‘쌍십이(雙十二)사변’으로 불리는 사건이다.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 장샤오량과 양후청은 중국 공산당의 항일 민족통일전선 정책과 중국 국민의 항일운동의 영향을 받아 장제스에게 연공항일(聯共抗日)로 정책을 전환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장제스는 ‘선내전 후항일’이란 슬로건 아래 장시 (江西) 소비에트에서 장정(長征)을 거쳐 서북 지구로 쫓겨온 공산당 세력의 완전 섬멸정책(초공(剿共))을 계속할 방침을 굽히지 않는다.

장쉐량의 동북군은 장제스의 북벌이 있기 전까지 동북 지역, 즉 당시 만주의 군벌 주력군이었다.그들은 1931년 일본의 만주 침략으로 자신들의 근거지에서 밀려 나와야 햇다. 이들 동북군은 당연히 일본 침략군과 맞서 싸워 고토 회복을 염원했다.

장과 양의 군대가 공산당 토벌에 미온적이자 장제스는 자신의 직계부대를 허베이(河北)성과 산시(陝西)성 변경지역으로 진출시켰다. 장과 양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연후 12월 4일 장제스는 비행기를 타고 시안으로 와 장과 양에게 공산당 토벌 작전을 벌일 것을 독려했다.

12월 7일 장쉐량은 화청지(華淸池)에 머무르고 있던 장제스를 찾아가 내전을 정지하고 일치단결하여 일본과 싸울 것을 건의했으나 장제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9일 시위학생들 앞에서 장쉐량은 학생들의 애국심에 (말이 아닌)'사실'로서 답하겠다고 말해 시안사변을 일으킬 결심을 은연중 시사했다.

마침내 12일 장쉐량과 양후청은 장제스를 화청지에 연금하고 천청(陳誠) 등 10여 명을 구금하는 시안사변을 일으킨다.

이와 함께 장쉐량과 양후청은 공산당의 홍군을토벌하기위해 설치한 서북초비총부(西北剿匪總部)를 해체하고 항일연군 서북임시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장쉐량은 이 군사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난징(南京) 국민 정부 개조, 내전정지, 공동항일, 민주주의 실행을 촉구하는 전문을 전국에 발송하였다.

12월 16일 난징 정부는 장쉐량과 양후청을 토벌하기로 결정하고 허잉친(何應欽) 총사령관에 임명하였다.

장제스의 최대 정적인 왕징웨이(汪精衛)는 이 기회를 이용, 허잉친과 손을 잡고 국민정부의 최고 권력을 장악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장제스의 안위는 부차적인 문제였고 오히려 희생을 바라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 공산당은 저우언라이(周恩來)와 예젠잉(葉劍英)을 16일 시안으로 파견하였다.

한편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과 처남 쑹즈원(宋子文)이 장의 호주인 정치고문 루이나(瑞納)를 대동하고 22일 시안으로 날아왔다.

양측의 협상과 쑹메이링의 설득으로 완강하게 버티던 장제스는 24일 공산당과 정전하고 함께 항일투쟁에 나설 것과 정치범을 석방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서가 아닌 구두 약속이었다.

25일 풀려난 장제스는 난징으로 귀환했으며 시안사변을 군사반란이 아닌 ‘병간(兵諫 : 군대를 동원한 간쟁행위)’이라고 주장했던 장쉐량은 장을 따라 함께 난징으로 갔다.

장제스는 약속한 바를 지켰다. 하지만 '반란자'에 대한 처벌도 확실하게 했다. 장쉐량을 재판에 회부 반역죄로 사형판결을 받게 한뒤 곧바로 감형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장쉐량의 반세기 넘는 억류생활이 시작되었다. 장제스가 대만으로 철수한 이후에도 계속된 이 연금은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蔣經國) 이 사망(1988년)한 이후에서야 풀렸다.

장제스-장징궈 부자가 시안사변을 얼마나 통한스럽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장제스 말년에 장쉐량은 그에게 시계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 답례는 낚시대였다. ‘이제 시간이 다 된 것이 아니냐’는 장쉐량의 석방 요청에 ‘계속 낚시나 하게’라는 답변인 셈이다.

장제스의 석방에 강경히 반대하고 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양후청은 국민정부가 대만으로 철수하기 전 비밀리에 처형됐다.

장쉐량과 양후청의 이 시안사변은 제2차 국공합작을 통해 공산군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중국 공산화는 이 시안사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1973년 = 마오쩌둥이 정치국 회의에서 8대 군구 사령관의 상호교대와 덩샤오핑의 군사위원 및 정치국위원 임명을 제안했다.

마오는 이 회의에서 “정치국이 정치를 논하지 않고 군사위가 군 문제를 논하지 않는 현상은 바뀌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국 각 대군구 사령관의 상호 교대를 제안하면서 “한 개인이 한 지방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마오는 덩샤오핑을 “부드러운 가운데 강함이 도사려 있고(柔中寓剛), 솜 속에 바늘을 감추고 있으며(棉裡藏針), 겉으로는 부드러운 인상이나 속에는 강철공장이 들어서 있다”고 평했다.

1954년 = 중공중앙 군사위 확대회의에서 병역제, 군계급제, 군봉급제 및 대군구 개편안이 결정되었다.

이 대군구개편안에 따라 동북, 화북, 서북, 화동, 중남, 서남 등 6개 군구가 선양, 베이징, 지난(濟南), 난징(南京), 광저우(廣州), 우한(武漢), 청두(成都), 쿤밍(昆明), 란저우(蘭州), 신장(新疆), 네이멍구(內蒙古), 시창(西藏) 등 12개 대군구로 개편되었다.

12대군구는 1956년 푸저우(福州)군구가 추가되어 13대군구가 되었고 1967년 5월 과 1969년 12월 네이멍구 군구와 시창 군구가 각각 성군구가 되어 베이징 군구와 청두 군구 산하로 편입되는 변화를 거쳤다 현재는 7대 군구 체제다. 2016년 부터는 7대 군구를 대체한 5대 전략구(戰略區)를 출범시킬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대군구 개편은 시진핑(習近平) 현 지도부 군 개혁의 핵심으로 그 목표는 인민해방군을 육군 중심 체제에서 서방식 통합작전 체제, 육·해·공이 엇비슷한 전력을 갖추는 체제로
전환하려는데 있다.
군 기관지 해방군보(解放軍報)는 앞서 현재 7대 군구와 4대 총부( 총정치부,, 총참모부, 총후근부, 총장비부) 체제가 상층 지휘부에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당의 군대에 대한 절대적인 지휘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같은 군 개편은 홍군 창설 후 국공 내전 말기 이루어진 4개 야전사체제, 공산 정권 수립 후 의 대군구 체제까지 변함 없이 지켜 온 지역에근거한 군 체제에 대한 '질적 변화'라는 의미를부여할 수 있다.

한국사 속의 오늘

한국 전두환 보안 사령관이 주도하는 군사 쿠데타가 발생,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체포했다(1979). 12.12 사태로 불리는 이 쿠데타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뒤 정국 불안 상태를 초래한 권력 공백은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에 의해 메워졌다.

북한은 은하로켓 3호를 발사 인공위성체를 지구 궤도 위에 올려 놓았다(2012). 북한은 은하 로켓에 대해 인공위성 발사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이 실험은 핵 공격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이었다.지구 궤도에 진입한 인공위성체는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못한 사실이 인공위성 발사체라는 주장이거짓이었음을 뒷받침한다. 이로부터 3개월 뒤인 2013년 2월 12일 북한은 3차 핵 실험을 단행햇다.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이며 당 행정부장을 맡아 북한 권력 2인자로 군림햇던 장성택이 처형됏다(2013).

2015/12/12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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