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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is] 도널드 트럼프의 ‘타이완 카드’
전두환 정권이 집권하던 1980년대 초반 한국일보 조순환 논설위원은 한국일보에 매주 한 차례 '세계는 요즈음' 이란 칼럼 명으로 국제문제 분석 기명 칼럼을 인기리에 연재했다.
국제문제 기사 (그때는 외신 기사로 불렀다) 에 대한 가독성이 아주 낮은 시절이었지만 조순환 위원의 그 칼럼은 높은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비슷한 시기 KBS 1TV는 '요즘 평양에선'이란, 김정일을 '뽀글머리 천방지축 왕세자'로 희화한반공 드라마를 인기리에 방영했다. 서로 비슷한 제목에 어느 쪽이 원조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드라마 타이틀은 아마도 조순환 위원의 칼럼명을 패러디 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조순환 위원 자신도 1988년 국회의원에 첫 출마하면서 자신을 알리는 캐치프레이즈로 출마 지역구인 서울 송파구와 칼럼명을 짜깁기 한 '송파는 요즈음'을 사용했다. .
그런 조순환 칼럼 중 하나의 컷 제목이 '중국 카드'였는데 밤사이 '중공 카드'로 바뀌었다.
당시는 공산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기 훨씬 전이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중국을 '중국공산당'의 약자인 '중공'으로 표기, 지칭하는 것이 관례였다. 한편
대만의 중화민국에 대해서는 정부 문건 등 공식 문서에서는 '자유중국'이라고 약칭하기는 하였으나 '대만' 이라는 호칭이 대세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조순환 위원은 칼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중공' 아닌 '중국'으로 썼다. 조순환 위원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외신부장을 지냈는데 그때 붙여진 별명이 '조택동' 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전 상황 보다는 중국 관련 기사에 더 주목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미중 화해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차이나 카드'를 우리식 대로 '중공 카드'로 번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편집자는 컷 제목으로 '중국'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니 기명 칼럼의 경우 필자가 제목을 직접 달아 넘기는 경우가 많았으니 조 위원이 정한대로 따랐을 수도 있다.
지방판을 받아 본 문공부의 홍보조정실이 문제를 삼자 야근 편집자는 본문은 건드릴 수 없으니 컷 제목만 바꾼 것이었다.
이 같은 '홍조실의 '마사지'가 필자로 하여금 30여 년이 지난 후까지도 그 칼럼을 기억의 열람 서가 맨 앞자리에 머물도록 만들었다.
당시 선배 편집자의 그 야사(夜事)에 관한 설왕설래를 한 귓전에 흘리면서 문득 떠올린 것은 후즈(胡適)의 '명교(名敎)' 란 제목을 단 시사평론 수필이었다.
백화문 제창 등 중국 신문화 운동의 선구자 후즈 박사는 국민당이 대륙을 지배하던 시기에 쓴 이 평론에서 중국 사회가 실질이 아닌 그저 허울뿐인 허명에 집착하고 있는 점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중국 사회는 공교(孔敎: 유교) 도 아니고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명교(名敎)'에 의해 지배된다"라고 썼다. 이름 , 명칭, 호칭 등에 목숨을 건다는 지적이었다.
조순환 칼럼의 '중국 카드' 해프닝이 있은지 그리 얼마 안 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중국과의 수교는 먼 후일의 일이었지만 중국과의 실질적인 인적 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1996년 3월 중국의 대만 항구를 겨냥한 미사일 발사 훈련으로 인해 양안 군사충돌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대만 현지에 출장가 주 타이페이 한국 대표처( 1992년 중국과의 수교로 대사관이 폐쇄되어 대표처가 그 기능을 하엿다)에서 우리 외교관으로부터 상황에 관한 브리핑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외교관은 필자가 베이징 특파원으로 주재할 때 주중대사관에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브리핑 내내 대륙 지역을 '중공'으로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는 물론 베이징에 있을 때는 양안을 각각 중국과 대만으로 불렀다.
대만에 주재하는 한국 외교관으로서 주재국을 의식해서 중국이 아닌 이곳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중공'으로 지칭하는 것이 이해됐지만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이젠 낯선 '중공'을 고집스레 지칭하니 어색했다.
후즈가 수십 년 전 갈파한 대로 중국 양안 모두에서는 '명교'가 지배하고 있고 한국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시진핑( 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9일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라고 강력 요구했다. 시기는 트럼프의 취임식 바로 하루 전이고 발언 장소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유럽본부였다.
이로써 중국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심각하고 의미 있는 첫 수를 교환했다.
트럼프가 지난해 12월2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전화회담을 하여 파문을 일으킨지 1개월17일 만이다. 대만을 '투명 인간' 취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대중 협상애서 지렛대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한지 6일 뒤다.
시진핑은 장고의 응수 첫 착점부터 모양새도 상당히 살핀 것 같다. 트럼프의 취임식 바로 하루 전에 유엔 유럽본부를 무대로 삼음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잡아끌었다.
그동안 필자는 트럼프의 이 도발적인 양안정책을 두고 '투 차이나 카드‘란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트럼프의 정책이 지닌 파천황적이며 신전 파괴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타이완 카드'가 가장 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 대륙과 대만 섬이라는 넓이 차이 때문이 아니다. 대만 정부가 국민당 집권 시절처럼 통일을 지향할 때라면 트럼프의 양안 정책에 '투 차이나'라는 용어를 붙일 수 있다.
하지만 대만 차이잉원 현 정부의 집권당 민진당의 강령은 분리독립이다.
민진당이 꿈꾸는 '대만공화국'에게 남북한 경우처럼 '투 차이나'의 하나라는 위상을 부여할 수 없다. 분리된 대만공화국은 중국 민족이 지배층인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만 독립론자들은 '하나의 중국'은 물론 '두 개의 중국'도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다.
국민당 출신 총통이지만 민진당 집권의 보이는 '손 역할을 했던 리덩후이(李登輝)는 중국과 대만은 별개의 독립 국가라는 양국론(兩國論)을 주창했다.
첫 민진당 출신 총통인 천수이볜(陳水扁)은 양안 양측에 별개의 다른 국가가 있다는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을 주장했다.
이들은 '하나의 중국과 ‘하나의 대만 (一中一臺)'라는 용어를 내세운다. 대만은 중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만을 정치적 실체로 인정하는 것을 중국과의 협상 지렛대로 사용하기 위해 내놓은 트럼프의 양안 정책을 '투 차이나 카드'로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중국과 한국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는 '명교'의 지침에 충실하게 되면 '타이완 카드' 가 한층 적절하다.
<盲瞰圖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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