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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is] ‘밀사 면허’ 류야저우의 세난(說難)
" 정치 공작은 무용지물" "매우 어리석은 생각"
1990년대 초반 한중 간 또 양안간 밀사 역할을 하였던 중국의 작가이자 군인인 류야저우(劉亞洲)가 올해 초 군문을 떠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금천역사 6월21일자'의 전 국가주석 리셴녠李先念) 대목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다.
명실상부한 문무겸전이라 할 수 있는 류야저우는 목수에서 출발 국가주석 직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리셴녠의 셋째 사위다.
그는 장인의 후광과 작가라는 신분을 활용, 한중 수교전 양국 수뇌부 소통의 밀사 역할을 하면서 한중 수교가 조속히 이루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던 해인 1992년 4월에는 대만을 비밀리에 방문하기도 했다.
그의 대만 방문 7 개월 지난 같은 해 11월에 이른바 '92 공식(九二共識)'이 성사됐고 대만 방문 만 1년 뒤인 다음해 4월 28일에는 양안 반관 양안 접촉 창구인 해협회(海協會 : 海峽兩岸關係協會)와 해기회(海基會 : 海峽交流基金會) 대표 간 싱가포르 회담이 이루어졌다.
'92 공식'은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양안 각자가 이를 독자적으로 해석 적용한다'는데 합의한 것이다. 싱가포르 양안 회담은 대표자의 성을 따 '왕구(汪辜) 회담'으로 불리는데 국공 내전이후 양안 간 첫 공식적 , 공개적 접촉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류야저우는 인민해방군 공군 현역 군인으로서 이처럼 대단히 중요한 외교 문제에서 핵심적이며 결정적 역할을 했기에 미국 알렉산더 헤이그를 연상시틴다.
헤이그는 헨리 키신저 박사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안보담당 특별 보좌관으로 비밀 외교를 펼칠 때 '키신저의 키신저'로 불렸던 현역 군인 신분의 외교 브레인이었다.
류야저우는 베일속의 밀사는 아니었다. 확인 요구를 받으면 즉각 부인되기는 하였지만 알 만한 사람은 알았다. 이쯤 되면 보리스 옐친에 붙여졌던 '허가받은 반골'을 빗대 '허가받은 밀사'라고 불러봄직하다.
또한 007 제임스 본드의 앞에 항상 붙여지는 '살인 면허'라는 수식어를 본따 '밀사 면허'라는 타이틀로 수식해 볼만한 이채로운 존재였다.
류야저우는 나토 사령관을 지냈고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했으며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도 나섰던 헤이그에 비견할 정도로 출세가도를 달리지는 못햇다다.
그러나 인민해방군 공군 병과에서 최고 계급인 상장에까지 올랐고 국방대학의 정치위원을 맡았다.
그의 면직 사실을 알고 나이를 살펴보니 1952년생으로 65세였다. 올해정년이다. 하지만 중화권 언론은 "정년을 채우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면직"이라고 표현했다.
대개 경우 인민해방군의 인사는 후임자의 동정 보도를 통해 전임자의 퇴임이 알려지는 식으로 확인되는데 류야저우의 면직은 해가 바뀌자마자 이루어졌다.
순리적이 아닌 '사건'이었다. '사건의 배후에는 여자가 잇다'란 말이 류야저우에게도 적용됐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博迅)은 류야저우의 면직 한 달 뒤인 1월 31일자에서 그의 낙마를 초래한 '팜므 파탈'로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중국 출신 여배우를 지목했다.
바이링(白靈)이란 이름의 이 배우는 류야저우가 책임을 맡아 2016년 CCTV 군사채널이 제작한 장정(長征) 80 주년기념 프로그램 '세계를 뒤흔든 장정'에 주연으로 출연했다가 '부적절한 연기'로 중국 네티즌의 비난 봇물의 타깃이 되었다.
급기야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 주석의 격분을 사서 결국 그를 발탁하여 출연시킨 류야저우에까지 불똥이 튀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류야저우와 바이링은 오랜 연인관계라고 보쉰은 적고있다. 문제가 된 신은 인민해방군 군복을 입은 바이링이 장정 깃발을 뒤따라가면서 교태를 부리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는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즉 공산 중국이 '성전'으로 여기는 '장정'을 기념하면서 숙연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의 전력 때문이다. 바이링은 쓰촨성 군사 지역 가무단 출신으로 군 부대에서 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가서 배우로 활동했다고 한다.
바이링은 미국에서 몇 편의 성인 영화에 출연했고 TV에 나와서는 중국에서 군 부대에서 근무할 때 성폭행을 당해 임신하여 낙태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당시에도 인민해방군의 치부를 외국에 나가 드러냈다며 비난의 표적이 됐다.
2016년 9월~10월 방영된 기념 프로그램에서 바이링이 교태를 부리는 모습을 본 중국 네티즌은 벌떼처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인민해방군을 모욕했다"라는 문자 폭탄을 날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시진핑이 조사를 지시, 장정 기념 프로그램의 최고 책임자가 류야저우이고 그가 직접 바이링을 발탁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정년 일자를 불과 얼마 남기지 않고 '불명예 면직'ㄹ 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보쉰은 이는 표면적 구실이라는 설명이다. 류야저우는 이 사건이 문제되기 전 "정치 공작은 무용지물"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시진핑이 이를 듣고 "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질책했으며 이것이 류야저우의 면직의 진정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류야저우가 말한 '정치 공작'은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정치 모략'이 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의 발언은 군내에서 공산주의 사상 교육과 감시 그리고실병 지휘관이 아닌 정치 장교가 인사와 작전 까지 통제하는 시스템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지적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군대는 구소련 의 붉은 군대(적군<赤軍>) 조직 예를 쫓아 군 지휘관 외에 당성이 강한 공산당원인 정치장교를 두어 사상 교육과 인사를 담당하는 한편 실병 지휘관을 통제하는 2원 지도 구조로 되어 있다.
이들 정치장교는 덩샤오핑 경우에서 보듯 작전 지휘까지 관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공내전 당시 덩샤오핑은 제2야전사 정치위원으로 사령관인 류보청(劉伯承)과 함께 작전을 이끌었다.
덩샤오핑은 또 1980년대 초에는 인민해방군의 실병 최고 책임자인 참모총장을 겸하기도 했다.
류야저우도 정치장교였다. 그가 공군 소속이기는 하나 조종사로 활약했다는 기록을 본적이 없다. 선전과 사상 교육 그리고 인사 등 분야에서 활약했다. 그의 최종 직책도 국방대학 정치위원이었다.
시진핑은 2016년 2월 인민해방군에 질적 변화를 단행했다. 지상군 중심의 7대 군구 체제를 육해공군이 각기 통합된 5대 전구 체제로 바꾸었고 국공네전 때부터 지속돼 온 총부 체제를 해체했다.
이로써 군권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중앙군사위원회 바로 밑에서 인민해방군의 최고 지휘부를 구성하는 총참모부, 총정치부, 총후근부와 총장비부 등 4총부가 역사책 속으로 사라졌다. 이를 대체한 것은 중앙 군사위 직속의 15개 전문 부서다.
이는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권 국가에서 지속돼온 실병 지휘관과 정치장교가 군을 지휘통제 감독하는 2원체제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류야저우가 '정치공작은 무용지물'이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극적 변화를 정확하게 짚은 것일 수 있다. 그가 정치 장교였기에 이처럼 총대를 멘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붉은 군대'가 아니라 '굴기 중국'의 전문화하고 첨단화한 강군이 되어야 한다는 주문인 것이다.
그런데 시진핑의 류야저우의 발언에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는 삼국지의 조조가 양수가 조조의 계륵' 발언을을 후퇴로 해석한 것을 문제 삼아 참수한 것을 연상시킨다. 조조가 양수의 재능에 두려움을 느낀 것처럼 시진핑이 류야저우가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챈 것에 불안과 불쾌감을 느꼈을 수 있다.
마오쩌둥을 지향하는 시진핑으로서는 마오의 군사전략을 사실상 폐기하는 자신의 군 개편 조치에 군부의 반응에 무척 민감한 처지다.
류야저우가 이를 까발리는 발언을 하자 일단 이를 무시하는 질책을 한 뒤 서둘러 계급장을 떼버린 것일 수도 있다.
류야저우는 기율검사위 서기 왕치산과 마찬가지로 공산 혁명원로의 사위라는 점에서 1.5 태자당이다.
그러나 류야저우는 시진핑의 왼팔인 왕치산과는 달리 장쩌민과 리펑 쪽에 가깝다. 시진핑으로서는 경계해야 할 인물이다.
필자는 한중수교 이전 우리나라에서 번역 소개된 류야저우의 '천안문 광장'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은 '기실(記實) 문학'으로 요즘 유행하는 '팩션장르의 책이었다.
그 책은 사실을 기초로 하되 작가적 상상력 다만 적확한 추론에 근거한 상상력이 버무려져 있어 중국 권력 이너서클의 진면목을 파악하게 해주었다.
류야저우는 마오쩌둥을 마오의 고향 친구란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반란 기계'로 규정햇다.
아버지에 대한 반란에서 시작, 나라를 뒤엎었고 나중에는 자신이 세운 나라에까지 반란을 감행했다고 쓰고 있다.
마오쩌둥에ㅔ대한 인물평으로 이처럼 적절한 것은 나는 보지 못했다.마오의 셋째 처 장칭에 대해서는 '증오'란 한 단어로 그의 일생을 압축했다.
뛰어난 권력 관찰자인 류야저우는 자신의 몰락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아마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이 떠올리지 않았을까 다음 인용문은 한비자의 글이다.
"설득이 어려운 것은 남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지식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또 나의 의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언변이 뛰어나기 어렵다는 뜻도 아니다. 또 말을 거리낌 없이 자유자재로 하고 싶은 말을 다하기 어렵다는 뜻도 아니다. 설득의 어려움은 설득하려고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려서 나의 말을 그에게 맞추어야 하는 데 있다.설득해야 할 상대가 명예를 좋아하는데 이익이 많음을 가지고 설득한다면, 절조가 낮고 비천한 자를 만났다 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멀리 할 것이다.설득하려고 하는 상대가 이익을 소중히 여기는데 명예를 높이는 일을 가지고 설득한다, 생각이 없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설득하려고 하는 상대가 속으로는 이득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겉으로는 명예를 높이 여기는 척하는데, 명예를 높이는 일을 가지고 설득하려 하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멀리 할 것이다"
진시황은 한비자의 책을 읽고 탄복하여 그를 불러 들였으나 한비자의 동문수학인 이사가 농간을 부려 옥중에서 죽게 만들었다.
보쉰이 분석한대로 류야저우의 불명예 퇴진이 팜므파탈이 아닌 그의 과거 발언 때문이었다면 그는 '시황제(習皇帝)의 앞에서 '세난'을 돌파하지 못한 오늘의 '한비자'가 된 셈이다.
<盲瞰圖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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