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7/09/22 07:37



[今天動向-7월17일]솔베이지의 노래 vs그 역시 잊히리라

류샤오보(劉曉波)의 유골이 15일 바다에 뿌려졌다.

13일 사망했으니 3일장을 치룬 셈이다.

미망인 류샤(劉霞)가 반대했으나 당국은 함께 임종한 형 류샤오광(劉曉光)의 동의를 얻었다고 밝혔다.

서방에서는 강제화장이 아니냐고 의심의 눈길을 보이고 있으나 중국에서는 화장이 일반적이다.

살아 생전 '태상황'의 위상을 지닌 덩샤오핑(鄧小平)도 중국 인민이 '영원한 총리'로 기리는 저우언라이(周恩來)도 화장했다.

저우의 유골은 중국 전역에 뿌려졌고 덩의 유골은 미망인 줘린(卓琳)과 가족의 손으로 연꽃에 싸여 홍콩 앞 바다 상공에서 뿌려졌다.

미망인 류샤가 매장하거나 묘역을 조성하려 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남편의 동지와 친지가고인을 영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장례를 늦추자며 냉동 안치를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류샤오보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하루라도 빨리 가라앉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서둘러 화장하고 유골을 바다에 뿌리도록 유족을 압박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의 만델라를 희망하며 "살아만 있어 다오"라고 기원한 류샤오보의 동지들이 우려한 대로 그의 죽음으로 중국 당국이 희망한대로 고인은 망각의 늪 속에 급속히 빠져 들어가고 민주화 운동은 '굴러 떨어지는 시지프스의 바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전 세계를 테러 공포로 떨게 한 국제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 라덴도 사살당해 죽은 뒤 수장됐다. 그리고 곧 잊혀졌다.

리비아 국가 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도 반군에 의해 피살된 뒤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은 광활한 사막 모처에 묻혔다. 이제 유엔 단상의 떠버리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미국과 맞장 떴던 사담 후세인도 교수형 후 향리인 티그리트에 매장됐으나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지속적 갈등 속에서도 존재감이 없다.

중국 당국은 '너 또한 잊히리라'라는 확신 속에서 소낙비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판단 아래 류샤오보의 장례절차를 신속하게 집행시켰다.

류샤오보는 고국을 떠나면 어느 누구라도 망각되고 그로 인해 민주화의 불씨마저 사라진다는 신념 아래 수형 생활의 고통을 감수했다.

'민주의 벽 운동' 웨이징성(魏京生), '중국의 사하로프' 팡리즈(方勵之) 그리고 천안문 운동의 세 주역 왕단(王丹), 우얼카이시(吾爾開希) 그리고 차이링(柴玲) 등도 해외로 망명한 뒤 '초원의 한 점 불꽃(星星之火)' 아우라를 잃었다.

류샤오보는 바로 이런 점을 잘 알기에 망명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류샤오보에게는 만델라의 '고통스런 축복'도 구소련의 사하로프에게 주어졌던 도화선 점화의 짧은 기회마저 얻지 못했다.

류샤오보의 죽음으로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식 장에 놓였던 '빈 의자'는 당사자에 의해 영원히 채워지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그 빈 의자가 채워질 날을 염원하며 행사장에 울려 퍼졌던 '솔베이지의 노래'는 여전히 살아있다.

페르귄트가 솔베이지의 품에 안겨 눈을 감듯이 류샤오보는 류샤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류샤오보는 류샤에게 "굳세게 살아라"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류샤는 독일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류샤의 망명 허용 여부에 대해 "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만 말했다.

'망명을 허용하여 망각 속에 빠뜨리자'는 중국 당국의 지금까지는 잘 들어맞았던 반체제인사 ‘안락사’ 처리 원칙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류샤는 이제 중국 민주화의 도래를 염원하는 '솔베이지의 노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죽은' 베니그노 아키노 뒤에 '산' 코라손 아키노가 있었듯이 …….

빈의자와 솔베이지 노래 속에 노벨 평화상 시상식 거행2010/12/11 14:36


<盲瞰圖子>

2017/07/1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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