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7/09/22 07:37



마오쩌둥 만년 가장 신임한 왕하이룽 사망

중국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만년에 가장 신임하던 인물 중 한 명이던 왕하이룽(王海容) 전 외교 부부장이 사망했다고 팽배신문(澎湃新聞)이 10일 보도했다.

신문은 국무원 참사실 발표를 인용해 왕하이룽이 전날 오후 1시 베이징 병원에서 병환 때문에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왕하이룽은 마오쩌둥이 생전에 제일 믿었던 통역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41주기인 9월9일 생을 마쳤다.

마오쩌둥 이종4촌형 왕지판(王季範)의 손녀인 왕하이룽은 친척 관계와 뛰어난 영어 실력에 주목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의 천거로 외교부에 들어왔다.

왕하이룽은 미중화해를 이끌어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방장관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방중 때 마오쩌둥의 영어 통역을 맡으면서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봤다.

또한 왕하이룽은 마오쩌둥이 각국 요인들과 회담하거나 접견할 때도 통역으로 활동했다.

왕하이룽은 특수한 신분과 지도부의 배려로 승승장구하면서 외교부 부부장(차관)까지 올랐다.

문화대혁명 후기 마오쩌둥의 건강이 나빠졌을 당시 부인 장칭(江靑)조차 그를 만나기 힘들었지만 왕하이룽은 마오 지근거리에 있던 극소수의 측근 그룹에 속했다.

마오쩌둥이 생애 막바지에 왕하이룽을 통해 외부에 지시와 명령을 내리면서 그를 매개로 마오의 의중을 탐색하거나 보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마오쩌둥 신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76년 9월9일 마오쩌둥이 죽고 문혁 4인방이 축출 당하자 왕하이룽도 정직 처분에 조사까지 받는 고초를 겪었다.

다만 다행히 문혁파로 분류되지 않아 숙정을 모면한 왕하이룽은 외교부를 떠났지만 당중앙 조직부, 중앙당교 등에서 계속 일했다.

1984년 이후로는 국무원 참사실 부주임으로 부부장급 예우를 받았다. 평생 미혼으로 지냈다.

2017/09/1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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