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7/11/17 23:49



[今天歷史-11월8일] 중국 기자의 날, 16대 개막

2000년 11월 8일 = 공산중국 건국 후 첫 ‘기자의 날’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11월 8일로 ‘기자의 날’을 정한 것은 항일전쟁 기간인 1937년 11월 9일 당시 언론 활동이 가장 활발하였던 상하이(上海)에서 중국 청년 신문공작자협회가 성립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 단체는 현재 중화 전국신문 공작자협회(약칭 중국 기협)의 전신이다.

중국 청년 신문공작자 협회 결성에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중요 역할을 하였으며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이는 언론인을 상대로 한 통일전선 조직 구축 작업이었다.

공산정권 수립 후 정무원은 1949년 12월 23일 기념일과 공휴일을 정하면서 ‘기자의 날’도 포함시켰지만 구체일자를 정하지 않았다.

1999년 9월 18일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기자의 날을 포함한 기념일제정법에 서명하였고 2000년 8월 1일 중국 기협의 건의를 받아들여 11월 8일을 기자의 날로 정한 것이다.

2002년 = 중국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가 개막되었다. 16대를 통해 후진타오(胡錦濤)가 총서기에 선출되는 등 이른바 ‘제4세대’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체제에서 실질적인 권력 핵심 직위인 중앙 군사위 주석 직은 "3세대의 핵심" 장쩌민 전 총서기로부터 인계 받지못햇다. 따라서 후진타오에게는 '4세대의 핵심'이라는 '용어'가 붙여질 수 없엇다.

'핵심'ㅣ라는용어는 좀더 구체적으로는 중국 공산당의 최고의사 결정기구인 중앙위원회의 핵심을 지칭한다. 이 '핵심'이란 말는 덩샤오핑이 1989년 6월 천안문 믽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한 뒤 열린 1989년 6월 말 의 13기 4중전회에서 실각한 자오쯔양의 후임으로 장쩌민 을 선출한 뒤 "1세대의 핵심은 마오쩌둥이엇고 2세대의 핵심은 나였다. 이제 장쩌민이 3세대의 핵심이되어야 한다"라고한 발언에서 비롯됏다. 덩샤오핑은 같은해 11월 13기 5중 전회에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중앙 군사위 주석 직을 장쩌민에게 인계함으로써 일단 명목상에서의 최고 권력의 이원화를 해소햇다.그러나 장쩌민이 명실상부한 '핵심'이된 것은 1997년 2월 덩샤오핑이 사망하고 같은 해 9월 치러진 중국 공산당 15차 당 대회( 15대)에서 최대의 정치적 라이벌 차오스를 중앙위에서 물러나게함으로써 이룩됏다.

후진타오는 2004년 9월 16대 4중전회에서 장쩌민으로부터 중앙 군사위 주석 직을 인계받앗으나 실질적인 군권을 장악하지 못하는어정쩡한 상황에 놓엿다. 그래서 '핵심'이란 용어는 후가 2012년 말 18대에서 당 총서기 직과 중앙 군사위 직에서 물러날때까지 붙여질 수없엇다.

중국 정치 무대에서 시나브로 사라졋던 '핵심'이란 용어는 2016년 10월 말 치러진 18대 6중전회에서 다시 등장햇다 2002년 11월 16대 이후 14년 만의 일이다.

2017/11/0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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