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09/21 02:24



[걸리버記實]<6·12後>핵(혹) 큰 아이 다중(多重) 접시돌리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할아버지를 닮았다.

체형에서는 확실히 '난장이 똥자루'라고 호탕하게 최은희 신상옥 부부 앞에서 스스로 거침없이 말했던 아버지 김정은 국방위원장과는 전혀 다르다.

아버지가 '곁가지'로 낙인찍은 '방랑하는 조선인' 작은 아버지 김평일이 젊은 시절 '김일성 판박이'였던 것에 비하면 '억지 춘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버전의 '젊은 김일성 장군'으로 봐줄만 하다.

코드 넘버 007을 주인공으로 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주연배우를 바꾸어 가며 장수하고 있으나 코드 넘버 0011의 '나폴레옹 솔로' 시리즈는 아주 오래전 스크린에서 퇴출됐다.

김정은이 2016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1년7개월 동안 세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하고 ICBM급 장거리 미사일을 포함, 수십 차례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면서 '벼랑 끝에서 말고삐 잡기(懸崖勒馬)'와 '불장난 하다 스스로 타죽기(玩火自噴)'의 전략적 전술을 절묘하게 구사하던 60대의 아버지 김정일을 넘어서 '과거'로의 역주했을 거듭했다.

1994년 '영변 폭격' 위기일발를 불러일으킨 50대의 김정일, '아웅산 테러'를 주도한 40대의 김정일 그리고 청와대 기습도발을 감행한 북한 앙팡 테리블 그룹의 리더로 부상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던 20대의 김정일을 스쳐지나간 뒤 급기야
6·25 남침 도발을 자행한 30대의 김일성까지 이르렀다. '백 투 더 패스트'의 초압축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 하였다.

2017년말의 김정은은 1950년의 김일성의 무모성을 훌쩍 뛰어넘었다.

1950년 당시 김일성에게는 스탈린의 적극적 부추김에다 작전과 무기의 전폭적 지원과 마오쩌둥의 거듬이 있었으나 2017년 말 시점의 김정은에게는 중국과 러시아도 등을 돌린 상황이었다.

이는 대담한 도박이 아니라 오사마 빈 라덴의 무모한 테러리즘의 따라하기로 간주됐다.

세계는 국가 차원의, 더불어 핵전 차원의 자살폭탄 테러가 터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진주만 기습과 9·11테러 트라우마를 지닌 미국에서 군통수권자 대통령의 입에서 '화염과 분노'라는 의미 심장한 발언이 터져 나왔다.

이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넘어 천수백여년 동안 이라크에서 지속되어온 소수 이슬람 종파 수니파의 스파르타식 지배 체제를 CVID식으로 종결시킨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같은 전쟁을 한반도에서 벌일 각오를 다짐하는 자세로 읽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순간에 김정은은 '혹이 큰 아이'로 수퍼 초압축 조로화 현상을 시작했다. 60대 이후의 '할아버지 김일성'으로 돌변한 것이다.

2016년 1월부터 2017년 12월 말까지 만 2년 동안 70년 간의 시간을 초압축으로 거슬러 시간여행을 했다. 그런데 '백 투 더 퓨처'의 시간 여행은 불과 반 년도 안 걸렸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울트라 초압축 과정이었기에 김정은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는 피카소의 입체파 양식 여인의 초상화 그림보다도 더 기괴하다.

1976년 '미루나무 도끼 만행 유감 표명'과 1994년 '카터와의 대동강 뱃놀이 장면' 속 노회한 할아버지 모습이 어른거리는가 하면 '담대하게 치고 확실하게 빠지는' 2006년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1976년과 1994년 김일성은 '안그런척 했으나 공화당 포드 행정부의 미국과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의 미국에 사실상 고개를 숙였고 1994년 김일성은 중국의 '빌라도 손씻기'에 일단 '핵개발 십자가형'을 공언했다.

2006년 김정일은 7월4일 동시다발 다종 미사일 실험으로 미국의 독립기념절 잔치상에 확실히 재를 뿌렸고 그 3개월 뒤인 10월9일에는 첫 핵실험 으로 중국 건국절 피날레를 뭉개버렸다. 그리고 협상 테이블에 순식간에 가장 먼저 자리잡았다.

'100년간의 원수'와 '수천년 간의.원수', '동시 병진' 맞짱을 뜨겠다는 '태산 명동'을 벌인 뒤 '서일필' 행보였다.

2018년 김정은은 옷바꿔입기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한몸 두 역할 겹치기 출연 코스플레이를 하고 있다.

신년사에서는 양복 차림으로 할아버지 코스플레이를 했는가 하면 문재인 정부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그의 유화 제스처에 호응하자 그후부터는 인민복을 착용하는 아버지 코스플레이를 하였다.

세 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에서 인민복 차림으로 양복 차림의 시진핑과 마주하여 '아버지 코스플레이'를 하였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양복 차림이 아닌 인민복 차림이었다.

시진핑에게는 '중국과의 영원한 혈맹'을 강조하고 트럼프에게는 '우리는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상 연출 정치외교였다.

이처럼 2018년의 김정은은 아주아주 선전을 능란하게 하고 있다. 아니 잘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혹이 큰 아이'의 카리스마는 보이지않고 '난장이 똥자루'의 절묘한 치고 빠지기의 타이밍 포착도 그에게는 없다.

최선희의 핵대결 불사 호언이 김계관의 발언으로 하루밤 천하로 끝난 사실에서 보듯 감독과 연출자 그리고 조연들이 주연배우를 밀치고 무대 중앙을 지배하는 일이 빈번하다.

북한 김씨왕조의 3대 김정은은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공과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과 비견된다.

중동의 햄릿으로 부른 후세인 요르단 국왕은 미국과 아랍권 국가간의 줄타기 외교로 중동의 불바다 속에서 요르단이 피해가도록 만들었다.

시아누크공도 미국과 북베트남 사이에서 양쪽을 모두 봐주는 양면전략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여 베트남전의 화염 속을 비껴나갔다.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은 '중동의 시아누크'였고 시아누크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후세인'이었다.

그러나 전자는 계속 성공을 유지했으나 후자는 베트남전 막바지 순간에 실패했고 그 결과는 캄보디아를 '킬링 필드'로 만드는 것이었다.

후세인은 반대세력에 대해 "나를 쏘아라"하고 담대하게 나가 내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시아누크는 선택을 해야할 순간에 계속 양팔 동시 접시 돌리기 묘기에만 골몰했다. 결국 접시는 떨어져 깨졌고 전쟁 참화 방지와 자시의 권력 유지 둘 다 모두 잃었다.

김정은은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접시 돌리기에 아직까지는 아슬아슬하게 성공을 유지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 전 방북한 세르게이 라브로프를 통해 또 회담 뒤 월드컵 경기 참관을 명목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남을 통해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압박하고 있다.

이제 머리위에도 접시를 돌려야 할 상황이다.

중국은 중국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된다라는 제로섬 선택의 압박을 가하고있고 미국은 싱가포르에서 약속한 바를 실천하라고 중국 못지 않은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공산 베트남처럼 '수천년 원수' 대신 ' 불과 1백년 원수'를 택하라는 것인데 달콤한 유혹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중국과 미국은 '비핵 북한'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이는 현재로서는 김정은 체제가 겨냥하는 공산 북한의 미래가 아니다.

김정은은 할아버지가 뒷 목덜미의 혹을 죽을 때까지 달고 있었던 것처럼 '핵'을 놓지 않으려 한다.

이는 '혹'을 달고 고난도의 '다중 접시 돌리기'를 계속하겠다는 생각인데 시아누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기운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스위프트-버크왈드>`

2018/06/2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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