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07/18 06:10



[어제 오늘 내일] 2018년과 1951년 기시감 그러나 似而非

'차이나 워치'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두 명의 워처들, 말하자면 '워처랜드의 톰과 제리(나이먹고 눈도 어두어져 예전과는 달리 민첩하지 못하고 출연 횟수도 많지 않다. 어쨌든)'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처리하는 일과는 뉴스 쫓기와 당일의 과거 역사 더듬기다.

대개 하루 가장 처음 처리하는 일과인 '금천역사' 코너 당일자를 업데이트하다 보면 먼 옛날 일이 오늘 벌어지는 사태와 같고 오늘이 과거의 판박이 반복인듯한 기시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그런 경향이 '매우 매우' 그리고 '자주 자주' 또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난달 28일(한국시간 29일 새벽) 유엔 안보리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제재 완화를 촉구하는 언론 대상 성명 초안을 제출, 이사회에 회람시켰으나 미국의 시기상조라는 반대로 인해 폐기되었다

유엔 안보리에서 2017년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한 인식과 대응에서 미국에 동조적이었다.

러시아는 인식과 대응에서 중국과 달랐다. 정말 마지 못해 비토권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잔뜩 볼 부은 표정으로 따라가는 자세였다.

그러나 정말 오랜만에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대북 공조를 한 것이다.

1951년 6월23일 소련 유엔대표 야코프 말리크는 한국전 휴전을 제의했다.

신생 마오쩌둥의 공산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숨은 목적에서 탱크 등 막대한 무기와 작전계획까지 만들어 주며 북한의 남침을 지도했던 소련은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북한군이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지대로 쫓기며 붕괴 직전에 놓이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손을 터는 자세였다.

김일성은 마오쩌둥에 구원을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오는 소련의 세계 전략적 고려와 반대되는 입장에서 한국전에 올인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동북 지역 즉 만주가 제정 러시아-> 일본-> 소련으로 이어지며 겪어야 했던 반식민 상태를 막 끝낸 직후에 미국의 위협 하에 놓이게 됐다는 판단에 따라 동료 모두의 반대를 물리치고 압록강을 건너기로 한 것이다.

북한 지원군 사령관으로 최적격자는 동북 지역에서 국민당군을 몰아냈던 린뱌오였지만 그도 병을 핑계로 마오의 결단에 등을 돌렸다.

마오는 할수 없이 우직하고 자신에 충성스러운 동향의 펑더화이로 하여금 중국군 10개 사단 30만 명을 이끌도록 하였다.

중공군이 현해탄까지 밀고나갈 기세로 미군을 몰아붙일 때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은 공산중국이 국공내전 말기 양쯔강을 도하할 때와 똑같은 전략적 우려를 갖고 한반도 전황을 팔장끼고, 그러나 근심스레 지켜 보았다.

한반도 허리에서 전황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스탈린은 움직였다. 유엔에서 휴전 제안을 한 것이다.

상대의 전략적 속셈을 간파한 가운데 마오와 스탈린은 새로운 '오월동주'의 한반도에서 중소 연대를 시작한 것이다. 파탄의 씨앗을 심은 채.

그로부터 67년 닷새 뒤 중국과 소련의 후신 러시아는 비슷한 '오월동주' 식 한반도 에서 연대를 한 것이다.

2018년 원단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시사로부터 시작한 한반도의 해빙 무드는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정점을 찍었다.

1945년 이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화석처럼 단단해져가는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과 남북한 당사국의 역학 구도가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한국을 중심으로 미국과 일본이 정치적, 군사적 동맹 관계를 이루고 한반도 허리의 위쪽으로 북한을 가운데 두고 중국과 러시아가 연대하여 양 진영이 상호 대립하는 구도가 와해되어 새롭고 복잡한 질서가 태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남의 한국이 일본과 소원해지고 미국과도 껄끄러워진 반면 중국과는 더욱 더 가까워져가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과 미국은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배제한 가운데 한국전 종전 선언 문제를 진지하게 타진했는가 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아닌 ICBM으로 부숴 버리겠다는 미국으로부터 경제지원과 체제 보장을 받고자 하는 아주 아주 적극적인 구애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싱가포르 회담 일주일 뒤인 19일과 20일 김정은과 북한 수뇌부는 베이징으로 날아가(아니면 호출되어) 혈맹 관계를 확인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중 관계가 어떠한 국제 관계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며 '사회주의 국가 북한'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그 열흘 뒤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연대하여 북한 제재 완화 촉구 언론 성명 초안을 제출한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전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킬 박사 역할을 해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러 연대 안보리 언론 성명 초안을 폐기시킨 바로 당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와 CVID 이전에는 제재 완화는 없다는 한미 양국의 공동 인식을 재확인했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와는 여러 차례 이러한 입장을 확인해온 터라 구태여 다시 전화할 필요가 없었다.

폼페이오는 같은 날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전화회담을 갖고 한반도 비핵화 전까지 안보리 결의 준수를 촉구했다. 왕이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바로 사흘 뒤인 7월2일 북한의 농업 및 철도와 도로 등 인프라 건설과 경제 지원 논의를 위한 회담을 하기 위해 구본태 경제 무역상이 베이징에 모습을 나타냈다.

일본 언론에서 6월19일 올해 들어 세 번째 북중 정상회담인 베이징 김정은 -시진핑 회담에서 김정은은 경제제재 완화를 호소했고 시진핑은 이에 대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한 직후였다.

구본태 경제무역상이 베이징에서 목격되기 앞서 김정은은 부인 리설주와 함께 중국과 국경을 접한 신의주에 소재한 화장품 공장을 찾았고 오랫동안 개점 휴업 상태인 북중 합작 황금평 특구를 둘러봤다.

중국은 북한과 중국 간 항공편을 속속 늘였는가 하면 중국 관광객을 평양으로 대거 보냈다.

한마디로 김정은이 그의 집권 이후 두 번째이자 불과 2년 9개월 사이 3차례의 핵 실험 실시 퍼레이드 스타트를 끊은 2016년 1월 이전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다. '말짱 도루묵 '의 조짐이다.

김정은의 북한이 중국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감이 있으나 북중러의 3각 연대가 노골화 하는 모습이고 한국 문재인 정부가 자의반 타의반의 패싱을 감수하지만 한미일의 남방 삼각동맹 틀이 일단 유지되고 있다.

6월28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일본을 찾기에 앞서 한국을 방문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감기 몸살로 인해" 대통령 접견이 취소됐다.

하지만 그에 앞서 잠수함 초계기로 입찰 방식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미국의 포세이돈기가 결정됐다고 발표됐다.

1950년부터 1951년까지 한반도를 중심으로한 동북아 국제 질서는 크게 요동쳤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행정부는 새로 중국 대륙의 지배자가 된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중국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만섬을 미끼로 던지고 한반도는 보고도 못본척 아예 무시했다.

그런 정치전략적 심리 기조 아래 남침 카운트 다운에 돌입한 시점에 38선 일대를 시찰한 미국 대표단은 "38선 일대는 시라도 읊을 정도로 평온하다"라고 그야말로 청맹과니 발언을 했던 것이다.

소련의 스탈린은 만주에 대한 어렵사리 되찾았던 제정 러시아 시대 때의 식민적 기득권을 모두 내놓으면서까지 마오의 전략적 이탈을 막아 자기 편에 두려고 필사적이었다.

스탈린과 트루먼을 아바타로 한 애치슨은 각각 마오를 견제하기위해, 잡기위한 전혀 다른 목적에서 올인했다. 스탈린은 한반도를 겨눴고 애치슨은 한반도를 외면했다.

냉전의 출발 시점에 동북아에서는 냉전 체제를 단번에 무너뜨릴 힘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측불허의 미묘한 동북아가 한반도의 허리를 사이로 남의 한미일 해양 세력과 북중소의 북방 대륙 세력이 올라가지도 내려오지도 못하는 불안한 공포의 균형 구축의 출발은 1951년 유엔에서 소련 대표가 휴전을 제안하면서부터다.

1951년 6월 유엔에서 서로 다른 미래 질서를 꿈꾸었던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고리로 북방 삼각동맹 체제 구축에 나섰던 것처럼 2018년 6월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을 고리로 하여 다시 같은 배를 탄 것이다.

이에 따라 남의 불안한 흔들거리던 3각동맹 체제도 울며 겨자먹기식이기는 하지만 일단 봉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2018년은 1951년의 데자뷔인가.

2018년 중국과 미국은 '천천히'와 '빨리'라는 차이가 있을 뿐 궁극적으로는 핵 없는 북한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북한은 기어이 핵을 보유하고자 한다.

북방의 삼각연대 틀은 꼭지점을 밑으로 하고 두 점을 위로 한 아주 불안정한 상태다.

북한은 관광산업을 육성하려드나 중국은 자국이 개혁개방한 방식대로 농업개혁을 우선시 하고 있다.

이는 대규모 병력 감축이라는 결단이 뒤따라야 하는데 김정은이 '북한의 덩샤오핑'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은 가당치 않다.

중국은 소련이 동구권을 위성국화하였듯이 북한의 경제를 중국화하여 경제위성국으로 두려고 하는 의심도 중국식 경제개혁의 걸림돌이다.

러시아는 나진선봉 지구를 통해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목표 아래 중국과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다. 이 역시 북한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 안보보좌관은 러시아로 날아가 7월16일 핀란드 헬싱키에의 트럼프-푸틴 간 미러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키신저가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을 견제했다면 볼턴은 러시아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구상이다.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발언권을 강화시켜 시진핑이 한국전 당시 마오 식 북한 지원에 올인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포석인데 북한으로서는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16일 헬싱키 미러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현안과 관련해 볼턴은 시리아 카드로 북한 핵폐기 압박에 러시아의 동조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북핵 최악 위기 상황에서도 러시아는 중국과 국제회의 압박에 가장 미지근했다.

'매브릭 '트럼프는 핵 등 대량 살상무기만 뽑아낼 수 있다면 중국과 러시아 심지어 한국과 일본마저도 북한 경제지원을 선제적으로 취하는 것을 선별적으로 눈 감아줄 자세다. 남의 강물로 불을 끄자는 식이다.

트럼프는 주변 강대국이 북한에서 취할 것은 각기 아주 달라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윈-윈 관계라는 것으로 판단, 지속적으로 거래를 성립시키자고 설득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을 아주 과감하게 확대해 본다면 4강 ㅡ리고 특히 미국과중국은 북한에게서 각자이 목표를 서로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얻을 수 잇도록 공동 분할관리를 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치닫는다.

미국의 북한 핵 신속 폐기, 중국의 북한 지역 방파제화 그리고 러시아의 부동항 확보 등 요구는 타협 보기가 어렵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21세기에도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세습 일인독재 스탈린 체제 국가이며 경제적으로도 시장경제와는 어긋난 방향으로 걸어온 국가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중국과 러시아와는 다른 존재가 됐다.

이제 북한은 지정학적 이점 외에는 문제적 존재다. 북한은 남이 차지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뜨거운 감자다.

북한은 보호할 생각은 없으나 대립 관계인 상대방이 차지하는 것은 결코 보아 줄 수 없는 4강의 공동인식 아래 벼랑끝 생존을 유지시켜 왔다.

각기 다른 이해가 포지티브 섬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북의 수뇌부에게는 피부에 닿지 않는 고난의 행군을 자초해 가며 이룩해온 그간의 성공에 도취해 모두의 데드라인을 넘어선다면 러시아 전설에 나오는 금고기를 잡았다 놓아준 어부의 욕심 많은 마누라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그것이 2018년과 1951년이 같은 듯하면서 아주 다른 사이비(似而非) 관계라는 말이다. 敬天菊隱子

2018/07/03 10:38


경제| IT | 사회 | 정치 | 양안 | 문화 | 대만 | 홍콩 | 한중Biz | 한반도 | 인물동정

 
Copyright 2000 ChinaWatc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