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2/11 04:03



[今天歷史-8월10일] 판첸 라마 10세 즉위식

1949년 8월 10일 티베트 불교 3대 종파 중 제2대 종파의 수장으로 티베트 불교의 제 2인자인 판첸 라마 10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판첸 라마 10세는 1938년 1월 3일 칭하이(靑海)성 쉰화(循化)현 원두(溫都)향의 한 농촌가정에서 태어났다. 3세 때인 1941년에 판첸 라마 9세의 환생으로 인정되어 판첸 라마 10세가 되었다.

이 즉위식에는 당시 국민정부의 멍짱(蒙藏)위원회 위원장과 칭하이성 주석이 참석했다. 국민 정부가 공산군에 밀려 중국 대륙을 거의 다 내준 상황 하에서도( 국믽정부는 이해 7월 24일 대만으로 철수햇으며 같은해 12월 7일에는 대만의 성도 타이베이를 임시 수도로 선포) 비록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판첸 라마의 즉위를 인정하고 즉위식에 대표를 보낸것과 공산 정권이 한국전 개입 상황에서도 티베트를 군사 점령한 것 등은 국민당과 공산당을 가릴 것 없이 티베트에 대해 '중국의 분리할 수 없는 일부'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59년 티베트 독립항쟁이 벌어진 뒤 제1인자인 달라이 라마는 망명했지만 판첸라마 10세는 티베트에 남았다. 그는 비교적 중국에 협조적인 자세로 중국의 예우를 받았다.

달라이 라마가 주도한 티베트 무장독립 항쟁이 실패한 직후인 1959년 4월 전인대 부위원장에 선출된 것은 중국 측의 예우였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로 그를 베이징으로 불러 올려 거주케 함으로써 그와 키베트를 격리,그가 또 다른 독립 항쟁의 중심이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목적도 담겨 있었다.
1966년 문화대혁명 발동 이후 티베트에서는 아무 견제 없이홍위병 들이 티베트 불교 사원을 대거 파괴하는 반달리즘이 휩쓸었다.

티베트에서 멀리떨어진 베이징에서 은인자중하고 있던 판첸 라마 10세는 1970년 중국의 티베트 문화 파괴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7만자 상서를 제출, 마오쩌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후 그는 연금 상태에 놓이게 되었으며 이는 9년간지속되었다.

1976년 마오쩌둥 사망 후 4인방 축출로 문화대혁명이 종식된 뒤 판첸 라마 10세는 연금에서 풀려나 이전과 같은 정치적 예우를 받기는 했으나 티베트로 돌아갈수 없었다.

판첸 라마 10세는 티베트 독립 무장 항쟁 30주몀 기념일이 다가 오면서 중국 당국 이 취한 유화책에 따라 억류에서 풀려나 티베트에 돌아 온 직후인 1989년 1월 28일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이는 그 해 3월 티베트 유혈 독립항쟁의 한 요인이 되었다.

이 당시 시짱(西藏)자치구 당 서기로서 사태를 수습한 인물이 전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이다.

[今天歷史-1월 28일] 1차 상하이 사변, 판첸라마 사망

[일지] 티베트...20세기 이후

2018/08/10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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