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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 체결에서 파기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 존 볼턴은 지난달 23일 모스크바로 가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1987년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소련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체결했던 '중거리 핵전력 페기 조약 즉 INF 조약을 파기 탈퇴하겠다고 통고했다.
※ 로고는 2003년 중국 허난성에서 발견된 눈(目) 모양의 글자로 지금까지 발견된 문자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INF( Intermediate range Nuclear force) 조약은 미국과 소련이 보유한 사정거리 500km ~ 5,500 km의 지상 배치 탄도 미사일과 순항 미사일을 모두 폐기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양 초강대국이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핵전력 확산 악순환에서 벗어나 대등하게 핵전력을 감소시킴을 통해 축소 균형의 전략 프레임으로 나아가자는 구체적 첫 발이었다.
물론 미국과 소련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지상 배치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또 공군과 해군의 INF 전력은 상호 간섭하지 않으면서 미소 간 핵전력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전략 구조였다.
1987년 레이건의 미국과 고르비의 소련은 서로 이해가 맞았다.
브레즈네프의 소련이 1970년대 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1980년 강경 반공 보수주의자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세계를 핵전쟁 3차대전 문턱까지 몰아갔던 1962년 10월 쿠바 위기 사태를 계기로 시작되었던 데탕트 시대가 종막을 고하고 신 냉전이 도래하였다.
쿠바 위기 이전 지구를 수십 번 멸망시키고도 남을 핵무기를 경쟁적으로 쌓기만 하던 미소 양대 강국은 데탕트 시대에 전략무기 제한(SALT) 협정과 탄도 미사일 요격 미사일 (ABM: Anti-Ballistic Missile ) 제한 협정을 맺음으로써 공포 부풀리기 무한 질주를 막는데 성공했다
SALT는 핵무기의 증강에 제한을 가하자는 것이다. ABN 체제는 상대방 핵미사일 공격을 미사일로 요격하여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개념 아래 핵심 중요 거점에 설치하는 방어 요격 미사일 수를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부정확한 요격 능력으로 인해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미사일의 기하급수적 경쟁적 증가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미소는 SALT와 ABN 제한 협정으로 핵전력의 경쟁적 증대라는 악순환을 막는 장치를 수립하였기에 기존의 공포의 핵무기를 감축하는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그러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소 신 냉전은 핵전략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레이건의 미국은 속칭 '스타워즈'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 이라는 핵전력의 고도 업그레이드 구상을 추진함과 동시에 소련에 대해서는 전략무기 감축 (START)을 제안했다.
소련은 레이건의 START 제안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우랄산맥 서편 지역 동유럽 위성 국가에 배치함으로써 레이건의 새로운 핵전략에 대응하였다.
미국은 소련의 이러한 핵전략 공세적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ICBM으로 서유럽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제한 핵전쟁을 상정한다면 유럽 대륙은 전략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미국은 인파이팅으로 접근하는 조 프레이저를 긴 리치로 툭툭 견제하며 그야말로 가공할 핵 펀치로 1라운드에서 녹다운 시킨 조지 포맨일 수도 있으나 프레이저에게 매라운드 고전하다 12라운드에서 한 차례 다운 당하기까지 하고 판정패한 무하마드 알리 일수도 있었다.
소련의 회심수에 서유럽은 둘로 갈렷다. 미국도 서유럽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가 하면 이는 악순환 공포 증대 사이클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며 반대가 거세게 일었다.
서유럽 비공산 좌파도 둘로 갈렸다. 서독 사민당 소속 총리인 헬무트 슈미트는 서독 미군기지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강력하게 요구한 반면 전임 총리이던 브란트는 같은 당임에도 불구 반대했다. 브란트는 동방정책을 통해 동서 데탕트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 넣은 주역이었다.
레이건이 마침내 중거리 미사일 '퍼싱2'의 서독 미군기지 배치를 결정하자 브란트는 반대 시위에 동참하며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거센 반대와 항의 시위에도 레이건은 퍼싱2 미사일 배치를 강행, 소련의 중거리 미사일 동유럽 배치를 통한 유럽 대륙에서 핵전략 우위를 소멸시켜다
그러나 이러한 핵전력 강화의 장군 멍군 식 공방은 양측 모두에 타격을 가했다.
레이건의 미국은 신 냉전 속의 안보 무임승차라는 국제 전략적 어부지리 속에 일본과 서독의 대미 수출 급증과 군비 지출 급증에 따른 재정 적자 확대라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렸다.
고르비의 소련도 브레즈네프 시대 이래의 가랑이 찢어지는 줄 모르고 타조 쫒는 군비확충 추진으로 거덜 난 경제에 회생의 전기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윈-윈' 합의가 INF 폐기조약이었다. 신 냉전과 구 냉전을 아우르는 냉전의 종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도 이 조약은 실행되었고 잘 지켜졌다.
하지만 INF 조약이 미국이 크게 손해를 보는 전략구조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INF 클럽 밖의 지상 배치 중거리 미사일을 통제할 수 없으며 특히 불량국가들 즉 북한과 이란의 중거리 미사일 개발과 증대는 미국 동맹국과 미국의 해외기지에 위협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따라 1990년대 후반부터 도널드 럼즈펠드 등 공화당 군사전략가들을 중심으로 불량국가들에 의한 미국 동맹국과 더 나아가 미국을 방어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 전략 개념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는 불량국가들의 중거리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동맹국을 방어한다는 전역(戰域) 미사일 방어(TMD)와 미국 본토를 방어한다는 국가미사일 방어(NMD)라는 전략 개념을 도출시켰다.
레이건의 스타워즈 전략 개념을 현실성 있게 조정, 진화시킨 것으로 아버지 부시를 거쳐 아들 부시 때에 이르러서는 미사일 방어(MD) 체제로 통합했다.
1998년 8월31일 북한이 ICBM을 지향하는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하고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나선 데다가 중국의 전략적 위상이 증대함에 따라 동맹국과 미국 본토를 구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들 부시는 2002년 MD 전략 추진에 걸림돌로 작동해온 ABM 제한 체제로부터 탈퇴하였다.
이로써 미국의 핵전략은 핵무기 감축의 START와 MD 체제라는 쌍두마차 체제로 정립되게 되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창을 줄이고 방패를 늘인다는 프레임이었다.
이는 '창'의 감축에 따른 전략무기 산업의 위축을 보전하는 군산복합체의 블루오션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ABM 제한 협정 폐기에 강력하게 저항하였으나 미국의 이러한 핵전략 프레임을 뒤쫓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경제적으로 미국에 크게 밀린 처지인 러시아는 MD 분야에서 미국과 떨어진 거리가 날이 갈수록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는 이러한 전략적 불균형 틈새를 메꾸기 위해 비밀리에 중거리 미사일 지상 배치 조치를 취했고 이에 따라 미국은 INF조약을 지키는 유일한 국가가 된 처지에 놓인 것이다.
러시아의 조약 위반도 전략적으로 문제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전력 상황이었다.
중국의 ICBM은 러시아와 미국에 비해 턱 없이 적다.
이러한 전략적 불균형을 중국은 중거리 미사일 확충으로 메꾸어 중국의 탄도 미사일의 95%가 중거리 미사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의 해군력과 공군력은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기 때문에 중국 보유 INF 전력은 거의 대부분 지상 배치된 상태다.
경제력 성장과 남중국해를 발판으로 태평양 지역으로 전략적 공세가 강화됨에 따라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전략 가치를 심각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태평양 도서국들과 미군기지를 사정권에 두는 지상 배치 INF 전력은 이제 발등의 불이 되었다.
이 같은 전략적 인식은 일찌감치 미국에서 제기됐으며 볼턴도 그중 한 명이다.
따라서 미국이 31년 만에 INF 조약 탈퇴를 선언한 것은 러시아보다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가 볼턴을 모스크바로 보내 INF 탈퇴를 선언한 것은 그야말로 '소리는 동쪽에서 내고 서쪽을 친다'라는 중국 사자성어 ‘성동격서(聲東擊西)‘ 고사가 압축하고 있는 전략의 구현이 아닐 수 없다. <盲瞰圖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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