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패 투쟁과 중앙의 지방 길들이기 중국에서 현재 전개되고 있는 반부패 운동은 여러 가지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있다. 우선 보-혁 갈등의 관점에서 보면 개혁파가 차기 지도부 구성을 놓고 보수세력의 지분을 줄이기 위해서 벌이는 권력 투쟁의 일환이다. 두 번째로는 개혁 개방 추진 과정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부패구조가 경제성장의 질적 도약을 막고 있다는 판단에서 벌이는 환경정화 및 구조개혁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중국 역사상 끊임없이 반복돼 온 중앙과 지방간의 대립이 불러 온 결과라는 각도에서 이를 바라 볼 수도 있다. 중국 공산정권 수립 이후 처형당한 최고위급 인사인 청커제(成克杰) 전 전인대 부위원장(국회 부의장), 역시 공산정권 수립 이후 최대 규모 밀수 사건인 샤먼(廈門)밀수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 가능성이 높은 리지저우(李紀周) 전 공안부(副)부장(차관), 그리고 2년 전인 수리부장(장관)시절의 공금 유용 사건으로 이례적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뉴마오성(鈕戊生) 허베이(河北)성장 등이 모두 보수파의 대부격인 리펑(李鵬) 전인대의장 측근이라는 사실은 보-혁간 권력투쟁이라는 첫 번째 시각을 뒷받침 한다. 두 번째 시각과 관련해선 중국의 뿌리 깊은 부패구조가 중국 경제의 더 높은 단계로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로,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지적 받아온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부패와의 전쟁 타깃이 광둥(廣東)성, 푸젠(福建)성 등 개혁 개방으로 부유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발언권이 높아진 지역이라는 점은 중앙과 지방과 대립 소산이라는 시각에 설득력을 제공한다. 현재 전개되는 부패와의 전쟁을 이처럼 세 가지 시각의 어느 하나로만 볼 게 아니라 모두를 중첩하여 관찰하는 것이 전모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유효할 수 있다. 필자는 우선 앞의 두 가지 관점을 다음으로 미루고 세 번째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그 간 진행돼온 부패와의 전쟁을 조망해 보고자 한다.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 중국 역사를 관통하는 법칙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는 것이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이다. ‘나뉘어 짐이 오래면 합치고 합친지 오래면 나뉜다’라는 말이다. 강력한 통일국가가 오래 되어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면 지방 반란이 계기가 되어 분열하고 분열이 오래되면 다시 강력한 통일 국가가 성립하는 것은 중국 역사상 누차 반복돼온 사실이다. 근세에 들어 와 통일왕조 지속기간에 비해 분열시대가 짧아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패턴은 어김없이 계속되었다. 명(明)은 동북 지방에 근거한 만주(滿洲)족의 흥기와 이자성(李自成)의 지방농민 반란군에 의해 멸망했다. 이후 만저우족의 청(淸)에 의한 강력한 통일국가 수립 이전에는 청에 투항한 명장(明將) 오삼계(吳三桂), 경정충((耿精忠)과 상지신(尙之信) 등이 윈난(雲南), 구이저우(貴州) 성 등 변방 지역(藩)을 독자적으로 통치하는 과도기(분열 상태)를 겪었다. 청조 역시 광둥성 등 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혁명세력에 의해 멸망했고 역시 공산 중국이 대륙을 장악하기까지 각지의 군벌이 지방을 독자적으로 통치하는 분열 시대를 겪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통일국가의 중앙 정부는 항상 지방을 확고히 장악하려 애쓰고 분열 시대에 독자성을 향유했던 지방은 중앙 정부의 통제력 강화 노력에 저항하기 마련이다. 중국 성립 이후에도 이런 현상은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공산 중국 성립 초기의 '가오강(高崗)사건'은 소련에 인접한 동북지방에 대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홍'(紅)과 '전'(專)간 대립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강한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지방 세력인 상하이(上海)가 중앙을 접수한 것이라는 측면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처럼 공산중국 성립 이후에도 중앙과 지방간 갈등과 대립이 존재했지만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등과 같은 '황제형'의 강력한 통치자가 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갈등구조는 큰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덩샤오핑(鄧小平) 사망하기 직전 중앙과 지방간 대립은 극히 심각한 상황에 빠져 들었다. 지방이 중앙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위협하는, 그래서 다시 분열시대로 이어질 수 있는 지경에 까지 이른 것이다.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재량권을 부여 받아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성공한 일부 지방 세력들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자신과 대등한 위치였던 상하이 세력이 주도하는 중앙 정부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덩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덩은 1992년 초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개혁개방으로 경제력을 키워온 지방에 힘을 실어 주었기 때문이다. 중앙의 통제력 약화는 경제 과열 현상을 초래했고 급기야는 전국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중앙 정부의 일차적 책무를 수행하는데 까지 곤란을 주었던 것이다. 결국 중앙 정부는 지방에 대한 통제력 회복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첫번 째가 1995년 베이징(北京)시당, 즉 베이징 방(北京幇)의 숙청이었고 동원된 수단은 부패와의 전쟁이었다. 베이징방 숙청 과정 베이징 방 숙청의 하이라이트는 1995년 4월 27일 천시퉁(陳希同) 베이징 당서기의 해임과 가택연금 조치였다. 당 서열 15위인 천시퉁은 그 달 4일 비위 혐의로 조사를 받던 자신의 측근이자 베이징 시 경제담당 부시장인 왕바오선(王寶森)이 베이징 근교에서 권총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 직후까지만 해도 사정의 칼날이 자신에게도 미칠 줄 몰랐던 것 같았다. 왕 부시장 자살 이후 소집한 간부회의 석상에서 천은 "왕 부시장에 대한 조사는 중앙의 부패 척결에 대한 의지를 보여 준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중앙이 단순 비위 척결 차원에서 왕을 조사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천의 해임과 더불어 베이징시의 한 호텔 사장으로 있던 그의 아들이 구속되었으며 리치옌(李其炎) 베이징시장 아들도 역시 비리 혐의로 조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왕과 함께 부시장 중 하나인 장바이파(張百發)도 아시안 게임선수촌을 비롯한 많은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부정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또 베이징의 최고 경찰책임자인 공안국장은 취임 6개월 만에 사임했다. 천의 해임에 앞서 40여명의 베이징 시 관리들이 각종 경제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조사 받았다. 베이징시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것이다. 천시퉁의 후임 당서기에는 차오스(喬石) 계열의 웨이젠싱(尉建行)이 임명되었는데 그는 감찰과 사정업무를 담당하는 당 기율검사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이는 베이징 시에 대한 사정 작업을 지속적으로 말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 해 12월 베이징 시 인민대표대회(시 의회) 부주임이 구속되는 등 장장 3년여에 걸쳐 베이징 시에 대한 사정 작업과 물갈이 작업이 계속되었다. 베이징의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해 '살려 준' 리치옌 시장도 1996년 10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측근인 자칭린(賈慶林)으로 교체됐다. 1998년 8월 천시퉁에게는 16년 징역형이 확정되고 그에 앞서 1997년 6월 천의 아들에는 12년 징역형이 선고 됐다. 이로써 중앙 정부는 베이징 시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을 갖게 됐다. 사정 작업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수도 베이징은 마치 두개의 정부에 의해 지배되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베이징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왕푸징(王府井)에 홍콩 최대 재벌 리카싱(李嘉誠)의 자본을 끌어 들여 '둥팡(東方)광장'이라는 초현대식 쇼핑몰을 건설하면서 베이징 당국은 중앙정부의 고도제한 규정을 무시했다. 또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시) 도시 진입세를 도입하려 했다. 결국 둥팡광장은 1994년 11월 건설이 일시 중단되었지만 이 것이 내외에 알려지면서 중앙정부의 권위는 심각한 손상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베이징 방의 이 같은 오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를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선 당시 권력 역학관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계기로 장쩌민, 주룽지 등 이른바 상하이 당정 인사들이 속속 중앙무대로 진출,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지만 이들의 권력 기반은 극히 취약했다. 덩샤오핑의 존재를 제외해 놓고 본다면 당정의 최대 세력은 리펑 총리를 전면에 내세운 보수파였으며 리펑과 천시퉁은 톈안먼 사태를 유혈 진압하는 데 선봉에 섰다는 점에서 같은 배를 타고 있었다. 장쩌민과 주룽지의 가장 큰 배경은 덩샤오핑이나 쓰촨(四川)성 출신으로 덩과 동향인 천시퉁 역시 덩의 가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천시퉁의 해임 이후 덩의 둘째 아들 덩즈팡(鄧質方)이 조사를 받고 이에 충격을 받아 덩의 부인인 줘린(卓琳)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문은 그 사실 여부를 떠나 덩의 가족과 천시퉁간 깊은 유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천시퉁의 베이징 내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도 그의 오만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천은 베이징(北京)대를 나와 1949년 베이징 공안국 파출소 부소장에서 출발, 1992년 베이징시 최고 직위인 당서기에 오르기까지 단 한번도 베이징 밖 근무를 하지 않았던 '베이징의 터줏대감'이었다. 중앙 정부의 베이징 손보기는 '뭇 닭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는 소를 잡지 않을 수 없다'라는 절박한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톈안먼 사태 이전 1989년 초의 경제과열을 연상시킨 1993년의 과열경제는 부동산 투자 등 지방 정부의 무분별한 투자에 기인한 바가 컸다. 과열경제를 수습하기 위해 주룽지 부총리는 1993년 7월 인민은행장을 겸임하면서 '홍관티아쿵'(宏觀調控)이라는 강력한 긴축정책을 폈다.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진 지방 정부는 갖가지 편법을 동원했는데 베이징시의 도시진입세 신설 시도도 이 같은 편법의 하나였다. 따라서 베이징의 일련 조치는 중앙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도전이었고 중앙정부가 이를 방치할 경우에는 긴축 정책 실시라는 정책기조가 무너질 위험마저 있었던 것이다. 천시퉁에 앞서 중앙 정부는 다른 한 마리의 '소' 를 잡았다. 그 '소'는 바로 수도 강철공사 (首鋼) 회장으로 있던 저우관우(周冠五)였다. 저우관우는 누구인가. 다음 에피소드는 그를 아는 데 유효할 것이다. 1993년 3월, 8기 전인대 기간 중 수도강철 공사는 전인대 취재를 위해 몰려 온 외신 기자들에게 수강을 공개했다. 그 때 내외신 기자들이 처음 도착한 본관건물 입구 안쪽 홀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대형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사진의 주인공이 덩샤오핑이었기 때문이다. 1992년 5월 수강을 찾은 덩샤오핑을 저우관우가 수행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포항제철 본관건물에 걸린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박태준(朴泰俊) 포철 사장이 착공식에서 발파 스위치를 누르는 사진을 연상시켰다. 저우관우가 이 사진을 내건 이유는 명백했다. 자신은 최고 지도자와 가까운 사이이며 또 수강은 남순강화 이후 적극적인 개혁 개방 정책 추진의 선봉에 선 기업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속셈이었다. 수강은 덩의 시찰 이후 여권을 독자적으로 발급할 수 있는 권한 등 다른 기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특혜를 부여받았다. 이런 특혜를 부여받게 된 것은 덩샤오핑 집권 후 수강을 맡게 된 저우관우가 이룩한 업적에 대한 최고 지도자의 신뢰가 그 바탕에 있었지만 저우관우의 아들로 수강 이사로 있던 저우베이팡(周北方)이 덩의 둘째 아들인 덩즈팡과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라는 사실도 크게 작용했다. 저우관우의 '사설왕국'이 되다시피 한 수강 역시 중앙정부의 긴축 정책을 순순히 따르려 하지 않았다. 천시퉁이 그랬던 것처럼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에서 강조한 '선부론'(先富論)을 들먹이며 수강을 긴축 정책의 '무풍 지대'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앙 정부는 천시퉁을 제거하기 앞서 수강의 수술에 들어갔던 것이다. 저우베이팡이 받은 혐의는 덩즈팡도 이사로 참여한 수강의 홍콩 자회사를 통해 거액의 외화를 해외에 도피한 것이었다. 이 외화도피 건에는 천시퉁 숙청의 빌미가 된 둥팡광장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저우베이팡은 1995년 2월 17일 구속되고 저우관우는 수강 회장 직을 사임하기에 이른다. 수강 경영진에 대한 처벌은 가혹했다. 저우베이팡과 수강 최고 경영진 두 사람은 집행유예부 사형판결에 처해졌던 것이다. 천시퉁과 저우베이팡의 배경을 놓고 볼 때 이들에 대한 숙청은 장쩌민과 주룽지에겐 일대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천시퉁 해임 후 당 지도부가 인민해방군 베이징 관구의 38집단군과 폭동방지 경찰인 인민무장경찰에 베이징을 보호하도록 지시한 사실과 천시퉁의 연금에서 최종 판결에 이르기까지 무려 3년 4개월이 걸린 것만 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베이징 방 숙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리펑 등 보수파가 보-혁간 세력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이런 조치에 대해 방관 자세를 취하고 장쩌민의 정치 라이벌로 보-혁 갈등 속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 온 차오스가 적극 협력한데다 최고지도자인 덩샤오핑이 이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지방 세력 혹은 기업의 중앙 정부에 대한 도전을 수용하다가는 국가 경제가 파탄이 나고 더 나아가 국가가 분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이들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광둥방 길들이기 과정 베이징방이 이리였다면 광둥방은 호랑이었다. 베이징방 숙청은 앞서 살핀 것처럼 그 저변에 중앙과 지방 세력간 갈등이 도사리고 있으나 겉으로 내세운 슬로건은 '반부패 투쟁'이었다. 1993년 말부터 장쩌민의 직접적인 주도로 시작된 '반 부패 투쟁'은 '베이징방' 외에도 크고 작은 희생자를 양산했다. 베이징방 숙청 이전 구이저우(貴州) 당 제1서기의 부인이 부패에 연루되어 공개 총살당하는 등 '반부패 투쟁'의 서슬은 지위 높다고 해서 그 푸른 빛이 약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가운데 예외가 있었다. 바로 광둥성이었다. 경제 규모로 볼 때 부패 문제와 관련해 베이징이나 구이저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지적 받아 온 광둥성은 '반부패 투쟁'의 예외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이를 두고 중국인은 전국이 사정 한파를 피하지 못했으나 광둥성 만큼은 사시사철 '꾀고리 울고 제비가 나는'(鶯歌燕舞) 봄 날을 만끽한다고 비아냥했다. 해외에선 광둥성은 1개 성이 아니라 베이징의 중국과는 별개인 소위 '남중국'(南中國)화 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베이징이 이처럼 광둥성에 손대는 것을 자제한 데는 다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 중앙무대내 막강한 광둥방 인맥이다. 광둥성 부서기를 지낸 양상쿤(楊尙昆) 전 국가주석은 비록 쓰촨(四川)성 출신 이나 군 계통에서 오랫 동안 일한 관계로 광둥방 '태조'격인 예젠잉(葉劍英)과 가까워 광둥방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 예젠잉 사위인 쩌우자화(鄒家華) 전인대 부위원장도 있었다. 쩌우자화는 덩샤오핑이 91년 상하이 서기던 주룽지를 중앙에 불러 올려 부총리에 임명할 때 보수파의 후원 아래 함께 부총리가 되었던 인물이다. 전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도 광둥성과 인연이 깊다. 문혁 초기와 문혁 종결 직전 등 두 차례에 걸쳐 성장을 역임하고 당 서기직도 맡았다. 하지만 무엇 보다도 광둥방의 든든한 후원자는 차오스였다. 차오스는 광둥방과는 원래 연관이 없었으나 장쩌민을 견제하기 위해 광둥방의 후견인 역할을 자임했던 것이다. 이 같은 인맥을 살펴 볼 때 광둥방은 당정군 및 개혁과 보수세력 내부에 모두 든든한 후원자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덩샤오핑이 아닌 덩의 가족과 보수 세력에 기댄 베이징방과는 비교할 수 없는 든든한 배경이었다. 두 번째로는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광둥성의 비중이 너무 컸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광둥성은 베이징, 상하이, 톈진(天津)과 27개 성, 자치구중에서 GNP가 1위이며 전체 수출물량의 40%, 외자이용액의 30%를 차지하고 외국 투자기업의 3분의 1이 모여있다. 잘 못 건드렸다가는 중국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판이었다. 세 번째는 광둥성이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베이징방과 투쟁에서 처벌의 강도가 극히 가혹했던 것은 밀리면 정권을 빼앗길 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있었지만 광둥성에 대해서는 그 정도로 심각한 위협은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중앙 정부는 광둥성 역시 손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광둥성이 조세 저항을 통해 중앙의 정책기조를 노골적으로 위협했기 때문이다. 분세제 베이징 중앙정부는 1994년부터 분세제(分稅制)를 도입하는 등 대폭적인 세제개편을 단행했다. 분세제는 중앙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조정해 중앙의 재정수입을 크게 늘이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개혁 개방 이래 실행돼온 승포제(承包制: 세금 도급제)를 고쳐 일부 지방세를 지방 정부의 재정 규모에 따라 일정액만 중앙에 상납하던 것을 중앙 및 지방간 일정 비율을 설정하기로 한 것이다. 분세제의 적용 대상은 세수 규모가 큰 부가가치세와 자원세, 증권거래세 등으로 중앙과 지방의 세수 비율은 7대 3으로 정했다. 이로 인해 광둥성과 상하이 등 경제 활동이 활발한 지방 정부의 세수규모는 줄어들게 된 반면 중앙재정은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중앙 정부가 분세제를 도입한 목적은 단기적으로는 과열된 부동산 경기를 진정시키자는 데 있었다. 장기적으론 확충된 중앙정부 재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늦은 내륙지역의 경제 개발을 지원, 지역간 발전격차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지방 정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광둥성으로선 분세제 도입이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러나 중앙 정부 입장에서는 목적한 바의 세수 증대를 위해서는 다른 어떤 지역 보다도 광둥성에서 분세제를 철저히 시행할 필요가 있었다. 중앙 정부와 광둥성의 대결은 불가피 했다. 상하이방과 광둥방간 대결 전개 과정 베이징방에 대한 숙청에는 중앙정부의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쳤다. 하지만 광둥방 길들이기는 상하이방이 다른 세력의 견제를 받는 가운데 진행됐다. 광둥방 지도부에 대한 처리가 베이징방과는 달리 혹독하지 않은 것은 이런 측면이 작용했을 것이다. 상하이방의 광둥방에 대한 공격은 1996년 초 어우양더(歐陽德) 광둥성 전인대 부위원장이 체포되면서 시작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베이징방 숙청에 적극 협력한 차오스가 이번에는 제동을 걸고 나왔다. 차오스는 어우양더 체포 후 상하이를 방문, 왕다오한(汪道涵) 해협양안관계회 회장 등 상하이방의 다수 인사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국채(國債)선물 부정거래사건을 엄격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차오스는 장쩌민을 필두로 한 상하이방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광둥방의 존재가 아직은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광둥방에 대한 본격적인 수술은 결국 1997년 8월 15대에서 차오스가 퇴진한 후 시작된다. 1997년 말 광둥방 방주 예쉬안핑(葉選平)의 정치 참모인 셰페이(謝非) 광둥성 서기를 예와 격리시키는 조치부터 취했다. 셰페이에 전인대 부위원장 직책을 주어 중앙으로 끌어 올리고 그 후임에 광둥방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리창춘(李長春) 허난(河南)성 서기를 보냈다. 현지에 부임한 리창춘은 '통개전비'(痛改前非: 아픔을 무릅쓰고 과거의 잘못을 고친다)라는 슬로건 아래 광둥성 당위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전개했다. 중앙의 장쩌민도 중앙에서 리창춘에 대한 엄호 사격을 했다. 장쩌민은 1998년 3월 9기 전인대 1차회의에서 광둥 대표단의 회의실을 찾아가 '정신 문명'과 '물질 문명'을 강조하는 강화를 하였다. 두 용어는 덩샤오핑이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을 비판할 때 사용한 것이다. 광둥성이 더 이상 ‘반부패 투쟁’의 무풍지대가 될 수 없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전인대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셰페이는 이 전인대 회의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병때문이라고 발표되었다. 셰페이가 다음 해 10월 사망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상 '볼모' 신세가 된 데 대한 불편한 심기가 출석치 않은 진정한 이유였을 것이다. 98년 5월 광둥성 지도부에 대한 개편에 이어 새로 구성된 감찰기관을 동원, 1,252건의 비위 사실을 적발했고 당원 904명이 처분됐다. (광둥성 길들이기의 보다 구체적인 전개과정은 '해결사 리창춘'을 보시기 바람). 리창춘이 이처럼 사정 작업을 벌이는 동안 장쩌민, 주룽지, 그리고 쩡칭훙(曾慶紅) 등이 광둥성을 시찰, 리창춘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올해 초 리창춘이 부총리로 전임될 것이라는 예상보도가 홍콩에서 나왔는데 이는 비록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해결사'가 떠나도 안심할 만큼 광둥방 길들이기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반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도부의 처벌 수위를 놓고 볼 때 베이징방이 고강도였다면 광둥방은 저강도였다. 이는 앞서 손대기를 주저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제시했던 세가지 이유와 함께 광둥방이 일찌감치 대세를 수용한 점을 곁들일 수 있을 것이다. 광둥성 토착세력의 한 사람인 루뤼화(盧瑞花) 광둥성장이 98년 3월 광둥성을 방문한 주룽지 총리에 “중앙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겠다”고 말한게 그 한 예이다. 결국 상하이방이 주도하고 있는 중앙정부는 베이징방과 광둥방을 차례로 숙청하거나 길들임으로써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사라진 이후 국가 분열의 위기를 극복해낸 것이다. 광시성의 청커제(成克杰) 처형과 최근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푸젠(福建)성 샤먼(廈門)밀수사건 등은 중앙과 지방간 갈등 차원에서 바라 보면 메인 게임이 아니고 끝내기 수순에 불과할 뿐 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상하이방의 중앙정부가 이처럼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차근차근 강화시켜온 과정은 청조 초기의 중앙권력 강화 과정을 연상시킨다. 동북지방에 세력기반을 둔 만주족은 투항한 명나라 군대의 힘을 빌어 경쟁하는 다른 지방 세력, 즉 이자성을 제압했다. 이후 청에 투항한 명나라 장수들이 남쪽 변방에서 사실상의 군주로 있는 것을 용인하다가 끝내 토벌함으로써 강력한 통일왕조를 수립하는데 성공하였다. 여러 지방세력의 하나였던 상하이방도 제 세력의 힘을 규합, 일차적으로 베이징방을 축출했으며 종국에는 광둥방마저 무력화했다. 이로써 중국은 마오나 덩 같은 창업자들이 사망한 이후에도 명실상부한 통일국가로서 위상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역사의 전개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차이나 워처>

▶ 2000/09/22 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