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2/18 17:01



[今歷단상-2월10일]지하총서기 끝내 지상밖으로 못나와

마오쩌둥에게 덩샤오핑은 '보리스 옐친'이었고 미하일 고르바초
프에게 옐친은 '덩샤오핑'이었다.

덩샤오핑은 마오 사후 마오이즘을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옐친은 고르비가 힘을 잃기가 무섭게 고르비가 끝까지 지키려던 소련식 사회주의 이념과 그 바탕에 세워진 연방체제를 해체했다.

CVID 구현이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파괴였다.

옐친은 '소련의 덩샤오핑'이었고 덩샤오핑은 '중국의 옐친'이었다.

옐친에게는 '허가 받은 반골'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덩샤오핑에게는 '계륵 반골'이란 별명을 붙여줄 만하다.

덩리췬은 '덩샤오핑의 덩샤오핑'이었다.

그는 덩샤오핑이 마오 절정기 시절의 자신을 연상케 할 정도로 집요한 반골이었다.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산주의란 이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결코 소멸시킬 수 없는 '이론 교두보'를 공고히 지켰다. 그래서 덩리췬에는 '지하총서기'란 별명이 붙여졌던 것이다.

덩리췬은 덩샤오핑 사후 18년을 더 살았다. 덩샤오핑은 마오가 죽은 뒤 불과 3년 뒤부터 마오이즘의 관에 못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좌왕(左王)'은 3년의 6배가 되는 시간이 주어졌으나 끝내 지상으로 나올 수 없었다.

옐친과 고르비와사이 관계도 비슷하다. 옐친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고 고르비는 여전히 살아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이념이 부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련에서 이제 사회주의 이념은 물레방아를 넘어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기에는 불가능해졌다. 시대의 조류를 역류시킬 수는 없다.<스위프트-버크왈드>

2019/02/10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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