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2/18 17:01



[今歷단상-2월11일] 책사는 주군 실패와 좌절 결과에 선행

건곤일척의 싸움에서 패한 쪽의 책사(策士)는 주군(主君)보다 먼저 죽기 마련이다.

'경국지장(傾國之將)'은 주군의 모든 잘못까지 뒤집어쓴다. 중국 초한쟁패 때 항우의 책사 범증은 항우보다 먼저 갔고 촉한의 대를 이은 책사 제갈공명은 유선을 앞섰다.

우리나라에서도 안평대군의 책사 이현로는 계유정난 직후 목이 잘려 효수됐다. 안평대군에게 형님 수양대군을 먼저 쳐야한다고 강력하게 권유한 그는 주군이 사사되기 전에 죽었다.

주군의 과오를 몽땅 뒤집어 쓴 '경국지장'의 대표적 예로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전한 나치독일군의 장군 프리드리히 파울루스다.

그는 총통 히틀러의 후퇴불가 명령을 어기지 않아 피할 수도 있는 패배를 회복 불가능한 처참한 패전으로 만들고 말았다. 나치독일 장군 중 가장 수치스런 오명을 역사에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유재란 당시 칠천량 패전의 원균은 선조의 엉터리 전략을 충성스럽게 따르다가 만고의 무능장군이자 부패한 장군으로 낙인 찍혔다.

장제스의 책사 다이지타오(戴季陶)는 국민당과 국민정부의 본격적인 몰락에 앞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범증이 항우에 앞서 울화병으로 사망하고 제갈공명이 노심초사하다가 유선에 앞서 역시 병사했듯이 다이지타오는 자신의 죽음으로써 국민정부 미래에 대한 '카산드라 예언'을 한 셈이다.

다이지타오는 국부(國父)적 존재인 손문의 '연소용공' 전략을 손문 사후 채 2년도 안된 시점에 대담하고 과격하게 무너뜨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공산주의의 도전과 일본의 침략이라는 내우외환 상황에서 '먼저 내부를 안정시킨 뒤 외세를 배척한다(先安內 後攘外)' 전략을 장제스로 하여금 선택토록 하였다.

범증과 제갈량이 그랬던 것처럼 첫 번째는 화려한 성공을 거뒀으나 두 번째는 참담한 실패였다.

범증은 진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성공했으나 초한쟁패에서 먼저 유방을 죽여야 한다는 주장을 항우가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실패, 천하의 패권이 한나라에게 돌아가는 결과를 막지 못했다.

제갈량은 적벽대전 대승으로 천하 삼분지계를 달성했으나 '출사북벌'을 완성시키지 못하여 결국 촉한의 멸망을 초래했다.

다이지타오는 공산세력을 배제한 가운데 북벌을 완성시켜 청조 멸망 후 군벌분열 시대를 끝내고 수립된 통일 중국을 장제스의 국민당이 장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안사변과 일본 침략 등으로 인해 다이지타오의 '선안내(先安內)' 전략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결국 2차대전 종전 후 공산당과 벌인 싸움에서 대륙을 공산 세력에 넘겨주는 결과를 야기했다.

이는 전략 방향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이의 실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다이지타오보다는 장제스의 책임이 더 크다.

북양함대 사령관 정여창은 패전에 변명하지 않고 자결했으나 동족의 분노 아래 그의 관이 땅 속에 못 들어가고 상당기간 내팽겨졌고 무능한데다 싸우지도 않은 장수라는 오명을 후세에 남겼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은 북양대신 이홍장에게 있다.

우리나라에서 원균이 이순신 장군이 너무나 억울한 죄명 아래 처형 직전까지 가는 참담한 고초를 당한 때문에 패전지장 이상으로 욕을 먹는 것이고 파울루스는 롬멜과 대조되기에 더욱더 욕을먹는 것이다.

승자 독식과 마찬가지로 패배의 모든 비난은 그룹이 아닌 한 사람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있기에 책사는 성공 이후가 문제다. 처신을 잘해야 한다.

마오쩌둥의 정책과 이념 담당 책사 류사오치와 군사 부문 책사라고 할 수 있는 린뱌오는 모두 마오의 의심 때문에 불행한 종말을 맞았다.

책사는 성공이 지속한다 해도 주군과 영광을 끝까지 공유하기가 힘들다.

유방의 책사 장량이 '성공한 책사' 본을 보였으나 그런 예는 아주 드물다. <盲瞰圖子>

2019/02/11 08:37


경제| IT | 사회 | 정치 | 양안 | 문화 | 대만 | 홍콩 | 한중Biz | 한반도 | 인물동정

 
Copyright 2000 ChinaWatc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