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8/26 07:52



[今天歷史-7월1일] 홍콩주권 회복, 중국공산당 창당

제헌국회, 대한민국 국호 결정

류사오치 타도 선언, 국민정부 광저우에서 성립, 장제스 국민당 군사위 주석 군벌타도 동원령, 나폴레옹 알렉산드리아 점령, EC 성립. 비키니 섬서 원폭 실험.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성립, 자위대 창설

한해 하반기가 시작되는 첫 날인 7월1일은 2004년 쩡칭훙(曾慶紅) 당시 국가부주석이 한 말처럼 중국인들에게 분명‘평범하지 않은 날(不平凡的日子)’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공산당이 창당된 날로 기리는 당창건 기념일이며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중국의 치욕의 상징이던 홍콩에 대한 주권을 평화적으로 회복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이날에는 중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많은 일들이 벌어졌으며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평범한 날’이 아니다.

1997년 7월1일 = 이날 0시를 기해 156년 동안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됐다. 영국 입장에서는 돌려주는 것이 되겠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회복한 것이다.

이로써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이자 ‘일국양제’의 실험무대로서 새 출발을 하였다.

1967년 = 중국공산당이 류사오치(劉少奇) 국가주석을 ‘반마오쩌둥 실용주의자들의 수령’으로 몰아 타도를 선언했다.

1921년 = 중국공산당은 당이 1921년 7월1일 상하이(上海)에서 창당된 것으로 간주하고, 이날을 당 창건기념일로 기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7월20일 창당대회가 시작됐다. 중국공산당은 창당대회를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1대)로 부른다.

[今天歷史-7월 20일] 江 티베트 시찰, 中공산당 창당, 李小龍

기존의 6개 공산주의 소집단(上海, 北京, 武漢, 廣州, 濟南)에서 각각 2명씩 파견한 대표와 일본에 있는 중국인의 대표 1명 등 모두 13명이 참석했다.

당시 중국 전체에서 공산당원의 수는 50여명에 불과했다.

이들 13명 중에는 마오쩌둥(毛澤東), 장궈타오(張國燾), 둥비우(董必武), 천궁보(陳公博)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코민테른에서는 그리고리 보이틴스키(Grigory Voitinsky)와 마링(Maring : 네덜란드인으로 본명은 Henricus Sneevliet) 등 2명의 대표를 파견했다.

그러나 중국에 공산주의 이론을 소개하고 공산당 창당의 산파 역할을 맡았던 천두슈(陳獨秀)와 리다자오(李大釗) 등은 참가하지 못했다. 이들 13명의 대표는 당수 격인 위원장(서기라는 기록도 있다)에 천두슈를 선출했다.

앞서 언급한 창당 주역 중 28년 뒤인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에 참여한 사람은 마오쩌둥과 둥비우 그리고 리다(李達) 단지 세 사람뿐이다.

리다자오는 군벌에 의해 교살됐고 천두슈는 노선투쟁에서 패배, 출당된 뒤 1943년 사망하기 직전 서구 민주주의로 돌아섰다.

장궈타오는 장정(長征) 과정에서 마오쩌둥과 대립한 끝에 국민당으로 전향했다.

천궁보는 중일전쟁 기간 중 일본이 세운 괴뢰정권의 수반을 맡았다. 국민당의 지도자로서 일본에 협력하는 길을 택한 왕자오밍(汪兆銘)의 후임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창당 28년 뒤인 1949년 대륙을 석권, 중화인민 공화국을 선포햇으며 건국 70
주년이 되는 2019년에는 당원 수가 9천 만명을 넘어섰다. 공산당원 수는 2018년 말 현재 9059만4000명으로 집계됏다.

1926년 =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주석 장제스(蔣介石)는 '군벌을 타도하여 전국통일을 이룩하자(討伐軍閥 謀求全國統一)'라는 슬로건 아래 북벌동원령을 공포했다.

장제스의 북벌은 1928년 12월29일 동북군벌 장쉐량(張學良)이 투항함으로써 군벌 타도를 통한 통일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공산당의 장시(江西) 소비에트가 건재하고 있어 이는 완전한 통일이라고 할 수 없었으며 장제스는 공산세력을 제압하는 데 실패, 1949년 대륙의 패권을 공산세력에 넘겨주었다.

1925년 =국민정부 광저우(廣州)에서 성립. 왕자오밍(汪兆銘)이 주석을 맡음

2015년 = 후진타오 총서기 시절 중앙판공청 주임을 지낸 링지화 전 통전부장 부패와 뇌물죄로 기소.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링징처의 형 링정처도 부패죄로 수감 되었며 동생 링완청은 미국으로 망명, 중국 당국은 범죄인 인도 요청을 미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링지화 3형제는 '정책계획 완성(政策 計劃 完成)의 두 글자씩으로 이름을 삼았다.

>세계사 속의 오늘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고(1799), 영국이 1902년 보어전쟁에서 승리한 뒤 8년간의 준비를 거쳐 남아프리카를 식민지로 편입했다(1910).

가나가 영국연방 내 공화국으로 독립했고 소말리아가 영국과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했으며(1960), 알제리 국민들이 국민투표에서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1961).르완다와 부룬디가 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1962).

유럽 경제공동체(EC : 현 유럽연합 EU의 전신)가 결성됐다(1967).

영국은 서독과 함께 이를 주도한 프랑스 드골의 거부감과 '영광스런 고립정책'의 여운으로 인한 스스로 미온적인 자세가 겹쳐 가입을 미루다가 1973년에서야 합류했다.

EC는 1991년 12월 마스트리히트 조약 채결과 가입국들의 비준절차를 마친 뒤인 1993년 11월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보다 높은 수준의 경제통합과 정치통합의 고도화를 지향하여 궁극적으로 유럽 합중국을 실현하자는 유럽연합(EU)로 발전 됐다.

영국은 유로화라는 유럽 단일통화 체제 가입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파운드화를 계속 유지하는 등 유럽 대륙국가들과 거리를 유지해오다가 2016년 6월 국민투표를 거쳐 EU에서 탈퇴를 결정했다.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됐고(1976), 동서독이 경제, 사회 복지 시스템이 정식으로 통합됐다(1990).

영국이 광부의 1일 8시간 노동제를 실시했다(1909).

미국이 비키니 섬에서 2차대전 후 첫 공개 원폭실험을 실시했으며(1946), 세계 61개국이 국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조인했다(1968).

일본의 자위대가 발족했다(1954).

덴마크가 세계 최초로 포르노물의 제작, 판매를 공식으로 허용했다(1969).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이 27년간 망명생활을 끝내고 자치정부 수반 자격으로 이집트에서 가자지구로 귀환했다(1994).

우리나라 역사 속 오늘

제헌국회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했다(1948)

미군 지상군이 한국전 참전을 위해 부산에 상륙했고 캐나다 함대가 한국 지원을 위해 한반도로 출동했다(1950).

유엔군 사령부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했다(1957).

전국 전화가 완전 자동화했으며(1987), 의료보험 제도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되었다(1989).

일본 제일은행의 경성(京城)지점이 조선중앙은행으로 발족했으며(1905), 일제 통감부가 경부, 경인 철도관리권을 대한제국에서 빼앗았다(1906).

2019/07/0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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