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8/26 07:52



[今天歷史-7월9일]키신저 비밀방중, 북벌선서, 양국론,

퍼그워시 성명, AU 출범, 한미 행정협정 조인, 이한열 장례식, 황산벌 전투, 임진왜란 금산 전투

1971년 7월 9일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인 헨리 키신저 박사가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키신저는 방중 기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회담을 갖고 다음해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에 합의했다.

닉슨 대통령은 키신저가 귀국한 뒤인 7월 15일 키신저의 비밀 방중과 자신의 중국 방문 합의를 발표했다. 느이

[今天歷史-2월21일] 닉슨 訪中, 傅作義, 譚嗣同, 흥중회

키신저의 중국 방문은외교의 형식과 내용 면에서 신기원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중국 방문은 국무부의 통상적인 외교절차를 무시한 채 이루어져 이후 국제무대에서 이른바 ‘키신저 외교’라는 비밀 특사 외교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도 이후락 중앙 정보부장의비밀 방북을 통해 성사됐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키신저 비밀 외교의 한국 버전이다. 남북한 최고 권력자의 최신임자가 남북을 교차 방문하고 합의문을공개적으로 발표한 때는 키신저의 비밀 방중 이 있은지 채 1년이 되기도 전이었다.

당시 남북 전략 브레인들이 얼마나 국제 정세의 변화를 재빨리 파악햇으며 순발력 잇게 대쳐했는가를 알 수 잇다.

키신저는 이후 미국의 비선출 최고 직위인 국무 장관에 올랐으나 '키신저 따라하기'의 남북한의 두 주역 이후락과 김영주는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이는 남북 대화를 계기로 그들의로켓 발사와 같은 화려한 정치저 후광이 최고 권력자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쨌든. 다시 키신저로 돌아가자.

내용면에서도 키신저는 중국을 국제무대 전면에 끌어들임으로써 2차 대전이후 지속돼 온 미소 양극 체제가 미중소의 3극 체제로, 더 나아가 다극체제로 전환하는 문을 열었다.

20세기 말 냉전 종식 후세계 질서는 미국 1극(혹은 단극) 체제를 거쳐 21세기 초에 들어 와 미국과 중국을 양대 축으로 한 'G2 시대'로 일단 정리됐는데 키신저의 방중은 이 새로운 세계 질서의 남상(濫觴인 셈이다.

1926년 = 장제스(蔣介
石) 국민혁명군 총사령(總司令)이 광저우(廣州) 동교장(東校場)에서 군사를 모아 놓고 북벌을 선서했다.

1999년 리덩후이(李登輝)대만 총통이 중국과 대만과의 관계를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 최소한 특수한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리덩후이의 ‘양국론(兩國論)’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리덩후이가 외국 TV와의 회견에서 이 같이 밝힌 뒤 대만 관계 당국자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을 했다.

“(리 총통의 발언은) 양안관계가 ‘양개의 대등한 정치실체’에서 ‘두개의 국가간의 관계’가 되었으며 따라서 양안회담은 국가와 국가간의 회담‘이 되어야 한다.”

리덩후이의 ‘양국론’은 중국의 ‘일국양제론’에 대항개념으로 사실상 대만의 독립을 주창한 것이다.

리덩후이가 ‘양국론’을 발표한지 이틀 뒤인 7월 11일 중공중앙대만공작판공실,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이를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리덩후이는 자신의 언행으로 ‘대독(台獨)노선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왔다”고 지적하고 “대만 독립세력들은 벼랑 끝에서 말고삐를 잡아당기고 불장난 행동을 그만두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일체의 분열활동을 정지할 것을 경고한다(立卽立懸崖勒馬,放棄玩火行動,停止一切分裂活動) ”고 말했다.

2000년 총통 선거에서 리덩후이 후임으로 선출된 민진당 소속 천수이볜(陳水扁)은 2002년 8월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을 내세웠는데 이는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 한나라씩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양국론’에 다른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

2000년 총통 선거에서 정권이 국민당에서 야당인 민진당으로 교체됐으나 최고 지도자 총통의 양안 관계 노선은 이처럼 그대로 계승됏다. 리덩후이와 천수이볜은 모두 대만성 출신, 즉 내성인(內省人)이다.

국민당의 마잉주( 馬英九 )가 2008년 총통에 당선 된 뒤 대륙 과의 화해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리덩후이의 '양국론'과 천수이 볜의 '일국일변론'은 사실상 폐기됐다.

마잉주는 대륙에서 태어난 외성인이다. 여기서 대만의 양안 정책은 당과 관계 없이 최고 지도자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에 따라 진행된셈이다.

2016년 1월 총통에 당선된 내성인이며 민진당의 차이잉원( 蔡英文 )은 5월 취임식에서양안 간의 기존 합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하나의 중국'에 대해 명백한 입장을 표명하기를 피했다. 이는 '양국론'과 '이변일국론'으로의 회귀를 슬며시 드러낸 것으로 중국의 강력한 반발로 양안 관계가 냉각됏다.

차이잉원은 리덩후이의 양국론 입안의 당사자다.

세계사 속의 오늘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과 미국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세계 저명 지식인들이 캐나다 퍼그워시에서 핵무기폐기협정 체결 주창하는 `퍼그워시 성명'을 발표했다(1955).

아프리카연합(AU) 이 공식 출범했다(2002).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백제의 계백장군과 신라의 김유신 장군 간의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다(660).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장군의 5,000명의 결사대가 5만의 신라군에 패배함으로써 백제의 망국을 면할 마지막 기회는 사라졌다.

임진왜란의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선생이 금산(錦山)전투에서 순절했다(1592). 아들 인후(仁厚)도 함께 전사했다. 이해 8월 18일 또 다른 의병장 조헌(趙憲)과 승장(僧將) 영규(靈圭)에 의한 금산전투가 벌어졌다. 조헌의 의병들도 고경명의 의병과 마찬가지로 패배하고 말았으나 일본군도 상당한 타격을 입어 호서와 호남( 충청도와 전라도 )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미행정협정(SOFA)이 조인됐으며(1966), 한국이 이라크와 수교했다(1989).

연세대 이한열 군의 장례식이 서울 노제에 100만여 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거행됐으며, 정부는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 관련자 18명과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17명 등 시국사범 2,335명에 대한 사면.복권 조치를 취했다(1987).


2019/07/09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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