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8/26 07:52



[今歷단상-7월21일]臺 40년 도버공중전 승리 프레임 짜기

1940년 6월 나치 독일군의 전격전으로 아르덴느 숲이 돌파 당하여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하고 말았다.

프랑스군과 합세하여 나치 독일군을 막아내려던 영국군은 덩케르크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도버해협 너머의 영국섬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나치 독일군에 항복하기를 거부한 샤를르 드골 휘하의 프랑스군도 영국군과 함께 영국섬에 왔으나 그 수는 미미했다.

영국은 유럽 대륙에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였다.

나치 독일의 등 뒤에 있는 소련은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여 폴란드를 나누어 가진 공범자 처지였고 미국은 관망 자세였다.

1940년 영국은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부터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까지처럼 유럽 대륙에서 고립 무언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에서 대승을 거둔 같은 해 비슷한 시점에 영국 넬슨 제독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파하여 나폴레옹의 군대가 영국섬을 넘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1940년 영국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해군력은 여전히 막강하여 나치 독일군이 도버해협을 건너지 못하게 할 수는 있었다.

나폴레옹은 대륙 봉쇄령으로 영국을 굴복시키려 하였다.

히틀러는 공군력으로 영국의 저항의지를 꺾고 미국이 유럽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여 사실상의 항복 협상 테이블 앞으로 나오게 하려했다.

덩케르크 철수 후 도버해협 상공에서 벌어지는 영독 공중전의 승패를 미국은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영국도 공중전의 승패 여부에 따라 미국의 태도가 완전히 뒤바뀔 것이기에 사력을 다했다.

결국 공중전에서 영국은 승리했다.

영국 전투기의 성능이 독일보다 우수했고 20세 전후 젊은 영국의 파일럿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하던 넬슨과 그 휘하 수병과 마찬가지의 '우리가 무너지면 영국이 망한다'는 자세로 싸웠다.

또한 유능한 폴란드 망명군인들이 영국 공군에 참여하여 도버해협 영독 공중에서 영국 승리에 힘을 보탰다.

도버해협 공중전 승리로 미국은 영국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히틀러도나폴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소련으로 군대의 방향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끝내 이것은 나치 독일의 패망으로 이어졌다.

1940년 영독 공중전에서 영국 승리는 '공중에서 이루어진 트라팔가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대만섬 차이잉원 총통은2019년 3월 F-16 최신예기를 다수 확보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스텔스 F-35기는 아니었으나 20년 동안 전임자들이 해결하지 못하던 것을 풀어냈다.

중국의 국력 강화로 대만해협에서 대만의 제공권 우위가 날이 갈수록 흔들리는 가운데 다시 이를 유지할 수 있는 극적 모멘텀을 잡은 것이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패권이 무너지고 그가 몰락한 전기는 러시아 원정 실패다.

히틀러가 2차대전에서 패배한 결정적 계기는 소련 침공 패배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의 최종적 승리 발판은 나폴레옹의 아우스터리츠 대승과 거의 비슷한 때에 이루어진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 승리다.

영국이 고립무원 최대 위기 상황에서 이룩한 도버 공중전 승리는 최종적인 승리의 도약대였다.

차이잉원은 대만섬을 불침 항공모함으로 삼기위해 1940년 영국을 본뜨고 있는 것이다. 핵심은 공군력 강화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19/07/2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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