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0/19 12:30



[今天歷史-8월30일] 대자보 폐지와 문혁파 일소

1980년 8월 30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5기 3차회의가 베이징(北京)에서 예젠잉(葉劍英)이 주재한 가운데 개막됐다.

9월 초까지 계속된 이 전인대에서는 국민경제의 장기적 발전계획과 경제관리체제 개혁 및 헌법개정문제가 논의됐다.

회의는 결의를 통해 “공민은 대명(大鳴), 대방(大放), 대변론(大辯論). 대자보(大字報) 등을 운용할 권리를 지닌다”는 헌법 제 45조 조항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이 ‘4대 권리’는 문화대혁명 기간 중 류샤오치(劉少奇)와 덩샤오핑(鄧小平) 등 당권파들을 공격하기 위해 군중을 동원하는 데 활용되었다.

전인대는 1978년 제정된 헌법의 전면적 개정을 위해 예젠잉을 주임위원, 쑹칭링(宋慶齡), 펑전(彭眞)을 부주임으로 하고 딩광쉰(丁光訓) 등 103명을 위원으로 하는 헌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이 전인대는 또 중공중앙(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인사건의를 통과시킴으로써 지도부의 세대교체와 문혁세력 거세를 단행했다.

총리는 자오쯔양(趙紫陽), 부총리는 양징런(楊靜仁), 장아핑(張愛萍), 황화(黃華)가 선출되었고 천융구이(陳永貴)는 부총리에서 면직되었다. 자오의 당시 나이는 61세였고 천은 65세였다.

문혁 이전까지만 해도 산시(山西)성 시양(昔陽)현 다차이(大寨)인민공사 당위 부서기였던 천융구이는 문혁 기간 다차이가 전국 농촌의 모범이 되면서 출세가도를 달린 끝에 1975년에는 일약 국무원 부총리에까지 이른 문혁의 상징적 존재였다.

반면 총리에 오른 자오쯔양은 쓰촨성에서 양식 문제를 해결하여 정국적인 주목을 받은 개혁파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전임 총리 화궈펑(華國鋒)과 전임 부총리 덩샤오핑(鄧小平), 리셴녠(李先念), 천윈(陳雲), 쉬샹첸(徐向前), 왕전(王震), 왕런중(王任重) 등은 전인대가 이들의 사임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통해 그 직책에서 물러났다.
화궈펑과 덩샤오핑은 같은 날 행정부의 수반 직과 서열 2위의 직책에서 함께 물러났지만 그 의미는 하늘과 땅차이가 있다. 화는 '날개없는 추락'이고 덩은 '태상황으로서의비상'으을 위한 뒷걸음이엇다. 당시 화의 나이는 59세였고 덩은 76세였다.

화궈펑은 1978년 12월 11기 3중전회에서 덩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함에 따라하나씩 권력의 자리를 내놓아야만 했다. 총리를 내놓기 6 개월 여 전인 1980년 2월 11기 5중전회에서 ‘총서기제’의부활로 화의 당주석은 실권 없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화가 총리를 내놓은지 9개월 뒤인 1981년 6월 11기 6중전회에서 당 주석과 군사위 주석을 내놓고 당 부주석으로
강등됐다(
덩샤오핑이 군사위 주석 직을 맡았고 12대에서 폐지되는 당주석 직도 총서기 후야오방이 겸임했다.





2019/08/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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