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0/19 12:30



[今天歷史-8월31일] 북한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중국 대만통일 백서 발표, 국민정부 동삼성 지역 9개성으로 분할, 다이애나 사망, 폴란드 자유노조 설립, 한국 비적성 공산국가 교역 허용

1998년 8월 31일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ICBM)로 추정되는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했다.

대포동 1호는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상에 떨어져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은 물론 세계를 경악시켰으며 미국이 국가 미사일방어(NMD) 추진을 가속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ICBM은 최소 사거리가 5,00km으로 대포동 1호는 발사 지점에서 낙하지점까지 추정거리는 여기에 이르지 못했기에 사거리에 의한 분류에 따르면 대포동 1호는 엄밀하게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 intermediate-range ballistic missile 사정거리 3500~5500 km)에 속한다.

그러나 당시 이 미사일의 실제 이동거리와는 별도로 지향하는 목표가 ICBM이라고 간주된 것이다.

영변 원자로에서 원자탄 제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있다는 의혹에서 출발한 북한 1차 핵위기를 1994년 10월21일 북미 제네바 핵합의로 일단 정리한 미국으로서는 핵폭탄 탑재에 이용할 수 있는 투발체인 탄도 미사일을 쏘아 올린 북한에 대해 새롭게 핵개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북미 제네바 핵 합의는 핵개발 한 축인 원자탄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영변 핵시설을 원자탄 제조에 활용할 수 없는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 2기를 지워 주고 폐쇄한다는 것이었다.

핵무기 제조 개발을 동결, 궁극적으로 이를 불가역적으로 중단시킨다는 콘셉트 아래 북한 핵위기 사태를 단계적으로 해소하는 프레임 아래 북미 제네바 핵합의가 진행 되는 과정에서 개발의 다른 한 축인 핵무기 투발체인 탄도 미사일을 북한이 쏘아 올림으로써 북한 핵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대포동'이라는 명칭은 미사일이 발사된 지명을 따서 미일 정보기관이 명명한 것이며 북한은 이 미사일을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쏘아 올리기 위한 우주 발사체라고 주장했다.

북한 스스로는 '은하' 또는 '화성' 시리즈라는 이름을 붙였으며(북한은 사거리에 따른 미사일을 분류하지 않고 있다. 또한 미사일 대신 로켓이라고 부르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긴 사거리의 미사일 즉 북한식으로 로켓은 화성 14형 로켓(미사일)이다. 미국 측도 최근 들어 북한이 명명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인공위성을 우주공간에 올려놓기 위한 우주 발사체란 이름의 로켓과 ICBM은 전자가 발사 추력을 높이는데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면 후자는 사거리를 늘이는데 지향점을 두고 있다는데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

우주 발사체 로켓과 ICBM은 모두 수직 방향으로 쏘아올리며 ICBM은 더 빨리 수평 방향으로 틀어 이동거리를 늘인다.

북한, 이란 등 이른바 '불량국가'의 대량 살상무기를 통한 미국 본토 공격 가능성을 제기하며 미국 본토 미사일 방어체제인 NMD 추진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이는 도널드 럼즈펠드였다

럼즈펠드는 핵개발에 두개의 수레바퀴인 핵무기와 투발체 즉 미사일 중 후자에 방점이 더 찍힌 전략을 수립했다.

그는 1970년대 중반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 행정부 시절 이미 국방장관을 역임했으며 민주당 빌 클린턴의 후임인 공화당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 취임 때인 2001년부터 2기 행정부 중반까지 다시 국방장관으로 재임하였다.

럼즈펠드는 24년 만에 국방장관을 두 번째로 맡게 된데는 대포동 1호의 발사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 NMD를 동맹국에 대한 미사일 방어체제인 전역(戰域) 미사일방어(TMD)와 통합하여 현재의 미사일방어(MD)체제로 만들었다.

북한은 대포동 1호 발사 8년 뒤인 2006년 7월5일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이 실험은 1호 때와는 달리 실패로 끝이 났다.

일본 방위청(현 방위성의 전신)은 2006년 7월 말 보고서에서 대포동 2호 미사일이 같은 달 7월5일 새벽 쏘아 올려진 7기의 미사일 중 세 번째로 발사됐는데 수십km 떨어진 북한 인근 해안에 떨어져 완전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 같은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실험 실패는 이해 10월9일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감행케 하는 동인이 되었다.

엇박자 스텝으로 핵개발을 진전시키던 북한은 이를 계기로 핵무기 개발과 투발체인 탄도 미사일 개발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중국 표현을 살짝 빌려 오면 '쌍궤병행(雙軌竝行)'이다.

북한은 2009년 4월5일 대포동 미사일 2호 또는 그 개량형의 발사 실험을 감행했다.

발사체는 역시 일본 열도 상공을 넘어가 발사 장소인 북한 무수단리로부터 3200km 떨어진 태평양상에 낙하했다. 이해 5월25일에는 2차 핵실험이 실시됐다.

이후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 금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 됐다. 앞서 언급한 대로 로켓과 탄도 미사일(BM)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탄도 미사일은 미국에서는 사거리에 따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사정거리 5500km 이상), 중거리 미사일(IRBM 3000~ 5500km),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MRBM, medium-range ballistic missile, 1000~ 3000km) 그리고 단거리 탄도 미사일(SRBM, Short-range ballistic missile), 1000km 이하)으로 분류된다.

최신 분류에서는 사거리 300km 이상 3500km 이하인 탄도 미사일을 따로 분류, 전구 탄도 미사일(TBM, Theatre ballistic missile)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탄도 미사일 발사 금지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2012년 4월13일, 같은 해 12월12일 잇따라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했다. 4월 발사는 실패했으나 12월 발사는 성공했다.

북한이 인공위성을 우주 공간에 띄우기 위한 우주 발사체라며 '은하 로켓'으로 명명한 이 탄도 미사일은 탑재한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 상에 일단 진입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파악됐으나 인공위성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미사일은 동해를 거쳐 일본 열도 상공을 통과하는 궤도 대신 서해를 거쳐 필리핀 동부 태평양 상에 낙하했다.

발사 장소는 함경북도 무수단리가 아닌 평안북도 동창리였으며 미국의 군사기지 괌도를 겨냥한 실험이었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미사일 발사 실험 2개월 뒤인 2013년 2월12일 3차 핵실험이 강행됐다. 이후 중국이 동참한 가운데 북한 제재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됐다.

2016년 1월 4차 핵실험, 9월 5차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이어 여러 차례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도발을 지속하였다.

특히 수차례의 실패를 거쳐 이해 8월에는 수중발사 탄도 미사일(SLBM )실험을 성공시킨데 이어 2017년 7월에는 마침내 북한이 ICBM으로 주장하는 탄도 미사일을 2차례 발사 실험하기에 이르렀다. 러시아는 이를 중거리 미사일 즉 IRBM으로 평가했으나 미국은 ICBM급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이 고각(高角) 발사 방식을 통해 사거리 추정에 전략적 평가가 달라지도록 유도, 핵 강대국들의 대북 핵위기 사태 전략의 틈을 벌리려 한 것이다. 이 시도는 나름의 효과를 보았다.

북한은 플루토늄 추출, ICBM 발사 실험, 지하 핵실험을 거쳐 SLBM, ICBM급 실험에 이르기까지 핵개발을 야금야금 진전시켜 핵 위협을 진화, 고도화 하고 있다.

이에 대응, 국제적 제재가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과 러시아도 마뜩치 않게나마 동참한 가운데 세밀 촘촘해지고 날로 강화되고 있고 그중에는 '공든 탑'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옵션도 포함되어 있다.

[今天歷史-6월23일] 클린턴 NMD 서명, 毋忘在莒

1993년 8월31일 중국이 ‘대만 문제와 중국 통일백서’를 발표했다. ‘평화 통일’, ‘일국양제’와 같은 원칙을 재천명했으며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불포기 입장을 견지했다.

1945년 = 중국 국민정부가 동삼성(東三省) 지역을 9개성으로 나누었다.

동삼성은 현재 통상 동북(東北) 3성으로 불리는 랴오둥(遼東)성, 헤이룽장(黑龍江)성, 그리고 지린(吉林)성을 통칭하여 일컫는 말이다.

이들 3개 성을 판도로 하여 1932년 3월1일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운 일제는 1940년 현재 허베이(河北)성의 일부인 러허(熱河)성을 만주국의 판도에 포함시켜 행정구획을 18개 성으로 나누었다.

일제의 패망으로 동삼성에 대한 주권을 회복한 국민정부는 이들 지역을 9개성으로 개편한 것이다.

현재의 3개성으로 통합 조정된 것은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이후의 일이다. 이는 1911년 청조 당시의 행정구획으로 환원된 것이었다.

세계사 속 오늘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애인 파에드와 함께 파리에서 파파라치 차량 추적을 따돌리는 와중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1997). 1961년 7월1일 생으로 향년 36세.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Solidarity)'가 바웬사 주도로 설립되었다(1980).

우리나라 역사 속 오늘

비적성(非敵性) 공산국가와 교역 허용을 의결하였다(1971)



2019/08/3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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