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0/19 12:30



[今天歷史-9월6일] 문혁의 완전청산

1982년 9월 6일 중국 공산당 제 12차 전국대표대회(12대 : 9월 1일에 개막되어 11일까지 계속되었다)에서 ‘중국 공산당 장정(章程 : 규약)’(당장)을 통과시켰다.

12대 당장은 중국 공산당을 ‘중국 노동자 계급의 선봉대이고 중국 각 민족 인민 이익의 충실한 대표이며 중국 사회주의 사업의 영도핵심’으로 규정했다.

12대 당장은 문화대혁명 초기 개최된 9대에서 통과시킨당장을 최종적으로 청산, 개정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12대는 그 동안 정치상황 변화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온 문혁극복과정을 총괄하는 대회였으며 새 당장은 바로 이를 압축적으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 이후 중국 공산당은 이른바 ‘덩샤오핑(鄧小平)노선’의 시대로 본격적으로 접어들게 된다.

8대(1956년 9월) 이후 12년 반 만인1969년 4월에 개최된 9대에서 린뱌오(林彪)는 정치보고를 통해 ‘무산계급 독재 하의 계속혁명 이론’에 입각하여 문화대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문화대혁명의 성과를 찬양하였다.

이 같은 배경 아래서 통과된 9대 당장은 린뱌오를 ‘마오쩌둥 동지의 친밀한 전우이자 후계자(毛澤東同志的親密戰友和接班人)’ 이라는 구절을 총강에 삽입한 사실이 상징하듯 중국 공산당의 민주집중제 및 집단영도 원칙을 위배하고 있었다.

또한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최고 지침으로 삼는다고 규정했다.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마오쩌둥 사상의 우위를 강조한 것이다.

린뱌오의 쿠데타 미수 사건(1971년)이 발생한 후인 1973년 8월에 개최된 10대는 린뱌오를 청산하는 대회였다. 린뱌오 청산 외에는 9대의 노선이 견지됐다.

‘무산계급독재 하의 계속 혁명론'에 대한 지지 입장이 재확인됐고 9대의 정치노선과 조직노선은 모두 정확했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10대 당장은 후계자 대목은 삭제했으나 마오쩌둥 사상을 최고지침으로 삼는다는 대목은 그대로 유지됐다.

10대가 린뱌오의 청산이었다고 한다면 마오쩌둥 사후 1년 뒤인 1977년에 개최된 11대는 4인방의 청산이었다. 4인방의 죄상은 강력하게 비판되었으나 마오의 사상과 노선 및 10대 노선은 유지됐다.

하지만 1978년 12월에 개최된 11기 3중전회에서 화궈펑(華國鋒) 노선이 청산되기에 이른다. 11기3중전회에서는 화궈펑의 ‘양개범시(兩個凡是)’ 주장이 비판받았고 마오 사상의 좌(左)편향의 사상과 노선 -예를 들어 ‘계급투쟁을 핵심으로 하여야 한다(以階級鬪爭綱)’는 내용 등-이 수정되었다.

12대당장의 주요 규정은 다음과 같다.

- 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을 당 행동의 지표로 삼는다

- 당의 최종적인 목표는 공산주의의 실현이다

- 당원들은 당의 강령과 당장을 반드시 준수해야 하며 당의 조직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당의 결의를 집행하고 정기적으로 당비를 납부하여야한다

12대 당장이 당의 강화를 위해 제시한3개 실천목표는 다음과 같다.

1. 사상적, 정치적으로 고도 일치

2. 전심전력을 다해 인민에게 복무

3. 민주집중제의 견지.

12대가 마오 노선의 극복이엇다면이후 당 대회에서는 마오 노선을 대거 들어 내어 빈 공간에 새로운 노선 혹은 방향 을 채워 넣는 것이엇다.

1987년 13대에서는 자오쯔양의 에 의해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이 제시되엇고 소련공산당 해체와 소련 연방체제붕괴 다음해인 1992년 에 열린 14대에서는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이 장쩌민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내세워졌다.

2002년 16대에서는 장쩌민의 ' 3개 대표론'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자본가 계급의역할을 인정한 것으로 소수 혁명를기초로 하여 러시아 혁명을 성취한 볼세비즘과의 작별과 광범한 대중 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고 한 멘세비즘의 부활로도 간주할 수 잇다.

2002년 총서기에 오른 후진타오는2007년 17대 이후 홍(紅)과 '전(專(' 의 조화를 도모하는 '허셰사회', 즉 '조화 사회' 를 강조했다. '마오가 말한 '간고분투'의 복창이 '홍'을 대표한다면 '과학 발전관'은 '전'을 상징한다.

2012년 18대에서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은 '굴기 중국'을 통한 '대국위상' 확보라는 목표를 '중국의 꿈'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담아 추진했다.
2017년 10월 개최한 19대에서는 당장에 '시진핑 사상을 집어 넣고 2018년 3월 전인대에서는 국가 주석의 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하여 최고 권력자의 종신 집권의 길을 터 놓았고 후계를현임 지도자와 다른 파벌에서 사전 내정하는 '격대 지정제'를 따르지 않아 공산당 내에서의 제한적인 정권 굧체를 보장하는 길을 봉쇄했다. 이로써 덩샤오핑 집권 이래 견지돼 온 집단 지도체제의 틀은 무너지게 되었다.

만일 시진핑 세력이장쩌민의 상하이방과 후진타오의 단파 그리고 원 로 들이 주축이 된 무시 못할 반대 세력의 강력한 저항을 제압하고 이를 공고화한다면 이는 시진핑이 덩샤오핑을 뛰어 넘어 마오쩌둥의 비견되는 위치에 오른 다는 것을의미하며 그의 장기 집권을 예고하는 것이 된다.

2019/09/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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