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0/19 12:30



[今天歷史-9월7일] 영-티베트 라싸조약, 신축 조약

나치 독일 런던 대공습, 서독 수립, 호네커 사상 첫 서독 방문, 미국 극동군 사령부 남한에 군정 실시와 야간 통행 금지령, 신민당 박정희 대통령 탄핵 소추결의안 발의

안기부 김낙중 전 민중당 공동대표 고정간첩 암약 발표, 동국대 '피바다' 공연 해산,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1904년 9월 7일 영국(인도 정청)과 티베트 사이에 라싸조약이 체결됐다.

이 조약은 티베트에 인도와의 교역시장 설치, 영국 상무주재관 티베트 상주, 티베트 영토의 외국에의 불양도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9세기 후반 이후부터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여 티베트와 조약을 체결하려 하였으나 티베트측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1904년 1만 명의 군대로 라싸를 점령한 뒤, 포탈라 궁에서 조약을 체결하였다.

7 개월 전인 이해 2월 동맹국 일본이 러시아를 기습 공격하여 러일 전쟁이 벌어졌다. 러시아가 중국 만주 지역 전투애ㅔ 골몰하느라 티베트에 신경을 쓸 수 없는 기회를 노려 영국은 티베트 고민을 해결한 것이다.

청나라는 티베트에 대한 종주권을 내세워 이 조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러일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끝난 다음해인1906년 4월 27일 중국과 영국은 베이징에서 “(영국은) 티베트의 영토를 점유하지 않으며 티베트의 정치에 일체 간여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러시아의 남진이 저지됨으로써 영국이 한발 후퇴한 것이다.

또한 1907년 영국과 러시아 간에 티베트에 대한 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라싸조약은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일지] 티베트...20세기 이후

1901년 = 베이징(北京)에서 중국 정부(청나라 정부)가 영국,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 열강과 일본등과 의정서, 즉 ‘신축조약(辛丑條約)’에 서명햇다. .

신축 조약은 중국 민중의 반외세 운동인
의화단
사건을 구실 삼아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과 일본이 중국에 공동 출병하여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을 함락한 사태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축 조약이 미국과 영국에 부여한 각종 제국주의적 이권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 이던 1943년 1월 11일 취소됏다. 이와 함께 양국이 중국에서 누리고 있던 일체의 치외법권도 실효됏다. 이와 관련한 협정은 국민정부의 임시수도 충칭에서 국민정부 외교부장과 충칭 주재 양국 대사 간에 각각 체결됏다. .

세계사 속의 오늘

독일 공군이 런던을 대공습했고(1940),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수립됐으며(1949),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 독일 분단 후 최초로 서독을 방문했다(1987).

호네커는 이 역사적 서독 방문 2년 후에 실각했고 그의 실각에 뒤이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남한에 군정을 선포하고. 야간통행금지제를 실시했다(1945).

신민당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1969), 동국대생들이 북한의 대표적 혁명가극 '피바다'를 교내서 공연하다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1989).

국가안전기획부는 전 민중당 공동대표 김낙중씨가 36년 동안 고정간첩으로 암약해 왔다고 발표했다(1992).

고위공직자 1,167명의 재산이 공개됐고(1993), 재일교포 무기수 권희로씨가 일본서 복역 31년 6개월만에 가석방돼 귀국했다(1999).

권희로 씨는 고국에서 생활하던 중 2000년 삼각 치정극에 휘말려 폭력 행사를 벌이다 체포되어 치료 감호소에서 수감 생활 하다가 2010년 투병하던 병원에서 사망햇다. 향년 82세.

권희로씨는 40세 때이던 1968년 읿본인 폭력배를 엽총으로 살해하고 여관에서 투숙객을인질로 잡고 대치극을 벌이다 체포되어 무기형 선고를 받앗는데 당시 김희로로 알려졌던 그에 대한 우리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1999년 석방되어 일본의 추방 형식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사건 발생 당시는 일본인들의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때라 그이 행동이일본인들의 차별에대한 누적된 민족 감정이 폭발한 것으로 보았다.
이를 소재로'김의 전쟁'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햇다.

권희로에 대한 구명 운동이 활발할 때 우리나라의 한신문은 칼럼에서 '악한의 마지막 도피처는 애국심'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권희로의 범죄 행위 그 자체에대해서는 외면한 당시 우리 자세를 비판햇는데 권희로의 귀국 후범죄 행위는 이러한 지적을 뼈 아프게 받아들이게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변명도 경청해야 한다. 권희로는 31년간의 수감 생활로 사회 적응이 어려웠는데 귀국 후 이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부족했다는 것이다. 또 옥중 결혼한 한국 장기수 출신 여성이 귀국한 그를 찾아 와 사기 행각을 벌이고 도망친 사건이 권희로에게 치정극에 빠져들게한 심리적 베경 요인이 되엇다는지적도 설득력 있게제기되었다. 돈정숙이란 이름의 문제의 여인은 일본인 현지처로 생활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기 위해 한국 을 방문한 일본인 본처를 살해하여 장기 복역하던 중 권희로와 옥중 결혼을 하엿다. 그녀는 출소 뒤 권씨에 대한 후원 금을 갖고 권씨 측과 연락을 끊고 종적을 감추었다가 권희로가 귀국 한 뒤 그를차자와 잠시 생활을 함게 하다가 다시 돈을 빼돌린 뒤 다시 그의 곁에서사라졋다.

이 '팜므 파탈'이 일본인 처를 살해할 당시는 재일 동포 문세관이 육영수 여사를 피격 사망케 한 직후여서 당국은일본에 대한 반감에서 이루어진 뭊지마 보복 살해가 아닐까 긴장햇엇다.그러나 살인은자신의 동거 생활을갑자기 '파탄낸' 본처에 대한여자로서의 질투심에서 비롯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2019/09/07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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