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옐친’ 판위에(潘岳) (4ㆍ끝) ‘비평(批評)’, ‘비(批)’. 두 개의 만언서를 검토한 뒤 장쩌민이 붙인 의견이다. ‘비평’은 덩리췬의 만언서에 대한 것이었고 ‘비’는 판위에의 글에 대한 의견이었다. 두 만언서에 대해 모두 부정적 견해를 표시한 셈이다. 하지만 두 글자와 한 글자 사이의 뉘앙스 차이는 무엇일까. 장쩌민은 이처럼 짤막하게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뒤 정치국 상무위원들에게 이 두 개의 문건을 회람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비평’이라는 단어는 입장을 명확히 드러낸다. 하지만 ‘비’라는 한 글자는 최종적 판단을 유보한듯한 느낌을 준다. 보수파 인사들은 판위에의 만언서와 장쩌민의 ‘7ㆍ1 강화’ 사이에는 모종의 연결 고리가 있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판위에의 글에 장쩌민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장쩌민의 ‘비’는 ‘비판적 지지’ 혹은 ‘비판적 수용’을 암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보수파 측에서는 판위에의 만언서는 일견 중국 공산당의 통치를 지켜나가자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중국 공산당을 서구식 사회민주당으로 탈바꿈 시키자는 주장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들은 판위에의 주변에는 일단의 자유파 인사들이 집결해 있음을 지적하면서 판위에는 중국 공산당 내 자유파 인사들의 대변인이라 비난한다. ‘좌(左)’로 부터의 공격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보다 매서운 것은 ‘우(右)’의 비판이었다. 반체제 인사인 류사오보(劉曉波)는 덩리췬과 판위에의 만언서는 ‘이곡동공(異曲同工)’이라고 두 문건의 차별성을 아예 무시한다. 그는 판위에의 만언서는 대담한 주장을 편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최종적 목표는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자기 모순적 논리 때문에 실천에 옮겨 질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판위에의 만언서는 ‘중국 공산당 구명(救命)방안’이라는 게 류사오보의 싸늘한 평가이다. 판위에의 정치적 장래는 어떻게 될까. 중앙 판공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미국 거주 반체제 인사 우자상(吳稼祥)은 판위에의 만언서가 홍콩의 시사잡지 개방에 공개되어 파문이 인 직후 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 우려했다. 현재 하버드대 방문학자 신분인 우자상은 보수파가 단지 논쟁을 벌이는 수준에서 벗어나 그의 정치생명을 끊으려 집요하게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그의 낙마는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은 우자상의 예언을 입증해 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리펑이 장쩌민의 면전에서 그의 이름을 거명, 사실상의 숙청을 요구한 사실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언론에서는 리펑의 요구대로 판위에를 중앙위원으로 선출하지 않는 것은 물론 곧 지방의 한직으로 좌천시키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보도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판위에의 정치적 선배...왕뤄수이와 바오퉁 판위에는 얼마 전 미국에서 암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왕뤄수이(王若水)와 바오퉁(鮑彤)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모두 시대를 앞서가는 주장을 펴다가 숙청을 당했다. 1963년 ‘탁자의 철학’이라는 글을 발표 마오쩌둥(毛澤東)의 격찬을 받았던 후난(湖南)성 출신의 언론인인 왕뤄수이는 문혁 기간 중 4인방의 이론가였던 장춘차오(張春橋)와 야오원위안(姚文元)을 비판하는 글을 대담하게 마오에게 보냈다가 고초를 겪었다. 1977년 4인방이 타도된 뒤 후야오방(胡耀邦)에 의해 인민일보 부총편집에 임명된 그는 자유와 민주를 고취하는 글과 인도주의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변화문제를 다룬 글을 발표했다. 그의 급진적인 개혁 사상은 후야오방 실각 이전 정신오염 제거 운동 과정에서 보수 세력의 맹렬한 비판을 받았고 후의 실각 후 벌어진 반 자산계급 운동 와중에서는 당적을 박탈당하기까지 했다. 인민일보사는 그의 가족들에게 조문을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복권이 이루어진 셈이지만 그는 숙청 이후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못했다. 자오쯔양(趙紫陽)의 비서 출신인 바오퉁은 1987년 자오가 총서기에 선출된 뒤 신설된 당 중앙 정치체제 개혁 연구실의 주임으로 있으면서 정치개혁의 이론과 실천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톈안먼 사태 직전 체포된 그는 7년간 옥살이를 해, 톈안먼 사태로 옥고를 치룬 최고위급 인사(당 중앙위원)에다 최장기 복역수라는 두 개의 기록을 갖고 있다. 톈안먼 사태 이후 정치체제개혁연구실은 폐지되었는데 판위에가 현재 몸 담고 있는 국무원 경제체제개혁 판공실이 그 기능을 흡수한 셈이다. 판위에와 바오퉁은 둘 다 시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1961년부터 시를 써온 바오퉁은 톈안먼 사태 후 정치범을 주로 수용하는 친청(秦城)감옥에 있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을 벌였다. 필기 도구가 없는 가운데서 놀랄만한 기억력으로 옥중에서 지은 시를 출감할 때까지 고스란히 기억했으며 이 시들은 아들 바오푸(鮑樸)에 의해 문외한시사주(門外漢詩詞注)란 시집으로 엮어졌다. 과연 판위에는 왕뤄수이와 바오퉁의 길을 되밟을 것인가. 그러나 여기서 판위에의 정치개혁 방안이 후진타오(胡錦濤)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라는 주장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후진타오는 도대체 정치개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차이나워처들의 관심 사항이었으나 그는 장쩌민의 노선을 복창하는 자세만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그래서 후진타오는 당내 민주를 강조하며 기회있을 때매다 그 구체적 방안을 발표해 온 쩡칭훙에 비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까지 들었다. 판위에가 일련의 문건을 통해 발표한 정치개혁 노선이 2인자로서 ‘소심익익(小心翼翼)’의 행보를 취해 온 후진타오의 견해를 대변한 것이라면 판위에는 일종의 ‘정치적 리트머스’다. 판위에의 몰락은 단지 한 대담한 젊은 개혁가의 좌절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판위에의 거취에 주목해야 할 필요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차이나워처>

▶ 2002/01/26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