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장제스(蔣介石)와 무망재거(毋忘在莒) 1일(2004년 12월 1일)은 카이로 선언이 발표된 지 61주년이 되는 날이다. ▶[今天歷史-12월1일] 카이로선언 이 선언은 2차대전이 한창 진행중이던 1943년 11월 22일부터 26일까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총통,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그리고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전후 처리에 관해 합의한 내용을 선언의 형태로 발표한 것으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한 문서로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하다. 카이로 회담은 장제스에게는 득의(得意)의 한 순간이었다. 19세기중반 이후 20세기 초까지 중국에 갖은 수모를 안겼던 서구열강의 지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였기 때문이었다. 카이로 선언이 발표된 날은 마침 쑹메이링(宋美齡)과의 결혼 16주년 기념일이기도 하였다. 당시 쑹메이링은 장제스와 동반하여 카이로에 왔다. 영어에 서툰 장제스의 통역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회담 당시 찍은 사진은 쑹메이링이 단순한 통역역할에 머무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쑹메이링은 장, 루스벨트, 그리고 처칠과 동등하게 의자에 앉았으며 사진에서 보듯 장제스와 떨어진 채 처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쑹이 외교를 주도적으로 전개하고 있음을 사진은 보여주고 있다. 추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한 세 지도자는 전후 미래를 설계하였지만 그 실천은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루스벨트는 전쟁이 종결되기 전에 사망했고 처칠은 대독전 승리 직후 실시된 총선에서 노동당에게 정권을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장제스는 종전 후의 국공내전에서 패배, 대만으로 철수해야 했다. 대만은 카이로 선언에서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회복하기로 합의한 지역이었다. 다음은 1998년에 작성한 장제스에 관한 추억의 기록이다. <차이나워처 주> 장제스(蔣介石)의 추억...무망재거(毋忘在莒)　 대만의 진먼다오(金門島)는 홍콩특파원을 하는 동안 반드시 취재하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였다. 판문점, 베를린 처럼 동서 냉전과 분단국의 '상징'이고 또 1958년 한국일보 최병우(崔秉宇)특파원이 순직한 곳이여서 때문만은 아니었다. 필자에게는 제대로 알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린 '毋忘在莒(무망재거)'라는 4자성어 때문이었다. 이 4자성어는 대만의 장졔스(蔣介石)총통이 1975년 사망했을 당시 한 한국TV가 방송한 그의 일대기를 다룬 기록 필름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됐다. 이 기록필름은 중국 공산당이 자랑스러워마지 않는 장정(長征)을 '참담한 패주'로 설명한 반면 대만철수는 '작전상 철수'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는 등 철저히 대만 측의 시각에서 편집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필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1958년 진먼다오 포격전 직후 그 곳을 방문한 장 총통이 바다 건너 대륙을 바라보면서 지은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도저히 실현가능하지 않을 성 싶은 '본토탈환' 을 여전히 모색하는 고독한 영웅의 모습이었다. 생전의 장제스의 그 모습은 89세로 천수를 누린 그의 일생을 비극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옌안(延安)의 '와신(臥薪)'과는 달리 대만의 '상담(嘗膽)'이 결국 권토중래(捲土重來)의 비원을 실현하지 못한 채 끝맺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장면 직후 비추어진 것이 진먼다오 섬 정상위에 조각된 '毋忘在莒'라는 4자 글귀였다. 그 4자성어에 대해 나래이터는 장제스가 대만으로 쫓겨 온 후 강대국 사이에 낀 작은 나라이면서도 당당하게 독립을 유지한 춘추전국시대의 '작은 나라‘의 고사를 인용하여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그 설명은 그러나 부정확한 것이었다. ‘거(莒)’는 나라가 아니고 함락되지 않아 반격의 근거지가 된 성의 이름이었다.) ▶[今天歷史-6월 23일] 毋忘在莒 화면에서 잠시 머물렀다 사라진 이 4자 글귀를 제대로 알게 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 때까지 '毋忘'은 '不忘'으로 잘못 기억했고 한동안 '莒'는 '려'로 읽었던 것이다. 몇 년 뒤엔가 자전을 찾던 중 '莒'를 '거'로 읽어야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기억속의 '不忘'이 '毋忘'으로 '교정'된 것은 1980년도 후반이 되서야였다. 아는 이의 집들이에 갔다가 접대용으로 나온 진먼다오(金門島)의 특산품인 고량주 덕택이었다. 고량주 상표가 '毋忘在莒'였다. ‘莒’를 ‘려’로 읽기 쉽지만 ‘거’로 읽어야 한다면서 10년 전 기록 필름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몹시 아는 척을 했었다. 그동안 ‘무망’을 ‘불망’으로 잘못 기억했던 사실은 감춘채 말이다. 홍콩특파원 부임이후 4개월 만인 1992년 8월에 단교취재를 위해 대만에 갈 수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진먼다오 취재는 엄두도 못 내었다. 그런데 베이징에서 돌아온지 1년이 가까워오는 1996년 3월 진먼다오를 취재할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홍콩특파원 시절 대만출장도 불시에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이번 역시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원래는 3월 23일 실시되는 대만 첫 총통 직접선거 취재를 위해 중국문제를 담당해오던 후배기자가 출장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3월 8일과 9일 우리로 따지면 각각 인천과 부산에 해당하는 기륭(基隆)항과 가오슝(高雄)항 앞바다에 모두 미사일 4발을 떨어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 양안간 긴장이 고조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경험있는 사람이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홍콩과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필자가 가게된 것이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였으나 필자에게는 이것은 문자 그대로 '군사적 시위'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충돌은 결코 벌이지 않는다는 전제아래서 최대한 긴장을 조성하는 외교 시위'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었다. 중국은 대만 총통 선거를 통해 이슈화되고 있는 대만 독립문제를 '찻잔속의 태풍' 쯤으로 무시해버릴 여유 있는 처지가 아니였다. 1년 전 미국 정부는 중국의 강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민간인 자격방문을 허용했다. 이후 '대만총통 초청 외교' 도미노 현상이 주변국에서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리 총통이 일본 유학생이였던 사실을 들어 일본이 미국의 선례를 따를 것이라는 '애드벌룬'성 보도가 끈질기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은 25년 전 키신저의 밀행이후 미국의 본을 따라 진행된 일본의 중국 접근이 미국을 앞질러 나갔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미중수교는 1972년 닉슨의 중국방문 7년 후인 1979년이었지만 중일수교는 1972년에 이루어졌다. 만일 리 총통의 일본방문이 성사된다면 이는 '1개 중국'의 틀이 결정적으로 흔들리는 것이었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이는 방치할 수 없는 위험한 조짐이었다. 따라서 '1개 중국'원칙에 대한 중국의 확고한 결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바로 이 것이 미사일 발사훈련을 포함한 대만해협에서의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나타났다고 보았던 것이다. '전투가 당장 벌어질 것처럼 긴장을 조성하지만 군사적 충돌은 회피한다'라는 것이 중국의 방침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중국이 훈련범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또 훈련 일정마저 사전 공표한 사실과 외교부부부장을 역임한 류화추(劉華秋) 중국 국무원 판공실 주임과 같은 최고위급 외교관이 미국을 방문, 각계각층 인사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이 이번 긴장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는 뚜럿한 증거였다. 모두들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중국 덕택에 대만출장을 다시 하게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3월 12일 비행기에 올랐다. 국교단절 당시 방문한 이후 3년 6개월여 만에 다시 찾은 장제스 공항은 방금 전 떠나온 김포공항의 분위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전쟁 발발위협을 이 곳에서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타이베이(台北)시내로 들어서서 옛 한국대사관 옆 궈린(國聯)호텔로 향하는 동안 지켜본 도심 분위기 역시 영 아니올시다였다. 번잡스러운 전형적인 도시 오후 풍경이었으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니폼을 입은 유치원생들이 줄을 맞추어 하교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 것은 전쟁발발의 위협속에 떨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인근의 편의점에서 일간 신문을 사다 읽고서야 표면적인 일상 한꺼플 밑에서 흔들리고 있는 대만사회의 모습을 엿 볼 수가 있었다. 쌀값은 치솟았고 달러화 인출러시가 그치지 않았다. 흔들리는 증시를 안정시키기 위해 대만당국은 비축해놓은 증시안정기금을 아낌없이 퍼붓고 있는 중이었다. 민심동요를 막기 위해서였다. 방송도 총통유세전은 뒷전에 제쳐 놓은 채 중국의 군사 움직임을 시시각각 전하고 있었다. 다음날인 13일 아침 한 조간은 대만남동부 타이중(台中)에서15세의 한 소녀이 자살한 사연을 싣고 있었다. 이 소녀는 중국군의 무력위협에 공포감에 억눌린 나머지 살충제를 마신 것이다. 소녀가 남긴 유언장에는 "역사나 지리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나. 중국 공산당이 우리 문 앞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는데..."라고 쓰여 있었다고 이 신문은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연을 읽은 뒤 호텔 인근의 국부(國父)기념관 광장을 가본 필자는 다시 혼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광장은 에어로빅과 태극권에 열중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로 가득 메워 있었다. 특히 몸에 착 붙은 타이즈를 입고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에어로빅을 하는 중년 여인네들의 모습을 보며 여기가 중국의 미사일 위협에 흔들리고 있다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시 한복판인가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이베이시에서는'긴장'은 신문과 방송속에서 만의 '긴장'이었다. 피부로 느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중국이 군사훈련을 펼치는 대만의 최전선으로 가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3일 저녁 국내선 전용공항인 타이베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쑹산(松山)공항에 가 비행 편을 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우선 놀란 것은 불과 몇 년 전 군용기를 타고서야 갈 수 있었다는 진먼다오로의 하루 항공기 운항편수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타이베이-진먼다오 간에는 150석 여객기가 하루 9편 운항되고 있었다. 또 타이베이-마쭈다오(馬祖島)간도 18인승 프로펠러 여객기가 하루 12편씩 운항되고 있었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미사일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도 운항편수 감소나 중단과 같은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진먼다오는 필자에게는 여전히 가기 힘들고 먼 곳이었다. 안개 때문이었다. 14일 아침 보딩패스를 받고 두 차례나 비행기에 탑승, 승무원들로부터 이륙직전에 하는 비상시 대처요령 설명을 듣기까지 했으나 진먼다오 공항의 기상상태가 악화됐다는 이유로 다시 트랩을 내려와야 했다. 결국 그 날은 하루 종일 공항에서 허송해야 했다. 다음 날부터는 아예 여객기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처음에는 긴장고조에 따른 비상조치로 여겼으나 귀대병사들마저 발이 묶여 공항대합실에서 일반 승객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서야 기상악화가 공항폐쇄의 진정한 이유임을 납득할 수 있었다. 진먼다오 취재가 여의치 않자 16일에는 마쭈다오 취재로 방향을 돌렸다. 중국이 마쭈다오 인근 해역에서 18일부터 육해공 합동상륙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 이 섬이 뉴스의 초점으로 등장한 것도 한 이유가 됐다. 마침 이 곳 취재를 위해 베이징(北京)에서 날아온 한겨레신문의 이길우 특파원과 필자와 함께 베이징에서 특파원생활을 함께한 매일신문의 최창국(崔昌國)논설위원도 함께 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마쭈다오 역시 필자에게는 쉽게 갈 수 없는 섬이었다. 이날 이륙하고 착륙할 때마다 머리를 쭈뼛거리게 하는 18인승 프로펠러비행기를 타고 3번이나 마쭈다오 상공까지 갔으나 끝내 마쭈다오 섬에 발을 딛지는 못했다. 아니 하늘 위에서 섬의 전경조차 보지도 못했다. 이번도 역시 짙은 안개 때문이었다. 첫 번째 회항 때는 회항한다는 안내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해 대만 본섬을 마쭈다오로 착각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였다. "마쭈다오 섬이 생각보다는 아주 큰데" 하는 나의 말에 취재노트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메모하던 이길우 한겨레신문 특파원은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착각에서 벗어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몇 십분 전 이륙했던 쑹산 공항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날 점심은 3차례 제공받은 항공기 기내식으로 때웠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마쭈다오로의 항공기 운항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중국의 군사훈련이 실시되는 해역에 훈련 개시일에 맞추어 안개가 끼는 기묘한 사태가 계속 연출된 것이다. 이는 시위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중국 측에게도 방어태세를 과시하려는 대만에게도 맥 풀리게 하는 사태진전이었다. 결국 '안개장군(霧將軍) '이라는 희화적 제목의 기자의 눈으로 국제부에 예고했던 마쭈다오 르포를 대신했다. " 중국의 군사훈련이 촉발시킨 양안긴장의 승자는 중국도 대만도 아니다. '구름 장군(霧將軍)'이 바로 승자다. 나폴레옹의 유럽제패 꿈을 무산시킨 것이 러시아의 '동장군(冬將軍)'이듯 대만해협에 마침 출현한 안개는 공세적인 중국과 수세적인 대만 모두에게 가장 무서운 적으로 등장했다. 12일부터 대만해협 남단 해역에서 실시됐던 중국군의 실탄훈련은 안개가 연일 이 해역을 뒤덮는 바람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대만 국방부는 분석하고 있다. 훈련개시일인 12일 기상악화로 인해 실탄발사도 하지 못하고 비행기도 많이 띄우지 못하더니 훈련 마지막 날인 15일에는 훈련참가 병력과 종목을 축소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은 3차 군사훈련지역을 2차 군사훈련 실시 기간에 날씨가 좋았던 북쪽 지역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훈련실시 발표가 있던 바로 다음날인 16일부터 그 일대에도 안개가 엄습, 18일부터 개시될 3차 훈련도 2차 훈련 때와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무장군'에 당하기는 대만도 마찬가지이다. 안개때문에 진먼다오(金門島) 공항 폐쇄가 계속되자 대만군은 급기야 군용기로 귀대장병을 실어 나르는 비상수단을 쓰기에 이르렀다. 중국의 침공이 우려되는 도서지역 주둔군들의 신경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없는 안개에 더욱 곤두섰음은 물론이다. 대만 당국은 또 중국의 3차 군사훈련 해역에 인접해 있어 위험해진 타이베이-마쭈다오 노선 항공기를 훈련기간 중에도 정상적으로 운항하겠다고 강조했으나 이 결연한 의지는 그 의지를 밝힌 바로 그날 '무장군'의 일격에 참담하게 꺾였다. 중국과 대만 양측 모두에게 무서운 복병으로 등장한 안개는 '謀事在人 成事在天 (일은 사람이 꾸미나 일의 성취는 하늘에 달려있다)'이라는 옛말을 생각케 한다. <대만 馬祖島 상공에서>" 필자의 마쭈다오 상공에서 겪은 곤욕은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니었다. 2, 3 일 뒤 마쭈다오 공항이 잠시 열린 틈을 이용, '운좋게' 마쭈다오에 간 몇몇 특파원들은 안개로 돌아오는 항공편이 끊겨 3일간 발이 묶인 끝에 중국이 군사훈련을 벌이는 해역 인근 섬 주민들을 소개하는 배편을 타고 서야 타이베이에 돌아 올수 있었다. 닷새 동안 쑹산공항에서 기다린 끝에 18일 진먼다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초기의 긴장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는 시점이었다. 예고한대로 18일부터 마쭈다오 인근에서 중국군의 상륙훈련이 실시되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사태 초기의 팽팽한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항공모함파견 등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적 대응도 대응이었지만 중국이 미국과의 접촉에서 대만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는 미 국방부 대변인의 발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선궈팡 (沈國放) 중국 외교부대변인이 총통에 누가 당선되든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발언 역시 긴장의 강도를 낮추는 역할을 했다. 중국 측의 이 일련의 앞 뒤 다른 행동은 미사일 발사 훈련과 뒤이은 군사훈련이 군사적 충돌마저 불사하겠다는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3차훈련 개시일인 3월 18일은 미사일 발사 훈련이 있었던 8일과 9일, 그리고 진먼다오 인근에서의 2차 군사훈련이 시작된 12일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모든 경제지표가 안정을 찾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주가는 오히려 소폭 증가했고 환율도 내렸다. 또 미사일 훈련과 2차 훈련 실시를 전후하여 발생했던 사재기 현상도 줄었고 오르기만 하던 쌀값도 내렸다. 진먼다오와 마쭈다오 항공편 모두 열렸다. 긴장이 고조될 당시 엄습하였던 안개가 긴장이 잦아들면서 사라진 것이다. 취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진먼다오보다는 인근 해역에서 3차 군사훈련이 시작되는 마쭈다오를 선택해야했다. 그러나 필자는 진먼다오를 택했다. '毋忘在莒'를 봐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50석의 좌석 80~90%가 차 있었다. 하지만 이 날 저녁 타이베이로 돌아올 때 탑승객은 불과 14명이었다. 그중 필자를 포함한 3명이 기자이고 1명은 항공사 직원이었다. 안개로 타이베이에 묶여있던 진먼다오 주민들만이 돌아왔을 뿐 대부분이 관광객들인 외지인 왕래는 끊어진 것이다. 타이베이와는 달리 진먼다오의 일상은 중국의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완전하게 무너진 채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나절 가량 둘러본 진먼다오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하나는 중국 지척에 둔 최전선 요새로서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관광지로서의 모습이다.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은 활주로는 대륙편 쪽이 구릉에 막혀 있는 전형적인 군용 활주로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세워진지 얼마되지 않은 듯 깨끗한 공항청사안은 기념품 상점 등 관광객들을 위한 설비들로 꾸며져 있었다. 카키색의 군복과 울긋불긋한 일반인들의 옷이 비슷비슷하게 섞여 있었다. 주민 3만에 주둔 병력도 3만명이었다. 공항 청사밖을 나오니 택시들이 끝이 보이지 않게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다. 한 택시를 집어타니 운전기사는 몹시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한국에서 온 기자이며 초행임을 밝히고 섬을 안내해줄 것을 요청했다. 쉬량휘(許良輝)라고 자신을 소개한 운전기사는 "관광객들이 많이 줄었죠"라는 말에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기고 당신과 같은 기자들만 찾아온다"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많을 때는 하루 2,000명도 넘던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데다 출어마저도 못해 진먼다오의 경제상황은 고사상태라는 설명이었다. 날씨마저 잔뜩 흐려서인지 거리에서 일반 주민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어 섬 전체가 황량해보였다. 毋忘在莒비가 있는 타이우산(太武山)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것은 위장망을 한 지프와 병력을 실은 트럭이었고 민간인 차량은 장례차량이 유일했다. 타이우산은 산 전체가 요새인 듯 하였다. 정상에는 대륙 쪽을 향해 거대한 레이더기지가 있었고 군인들의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최전선의 군사기지가 있는 곳치고는 통제가 엄격하지는 않았다. 정상까지 이어진 포장도로는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그러나 민간인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다. 毋忘在莒　비로 오르는 30여분 동안 몇 명의 보초와 한쌍의 남녀가 마주친 사람들의 전부였다. 연인인 듯 싶은 이 한 쌍의 남녀는 양안 긴장이 가져다 준 관광지의 호젓함을 만끽하는 듯 했다. 무망재거비는 보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높이가 4장(丈=13.32m 가량)이고 폭도 2장(6.66 m)이나 됐다. 1975년 기록필름에서 본 뒤 21년 만에 실물을 본 것이다. 회색암벽에 새겨진 글귀는 붉은 색이 칠하여져 있어 선명했다. 오른편에 '민국 사십일년(民國 四十一年)', 왼편에는 '장중정(蔣中正)'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휘호는 대만으로 철수한지 3년 뒤, 즉 1952년에 쓰여진 것이었다. 주변에 있던 대만병사에게 사진촬영을 요청하니 선선히 응했다. 내려오는 길에 타이우산의 또다른 명소인 '연평군왕혁기처(延平郡王奕棋處)'를 들렸다. 석실인 이 곳은 안으로 13m 정도 파고 들어갔으며 높이가 4m에 넓이가 6m였다. 연평군왕(延平郡王)은 명(明)멸망 후 대만에 건너와 명 부흥을 꾀하던 정성공(鄭成功)을 가르킨다. 연평군왕이 바둑과 장기를 두던 곳이라는 뜻인 이 곳엔 바둑판과 장기판을 놓을 수 있는 돌 기대(棋臺)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성공이 대륙 쪽 해안가의 진먼다오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이 곳에서 막료들과 함께 관병(觀兵)을 하며 바둑과 장기를 두었다는 것이다. 고토회복의 비원을 이룩하지 못한 장제스와 정성공의 자취가 지척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감흥을 자아냈다. 장제스는 대륙이 보이는 진먼다오를 1년에 적어도 1차례 이상은 방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졔스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는 총통재임 시절 단 한차례 이 곳을 방문했을 뿐이며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은 총통취임 이후에는 한 번도 이 곳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군이 대만관할하의 한 섬을 무력 점령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했던 14일 리총통은 대만 본섬과 대륙 중간에위치한 펑후(澎湖)군도를 방문했지만 상징성이 강한 이 곳은 숭추위(宋楚瑜) 대만성장을 보내는데 그쳤다. 안전상의 문제를 고려했다기 보다는 '대륙수복'의 상징성에 결부되지 않으려는 의도 같아 보였다. 대만 섬의 전경이 굽어볼 수 있는 거광루(莒光樓)와 중국관할하의 섬과 불과 1,600 m 떨어져 있는 진먼다오 최북단의 관측요새 마산(馬山)에서도 장제스의 흔적인 남아있었다. 거광루 3층에는 장졔스가 이 곳을 순시한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고 또 마산(馬山)의 지하 토치카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장제스의 휘호로 짐작되는 '환아하산(還我河山)'이라는 남송(南宋)의 장군 악비(岳飛)의 고토수복슬로건이 걸려있었다. 대만에서의 장제스의 존재는 마치 중국에서의 마오쩌둥(毛澤東)의 위상과 비슷했다. 천안문에 마오의 초상화를 걸어두는 것처럼 대만도 타이베이 중심가에 거대한 장제스 기념관을 세워 그를 기리고 있다. 이처럼 여전히 존중하고는 있으나 그의 노선은 마오의 경우처럼 대만에서 잊혀졌다. 교두보는 관광명소가 되었고 비장한 슬로건 역시 이제는 관광의 소재일 뿐이었다. 진먼다오 곳곳에 남아있는 장제스의 흔적을 볼 때마다 21년 전 그 기록필름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다 건너 대륙을 바라보던 그의 비장하며 또 고독한 모습이. (1999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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