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0/03/29 22:03



4인방 마지막 생존자 姚文元 구랍 23일 사망

4인방의 마지막 생존자 야오원위안(姚文元)이 구랍 23일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7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신화통신이 6일 보도했다.

통신은 짤막한 부음기사에서 야오원위안을 ‘린뱌오(林彪), 장칭(江靑) 반혁명 집단의 주범’으로 호칭했다. 통신은 그가 장칭, 창춘차오(張春橋), 왕훙원(王洪文)과 함께 4인방으로 불리웠으며 1976년 체포된 뒤 최고 인민법원 특별법정에서 유기징역 20년, 정치권리 박탈 5년의 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1996년 10월 석방됐었다고 전했다.

뛰어난 문필력으로 ‘문혁의 붓’으로 불리웠던 야오원위안은 34세 때인 1965년 11월 10일 상하이 문회보(文匯報)에 '신편 역사극 해서파관을 평한다'라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 11년에 걸친 문화대혁명의 불길을 점화했다.

▶ 1981년 재판정에서의 야오원위안.

그는 그를 하루아침에 역사적 인물로 부상시킨 문제의 글을 발표한 지 40년 만에, 또 그 글을 통해 보위하고자 했던 마오쩌둥(毛澤東)의 탄생일을 사흘을 앞두고 사망한 것이다.

한편 장춘차오는 야오원위안 보다 8개월 전인 2005년 4월 21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신화는 야오원위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장이 사망한 20일 뒤인 5월 10일 뒤늦게 그의 사망사실을 보도하면서 ‘린뱌오, 장칭 반혁명집단사건의 주범’이라고 표현했다. 암으로 사망했다는 사실 외에 재판 및 형량변동 사항만을 보도했을 뿐 다른 약력은 싣지 않은 것도 야오와 마찬가지였다.

한편 장칭은 1991년 자살했고 왕홍원은 1992년 간암으로 병사했다. 사망 당시 나이는 장칭이 77세 왕훙위안은 57세였다.

4인방 張春橋 2005년 4월 21일 88세로 사망 2005/05/1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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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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