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0/08/03 22:47



[今天歷史-6월10일] 베이징 8개국 출병 북청사변 발생

한국서 6.10 항쟁, 코민테른 해산, 이란 팔레비왕 멕시코 망명, 신미양요 초지진 점령, 북한 김삼룡-이주하 교환 제안

1900년 6월 10일 영국 해군 제독 세이모어(E. H. Seymour)가 8개국 군대 1,800명을 이끌고 베이징(北京) 공략에 나섰다. 부청멸양(扶淸滅洋)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의화단(義和團)으로부터 공사관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이었다.

베이징 공략에 참가한 국가는 영국을 비롯, 독일, 러시아, 프랑스, 미국, 일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였다. 이들 제국주의 군대의 베이징 공략은 청 정부가 제국주의 세력 견제를 목적으로 의화단 세력을 이용하기 위해, 이들의 진압에 미온적인 데 대한 반발이었다.

이날 전투에서 베이징을 지키고 있던 의화단원 300명이 전사했다.

에바 가드너, 존 아일랜드, 찰튼 헤스톤, 데이비드 니븐 등이 출연한 영화 ‘북경(北京)의 55일’(1963년, 감독 니콜라스 레이)는 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55일은 당시 베이징의 미국대사관이 의화단원에 의해 포위된 기간이다.

冰點사태 ...중국판 ‘인식’과 ‘재인식’ 2006/03/02 16:37

세계사 속의 오늘

공산주의 인터내셔널(Communist International), 즉 ‘코민테른’이 해산됐다(1943).

''제3 인터내셔널'이라고도 불린 국제 공산당 기구인 코민테른은 1919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공산당에 의해 조직됐다. 창설 초기 이 기구의 지도자는 레닌이었다.

코민테른은 최대 세계 30개국 공산당 대표가 참가하였고 제7차 대회까지 가졌다. 해산 배경에는각국의 내부 사정이 복잡해진 데다가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서방 자본주의 구가들과의 의연대 필요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코민테른은 창설 2년 뒤인 1921년 중국에 요원을 파견하여 중국공산당 창당을 지도했다. 이후 1차 국공합작을 성립시켰고 당수 교체와, 지도 노선 결정 등에서 최종 결정권자로서 역할을 하였다.

[今天歷史-7월23일] 중국 공산당 창당

[今天歷史-8월25일] 국공합작 논의 시작, 국민당 출범

그러나 1935년 1월 장정 중 개최한 '쭌의 회의'를 통해 마오쩌둥이 중국공산당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코민테른은 중국공산당의 '갓파더'로서의 위상은 상실했다.

[今天歷史-1월15일] 쭌이 회의, 천두슈의 德선생

코민테른은 소련이 중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 기능을 했는데 그 영향력 자장 안에는 공산당원뿐만 아니라 국민당 주요 인사까지 들어 있었다. 심지어 손문 부인 쑹칭링이 코민테른의 비밀요원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기도 한다.

[今天歷史-1월27일] 岳飛와 莫須有죄, 宋慶齡 탄생

이란 팔레비 전 국왕이 멕시코로 망명했다(1979).

한국사 속의 오늘

서울 도심에서 정부의 호헌(護憲) 방침 철회를 촉구하는 시민항쟁이 전개되었으며 민정당은 전당대회를 열고 노태우 대표위원을 대선후보로 선출했다(1987).

미군이 신미양요 과정에서 강화도 초지진(草芝鎭)을 점령했고(1871), 대한제국 2대 황제이자 조선의 마지막 군주인 순종(純宗)의 국장일을 맞아 6 · 10 만세운동이 일어났다(1926).

북한이 6 · 25 사변 도발을 보름 앞두고 조만식(曺晩植) 선생과 남로당 김상룡 이주하의 교환을 남한 측에 제의했다(1950).

2015/06/1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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