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1/20 21:20



[今天歷史-4월9일] 張學良-周恩來 비밀회담

리펑 총리에 정식 선출, 미국 남북전쟁 종료, 나치 독일 덴마크와 노르웨이 침공

1936년 4월 9일 국민정부 동북군의 장쉐량(張學良)과 공산당의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샨베이(陝北) 푸스(膚施)에서 비밀회담을 갖고 내전을 종식시키고 항일전쟁에 협력하자는 데 합의했다.

장쉐량은 이 회담에서 자신의 재량이 미칠 수 있는 한에서는 공산군의 출로를 열어줄 수 있지만 기타 대부대의 이동을 허용하는 문제는 장제스(蔣介石)의 중앙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장쉐량은 당시 만주(滿洲)로 불리던 동북지방을 근거지로 한 군벌 출신이었다.

장쉐량은 만주에서 최대 군벌로 성장한 아버지 장쭤린(張作霖)이 일본군에 의해 암살당한 뒤인 1928년 12월 29일 자신의 휘하 군벌 병력을 거느리고 장제스가 지휘하는 국민정부 국민 혁명군 북벌군에 투항했다.
장쭤린은 베이징 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위안스카이 부하들인 북양 군벌 세력들을 무리치고 베이징까지 세력을 확대했으나 장제스의 북벌군에 쫓겨 자시느이 근거지인 만주로 전용열차로 이동하던 중1928년 6월 4일 일본군이 설치한 폭탄에 의해 폭사했고 장쉐량이 그의 뒤를 이어 만주 군벌의 지도자가 됐다.

국민정부는 장쉐량이 항복의 표시로 동북 전역에 청천백일기를 게양하자 그를 동북변방군 사령장관에 임명하여 자신의 군대를 계속 보유한 채 동북 3성에서 여전히 반 독립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허용했다.

[今天歷史-12월 29일] 東三省 전역에 청천백일기 휘날리다

1931년 만주사변으로 근거지에서 쫓겨난 장쉐량은 만주를 회복하기 위해 항일전에 나서고자 했으나 장제스는 ‘먼저 안을 안정시킨 뒤 외세와 싸운다’는 전략 방침에 따라 장쉐량에게 공산군 토벌에 나설 것을 압박했다. 만주 출신으로 구성된 동북군은 장제스의 이 같은 전략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었다.

장쉐량은 저우언라이에게 장제스가 일본에 항복한다면 그를 떠나겠지만 현재 상황은 장제스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공산군 점령지구로 진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담 후 공산당은 동북군공작위원회를 설립하고 저우언라이와 함께 회담에 참석했던 리커눙(李克農)을 뤄촨(洛川)의 장쉐량 사령부에 파견하였다.

이 비밀회담 8개월 3일 뒤인 1936년 12월 12일 시안(西安)사변이 발생한다.

[今天歷史-12월 12일] 시안사변(西安事變)

장제스는 북벌 과정을 통해 공산당을 말살해야할 불구대천의 적으로 삼았으나 반동적이며 역사 퇴행적인 군벌 세력에 대해서는 자신의 군사적 우월권과 국민정부 의 정통성을 인정하면 그들의 군사,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도록 허용, 공존을 택했다.

그러나 장쉐량의 경우에서 보듯 장제스에게 투항한 군벌들은 장제스와의 공존이 한시적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면종복배하는 자새였다. 자신의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세력을 강화하는 장제스에게 등을 돌릴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았으며 공산당을 '붉은 군벌'로 간주하고 장제스 견제에 협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장제스는 시안 사변으로인해 그가 가장 경계하였던 사태인 공산 세력을 그대로 둔 채 항일전쟁에 나서야 했으며 이는 종전 후 대륙을 공산 세력에 넘겨주는 원인이 되었다.

국공내전 말기 베이핑(베이징의 당시 명칭) 방어 총사령관 푸쭤이(傅作義)도 공산군의 공세에 남하 퇴각하지 않고 스스로 포위당한 채 협상을 벌여 항복했던 것도 자신 휘하 병력을 근거지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하여 세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계산 때문이었다. 장쉐량과 마찬가지 동기였다.

또한 장제스를 대신 임시 총통이 된 리쭝런(李宗仁)은 마오쩌둥을 ' 또 다른 장제스'로 간주, 혒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시간을 허비, 국부군의 패배를 가속화 하는데 기여햇다.

장제스의 대륙 상실 중에는 이런 면종 복배의 군벌들을 방치한 것도 한 가지 원인으로 도사리고 있다.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더 위험한 것이다.
1988년 = 리펑(李鵬)이 전인대에서 총리에 정식 선출되었다. 리펑은 1987년 1월 자오쯔양(趙紫陽)이 후야오방(胡耀邦)의 후임으로 총서기에 선출된 뒤 총리 대리에 임명되었으며 곧이어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총리에 선출됐었다.

세계사 속의 오늘

1861년 4월 12일 발발한 미국의 남북전쟁이 남부군 총사령관 리 장군의 항복으로 종식되었고(1865), 나치 독일군이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침공했다(1940).

2016/04/0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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